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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280화 (1,279/1,307)

# 1280

로만 커크랜드를 비롯한 6대 마탑주들이 8서클에 이르는 동안 이들 4대정령왕들도 세계수 아래에 그려놓은 마나집적진 안에 머물렀다. 이것은 타임 딜레이 마법진과 중력 증가 마법진까지 중첩된 것이다.

중력 증가 마법진은 대인 공격 마법인데, 2G (G : 중력의 단위, 현재 느끼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1G라 한다.) 혹은 3G 정도가 고작이다. 이 마법이 구현되면 자신의 몸무게를 2배 혹은 3배로 느끼게 하여 동작이 느려진다.

정령은 인간과 달리 실제적인 육체가 없기에 가장 강력하도록 중첩시켰다. 그 결과 마법진의 내부에는 약 100G 정도 되는 공간이 형성되었다.

참고로, 특별히 훈련되지 않은 인간의 한계는 9G이며, 보통 사람들은 3G만 넘어가도 의식을 잃는다.

지구에서의 정령들은 현수의 명에 따라 온갖 일을 하느라 쇠약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곳 아르센 대륙으로 와서 그 모든 것이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4대정령왕들은 외부 시간으로 약 30일간 특별한 결계 안에 머물렀다. 내부 시간으론 15년 정도 된다.

여기에 100G가 작용했으니 실제론 1,000~1,500년간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아르센 대륙의 시간으로 그러하다,

이곳보다 마나가 훨씬 희박한 지구의 시간으로 따지면 약 3~5억 년간 가장 청정한 지역에서 꼼짝 않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다.

덕분에 4대정령왕들은 마음껏 정령력을 모을 수 있었다. 그 결과 몸에서 미약하지만 빛이 나고 있다. 정령신으로 진화하기 직전인 상태인 것이다.

결계 안에 며칠만 더 머물렀다면 정령신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수도 4대정령왕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정령신은 아르센 대륙에도 말로만 전해지는 전설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수야 인간이니 그렇다 쳐도 정령왕들조차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유는 이곳의 정령계를 방문하지 않은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정령계를 방문했다면 그곳을 관장하는 정령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르센 대륙의 정령계는 현재 4대 속성 정령왕이 각각의 속성에 속한 정령들을 관장하고 있다.

현수 앞에 있는 정령왕들이 그곳을 갔다면 그 즉시 정령계를 접수했을 것이다. 그곳의 정령왕보다 현수의 속하가 된 정령왕들의 능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어서들 와! 다들 좋아 보이네.”

현수의 말은 사실이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와 땅의 정령왕 노이아는 아주 씩씩하고 늠름한 전사 같은 모습이고, 바람의 정령왕 세리프아와 물의 정령왕 엘리이아는 거의 여신급 미모이다.

“모든 게 주인님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맞습니다. 마스터 덕분에 저희의 능력치가 한껏 올라 있다. 그 모든 게 마스터 덕분이라는 걸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리프아와 이프리트가 한마디씩 하자 엘레이아와 노이아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도 영원한 충성을 맹세드립니다. 마스터!”

“원하시기만 하면 제 모든 것을 드리겠어요. 주인님!”

말을 마친 엘레이아는 묘한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마치 ‘당신을 유혹하고야 말겠어’ 같다.

그러고 보니 세리프아 역시 이러하다.

반면 남성체인 이프리트와 노이아는 자신들은 진심을 알라달라는 듯 정중히 고개 숙이고 있다.

현수는 애써 두 여성체 정령의 시선을 피했다. 두 여성체 정령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바라본 때문이다.

“고맙군, 자자! 이쪽으로 모여 봐. 긴히 할 말이 있으니.”

현수의 말에 따라 정령들은 일제히 앞쪽으로 모인다. 이때는 아주 말 잘 듣는 충복 같은 모습이다.

“며칠 후에 말이지 내가…….”

잠시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정령들은 간간히 무언가를 묻기도 했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장시간에 걸친 긴한 이야기가 끝난 후 4대정령은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현수에게 지시받은 임무를 완수하려면 마인트 대륙에 관한 것들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령들이 약간 멀어지자 아리아니가 섹시한 몸매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차림으로 다가선다.

배꼽이 드러나는 탱크탑은 가슴 부위가 움푹 파여 있어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수밀도의 절반이 보인다.

짧은 바지는 반바지라 부르기 미안하다. 간신히 사타구니만 가릴 정도로 짧은 때문이다.

망사 스타킹으로 감싸인 다리는 화려한 샌들로 화룡점정하고 있다. 마지막은 뇌쇄적인 눈빛이다.

조금 전 엘레이아와 세리프아가 보여주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눈빛을 보내며 눈웃음치고 있다.

사내라면 거의 모두 코피를 흘릴 만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군인들이 좋아하는 맥심에 자주 등장한다.

현수 역시 잠시 눈빛이 흔들렸으나 이내 잠잠해진다. 많이 단련된 결과이다.

“오라버니! 그럼 이제 다 된 거예요? 사악한 놈들 한 놈도 안 빼놓고 다 일망타진하는 거죠?”

아리아니는 처음 마인트 대륙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에 깜짝 놀랐다.

하여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전체적인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 있는데 흑마법사들이다. 지금 그들 모두를 죽이자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정령인지라 웬만하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아리아니가 느낀 사악함은 너무도 정도가 심했다. 그렇기에 제거를 종용하는 것이다.

“그래! 근데 나한테 조그만 문제가 있어. 그래서 고심하는 중이야.”

딱히 아리아니로부터 해결책이 나올 것 같아 한 말은 아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여 이를 해소하려는 의도에서 혼잣말처럼 한 것이다.

“어머! 그래요? 그게 뭔데요?”

아리아니는 다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다시 묻는다.

바싹 다가선 아리아니에게선 숲의 싱그러운 향기가 느껴진다. 아련하면서도 달콤한 자스민향과 비슷하다. 참고로, 자스민향은 신경을 안정시키고,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흐음!’

현수는 저도 모르게 긴 호흡을 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냄새이기에 본능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게 있어.”

“아잉, 말 좀 해봐요. 궁금하단 말이에용.”

아리아니가 또 귀염을 떨기 시작한다.

이럴 땐 얼른 궁금한 걸 해소시켜 주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알아낼 때까지 끝없이 쫑알거리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잖아. 흑마법사놈들을 치우려면 여러 마법이 동시에 구현되어야 해. 근데 그게 쉽지 않아서 그래.”

“그래요? 어떤 마법들인데요?”

“플라이, 아공간, 라이트 웨이트, 그리고 매직 캔슬 및 텔레포트 마법 같은 것들이 거의 동시에 구현되어야 해.”

“아공간 마법은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어요. 플라이는 세리프아가 해결해 주지 않을까요?”

“아! 그래? 아공간은 그렇겠군. 근데 진짜 세리프아가 플라이를 해결해 줘?”

“네! 잠깐만요. 세리프아 말해봐. 도와드릴 수 있지?”

현수는 세리프아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세리프아! 내가 잠시 하늘을 날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거 도와줄 수 있어?”

“하늘을 나는 거요?”

“그래! 넌 바람의 정령왕이잖아. 그러니까 그 정도는…….”

“저기 주인님! 그거요…….”

세리프아가 잠시 말끝을 흐린다.

“그거 뭐?”

“하늘을 나는 거 말이에요. 그거 아직도 모르셨어요?”

“모르다니 뭐를?”

“주인님은 이미 하늘을 날 수 있어요. 마음대로! 제가 바람의 권능을 드렸거든요. 이미!”

“바람의 권능을 줘?”

“네에! 저는 하늘을 날 수 있는 권능을 드렸구요. 노이아는 땅 속을 마음대로 다닐 권능, 그리고 이프리트는 용암 속에 빠져도 멀쩡할 권능을 드렸어요. 엘레이아는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해 드렸구요.”

“정말?”

“네에,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 보세요.”

“마음을 먹어?”

“네! 한번 날아보겠다고 생각해 보세요.”

“생각을……? 어, 어라!”

날아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의자에 붙어 있던 엉덩이가 떨어진다. 그리곤 둥실 떠오른다.

“어어! 어어어!”

“호호! 그것 보세요. 날 수 있어요.”

“정말! 정말 그러네.”

아리아니는 신난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활짝 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균형을 잡으려 애를 썼다.

“처음엔 익숙지 않아서 나는 게 마음대로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 연습하세요. 연습!”

“어! 그, 그래. 어어어! 어어어어!”

현수는 흐트러지려는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는 사이에 점차 하늘을 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곁을 지켜보던 아리아니와 세프리아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균형 잡기는 물론이고, 고도 조절 및 방향 전환, 그리고 속도 가감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같은 시각, 옥시온케리안과 제니스케리안, 그리고 라이세뮤리안 등은 포위망 구축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적재적소에 드래곤 및 드래고니안, 그리고 소드마스터들의 배치 상황을 점검했고, 반로렌카 전선과의 지휘체계 등을 확인했다. 당연히 아주 협조적이다.

이러는 동안 성녀 스테이시 아르웬은 로렌카 제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신전으로 사용되던 유적에 머물렀다.

헤럴드 폰 하시에라가 이끄는 테라칸 요새 인근에 자리 잡은 것이다.

스테이시의 요청에 따라 긴급하게 손봐서 정갈하게 청소는 되었지만 오래전의 전투 때 지붕이 날아가 대리석 기둥만 남아 있어 다소 휑한 모습이다.

스테이시는 붉은 융단 위에 공손히 엎드린 채 기도한다.

“자비로우신 여신이시여. 당신의 딸이 간절히 간구하오니 제게 더 많은 신성력을 베풀어주소서!”

스테이시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이르렀는지 멀고 먼 허공으로부터 한 줄기 흰 빛이 쏘아져 온다.

반지름 40㎝ 정도 되는 빛기둥이다. 흰색 성녀 복장을 한 스테이시의 모습은 너무도 고결해 보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헤럴드의 아내가 중얼거린다.

“아아! 성녀시여.”

너무도 성스러워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하시에라의 아내가 공손히 무릎을 꿇자 나머지 인원들 모두 오체복지하며 감격에 겨운 일성을 토해낸다.

“아아! 아아아! 은혜로우신 신이시여!”

* * *

“오늘 나는 300년 전통을 이어온 로렌카 제국의 황제직을 황태자 슐레이만 로렌카에게 양위하는 바이다.”

황제의 엄숙한 음성이 장내에 퍼지자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로 단상 위를 주시하고 있다.

양위가 황제의 본심이 아니라면 식을 거행하다 말고 한바탕 피바람이 불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 이후 로렌카 제국의 모든 귀족과 백성들은 제2대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라.”

황제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쩔 수 없어서 양위하는 게 아니라 본심이다. 하여 황제의 말이 끊기자 모든 귀족이 일제히 허리를 꺾는다.

“위대하신 황제의 뜻을 받드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양위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목소리는 하나도 없다. 오래전부터 슐레이만에게 권력의 대부분을 행사하게 한 결과이다.

“황태자는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

“네! 아바마마.”

슐레이만이 무릎을 꿇자 황제는 쓰고 있던 금관을 벗어 그것을 씌워준다.

“황태자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서라!”

“네! 아바마마.”

슐레이만이 일어서자 황제는 다시 만조백관들을 굽어보며 말을 잇는다.

“힐만 공작!”

“네, 폐하!”

“수석 공작으로서 성대한 즉위식을 거행하라!”

“네, 폐하!”

힐만 공작이 허리를 꺾자 황제는 슐레이만을 바라본다.

“오랜 짐을 벗었군. 이제 로렌카는 너의 제국이다.”

“아바마마의 뜻을 받들어 더욱 발전된 제국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 슐레이만에게 걸쳐준다. 이것은 황제만이 걸칠 수 있는 황금 수실로 수놓아진 아주 화려한 것이다.

황제는 곁에 있던 시종으로부터 마법사의 전유물인 스태프를 건네받았다. 로렌카 제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라 초특급 마나석이 박힌 것이다.

“황제의 삼보(三寶)가 모두 주어졌으니 이제부터는 명실상부한 황제이니라!”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슐레이만의 허리가 마지막으로 꺾인다. 이제부터는 로렌카 제국의 황제이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꺾여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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