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3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흐음!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줄래?”
“네에, 전 구경하고 있을게요.”
“플라이!”
현수의 몸이 허공으로 솟아오르자 이리냐는 슈퍼맨 바라보듯 눈을 크게 뜬다. 날개도 없고, 온 힘을 다해 뛰어오른 것도 아닌데 하늘로 솟구쳐 오르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아아! 정말……!”
이리냐는 새삼스런 눈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존경과 흠모, 그리고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신형은 상당히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대기오염이 없는 곳이라 높이 솟으니 반경 20㎞ 정도가 한눈에 보인다.
지도에 표기된 대로 상당히 넓은 암석지대가 펼쳐져 있다. 농사를 짓거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형성시키기에 부적합한 곳이다.
게다가 주변 경관이 빼어나지 못하여 관광지가 될 만한 곳도 아니다.
“흐음! 좋군. 딱 괜찮은 자리야.”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이실리프 군도에서 채취해 놓았던 어마어마한 양의 목재와 그 부산물들을 암석지대 한편에 내려놓았다.
와르르르! 와르르르르르르르! 우르르르르르르릉―!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서 목재 더미가 끝없이 쏟아지며 하나의 산을 이루는 장관을 지켜보는 이는 이리냐가 유일하다.
“헉! 세상에 맙소사……!”
이리냐는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15억 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 쏟아져 내렸다.
현수의 아공간에는 50톤짜리 덤프트럭으로 약 1억 대 분량의 목재가 담겨 있다. 이실리프 군도를 개발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중 3분의 1 정도만 내려놓았음에도 상당히 높은 산 하나가 새로 생겼다.
이제 이 인근에 제재소와 펠릿 제조 공장을 건립하면 가구 제조 등에 사용될 질 좋은 목재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자 할 때 필요한 연료가 생산될 것이다.
35억 톤 중 15억 톤은 몽골 자치령에 내려놓을 것이다.
나머지 20억 톤은 북한 지역에 필요한 목재 및 난방 연료로 바뀔 예정이다.
북한 지역에 거주하는 인원이 월등히 많음에도 현수가 이런 배분을 한 이유는 기후와 인구를 고려한 것이다. 기온이 낮으면 더 많은 펠릿이 소모되어야 하는 때문이다.
“세상에 맙소사! 아공간이 얼마나 크면…….”
수북하게 쌓인 목재 더미를 본 이리냐는 입을 딱 벌렸다.
현수의 아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던 때가 있었다.
지현과 연희는 공간을 왜곡시켜 만든 것이라 얼마 안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예상 밖이다.
이리냐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현수는 스르르 내려앉으며 손을 턴다. 할 일 다 했다는 뜻이다.
“자, 자기야!”
“하하! 좀 많지?”
“저, 저게 조금 많은 정도예요? 세상에 맙소사! 어떻게 저 많은 걸……. 대체 자기 아공간은 얼마나 넓은 거예요?”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듯 이리냐는 또 입을 벌린다.
“상당히 부피가 크지. 저기 있는 것의 열 배 이상은 더 들어갈 충분한 공간이 있으니까.”
“거기 한번 들어가 보면 안 돼요?”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다.
“당연히 안 되지. 아공간엔 공기가 없어서 숨을 못 쉬어.”
“아……!”
이리냐는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목재로부터 신선한 느낌이 확 다가왔다.
아르센 대륙의 싱싱한 목재라 지구의 그것보다 훨씬 고농도의 피톤치드를 뿜어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흐음! 공기가… 굉장히 신선해진 것 같아요.”
“그래? 온 김에 여기 좀 머물러 볼까?”
아공간에서 소파를 꺼냈다. 둘은 거기에 앉아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밀어를 나눴다.
커피도 만들어 마셨고, 저녁식사도 맛있게 했다. 촛불과 와인을 곁들였는지라 아주 로맨틱한 분위기였다.
당연히 열풍도 한 번 불었다.
“자기야! 나 아무래도 아름이 동생 가질 것 같아요.”
“…정말?”
가임기 (가임기 :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임신될 수 있는 기간. 배란일(생리 예정 —14 일) 기준으로 전 4일과 후 2일 사이.)였는지 이리냐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닮은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여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인 때문이다.
“이렇게 호젓한 곳에서 자기랑 나랑 단둘이 이러고 있으니 너무 좋아요.”
“좋다니 다행이네.”
현수는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이런 분위기며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 * *
“어머! 자기야.”
해모수궁 입구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테리나는 현수를 보자마자 와락 안겨든다.
“잘 있었지?”
“그럼요, 자기는요?”
“나도 물론 잘 있었지.”
현수가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일 때 테리나 뒤쪽에 있던 총관 함익필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아! 수고가 많네요. 다들 잘 있는 거죠?”
“그럼요, 다들 평안합니다. 모두 가주님 덕분이죠.”
함익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직책은 해모수궁 총관이다. 그런데 권력 서열이 상당히 높다.
행정수반과 통령, 그리고 테리나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함 총관에게 지시를 내릴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체제가 완전하지 않아서이고, 맡은 일이 가주 일가를 측근에서 모시는 가까운 신하 같은 느낌을 줘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함익필은 누구에게나 정중하고 예의 바르다.
영국의 유서 깊은 집사전문학교에서 교감직을 맡아 정치적인 문제를 제외한 대소사를 총괄 조율한 사람답다.
“개발 상황을 보고 받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행정수반과 통령께서 현재 외근 중이십니다. 상당히 먼 곳에 계셔서 그분들의 보고는 어렵습니다.”
“그래요?”
아무런 예고 없이 왔으니 뭐라 할 일이 아니다. 하여 그런가 하는데 함 총관이 말을 잇는다.
7장 카헤리온과 봉황
“행정수반께서는 언제 가주님이 귀가하실 지 모르니 늘 브리핑 준비를 해놓으셨습니다. 그분에 미치진 못하겠지만 제가 보고드려도 되겠는지요?”
역시 집사학교 교감답게 정중하고 예의 바르다.
“가능하시면 부탁드리지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함 총관은 준비를 하겠다며 물러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테리나가 안겨온다.
“자기! 보고 싶었어요.”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테리나는 외로웠다. 지적 수준이 너무 높아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 늘 머물고 싶은데 그러지 않아서이다.
그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테리나가 택한 것은 자치령 개발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며, 효과적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행정수반인 남바린 엥흐바야르와 통령인 오정섭 전 대한민국 국방장관이 장거리 출장을 떠난 이유는 테리나의 지적 때문이다.
몽골 자치령 역시 겨울이 되면 엄청나게 추운 곳이다.
항온 의류가 보급되어 있지만 다른 계절에 비해 활동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에 테리나는 Y―STAR 총책임자인 박형석 박사에게 연락하여 겨울에도 사람들의 활동성이 저하되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핵융합발전을 성공시킨 박형석 박사가 새롭게 도전한 분야가 태양광발전 수율 제고였던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발전 효율을 더 높여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상당한 성과가 있다는 연락이 왔는데 행정수반과 통령이 직접 확인하겠다며 같이 가버린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둘의 동반 출장은 있어선 안 된다.
자치령의 두 축인데 둘이 한꺼번에 불상사를 당하면 큰 문제인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이 간 것은 각각 인근 지역에 볼일이 있었던 때문이다.
어쨌든 둘은 각각 다른 헬기를 이용했다.
“자기야! 올라가요.”
“그럴까?”
테리나의 안내를 받아 해모수궁의 최상층인 7층에 오르자 사방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수가 울창해진 숲에 시선을 주고 있을 때 테리나가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자기야! 나 그거 언제 줘요?”
“그거? 그게 뭔데? 뭘 말하는 거야?”
“슈퍼 포션말이에요.”
조금 더 어린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얼른 현수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아……! 그거. 조금만 더 기다려. 그거 복용하면 나랑 열흘 동안 동행해야 하는 거 알지?”
“알아요! 난 언제든 좋으니 준비되는 대로……. 읍!”
테리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입술을 현수가 틀어막은 때문이다. 또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지 축 늘어진다.
길고긴 설왕설래가 끝난 후 현수가 속삭인다.
“바쁘지만 조만간 내가 시간을 낼게. 테리나의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그다음에……! 알았지?”
두 볼이 붉게 상기된 테리나는 애정이 담뿍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절차를 밟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뜻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함 총관이 기다리겠지?”
“아! 그래요.”
둘이 다정스레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브리핑 준비가 완전하게 갖춰져 있다.
“가주님! 그럼 브리핑 시작할까요?”
“네, 그래 주세요.”
“먼저 전체 개요부터…….”
함 총관의 브리핑은 아주 능숙했다. 간결하면서도 요점을 딱딱 짚었고, 알고자 하는 내용은 다 들어 있었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몽골 자치령의 개발은 89% 정도 진척되었다. 그 결과 농산물과 축산물은 자치령과 몽골에서 필요로 하는 양의 100%를 충족시키고 있다.
그래도 남는 것들은 가공식품으로 제조하고 있다.
이것들은 화물열차를 이용하여 북한 지역으로 보내지는 중이다. 신선 식품은 아직 보내지 못한다. 선도 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려면 많은 비용이 드는 때문이다.
브리핑이 끝난 후 현수는 몇 가지를 메모했다. 그중 하나가 포털 마법진의 설치이다.
이걸 통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면 열차를 이용한 수송처럼 비용 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식품의 경우는 신선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불과 몇 초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지는 때문이다.
북한 지역은 식량과 각종 생필품이 부족하다.
몽골과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의 자치령들은 각종 공산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러시아 자치령은 조금 낫기는 하지만 가전제품 등 일부 품목은 made in Russia보다는 made in Korea의 품질이 훨씬 더 낫다.
러시아와 몽골 자치령에서 생산된 물자가 북한 지역이나 한국으로 이동하거나 반대의 경우가 되면 필연적으로 러시아, 몽골 또는 지나의 영토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보내는 물건 가운데에는 전차나 장갑차, 혹은 미사일 같은 전략물자가 포함될 수 있다.
러시아나 몽골이야 양해해 주겠지만 지나는 강력한 도발을 가해올 확률이 매우 높다.
현재 막대한 양의 농산물 등이 지나로부터 한국에 수출되고 있다.
농약으로 범벅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국이 이걸 수입하는 이유는 값이 싸고 운송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골이나 러시아 자치령으로부터 농축산물 등을 공급받게 되면 더 이상 지나산을 수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몽골과 러시아 자치령에서 생산되는 건 한반도 전체가 다 쓰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기 때문이다.
지나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 바로 포털 마법진이다.
마법진 설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제대로 작동시키고 유지할 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법사가 필요한데 지구엔 마법사가 딱 두 명밖에 없다. 하나는 현수고, 다른 하나는 연희이다.
현수는 너무 바쁘고, 연희는 이제 겨우 1서클이라 마법진을 작동시키고 유지 보수할 능력이 없다.
“흐음, 마법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