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57화 (1,256/1,307)

# 1257

“저요, 이제부터 주인님! 아니, 오라버니의 수행비서예요.”

“수행비서?”

“네! 주인님, 아니, 오라버니 뒤를 따라다니면서 수발들어주는 거요. 참! 주인님이라 안 하고 오라버니라고 하는 건 자칫 주인님이 남들 눈에 변태로 보일 수 있어서예요.”

“내가 변태라고? 그게 무슨…….”

“생각해 보세요. 저처럼 예쁜 여자가 졸졸 쫓아다니면서 주인님, 주인님이라고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뭐가 어떤데……?”

현수의 표정을 읽은 아리아니의 입술이 다시 열린다.

“그럼 그들 생각에 주인님, 아니, 오라버니는 변태가 되는 거예요. 오라버니 돈 많은 거 이제는 다 아니까요. 그리고 남자들은 여자가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면서요?”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드라마와 로맨스 소설이요. 참 재미있더라구요. 특히 한국 드라마는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좀처럼 끊을 수가 없더라구요. 입에서 욕은 나오는데 말이죠. 헤헷!”

현수는 아리아니의 재롱을 잠시 보고 있었다.

“참, 남들이 있을 땐 그냥 이 비서라 불러주세요.”

“이 비서?”

“아 비서라 부르면 이상하잖아요. 그러니까 제 이름의 끝 글자를 따서 그냥 이 비서라 부르세요.”

“끄응!”

예쁘긴 한데 약간은 푼수 같다. 그럼에도 하는 짓이 전혀 밉지 않다.

“알았어! 그나저나 보고 좀 해봐.”

“보고요? 무슨 보고요?”

“4대 정령들 하는 일!”

“텔레비전으로 다 보시잖아요. 여기저기 땅 꺼지게 하고, 다른 데는 솟아나게 하고. 원자력 발전소는 지각판 아래로 밀어 넣고 뭐 그러고 있어요.”

“근데 정령력이 부족하진 않은 것 같아?”

“그거요? 으음! 조금 과하게 쓰는 부문이 없지 않아요. 근데 할 수 없잖아요. 워낙 규모가 큰일이니까요. 조금 힘에 부쳐 하기는 해요. 좀 심하다 싶으면 아르센 대륙에 한번 갔다 오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지?”

예상대로이다. 아무리 정령왕이라 하지만 열도 전체를 가라앉히면서 화산이란 화산은 다 폭발시키고, 다른 곳은 솟아오르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애쓰고 있지만 불러서 말로만 치하만 하셔도 되요.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배려하면 애들 버릇 나빠지거든요.”

“……!”

바람의 정령왕 세리프아와 물의 정령왕 엘레이아를 심하게 견제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세리프아는 신장 170㎝ 정도의 푸른빛이 감도는 금발머리 이고, 엘레이아는 168㎝ 정도 되는데 연보라빛 글래머이다.

둘의 공통점은 현재의 아리아니만큼 아름답다는 것이다.

셋 다 인간이 아니긴 마찬가지인지라 말로 형용하기 힘든 신비함까지 갖고 있다. 그러니 시샘 내지는 질투 때문에라도 가까이 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참! 이제부터 제가 오라버니라고 부르기로 했으니까 걔들은 주인님이라도 부르도록 시킬게요.”

“걔들?”

“네, 엘레이아와 세리프아요. 걔들은 주인님이라 부르고, 노이아와 이프리트는 마스터 부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여성체는 주인님, 남성체는 마스터라는 뜻인데 뉘앙스가 요상하다. 현수의 시선을 받은 아리아니가 살짝 혀를 내민다.

미치도록 고혹적인 모습이다.

“고것들은 주인님이라 부르게 하고 전 오라버니라 부르게 해줘용. 네에?”

아리아니가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접한 모양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순진한 요정이니 인간처럼 대하면 안 된다.

그러고 보니 요정이나 천사는 느낌상 비슷하다.

고대의 문헌을 보면 타락천사는 본시 순백이었는데 한 번 잘못 물들어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한국의 일부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이 문제인 거지 아리아니에겐 아무 죄도 없다.

“어휴!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해.”

“헤헷! 기분 조오타.”

쪼오옥―!

후다닥 달려와 현수의 뺨에 키스를 하곤 떨어진다.

“아리아니!”

“오라버니 된 기념이에요. 호호호!”

교소를 터뜨리는 아리아니를 보고 현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하려는 말괄량이 여동생이 하나 생긴 듯한 기분이 든 때문이다.

그런데 오라버니라 부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오빠라 부르는 커플이 많다.

오라버니는 오빠의 옛말일 뿐인데 이처럼 즐거워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그렇게 좋아?”

“호호! 네에. 좋지요 그럼. 아! 참, 깜박 잊을 뻔했네.”

“뭘?”

“백두산에서 동남쪽으로 약 30㎞ 정도 떨어진 곳에 삼지연이라는 호수가 있는 거 혹시 알아요?”

“삼지연? 이름은 들어본 것 같네.”

삼지연은 양강도 동북부 해발 1,585m에 위치한 백두용암대지의 평탄한 수림 속에 위치한 호수이다.

북한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흘러드는 강이나 하천도 없고, 흘러나가는 곳도 없는 완벽하게 고인 물이다.

그럼에도 썩지 않으며, 물이 맑고 아주 깨끗하다.

“알죠? 제가 거기에 씨앗 하나를 심었어요.”

“호수에다 씨앗을 심어? 무엇의 씨앗인데?”

“세계수의 씨앗이에요.”

“뭐어? 세계수의 씨앗? 아르센 대륙에 있는 그거?”

“네! 거기가 여기서 가장 지세가 강한 곳이에요. 마나 농도도 제일 진하구요. 물도 많아서 세계수가 성장하기에 아주 딱이에요. 그러니 거기서 나무가 솟으면…….”

아리아니는 드래곤 로드인 옥시온케리안의 고모 켈레모라니와 함께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당시에도 숲의 요정이었는데 주된 임무는 세상 모든 숲이 싱싱하고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보살피는 것이다.

그중엔 세계수 역시 포함되어 있다.

아리아니는 토틀레아 일족이 지키던 세계수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지하에 묻힌 마종의 사악한 기운을 없앨 능력은 없었다.

어쨌든 현수에 의해 세계수가 푸르름과 싱싱함을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번 방문 때 아리아니는 세계수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지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있음을 알게 된 세계수는 씨앗을 내주었다.

나무 몇 그루가 더 자란다 하여 지구의 수질오염, 토양오염, 대기오염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그중 하나를 삼지연에 심었다는 것이다.

현수 덕분에 4대 정령왕을 부리게 되는 권능을 가졌으니 발아(發芽)하고, 생장하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삼지연은 용암대지 위에 있어서 그 아래는 수천 년 전의 양분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쑥쑥 자랄 거예요.”

“아! 그래? 노이아가 뭔 일은 하는 거구나?”

단단한 바위 층 아래엔 오염되기 이전의 토양이 보존되어 있다는 뜻임을 금방 알아들었다.

암석층을 깨어 구멍을 내면 세계수의 뿌리가 고대의 토양 속으로 뻗어 나가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삼지연의 물은 서서히 땅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식물 생장에 가장 적합한 상태가 되게 하는 건 숲의 요정인 아리아니가 알아서 할 일이다.

“네! 아마 지금쯤 발아하고 있을 거예요. 탈 없이 잘 자라도록 제가 숲의 가호를 내릴 테니 오라버닌 가이아 여신의 축복을 내려주세요.”

“아! 무슨 뜻인지 말았어.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현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과 국경이 된 휴전선 이북 지역은 이실리프 왕국의 영토로 선언될 것이다. 이곳의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지구 전체에 흩어져 있는 마나를 끌어당겨 사람들이 살기 좋게 하는 세계수가 자라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그렇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씨앗이 더 있으면 반둔두와 비날리아, 그리고 아와사 같은 곳에도 하나씩 심어줘.”

“네에, 적합한 장소가 있나 찾아볼게요.”

아리아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참 예쁜 모습이다.

“아무튼 정령들이 애쓰고 있다니 불러서 치하부터 해야지. 그리고 아르센 쪽에 가서 할 일도 있고.”

“아! 그래요? 그럼 지금 불러요?”

“일단 가서 확인해 봐. 일에 연속성이 있어야 하니 중간에 끊지는 말고. 바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시간적 여유는 있어. 뭔 소린지 알았지?”

“호호! 네에. 그럼요!”

“그건 그렇고 다른 것들은 어때? 여기저기 벌려놓은 건 많은데 내가 수습하는 게 너무 없는 것 같다.”

“나무 심고 이러는 건 제가 다 알아서 했어요. 농토나 수로를 만드는 건 노이아가 애썼고요. 농업용수 공급은 엘레이아가 맡아서 잘했구요.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은 건 세리프아가 적절히 조절하고 있어요.”

“그럼, 내가 신경 덜 써도 되는 거지?”

“네에. 개간하고 농사짓고 이런 건 사람들이 쉽게 일할 수 있도록 맞춰서 잘하고 있어요.”

농토로 개간을 해야 하는데 너무 단단한 땅이다 싶으면 개간작업을 하기 전에 노이아가 먼저 땅을 무르게 만든다.

작업 중 먼지가 많다 싶으면 엘레이아가 적절한 비를 뿌려주고, 덥거나 추우면 이프리트가 열을 빼앗거나 내놓은 뒤 세리프아가 바람 불게 하여 공기 조절을 맡아준다는 뜻이다.

“고맙군. 정말 고마운 일이야.”

현수가 아리아니와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딸 첼시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다.

“어라? 이 계정은……?”

4장 동방의 빛으로부터

힐러리는 여러 개의 이메일 주소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계정이 아니라 사적인 비밀 계정이다. 남편 빌 클린턴과 첼시만 사용한다.

언론에 알려지거나 다른 이들이 알지 않았으면 좋을 속내를 털어놓을 때 쓰자고 만든 것이다.

첼시는 이 계정으로 딱 두 번 메일을 보내왔다.

첫 번째는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과연 이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망설임이 담긴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그때 힐러리는 다 그런 거라면서 ‘너는 늘 올바른 결정을 하는 아이였으니 이번에도 옳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줬다.

두 번째는 대선후보가 되어 치열한 유세전을 펼칠 때였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바빠서 직접 확인할 수 없어 비서로 하여금 이메일을 온 걸 인쇄해 달라고 했었다.

유세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때 그 내용이 뭐였지?”

유세 당시엔 산지사방으로부터 각종 정보가 쏟아져 들어올 때이다. 상대 후보의 강점과 약점, 그가 한 연설의 내용 중 틀린 부분과 논리의 비약이 심했던 부분, 다음 유세 장소, 그리고 그 유세지 분위기와 선거 자금 모금 현황 등이 뒤죽박죽으로 전해지던 때이다.

그때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는 순간까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첼시가 보냈던 이메일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은 것이다.

“그 아이가 뭘 보냈을까?”

새로 온 이메일을 보려던 힐러리는 대선후보일 때 받았던 것을 먼저 클릭했다.

안녕, 엄마!

요즘 선거 때문에 정신이 없지?

도와주고 싶은데 괜히 거치적거릴 것 같아 물러서 있는 거 알지? 늘 뒤에서 엄마를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

참! 나 오늘 어떤 사람으로부터 엄마에게 꼭 전해 주라는 정보를 받았어. 내가 읽어봤는데 엄마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메일로 보내.

근데 공용메일로 보내면 너무 메일이 많아서 읽지 않을 수 있어서 가족 계정으로 보내는 거니까 이해해 주라.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꼭 이겨서 날 또 한 번 대통령의 딸이 되게 해줘. 사랑해∼!

참, 그 사람이 준 건 파일로 첨부했어.

요 아래를 클릭해 봐.

―엄마의 사랑스런 딸 첼시가♥

이메일의 내용을 읽는 힐러리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조금 전까지 참담했던 기분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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