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1
이제 살아서 교도소 문을 나설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고소, 고발이 빗발친다. 추가로 벌금을 내고, 형기도 늘어날 예정인 것이다.
판사가 판결을 내린 직후 이 정치인이 가진 모든 것이 탈탈 털렸다. 아내와 자식들 이름으로 한 것과 차명으로 은닉해놓은 재산까지 모조리 몰수하여 국고에 넣었다.
그 결과 이 정치인의 가족들은 노숙자가 되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벌금형에 대한 추징기간이 이전엔 3년이었으나 지금은 300년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다시 말해 감춰둔 재산이 발견되면 언제든 몰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대대적인 사회 정화운동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일련의 일이 벌어지는 동안 공무원 사회가 술렁였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원이 구속되어 업무 마비를 겪을 정도가 된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공무원 사회가 얼마나 썩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현수는 새로 인수한 기업에 대한 보고를 받는 한편 수시로 자치령을 돌았다. 한곳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아르센 대륙 등을 여러 번 다녀왔다. 한곳에 30일 이상 머물면 그쪽도 똑같이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아르센 대륙은 여전했다.
라수스 협곡에 있던 로니안 공작 일가는 나후엘 자작가에 머물고 있다. 드디어 협곡을 관통하는 도로가 뚫린 것이다.
라수스 협곡의 동쪽 출구와 인접한 세 영지 마르헨, 후마엔, 롤이아의 영주들인 다이칸 히킨스 반 마르헨 자작과 헤롯 에드윈 폰 후아엔 자작, 그리고 에드워드 지린 드 롤리아 남작도 있었다.
이들에겐 현수가 제작하고 라세안이 인증한 협곡로 통행증이 쥐어져 있다. 미판테 왕국의 동서를 오가는 상권을 쥔 것이다. 이는 오랜 가난을 종식시킬 보물이다.
로잘린 역시 이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현수가 당도하자 와락 안겨 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 장면을 지켜보며 놀라는 여인이 있었다.
나후엘 자작가의 천금인 엘리시아 나후엘 드 율리안이다.
엘리시아는 현수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마물의 숲을 지날 때 쏘러리스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던 C급 용병 하인스를 매일 그리워했던 때문이다. 그리고 현수가 여전히 C급 용병 차림이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엘리시아는 수척한 모습이다. 하인스를 그리다 상사병에 걸린 결과이다. 사랑은 점점 깊어져 언제고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인스가 무엇을 원하든 다 내어줄 수 있으며, 신분이 문제가 된다면 그걸 버려도 좋다 생각했다.
촌부의 아낙이 되어도 좋으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거친 땅을 일구며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장차 로잘린 공녀의 부군이 될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지고한 신분이 되어 나타났다.
게다가 그랜드마스터라고도 한다.
부친인 나후엘 자작과 영지의 수석 기사인 라임하르트 헤르멘 남작은 신을 대하듯 굽신거렸다. 미판테 왕국의 국왕도 절절매는 신분이니 당연한 일이다.
엘리시아는 자신도 현수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신분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때문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상냥하게 대하고, 친절을 베풀었어야 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함을 표하고,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려야 했다.
쏘러리스로부터 자신을 구할 때 완전히 발가벗은 몸을 보지 말라고 소리를 치지도 말았어야 한다.
그날 밤 현수가 만들어준 잠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그의 품에 안겼어야 하는 것이다.
엘리시아는 현수를 보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문득 굳게 입술을 다문다.
흉중에 굳은 결심 하나를 심는 순간이다.
로잘린이 이곳에 처음 당도했을 때 엘리시아는 너무도 상냥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공녀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 다니며 재잘댔다. 모처럼 대화가 통한 것이다.
로잘린은 장차 이실리프 왕국의 제2왕비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왕비가 된 후 측근에서 수행하는 시녀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르센 대륙에선 주로 나이 많은 백작부인들이 이런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너무 나이가 많으면 불편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잘린 본인이 일개 자작가의 여식이었던 때문이다.
하긴, 자작 위에 백작이니 예전의 상전이 자신의 밑에 있게 되는 것이 어찌 편하겠는가! 어쨌거나 로잘린이 원한 시녀장은 조선시대로 치면 중궁전 상궁이다.
로잘린은 혹시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적합한 인물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했었다. 물론 엘리시아가 아는 여인 중엔 로잘린이 원하는 인물은 없다.
라수스 협곡과 캐러나데 사막 사이에 자리잡은 이곳 율리안 영지는 육지 속의 섬과 같이 외딴 곳이 된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로잘린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자신에게 너무도 친절히 대하는 엘리시아가 고마웠던 때문이다.
엘리시아는 딱히 원하는 게 없었기에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했고, 로잘린은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건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어쨌거나 엘리시아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곤 곧장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아주 깨끗이 목욕을 하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저녁에 있을 마탑주 환영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불행히도 현수는 엘리시아를 보지 못하였다. 이실리프 왕국에 급한 용무가 생각나 그곳으로 텔레포트했던 때문이다.
그날 이후 현수는 아르센 대륙의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그 결과 카이엔 제국과 라이셔 제국, 그리고 크로완 제국 간의 전쟁은 끝났다.
서로 일정 부분을 양보하기로 하고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정략혼을 맺었다. 각국 황자와 공주들을 결혼시키는 것으로 평화협정을 확실히 한 것이다.
아드리안 왕국은 초대국왕이 된 아민 멘데스 폰 아드리안의 지휘 하에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상당히 많은 유민들이 유입되면서 백성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그리고 아르센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교역과 교류를 원하기에 르네상스와 같은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각국 사절들은 아드리안 왕국을 방문할 때 반드시 멀린의 묘소에 참배를 한다. 물론 잘 보이기 위함이다.
바세른 산맥 아랫자락의 아드리안 왕국은 개발작업이 끝났다. 이실리프 군도의 개발 또한 끝물이다.
아직 건국을 선포하지도 않았지만 대륙 각국은 이실리프 왕국과의 교역에 열을 올린다. 엄청난 곡식이 생산되는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은데다 품질 또한 극상이다.
마수들이 장악하고 있던 콰트로 대륙의 개발사업은 시작단계에 놓여 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음에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수는 드래곤 로드 등의 충고를 받아들여 콰트로 대륙 전체를 영토로 하는 국가를 선포하기로 했다.
물론 어느 정도 개발이 된 이후가 될 터인데 국가명은 ‘쥬신제국’으로 정했다.
다들 발음이 이상하다 했지만 그냥 밀어붙였다.
이곳은 나이즐 빌모아를 비롯한 드워프들과 아르센 대륙 각국에서 보내온 유민들의 손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이들을 지휘하는 것은 현수가 노예로 사들였던 로즈와 릴리이다. 이들 자매는 아르센 대륙 남부의 섬에 있던 베로스 왕국의 공녀들이었다.
반란이 일어나 국왕과 국왕의 동생이던 부친이 죽었음을 알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었다.
잡히면 무조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다 바닷가에 정박해 있던 배에 몰래 올라탔는데 하필이면 노예선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떠난 후 쿠데타로 권력을 쥔 새 국왕은 둘을 국외로 추방했다고 선포했다.
로즈와 릴리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귀족들이 새롭게 결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너무도 바빠 오랫동안 이들 자매를 돌봐주지 못했다. 그런데 로즈는 4서클 마스터가 되어있었고, 릴리는 4서클 유저가 되어 있었다.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결과이지만 대단한 재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현수는 미안한 마음에 이들을 데리고 베로스 왕국으로 향했다.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곳은 이미 기틀이 다져진 국가가 되어 있었다.
부친의 시신이 어디에 매장되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로즈와 릴리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새롭게 베로스 왕국의 국왕이 된 자는 현수가 모든 마법사의 로드이며, 세상 모든 기사들의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는 설설 기었다.
자신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아 정통성이 없지만 로즈와 릴리는 정통 왕가의 핏줄인 때문이다.
현수가 자신의 목을 베고 로즈를 여왕으로 즉위시켜도 할 말이 없기에 눈치만 본 것이다.
그러다 로즈와 릴리는 이미 변절해버린 부친의 옛 신하들을 보고 크게 환멸을 느꼈다.
그리곤 매일 매일 한숨만 쉬었다. 그동안 복수의 일념으로 칼을 갈아 왔는데 목적이 사라지자 허무한 것이다.
하여 둘에게 쥬신제국의 기틀을 닦는 역할을 맡겼다. 정신없이 바쁘면 시름도 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영특한 두뇌를 가졌고, 임기응변도 강하며, 논리적이고, 정의롭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제안한 일이다.
하여 콰트로 대륙은 현재 로즈와 릴리 자매의 지휘를 받으며 개발되는 중이다.
집이 지어지고, 농토가 개간되었다. 축사도 지었다.
콰트로 대륙은 아무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도 맹수나 몬스터가 없다. 마수들이 모두 잡아먹은 결과이다.
사람들이 풀만 먹고 살 수는 없기에 아르센 대륙에서 상당히 많은 가축을 들여와 기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을 돕기 위해 드래곤 상당수가 파견되어 있다.
혹시 하나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마수를 사냥하여 개척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그들의 주요 임무이다.
아울러 개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적절히 돕는 것도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마인트 대륙에서 있었던 엄청난 폭발을 목격한 드래곤들은 현수의 말이라면 무조건 O.K이다.
붙으면 100% 깨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무결하게 말살된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이다.
하여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현수의 호감을 사면 맛이 기막힌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또는 사탕을 받는다.
그래서 개발 사업은 별 탈 없이 진행되는 중이다.
마인트 대륙의 국가명은 바뀌었다.
애초엔 ‘이실리프 제국’이라 하려 했으나 아르센 대륙에 이실리프 왕국이 있어 개칭하였다.
그래서 현수가 택한 국가명은 ‘환(桓) 제국’이다. 참고로, 환국(桓國)은 고조선 이전에 존재했던 국가이다.
이번에도 발음이 이상타 하였으나 현수는 밀어붙였다.
맥마흔은 다시 도시가 되는 중이다. 새 이름은 서울이다.
가장 먼저 황궁이 건축되는 중인데 나이즐 빌모아는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좋게 보았는지 이와 유사한 형상의 건물을 황궁으로 삼으려 한다.
물론 규모는 판테온 신전보다 훨씬 크다.
국사를 논하는 정치적인 공간의 뒤쪽엔 상당히 넓은 정원을 가진 한옥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제국의 황제가 머물 곳인지라 100만 평 규모로 조성된다.
참고로, 조선 태종 5년(1405년)에 지어진 창덕궁의 면적은 약 45만㎡(13만 6,000여 평)이다. 지나의 자금성은 동서 760m, 남북 960m이니 약 73만㎡(22만여 평)이다.
한옥단지는 창덕궁의 7.35배, 자금성의 4.54배 규모이다.
현수의 가족과 수발을 들어줄 궁녀 등이 기거할 이곳엔 아름다운 한옥과 멋진 정원, 그리고 계류들이 조성되고 있다.
정궁의 앞에는 각종 행정을 위한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미얀마의 ‘쉐다곤 파고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러시아의 ‘성 바오로와 바울 성당’ 같은 것들이다.
현수가 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목록에 들어 있던 것이다.
현수는 약속했던 대로 마일티 왕국 공작가의 후손 헤럴드 폰 하시에라와 화티카 왕국의 후손 유슈프를 제국의 공작으로 삼았다. 아울러 싸미라의 부친도 공작이 되었다.
이들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수도 재건과 제국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다. 산지사방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