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8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말기 암 환자가 단번에 나았다고 하는 거야? 지금?”
홉킨스 볼드윈의 말에도 어시스트는 끔쩍도 하지 않는다.
“네! 엘릭서를 복용하면 그렇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권위자가 킨샤사에 있는 이실리프 의료센터에 근무지원한다고 미국을 떠났습니다.”
“존 오키프 박사님도 그런 분 중 하나죠.”
마취과 의사까지 거들고 나서자 홉킨스 볼드윈 대령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헐! 그럼 미라힐이라는게 진짜 엘릭서라는 거야?”
“미라힐이 엘릭서인 게 아니라 미라힐은 미라힐입니다.”
홉킨스 볼드윈 대령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러면서도 힐러리의 바이탈 사인 (바이탈 사인(Vital sign) : 활력 징후. 사람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호흡, 체온, 심장박동 등의 측정치.)을 살핀다.
모든 수치가 정상범위 안에 들어 있음을 확인한 홉킨스 볼드윈은 어시스트에게 시선을 준다.
“대통령님을 ICU (ICU(Intensive care unit) : 외과계, 내과계의 환자를 불문하고 중증환자를 한 곳 에 모아서 중점적으로 치료하는 장소를 가리키며 중환자실이라고 한다.)로!”
“네, 대령님!”
힐러리가 옮겨지는 동안 홉킨스 볼드윈은 수술 장면을 녹화한 파일을 찾아 재생시킨다.
미라힐Ⅹ가 환부에 닿는 순간 흰 거품이 이는가 싶더니 벌어졌던 상처가 저절로 오그라들고, 이내 흔적도 없이 아물어 버린다.
“후와아,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끄응, 이것만 있으면… 의사 노릇 쉽겠네.”
미라힐이 닿자 출혈을 보이던 혈관이 저절로 아물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상처는 의사도 필요 없다.
아니, 정말 큰 상처가 아니라면 의사가 필요 없다.
“혹시 손상된 장기도 치유되나?”
말기 암도 고치는데 간경화나 신부전 등도 고쳐질지 모른다. 홉킨스 볼드윈은 화면에서 존 오키프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곧바로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곤 지체 없이 존 오키프 박사의 번호를 눌렀다.
“박사님! 미 해군병원 외과장 홉킨스 볼드윈입니다.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홉킨스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존 오키프가 말 사이에 끼어든 때문이다.
“아! 수술이 끝난 모양입니다. 하긴 미라힐은 그러고도 남지요. 궁금한 것이 많을 겁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네! 미라힐이라는 거 이거…….”
이번에도 홉킨스의 말이 잘린다.
“이곳에 오면 실컷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동양 속담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번 봤으니 이곳에 와서 실컷 보십시오. 미라힐은 단언컨대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
당대 최고의 권위자가 한 말이다. 홉킨스 볼드윈은 잠시 말을 끊었다.
“제가 가면 받아줍니까?”
“해군병원 외과장이라 했지요?”
해군병원은 워싱턴에서 북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메릴랜드 베쎄스다에 위치한 병원으로 대통령 전용 병원이다.
“네.”
“그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홉킨스는 뉘앙스를 확연하게 느꼈다. 자신 정도는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는 것을! 그래도 가고 싶다.
“곧 가겠습니다. 박사님! 저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기다리죠.”
* * *
“방금 뭐라고 했나?”
제임스 포레스탈 국방장관은 CIA국장 에모리 스튜워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둘은 친구 사이이다.
“파병을 취소하라고 했네.”
“파병을 취소하다니? 우리 이스라엘이 아랍 놈들에게 당하고 있다고. 우리 민족의 고향인 그곳에서!”
제임스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이런! 아직도 모르는군. 어서 텔레비전을 켜보게. 근데 자네 아랫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도 안 해주나?”
“아! 내가 조용히 한잔하려고 방해하지 말라고 했네. 그나저나 텔레비전이라니? 그 여우가 죽었나?”
“힐러리는 멀쩡해. 이실리프 그룹에서 가져온 미라힐이란 것 덕분이지.”
“총알을 두 발이나 맞았다며?”
“그래! 그랬지. 폐에 한 발, 심장에 한 발. 그런데 수술은 끝났고, 목숨은 건졌네.”
에모리 스튜워드의 말에 제임스 포레스탈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쩝! 자네 의학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몸에 총알이 박힌 수술이라는 게 그리 쉽게 끝나지 않네.”
“그래, 쉽게 안 끝나지. 근데 힐러리의 수술은 이미 끝났네. 마취만 풀리면 집무실로 되돌아올 것이네.”
“그게 말이 되나? 총알을 두 발이나 맞았는데.”
“그래! 두 발 맞았는데 멀쩡하다고 하네.”
“뭐야? 대체 뭐지?”
제임스 포레스탈은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때 에모리 스튜워드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른다.
CNN 방송이 뜬다.
“이 시각 현재 상황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네! 여기는 이스라엘의 하이파입니다. 제 뒤로 보…….”
“뭐야? 저게?”
놀란 제임스의 얼굴을 본 에모리는 음량을 줄인다.
“조금 전 이스라엘에 또다시 운석우가 내렸네.”
“또?”
“그래! CNN 특파원의 말에 의하면 지난번에 비해 열 배 이상 되는 무지막지한 양이 쏟아졌네.”
“헐! 열 배나? 그, 그래서……?”
“그 결과 거의 모두가 죽었네. 하이파를 비롯한 서부 해안도시 전부가 쑥대밭이 되었어. 그 결과 400만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네.”
말을 마친 에모리가 다시 음량을 키우자 CNN 특파원의 음성이 들린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은 관공서 건물이 있던 곳입니다.”
특파원이 서 있는 곳은 움푹 파인 크레이터의 중심부이다.
이때 화면이 바뀌면서 두바이의 건축물 비슷한 대형 건물의 사진이 올려진다. 바람을 머금은 돛이 부푼 듯한 형상인데 30층 정도인 현대식 건물이다.
“관공서가 있던 이곳은 보다시피 크레이터가 깊게 파였습니다. 평상시엔 상당히 유동 인구가 많았던 곳인데 현재는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엔 생존자가 없습니다.”
화면 아래에 자막이 뜬다.
이스라엘에 운석비 재차 쇄도!
사망자 400만 이상으로 추정.
“이런 말씀을 드려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은 이제 멸망한 듯싶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화면은 폐허가 되어버린 하이파의 참혹한 광경을 비추고 있다. 특파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문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현장에 있으니 마음이 착잡한 듯싶다.
장면이 바뀌면서 이스라엘의 다른 장소들이 비춰진다.
이스라엘 서부 해안 최남단 도시인 칸 유니스부터 시작하여 가자 시티, 아쉬켈론, 아슈도드, 홀론, 바트얌, 테아비브야파, 라마트간, 페타 티구아, 네타니아, 하데라, 하이파, 아코, 그리고 최북단 도시 나하리야까지 모두 나온다.
화면 아래 각 도시별 명칭이 자막으로 떠 있어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두가 완벽한 폐허이다. 멀쩡한 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99.99%가 사라진 것이다.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채 깔려 있을 것이다. 개중엔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구조의 손길은 전혀 없다.
구조할 인력 자체가 없는 때문이다.
운석우가 내린 후 긴급히 파견된 특파원이나 리포터들은 다들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입을 다물고 폐허가 된 현장의 모습만 보여준다.
운 좋게 운석이 쇄도하는 장면을 찍은 화면이 송출되었는데 그마저도 중간에 잘렸다. 현장 욕심 부리다가 운석 공격에 당해 목숨을 잃은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 이 땅은 어떤 나라가 차지하게 될까요?”
특파원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화면을 보고 있는 유태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이건 분명한 천벌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천벌이 올까 싶은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반성하자고 했다.
반면, 범이슬람인들은 환호작약하고 있다.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간다.
이들은 위대한 알라께서 간악한 유태인들을 깨끗이 쓸어버렸다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수도 다마스쿠스 동부 시가지 일부가 폐허로 변한 시리아에선 신나는 음악이 연주되고, 이에 맞춰 춤을 추는 이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이 밖에도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나라들 모두 잔치 분위기이다.
유럽 각국 언론들은 직접적인 논평 대신 사실에 입각한 보도만 할 뿐이다. 그래도 잘 들어보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까불다가 천벌을 받아 쌤통’이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자신들의 이익만 꾀하던 유태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저도 모르게 섞인 것이다.
“어떻게 이스라엘에만……!”
제임스 포레스탈은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이다.
조상들의 고향인 이스라엘이 완전무결한 폐허로 변했고, 790만 인구 중 얼마가 살아남았는지 알 수 없다.
항구에 있던 선박들은 거의 모두 침몰 또는 파손된 상태이다. 운석이 쏟아지자 급하게 배를 타고 나섰던 사람들은 운석이 일으킨 큰 파도에 휩쓸려 모두가 익사했다.
어느 리포터인지 특파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말처럼 이스라엘은 멸망당했다. 남은 인구가 있더라도 너무 숫자가 적어 국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운석이 한 나라를 없앤 것이다. 현수와 이실리프호 승조원을 제외한 세계인 모두 천벌이라 한다.
훗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욕심만 채우던 유태인들이 천벌 받았음은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에모리 스튜어드는 멍한 시선인 제임스를 바라본다.
“파병해 봐야 소용없네. 가봤자 구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잔뜩 기세가 오른 아랍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적지 않은 병사들만 잃을 확률이 높네.”
“끄응! IS 같은 놈들에게나 쏟아질 것이지.”
헤즈볼라, 하마스 등 이슬람 무력단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제임스이기에 그의 투덜거림은 길었다.
그렇다 하여 본연의 임무를 잊은 것은 아니다. 잠시 후, 6함대 사령관에게 긴급 출동 명령을 해제했다.
“그나저나 그 여우가 알면 안 되는데.”
여우는 당연히 힐러리를 뜻한다.
“당연히 알 수가 없지. 사무엘은 이미 죽었네.”
백악관 경호팀장의 이름이 사무엘이다. 범인이 죽은 이상 배후를 밝혀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끄응! 이번 일로 색안경을 끼고 보면 안 되는데.”
자신이 반대하던 파병 명령이 시해 사건 직후에 내려졌음을 알게 되면 힐러리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법대 출신이라 논리적이면서도 고집이 강하고, 자아에 대한 확신도 커서 제 뜻에 맞지 않으면 끝까지 캐묻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CIA는 내가 꽉 잡고 있으니 문제없고, NSA도 괜찮네.”
“그래도 다시 한 번 점검하세.”
“그러지.”
다시 한 번 점검해서 나쁠 일 없기에 에모리 스튜워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이실리프 그룹에서 보낸 게 뭐라고?”
제임스의 물음에 에모리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한다.
“미라힐이라는 것이네. 말기 암 환자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기적의 신약이라더군.”
“뭐어? 그런 게 있었나? 그런데 왜 내가 처음 듣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당연히 미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임스다운 말이다.
“어이구, 국방장관답다. 꽉 막혔어. 막혔다고.”
“뭐야? 뭐냐구? 진짜 그런 게 있어?”
“그래! 킨샤사 이실리프 의료센터에서만 쓰는 약이네.”
“좋은 거라며? 근데 왜 거기서만 쓴대? 좋은 거면 여기부터 써야지. 안 그래?”
제임스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그걸 만든 사람이 그곳에만 공급하네.”
“뭐 그런 놈이 다 있어? 좋은 건 당연히 이곳부터 써야지. 싸가지 없는 놈이군! 안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