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6
다음은 각 왕국의 왕자와 공주들의 좌석이다.
또 하나의 화단의 뒤쪽엔 각국 귀족과 마법사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다. 이들의 뒤에는 아드리안 왕국의 백성 등 일반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수가 둘러보니 내빈과 외빈의 숫자가 약 2,000여 명이나 된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드리안 왕국은 10,000여 명의 기사와 병사들을 배치했다.
모두 드워프가 만든 무구로 완전무장한 상태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각국 기사와 병사들은 몹시 부러운 눈이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드워프제 무구가 몹시 탐난 때문이다.
아무튼 만장한 내외귀빈에게 두루 시선을 준 현수가 다시 입을 연다.
“아드리안 왕국의 건국시조는 이실리프 마탑의 초대 마탑주이셨던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 님이십니다.”
위대한 마법사의 이름이 나오자 참석해 있던 모든 마법사들이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
“나는 2대 마탑주로서 스승님의 후손들의 국가인 아드리안 왕국의 발전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이실리프 마탑이 보호할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또 잠시 말을 끊은 현수는 배석해 있는 내빈석 뒤쪽을 바라본다.
“영광의 마탑주 로만 커크랜드는 잠시 앞으로 나오게.”
“네, 로드!”
티 한 점 없이 하얀 로브를 걸친 로만 커크랜드의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스태프가 들려 있는데, 그 끝에는 오리알만 한 마나석이 진한 보랏빛을 내고 있다.
크기와 색깔로 미루어 짐작컨대 초특급 마나석이 박힌 스태프인 것이 분명하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자박자박 걸어 단상 아래로 향하는 로만 커클랜드를 바라보는 시선 가운데 몇몇은 의아하다는 눈빛이다.
자신의 키보다 큰 스태프는 7서클 이상인 마법사의 전유물이다. 로만 커클랜드는 고작 6서클이므로 이런 스태프를 가질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나서서 뭐라 하지는 않는다. 하늘보다도 높은 로드가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때 현수의 엄숙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진다.
“나는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로서 그대 로만 커크랜드를 이실리프 마탑 아드리안 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받아들이겠는가?”
아드리안 왕국을 이실리프 마탑이 수호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기에 황제와 국왕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이제 아드리안 왕국을 넘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편, 로만 커크랜드는 크게 허리를 숙이는가 싶더니 두 무릎을 꿇고 공손히 고개를 조아린다.
“로드께 과분한 은혜를 입어 8서클 마법사가 된 로만 커크랜드는 이실리프 마탑 아드리안 분원의 원장이 됨을 지극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소인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절대 충성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로만 커클랜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8, 8서클……? 방금 8서클이라고 들은 게 맞나?”
“그, 그러게! 8서클이라니?”
“뭔 소리야? 로만 커크랜드가 어떻게 8서클이 돼? 7서클의 벽도 넘지 못해 절절맸는데.”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신의 레어 안에 있던 멀린을 빼놓고 8서클에 이른 마법사는 없었다. 물론 현수는 예외이다.
그런데 6서클 유저로 정도로 알려져 있던 로만 커크랜드가 느닷없이 8서클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대번에 장내가 술렁인다. 모든 마법사의 시선이 하얀 로브를 걸친 로만 커크랜드와 현수를 오간다.
“로만 카크랜드 원장! 로브의 모자를 벗도록!”
“네! 로드!”
현수의 명이 떨어지자 로만 커크랜드는 두 손으로 모자를 벗었다. 이 순간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아아!”
“지, 진짜야! 바, 바디 체인지를 한 거라고.”
로만은 7서클 마스터가 되는 순간 바디 체인지를 겪었다.
하여 겉보기엔 현수와 다를 바 없는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금발이 아주 잘 어울리는 미남자의 얼굴이다.
“로만! 아드리안 분원을 잘 이끌어주길 바라네.”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로만은 크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데 너무 과한 나머지 이마가 땅과 부딪치며 나직한 소리를 낸다.
쿵―!
“로드의 하명을 충심을 다해 이루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로만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8서클 마법사가 되었음을 검증하도록!”
“네, 로드!”
자리에서 일어선 로만은 단상 좌측 암석 지대를 향해 선다.
“헬 파이어!”
고오오오오오―!
쿠와아아앙―! 화르르르르륵―!
반경 50m쯤 되는 불덩어리에 격중당한 바위들이 열을 견디지 못하고 쪼개지며 유리질을 내비친다.
“헉! 헤, 헬 파이어야. 8서클 마법!”
“세상에 맙소사! 진짜 8서클이야.”
마법사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8서클 마법사의 전유물 헬 파이어가 확실했던 때문이다.
“수고 했네. 이제 물러서게.”
“네, 로드!”
로만 커크랜드는 다시 한 번 고개 숙이고 물러난다.
“다음으로 아드리안 왕국의 영원한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특별히 참석한 존재들의 순서입니다.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 옥타누스 카로길라아지바랄과 골드 드래곤 제니스케리안 인터누스 지노타루이마덴은 현신하기 바랍니다.”
꿰에에에에엑―! 꾸아아아아아아악―!
현수의 말이 떨어짐과 거의 동시에 좌우의 하늘에 엄청난 크기를 가진 드래곤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괴성을 지르자 내외빈 중 일부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말로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드래곤을 보지 못했는데 엄청난 덩치를 보고 경악한 때문이다.
꿰에에에에엑―! 꾸아아아아악―!
귀청을 뚫을 듯한 괴성을 다시 지르곤 둘 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다. 다음 순간 레드 드래곤이 먼저 하강을 시작하여 약 100m 높이에 멈춘다.
“나! 라이세뮤리안 옥타누스 카로길라아지바랄은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아드리안 왕국을 수호함을 선포한다.”
라세안이 솟구치자 기다리고 있던 골드 드래곤 제니스케리안이 같은 위치로 하강한다.
“나! 제니스케리안 인터누스 지노타루이마덴 역시 아드리안 왕국을 수호할 것임을 맹세한다.”
수호룡 선포를 마친 제니스케리안이 먼저 폴리모프하여 내빈석 맨 앞 의자에 착석하자 라세안 역시 인간의 모습이 되어 자리에 앉는다.
다음 순간 이들의 좌우로부터 여인 하나씩이 다가와 이들의 곁에 앉는다.
제니스케리안의 곁에 앉은 여인은 인간 최초로 드래곤의 제자가 된 케이트 에이런 판 포인테스이다.
라이세뮤리안의 곁에 앉은 여인은 라세안의 딸 다프네 옥타누스 폰 라수스이다. 둘 다 가히 경국지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천하절색인 미모와 몸매의 소유자이다.
장내의 인사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수호령 선포에 얼이 빠진 모습이다.
둘 중 하나는 성질 사납기로 이름난 에이션트급 레드 드래곤이고 다른 하나는 드래곤 로드의 쌍둥이 동생이다.
일반적인 드래곤과는 무게 자체가 다른 두 존재의 수호룡 선포는 아드리안 왕국이 적어도 수천 년 동안은 지극히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나마 아드리안 공국을 넘봤던 미판테 왕국과 쿠르스 왕국, 그리고 엘라이 왕국의 국왕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드리안 왕국을 먹었다면 자신들이 가장 먼저 멸망당할 수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로써 왕국 선포식이 끝났습니다. 잠시 후, 왕궁에서 여러 귀빈들을 접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저녁에는 아드리안 왕국이 준비한 성대한 연회가 있겠습니다. 내외빈 여러분, 모두가 기꺼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아드리안 왕국의 로레알 파드린느 폰 아젤란 공작의 선언이 끝나자 내빈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온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아드리안 왕국 만세! 만세! 만세!”
“이실리프 마탑 만세! 만세! 만세!”
귀빈들은 국제사회의 힘 있는 일원이 된 아드리안 왕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가늠하고 있다.
왕궁으로 자리를 옮긴 아민 국왕은 황제들과 각국 국왕들을 차례로 접견했다. 우호 증진과 상호 호혜를 약속하는 아주 흔쾌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같은 시간, 현수는 마탑의 마탑주들과 면담 중이다.
“로드! 영광의 마탑 또한 카이엔 분원이 되고 싶습니다.”
카이엔 제국 출신 스타이발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혈운의 마탑도 라이셔 분원으로 삼아주십시오. 로드!”
라이셔 제국의 마탑주 헥사리온이 정중히 고개 숙인다.
“위대한 로드시여! 실론의 마탑 역시 테리안 분원이 되기를 청합니다. 로드!”
“로드! 저희 마탑 또한…….”
현수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여섯 명의 마법사는 모두 마탑주이다.
6서클 유저였던 로만 커크랜드가 현수 덕분에 8서클이 되었음을 알고 난 이후 이성을 잃었다.
현수는 아드리안 공국에 당도하자마자 로만 커크랜드를 세계수 아래로 데리고 갔다.
그곳엔 마나집적진과 앱솔루트 배리어, 그리고 타임 딜레이 마법진이 작동되고 있었다. 아드리안 공국으로 가기 전에 현수가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마나집적진 안에 자리를 잡은 로만 커크랜드는 본인의 마나회로를 개방했다.
현수의 뜻대로 체내의 마나를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긴장을 풀어준 것이다.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것이다.
현수가 나쁜 마음을 품으면 여섯 개의 서클을 모두 깨버릴 수도 있고, 체내의 모든 마나까지 가져갈 수 있다. 심지어 목숨까지 앗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완전 개방을 택한 것은 로드를 믿기 때문이다.
이미 어떠한 인간도 올라가 보지 못한 10서클 화후에 있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겨우 6서클밖에 안 되는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쨌거나 마나집적진 안에 자리를 잡는 순간 로만은 엄청난 갑갑함을 느꼈다. 기체같이 희박해야 할 마나가 액체처럼 진하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체내로 스며든 마나는 현수의 인도에 따라 순환되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만은 7서클이 되었다.
그리고 7서클 마법 전체에 대한 강론이 시작되었다.
로만은 다른 마탑주에 비해 자신의 화후가 낮음을 알기에 이를 극복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기에 많은 독서와 연구를 통해 개선하고자 했다.
그러던 차에 정립된 마법 이론을 강론으로 듣기 시작하자 두뇌 활동이 왕성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7서클 마스터에 이르렀고, 이때 바디 체인지가 일어나 25세 전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것만으로도 대륙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현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바로 8서클 마법에 대한 강론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7서클보다 훨씬 고도의 계산이 순식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8서클 마법사 되기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로만에겐 뛰어난 선생이 있다. 현수이다.
현수의 강론과 본인이 깨달았던 것에 대한 소회 (소회(所懷) : 마음에 품고 있는 회포.)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덟 번째 서클이 형성되었다.
8서클 마법사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오늘 로만 커크랜드는 내외빈 앞에서 헬 파이어를 구현시켜 자신이 8서클 마법사임을 증명했다.
이를 본 다른 마탑의 탑주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어떻게 된 것인지를 물었다. 그 결과 이처럼 현수 앞에 무릎 꿇고 애걸하는 것이다.
“로드! 저희도 받아주십시오.”
“네! 마나를 걸고 영원한 충성을 맹세드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로드! 저희도 받아주십시오.”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6대 마탑주를 바라본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고개를 들어라! 우리는 마나 앞에서 이미 하나이다. 따라서 나는 기꺼이 그대들의 뜻을 받아들이겠노라.”
명실상부하게 아르센 대륙의 모든 마법사를 휘하에 모으는 순간이었다.
『전능의 팔찌』 53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