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9
사랑하는 딸∼!
세상에서 제일 바쁜 엄마다.
네가 보내준 이메일 잘 받았는데 그거 혹시 중학교 때 친구 아그네스를 통해서 받은 거니?
그렇다면 누가 보낸 건지 알아봐 줄래?
―your mom
아그네스는 첼시와 같은 나이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보내준 일련의 메일 같은 것을 보낼 능력이 없다.
따라서 동방의 빛은 제3자이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존재이니 감사의 뜻은 표해야 한다.
힐러리는 메일을 보내놓고 턱을 괸 채 잠시 기다렸다.
언제 간악한 유태인 놈들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렇게 있고 싶어서이다.
딩동∼!
메일이 도착했다는 소리에 화면에 시선을 주니 첼시로부터 답장이 와 있다.
엄마! 나 진짜로 깜짝 놀랐어.
그거 엄마한테 보내 달라고 한 게 아그네스 맞거든.
확실히 우리 엄마는 머리가 좋아♥!
어쩜 그렇게 콕 집어서 한 번에 맞추지? 신기해∼!
아그네스가 우리 집에 온 게 딱 세 번이거든.
아무튼 나도 궁금해서 물었는데 아그네스도 잘 모른대.
학창 시절에 한국에서 장학금을 보내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부탁해서 보낸 거야.
돌아가신 아빠의 친구라는 것만 아는데, 그분의 부탁이라 나를 통해 엄마에게 이메일이 간 거야.
암튼 난 더 이상의 정보가 없어.
아그네스가 자기 연락처 가르쳐 줘도 된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전화 걸어봐.
호호, 그 계집애 아마 깜짝 놀랄 거야ㅎㅎㅎ
아무튼 제3자인 난 빠져요.
메일의 아래엔 아그네스의 현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직장명 등이 있었다.
힐러리는 메모지에 옮겨 적는 대신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적인 용도로만 쓰는 것이나 요금도 본인이 내는 것이다.
♩♪♬∼♪♬∼♬∼♬♩∼♪♩∼♩♬♪∼
컬러링을 들어보니 한국의 걸그룹 다이안이 발표한 ‘사랑하는 마음’이란 곡이다.
대단히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인지라 들을 때마다 젊은 시절의 뜨거웠던 사랑을 떠오르게 한다.
빌보드 챠트에서 1위를 했던 곡이라 힐러리도 잘 아는 곡이다. 잠시 허밍으로 따라 불렀다. 가사의 내용은 알지만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긴 어렵기 때문이다.
“Hello! This is Agnes.”
“Uhh, I’m Hillary. Chelsea’s mom.”
“What? Oh, my god. I’m really really nice to…….”
평범한 한국계 이민자 아그네스 정은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한참 동안 패닉 상태가 되었다. 뭐라고 아주 빠른 속도로 떠드는데 힐러리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였던 때문이다.
그런데 곁에 누군가가 있는 듯하다. 하여 개인적인 통화를 원한다고 했고 잠시 후 사태가 정리되었다.
“아그네스! 오랜만이지.”
“네, 대통령님!”
“첼시를 통해 두 번이나 이메일을 받았는데 누가 너에게 그걸 전해 달라고 부탁했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으음, 그분은 제 학창 시절 때 장학금을 보내주신 분인데요. 저는 그분의 이메일 주소만 알아요. 그거 알려드릴게요. 받아 적으실 수 있으신가요?”
통화를 마친 힐러리는 아그네스가 알려준 이메일 주소를 유심히 살폈다. 이메일 계정을 서비스하는 포털 사이트는 한국의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두 번씩이나 보내준 사람은 분명 한국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미한국대사 윤성우가 외무장관 존 캐리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제거되었으므로 철군해 달라고 했다. 계속 주둔해야 할 경우엔 SOFA를 개정해야 하고, 부지 사용료 등도 내라고 했다.
아울러 전시작전권도 회수할 것이며, 일본과의 분쟁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전에 없이 당당한 요구이다.
스텔스기를 잡아내는 신형 레이더와 새로운 스텔스 도료를 개발한 후 부쩍 자신감이 늘어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동방의 빛’은 백악관 회의실마저 감청할 능력을 가졌다.
힐러리는 아그네스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동방의 빛 본인이길 바라며 이메일을 보냈다.
친애하는 동방의 빛 님에게!
안녕하세요? 힐러리 로댐 클린턴입니다.
먼저, 두 번에 걸친 정보 제공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일전의 정보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고, 이번의 것은 제 목숨을 구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아하니 ‘동방의 빛’ 님은 한국인 같은데 제게 왜 이런 귀한 정보를 주는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시간과 여건이 괜찮으시다면 미국에 한번 와주시길 바랍니다. 직접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언제 오셔도 좋은데 다만 일정상 일주일 정도 여유를 주고 방문해 주십시오. 왕복 경비 및 체류 비용은 전액 제가 부담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론 아그네스나 첼시를 거치지 말고 제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미국 대통령 힐러리 로댐 클린턴
이메일의 말미엔 첼시와 사용하던 이메일 주소와 사적인 용도로 쓰는 휴대전화의 번호를 남겼다.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파격을 행사한 이유는 두 번의 정보가 정말 중요했기 때문이고, 상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기에 몇 줄 안 되는 이메일의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 낸 것이다.
메일을 보내고 시간이 조금 흘렀으나 회신이 오거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렸으나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여 노트북을 덮으려는 순간 ‘딩동’ 하는 알림음이 들린다. 얼른 다시 펼쳐 보았는데 빌이 메일을 보냈다.
빌이 보낸 메일의 내용은 백악관 경호팀 중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군지를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강연회가 있어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사전 조치를 취한 모양이다.
힐러리가 메일을 확인하는 동안 경호팀 특별 임무 교대가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지만 윗사람이 시키는 일인지라 동료들과 교대하고 물러나는 경호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힐러리와 빌은 사전에 암살 위험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겉보기엔 평화스럽지만 언제 총성이 울릴 지 알 수 없어 지극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5장 당신은 짐승이에요!
“어머! 언제 오셨어요?”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던 지현은 현수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음! 이제 막. 아직 이른 시간인데 조금 더 자지. 왜 벌써 일어나?”
“현이 아침밥 해줘야죠.”
“현이 아침밥을 주는 게 아니라 해줘? 밥을 자기가 해?”
이곳은 에티오피아 남부에 위치한 아와사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던 위의 이실리프 궁이다.
태국 북부 최고의 리조트인 ‘다라데비 치앙마이’ 또는 ‘포시즌스 치앙마이’ 같은 느낌을 주는 화려한 건물이다.
1층 바닥 면적만 3,000여 평에 이르는 커다란 건물은 20만 평에 이르는 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이실리프 왕국 아와사 자치령의 행정부 역할도 맡고 있다. 권지현이 행정수반직을 임시로 맡은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당히 많은 사용인이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그중엔 수발을 들어줄 요리사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지현은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런데 밥을 한다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쳇! 저는 여기 행정수반이기 이전에 엄마거든요.”
“현이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왜 없겠어요? 있죠. 그래도 아침밥은 꼭 내 손으로 지어 먹였어요. 아침을 잘 먹어야 하루를 기운차게 보내니까요.”
“저기, 오늘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될까?”
“……!”
권지현은 현수와 잠깐 시선을 마주친다.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낯을 붉힌다. 그리곤 인터폰을 눌러 오늘은 현이 아침밥을 유모가 알아서 먹이라고 했다.
현이도 중요하지만 부부 간의 일도 매우 중요한 때문이다.
“치잇! 나쁜 아빠예요. 자기는!”
“근데 좋은 남편은 되는 거야?”
“아뇨! 그것도 아니에요. 자긴 C학점이에요. 날 매일 독수공방시키니까요. 하지만 뭐 이제 하는 거 봐서 등급을 올려드릴 수는 있어요.”
“흐흐, 그래? 그럼 학점 올리게 과하게 힘 좀 써볼까?”
현수는 짐짓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잠시 후, 이실리프궁 심처에선 아침부터 달뜬 신음을 내는 여인이 있었다.
아와사 자치령의 행정수반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에겐 국모(國母)로 불리는 여인이다.
일진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침실엔 팔팔한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는 현수와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 권지현이 있었다.
“자긴 짐승인가 봐요.”
“그치? 내가 한 짐승해. 근데 내 학점 올랐어?”
“네! 자긴 A학점이에요.”
“피이, 겨우?”
“좋아요. A 플러스예요. 끄응! 그나저나 그거 한 번 해줘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어요.”
“후후, 그래! 바디 리프레쉬!”
샤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축 늘어져 있던 지현이 이내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다.
“에고, 힘들어라. 그래도 좋았어요.”
지현은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애 엄마임에도 너무 섹시해서 한 번 더 널브러지게 하려다 말았다.
짐승을 넘어 괴물이란 소리를 들을까 싶어서이다.
“자기, 커피 마시는 동안 여기 일 보고해요?”
“보고라니? 우린 부부야. 그냥 어떻게 진행되는지만 이야기해 줘. 참, 여기 행정수반직을 맡길 분을 물색해 놨어.”
“어머, 그래요? 누군데요?”
“지금 한국에서 대통령직 권한대행을 하고 계신 정순목 외교부 장관님이야.”
정순목 권한대행과 임문택 계엄사령관은 직에서 물러나면 한국에서 살기 힘들 것이다.
반대 세력들의 만만치 않은 반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자리를 옮기면 그럴 우려가 완벽하게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참! 한일전 잘 끝난 거죠? 소식은 들었는데 결과는 어때요? 여긴 인터넷이 아직 시원치 않아요.”
“어, 그래?”
콩고민주공화국 반둔두와 비날리아 자치령보다 늦게 개발에 착수하여 아직 기본적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현호부터 띄우게 할게. 그게 우주로 올라가면 위성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될 거야.”
미국의 원웹과 Space―X는 미연방통신위원회에 위성 인터넷 관련 시스템 테스트를 실시한 바 있다.
위성이 요청을 수신하고 다시 반응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지연 문제 때문이다. 그때 고도 160∼2,000㎞짜리 저궤도에 위성을 쏘아 올렸다. 위성을 가급적 지구 가까운 곳에 배치해 지연 시간을 500㎳에서 20㎳까지 단축하려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미국 내 가정용 광섬유 인터넷 속도에 필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수가 생각하는 것은 저궤도가 아니다.
이실리프호가 그러하듯 지현호, 연희호, 이리냐호, 테리나호, 설화호는 모두 고도 3만 5,800㎞에 자리 잡는다.
이처럼 지구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졌음에도 시간 지연 문제는 발생되지 않을 것이다. 적재적소에 타임 딜레이와 타임 패스트 마법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도를 택한 이유는 이실리프 왕국과 조차지를 제공한 국가들에게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인터넷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모든 이실리프 왕국 간의 통신 네트워크를 맡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상위성의 역할도 맡을 것이고, 첩보용 및 군사용 위성 역할까지 맡게 된다.
“그거 언제 올라가는데요?”
“그건 이실리프 우주항공과 이실리프 스페이스, 그리고 이실리프 코스모스 등에 연락을 해봐야 알아.”
“끄응! 인터넷이 느려 터져서 너무 답답해요.”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받다가 이곳에서 모뎀을 이용한 것을 쓰고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