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7
그런데 느닷없이 동북삼성 등을 내놓으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지나는 이실리프 왕국을 국가로 인정한 바 없기에 외교부에선 정식 접수를 거부했다. 반려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슬쩍 공문을 복사하여 상부에 보고한 것이다.
11장 전략 병기 배치 완료
‘바보가 아닌데… 뭐지?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혹시 러시아와……?’
현수가 푸틴 대통령과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떠올린 습근평을 다시금 이맛살을 찌푸렸다.
러시아는 아주 껄끄러운 존재인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보다 더하다. 국경을 마주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끄으응!”
습근평이 나지막이 침음을 낼 때 유운산이 목청을 돋운다.
“주석! 놈들이 우리 중화를 얼마나 업신여기면 이런 요구를 하겠습니까? 이런 놈들은 단숨에 짓밟아 으스러뜨려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그간 너무 많이 참았습니다. 우리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서방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중화를…….”
이극강 총리의 발언 이후로도 같은 맥락의 의견이 쏟아졌다. 이실리프 왕국을 쳐서 없애자는 것이다.
“주석! 북한엔 막대한 지하자원이 있습니다. 희토류는 전 세계 매장량의 70%입니다.”
“맞습니다. 우라늄과 석유, 그리고 흑연과 중석 등도 많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가져야 할 땅입니다.”
“……!”
여러 의견이 나오지만 습근평의 감긴 눈은 떠지지 않고 있다. 이실리프 왕국의 감춘 패가 무엇이 있을까를 고심하는 중인 것이다.
그러던 중 장덕강 부총리가 입을 열었다. 지나의 수뇌부 중 유일하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물이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놈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문서를 보낼 리 없잖습니까? 든든한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요?”
“든든한 거라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장덕강은 조심스런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실리프 왕국의 김현수는 푸틴과 매우 가깝습니다. 지난번 힐러리가 저격되었을 땐 미라힐X를 제공한 바 있구요.”
“으으음!”
지금껏 시끄럽게 떠들던 지나의 수뇌부 모두의 입이 굳게 닫힌다. 세계 1위와 2위에 해당하는 군사대국들이 언급된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미국과 러시아가 개입할까요? 놈들이 요구한 건 누가 봐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이실리프 왕국 때문에 우리와 반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살펴볼 건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분분한 의견이 오간다.
같은 순간, 이실리프 왕국의 외무부에선 누군가의 대경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 주임! 이거 누, 누가 발송한 거야?”
“네? 어떤 거요? 과장님?”
“이거 말이야, 이거! 지나에 동북삼성 등을 돌려달라는 외교문서. 이거 누가 보냈어?”
“에이, 보낸 문서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과장님!”
“보낸 거 맞아. 지나 외교부에서 반송한다는 의견을 달아 직인까지 찍혀 있으니까.”
“헉! 네에……?”
김 주임은 대경실색하여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직 발송되어선 안 될 문서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왕국은 이전과 다른 국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왕 아래 총리를 두고 그 아래에 내무부, 외무부, 법무부, 국방부, 교육부, 농림부, 수산부, 자원부, 국토부, 환경부, 의료부, 과학기술부, 재정부, 무역부 등이 포진되어 있다.
외무부는 국가가 선포되는 즉시 러시아, 몽골,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그리고 대한민국과 정식 외교를 맺을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각 나라에 파견할 대사 등에 대한 인선 작업은 이미 마쳐졌고, 현재는 이들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이 진행되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손이 부족하여 신입사원을 뽑았다. 그중 하나는 김일성대학교에서 지나어를 전공한 아가씨이다.
김순화라는 다소 촌스런 이름을 가진 이 아가씨는 긍정적이고, 명랑한 성품을 가졌으며 얼굴까지 예뻐서 바쁜 외무부 직원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적극적이라는 것과 미결된 일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여 지시받은 일을 다 수행하면 스스로 일을 찾아서 알아서 처리하곤 하였다.
덕분에 미결된 일이 많이 해소되어 상급자들은 매우 흡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느 날, 김순화에게 외교문서 정리 업무가 주어졌다.
꼼꼼하게, 그리고 실수 없이 정리를 하던 중 지나에 동북삼성을 요구하는 공문서가 든 결재판이 발견되었다.
장관까지 결재가 떨어진 서류인데 보내는 날짜만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본래 이 서류의 앞에는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장관이 결재는 했지만 국왕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발송하지 말하는 내용의 메모가 쓰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떨어졌다. 접착력에 문제가 있었는데 김순화가 결재판을 엶과 동시에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를 보지 못한 김순화는 절차에 따라 외교문서 발송을 진행토록 했다. 결재 라인에 있던 외무부 관리들은 장관의 사인만 보고 발송을 허가한 것이다.
그 결과 아직 보내서는 안 되는 동북삼성 반환 공문이 지나 외교부로 갔던 것이다.
현수가 이 공문 발송을 뒤로 미룬 것은 전략 병기인 카헤리온과 봉황이 배치되기 전이었던 때문이다.
이실리프호가 있기에 지나와 전쟁을 해도 지지는 않겠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함이었다.
어쨌거나 공문은 발송되었고, 지나 수뇌부들은 분개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다.
이실리프 왕국이 대체 무엇을 감춰두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때문이다.
문제는 이실리프 왕국으로 잠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외국인을 추방했고, 남아 있는 외국인들은 모두 평양 인근에 몰려 있다.
하여 국경까지 가도 만날 수조차 없다.
게다가 친지나파 인사들은 모두 권력을 잃고 야인이 된 상태이다. 그리고 국경에 배치된 군인들의 근무 태도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전에는 뇌물만 찔러주면 적당히 무마되던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이 국왕의 뜻인 때문이다.
김정은이 현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친지나 인사였다가 권력에서 밀려난 몇몇이 국경경비대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두만강을 넘어가는 일이 있었다.
이 일이 발각된 후 국경경비대원은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고, 가족들 모두 교화소로 보내졌다.
이는 현수가 지시한 일이 아니다. 이전의 관례에 따른 처벌이 진행된 것이고, 상부에 보고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소문으론 번졌다. 누구든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그 자리에서 총살되고 가족들은 작살난다는 내용이다.
국경경비대원들에겐 전에 없이 풍족한 식사가 제공되고, 가장 먼저 항온의류가 보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난방을 위한 연료도 넉넉하게 지급되며, 일반 군인에 비해 많은 급여가 주어지는 상황이다.
부정부패와 연루되지 않아도 살 만하다.
하여 뇌물을 챙기기보단 신고에 열을 올린다. 뇌물 액수의 절반이 포상금으로 지급되는 때문이다. 게다가 신고가 많은 수록 근무 평점이 올라가 진급에 좋은 영향을 준다.
이런 상황이라 지나인들의 침투를 도울 내부 동조가 없다.
따라서 이실리프 왕국을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왕국 내부에서 무슨 일이 빚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이전의 북한도 폐쇄적인 국가였는데 그것보다도 더하다. 지금은 위성으로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나에서 빠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 * *
“어머! 준비가 다 되었나 봐요, 오라버니!”
“그래? 그럼 나가봐야지.”
집무실 책상에 앞에 앉아 따끈한 생강차를 마시며 결재 서류에 시선을 주고 있던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설화가 얼른 다가와 붉은 벨벳으로 만든 망토를 어깨에 걸쳐준다. 금실과 반짝이는 보석으로 장식한 이것은 의전용 국왕 복장 중 일부이다.
견장과 휘장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한 알에 수십억 씩 하는 보석들로 치장된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의 예복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화려해 보이기는 하다.
이것은 평범한 망토가 아니다.
항온 기능은 기본이고, 방탄, 방검 기능까지 부여되어 있다. 무언가가 아주 빠른 속도로 접근하면 앱솔루트 배리어가 자동 형성되는 기능도 있다.
현수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측근이 있을 때 그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묵묵히 현수의 시중을 들어준 설화는 자신도 망토를 걸친다. 푸른색 예복으로 현수의 것과 흡사하다.
이것 역시 각종 마법으로 도배된 아티펙트이다.
얼마 전 설화는 지현, 연희, 이리냐, 그리고 테리나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눈물로 읍소했다. 자신도 현수의 여인이 되고 싶으니 허락을 해달라는 내용이다.
지현과 연희는 숫자가 자꾸 늘어난다면서 한숨을 쉬었지만 결국 승락해 주었다. 동병상련을 앓았던 이리냐와 테리나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국왕 폐하 입장하십니다.”
빰빠라 빰~! 빰빰 빠빠빠빰~! 빰 빰~!
국왕 찬가가 연주되자 모두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단상으로 오르는 현수와 설화에게 시선을 준다.
아르센 대륙과 마인트 대륙에도 없는 이 멜로디는 현수가 직접 작곡한 것이다. 원래는 이실리프 왕국의 국가로 쓰려 했는데 대한민국의 국가를 공동으로 쓰자는 의견이 많아서 국왕 찬가로 용도 변경된 것이다.
“위대하신 국왕 폐하! 소신이 폐하께 전략 병기 카헤리온과 봉황을 보여드릴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도열해 있는 인사들 선두에 선 이는 이실리프 기술연구소 최희문 소장이다. 그의 뒤에는 연구진들이 서 있다.
이곳에 처음 도착한 이후 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은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라 할 만한 다물궁을 보았던 때문이다.
지구에는 없는 건축양식인데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며, 웅장하고, 화려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한 조각과 장식으로 뒤덮여 있는 다물궁은 햇빛을 받아 찬란해 보였다. 여기 저기 박힌 보석 때문이다.
다들 입을 딱 벌린 채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거대한 보물을 평양에서 볼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때문이다.
더 크게 놀란 것은 김정은 등 예전 북한의 수뇌부들이 현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고 신하가 되었다는 것이다.
6.25 이후 첨예한 대치를 유지하는 동안 늘 폭압적이고 위협적인 언사와 행태를 보여 왔던 김정은을 비롯한 그 일당이 현수에게 완전히 굴복한 모습은 믿어지지 않았다.
하여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것은 아닌가 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김정은 등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한때의 재미를 위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체면까지 손상시켜 가며 이런 짓을 벌이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각종 기술은 안주기계공업단지 등에 전수되어 제품개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 덕에 일본에서 수입하던 기초소재를 100% 국산화할 수 있었다. 하여 입국하자마자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어젯밤, 연구소 임직원들은 거나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황병서 국방장관과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현수를 어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들이 신처럼 여기는 국왕을 그저 직장상사쯤으로 여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곤 이실리프 왕국의 비전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얻은 자치령들까지 합하여 이실리프 연방왕국이 미래에 어떻게 개발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일부는 진짜 영상이고, 일부는 컴퓨터 그래픽이다. 그런데 화질이 너무 좋아서 마치 전부 진짜처럼 보였다.
최희문 소장을 비롯한 연구소 임직원들은 러시아와 몽골 등의 개발현황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이 이리저리 파헤쳐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농지가 되고, 도시가 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