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0
“가져와보게.”
“네! 주석.”
잠시 후 습근평은 비서가 가져온 외교문서에 시선을 둔 채 나지막한 침음을 낸다.
귀국이 무단 점유하고 있는 동북삼성 및 장성 이북 내몽골자치구 일부지역은 본시 아국 선조들의 영토였으므로 즉각 반환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이 땅위의 모든 지나인의 퇴거 또한 정식으로 요구하는 바입니다.
- 이실리프 왕국 초대국왕 김현수
지나는 이실리프 왕국과 수교한 바 없지만 이 외교문서는 결코 가볍게 다뤄선 안 된다. 미국과 러시아 등 11개국 정상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한 때문이다.
“주석! 두고만 보실 겁니까?”
이극강 총리가 분노한 표정이다.
“주석! 이 오만방자한 놈들을 그냥 쓸어버립시다.”
“미국과 러시아가 외교를 맺었다지만 아직 초기입니다. 우리가 쓸어버려도 별다른 액션을 취하진 않을 겁니다.”
정치국 상무위원 등이 한마디씩 쏟아내는데 모두 분개한 표정이다. 동쪽의 코딱지만 한 나라가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이 몹시 가소로웠던 것이다.
* * *
우릉-! 우르르르르릉-! 와르르르르르르-!
심양군구 39집단군에 제 116방공연대의 HQ-17이 배기음을 토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39집단군의 보병, 기갑병, 포병, 방공병, 항공병, 육군항공병, 화생방병, 전자병 등도 움직인다.
“아아! 나는 담민(譚民) 군단장이다.”
잠시 말을 끊은 담민은 진군하고 있는 190기보사단의 86A식 AFC와 70식 전차를 바라본다.
“우리는 39집단군은 최고의 신속대응군이다. 이실리프 왕국까지 전속력으로 진군하라.”
군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39집단군 전체의 진군 속도가 확실히 빨라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전시이다. 상관의 명에 따르지 않으면 즉결심판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기에 느려 터진 지나의 보병들까지 힘내어 걷기 시작한다.
군단장의 명령과 동시에 작전에 돌입한 부대가 있다.
39집단군 소속 미사일 부대들이다. 이들은 사전에 확인된 좌표에 조준된 미사일 발사 버튼을 일제히 눌렀다. 북한 전역의 군사요충지를 향한 것이다.
쓔아앙! 쐐에엑! 쉬이익!……
크기도, 모양도, 발사음도 각각 다른 미사일들의 목적지를 향한 비행이 시작되었다.
같은 시각, 이실리프 왕국 외무부 팩시밀리는 지나에서 보낸 문서 하나를 토해내고 있다.
중화민국은 귀국이 요구한 무례함을 징치하기 위해 2019년 8월 25일 오전 9시를 기해 이실리프 왕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바이다.
이를 본 것은 김순화이다.
“어머! 세상에……. 과장님! 과장님!”
김순화는 헐레벌떡 과장에서 달려가 팩스를 내려놓는다. 그리곤 그것을 읽기도 전에 속사포로 쏘아댄다.
“지나가 전쟁을 선포했어요. 어떻게 해요?”
“뭐어? 자, 잠깐만!”
화들짝 놀란 담당 과장은 즉시 전화기를 들었다. 그 결과 불과 5분 만에 지나의 선전포고 소식이 전해졌다.
이쯤 되면 난리법석이 벌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국방장관 황병서는 집무실에서 결재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들어?”
“그게, 원체 동원인원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거의 모두 특수분장을 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비용이 많이…….”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촬영 후 회식비용은 또 뭐야?”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을 내가 모를 줄 알아?”
북한에서 소모되는 각종 육류는 전량 러시아와 몽골에서 공급된다.
남한의 횡성 한우 등심 가격은 ㎏당 약 95,000원이다.
북한에 공급되는 등심은 2,730원에 불과하다. 참고로 삼겹살은 2,050원에 공급되고 있다.
“장관님! 인원수를 보세요. 인원수에 고깃값과 굽는 비용 등을 곱해 보시면…….”
“아, 알았다. 알았어!”
황병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젓는다. 부관은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연다.
“폐하께서 동원된 병사들의 회식비용을 아끼지 말라고 하신 거 혹시 잊으셨습니까?”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거 같은가?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우리가 알아서 가급적 비용을 아껴야 하지. 그래야 이 나라가 점점 더 부강해지지 안 그런가?”
“네? 그, 그건…….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알면 됐어. 이만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충성!”
부관이 물러간 후 황병서는 모니터에 시선을 준다. 개전 이후 상황이 보여지고 있다.
39집단군은 전군에 전진명령을 내린 직후 작정이라도 한 듯 엄청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것들은 거침없이 목표물을 행했고, 그 결과 상당히 많은 건축물이 무너졌다.
“폐하의 지시대로 하지 않았으면 엄청 죽었겠군.”
붕괴된 군사시설들의 공통점은 너무 오래되어 곧 철거 예정이던 것들이다.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이곳엔 상당히 많은 병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 현수의 명령에 따라 모종의 장소로 이동한 후 대기하는 중이다.
지나의 선전포고를 설화호가 사전에 포착한 결과이다.
화면엔 지나가 발사한 미사일의 궤적이 가느다란 실선으로 표시되고 있다.
일부는 지상에 도달하지만 일부는 허공에서 사라진다.
이실리프호에서 발사한 레일건에 의해 하나하나 요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물까지 무사히 당도하는 미사일은 노후된 시설을 향하는 것이고, 요격당하는 것은 맞으면 안 될 곳을 행해 날아가는 것이다. 속도와 위치, 그리고 각도를 계산해보면 목적지가 금방 파악된다.
“젠장! 우리 부대가 부서지고 있어.”
“그래! 근데 우리가 저기에 그냥 있었으면……?”
함경북도 무수단리 미사일 발사기지가 한눈에 보이는 산 중턱에서 망원경을 보고 있던 병사가 부르르 떤다.
“아주 작살이 났겠지. 과연 국왕 폐하시다.”
또 다른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낸다.
어제 오전, 무수단리 미사일 발사기지엔 긴급명령이 떨어졌다. 하던 일 멈추고 즉각 이동하라는 것이다.
예외 인원은 없다.
의무대에 누워 있던 병사들까지 모조리 이동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곤 부대로부터 약 5㎞ 떨어진 이곳으로 왔다.
어리둥절한 명령이었지만 국왕의 직인이 찍힌 팩시밀리가 들어왔기에 사령관이 즉시 퇴각 명령을 내린 결과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모기만 문제였을 뿐 텐트나 식자재 등을 알뜰하게 챙겨왔기에 약간의 불편함만 있었을 뿐이다.
대체 무슨 일로 부대 이동 명령을 내렸는지 알 수는 없다. 최근 지급받은 개인화기 J-1 소총 등만 가지고 왔다.
날이 밝은 후에도 위에서 내려온 말은 중대별로 위장을 할 테니 대기하라는 것뿐이었다.
뜬금없는 위장이라는 말에 뭔가 싶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식량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러시아 이실리프 왕국에 본사를 둔 이실리프 푸드에서 생산한 것으로 이전의 전투식량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품질이고, 맛이 좋다.
식재료 자체가 다르고, 전투식량이 담긴 봉지에 보존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마치 갓 조리한 음식 같기 때문이다.
이건 모든 이실리프 왕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과 러시아, 그리고 몽골의 국방부에도 납품된다. 품질은 매우 높고, 그에 비해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니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이실리프 상사가 군납하고 있는데 납품가는 기존의 절반 수준이다.
어쨌거나 병사들은 식사를 마치고 망원경으로 부대를 주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사일들이 떨어졌고, 보는 바와 같이 부대가 완전히 작살나고 있다. 그럼에도 사령관을 비롯한 지휘관 어느 누구도 출동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
“어이! 김 병장.”
“네, 병장 김충환.”
부대의 살림을 맡은 주임상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3중대 인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너희 중대 차례다. 집합시켜!”
“네! 알겠습니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이동하니 50여 명의 민간인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병사들이 앉아 있다.
“대체 뭐지?”
얼굴과 전투복에 붉은 물감 같은 것을 칠하고 있기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자!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리고 이따가 촬영이 끝나면 즉시 전투복을 세탁하도록! 알았나?”
“네!”
김 병장은 슬쩍 대열을 이탈하여 위장하고 있는 병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치열한 전쟁터에 있었던 듯 흙과 먼지투성이인데다 여기 저기 붉은 물감이 발라져 있다.
마치 부상당한 병사 같은 모습이다.
“뭐지?”
의문이 들었으나 김 병장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러다 차례가 되자 얌전히 의자에 앉아 얼굴에 물감을 칠하는 것을 견뎌내야 했다.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네, 폐하! 뙤놈들이 발사한 미사일의 80%가 아군 초소 등을 박살냈습니다. 주요시설로 향하는 것들은 요격 완료하였습니다.”
현수는 설화호 황광연 함장의 보고받으며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적이 발사한 미사일들의 현황이다.
“수고 많았다. 계속 현장을 주시하고 있다가 이상 상황이 발생되면 즉시 보고하도록!”
“네! 폐하.”
설화호와 통신을 마친 현수는 새로운 지령을 내렸다.
“잠자리 모두 출동하도록!”
“네! 잠자리 모두 출동시킵니다.”
황병서 국방장관이 복창 후 부관을 바라본다. 지휘계통을 따라 명령이 전파되도록 하라는 눈짓이다.
“네! 장관님.”
북한엔 약 900대의 전투기가 있었다.
Mig-29 40대, Mig-23 56대, Mig-21 150대, 청두 F-7 40대, 선양 F-6 98대, 선양 F-5, 100대 등이다.
나머지 400대는 6.25전쟁 때 사용하던 미그 15~19이다.
주력 전투기인 미그21은 미사일은 달려 있지만 락온 기능이 없고, 보유 전투기 중 가장 성능이 좋은 미그29는 KF-16을 만나는 순간 고철이 될 성능이다.
그래서 북한 공군은 ‘박물관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소가죽 스텔스기라 불리는 특수부대용 침투기 An-2는 약 300대가 있다.
지난 며칠간 북한의 모든 비행 가능한 물체의 연료탱크가 비워졌고, 미사일 등이 제거되었다. 대신 특수장치가 부착되었다. 특수 개발된 무인비행체계라는 것이다.
이것이 장착되어 있으면 엔진을 가동하지 않고도 이륙되며 일정 시간 동안 비행 가능하다.
어쨌거나 명령이 떨어지자 배치되어 있던 모든 전투기가 일제히 이륙하여 북쪽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외관상 지나의 공격에 대한 응징을 위해 출격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조종석엔 아무도 없다. 설화호가 이것들을 원격조종하는 때문이다.
엔진도 가동되지 않아 소음도 없다. 고물 미그기들은 제법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다.
13장 동쪽의 코딱지만 한 나라
“편대장님! 예상대로 적의 전투기가 떴습니다.”
“좋아! 모조리 격추시킨다.”
“크흐흐! 드디어 참새 사냥 시작인가요?”
“그렇다. 너무 허접하니 어려운 건 없을 거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길림성 장춘에 기지를 둔 제1항공사단 예하 제1~3 항공연대는 J-11, J-7E, J-8B를 모조리 출격시킨 바 있다.
미사일 공격이 퍼부어지면 이실리프 왕국의 허접한 공군이 대응할 것이 뻔한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의 미그기 등이 비행을 시작했을 때 이들은 이미 신의주 인근에 당도한 상태였다.
“편대장님! 적기 배당해 주십시오. 라저.”
“알았다. 1편대 1기는…….”
배당을 받은 지나 공군기들은 차례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6.25 전쟁 때는 인해전술을 펼쳤는데 이번엔 미해전술이다.
미사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무지막지하게 쏘아댄다.
슈아아앙! 쐐에에에에엑! 고오오오!
수많은 미사일이 미그기 등을 향해 쏘아져 간다. 저쪽은 이쪽의 존재를 모르는지 무반응 직전 비행 중이다.
“어이구, 저런 걸 공군기라고…….”
“그러게 말입니다. 레이더도 망가진 상태인가 봅니다. 쯧쯧, 저러다 뒈지는데……. 명복을 빌어줄까요?”
“명복은 무슨 개소리! 적이다, 적!”
지나 공군 조종사들을 화마를 품은 미사일이 다가가는 것조차 몰라 회피 기동도 않는 북한기들을 보고 비웃었다.
콰앙! 쿠와앙! 콰쾅! 콰콰콰콰쾅!
미그기들이 허공에서 산화하기 시작했다. 신의주 인근 상공에서 무려 1,000기가 넘는 기체가 폭발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불꽃놀이를 하는 듯 뻑적지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