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4
어느 날 실종된 여식을 멀고먼 마인트 대륙에서 만났는데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마음 같아선 당장 뛰어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도델 왕국은 소국이다.
땅 덩이도 작고, 인구수도 적으며, 군사력도 약하다. 쟁쟁한 황제와 국왕들이 있는 자리인지라 나설 수 없는 것이다.
마음 답답해하던 도델 왕국의 국왕은 어느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아르센과 콰트로, 그리고 마인트 대륙 모두를 주무르는 인물이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아만다! 네가 용을 물어왔구나.’
아만다를 바라보는 국왕의 얼굴엔 감격의 빛이 어리고 있다. 이제 도델 왕국은 다른 어떤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국가가 된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식은 계속되었다.
“다음 제3황후는 스타르라이트님으로…….”
“제4황후님은 테이란 왕국의 후작가 영애이신 도로시 칼라 폰 발렌틴 님이십니다.”
“제5황후는 요슈프 공작가의 말라크…….”
“제6황후는 하시에라 공작가의 안젤라…….”
요슈프 공작의 소개가 이어지는 동안 하나하나 정중한 예를 갖추고 답례를 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현수는 속이 뒤틀렸다.
‘뭐야, 이거! 내 황후를 왜 지들 마음대로 정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싸미라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만다와 스타르라이트, 그리고 도로시는 브리프 공작가에 감금되어 있을 때 직접 구해주었다.
놔두면 핵폭발 때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자신의 여인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말라크도 그렇다. 몇 번을 만났지만 애정을 가질 만한 아무런 사건도 없었다. 심지어 안젤라는 한 번도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모두 황후 자리에 올라 있다. 심기가 당연히 불편해진다. 이때 요슈프 공작의 말이 이어진다.
“에, 제7황후의 자리는 현재 공석입니다. 현재 아국 귀족들이 모여 적합한 분을 추대하려…….”
요슈프가 마땅한 뒷말을 찾지 못하여 잠시 말꼬리를 흐릴 때 누군가의 음성이 있었다.
“할 말이 있습니다. 폐하! 왜 저를 외면하시옵니까? 저는 이미 폐하의 여인이옵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거기엔 인도의 여배우 디피카 파두콘을 닮은 절세미녀 파티마 이브라힘이 오연한 모습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티마는 무척이나 먼 길을 왔다.
거리로만 따지만 수천㎞에 이른다. 물론 걸어서 온 것은 아니다. 배를 타고 대륙의 남부해안을 빙 돌아서 왔다.
오는 동안 풍랑을 만나 갖은 고생을 했다. 육지에 내려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먼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어렵게 맥마흔에 도착한 파티마는 자신의 주인인 될 하인스를 찾아다녔다.
아르센 대륙엔 하인스와 세실리아라는 이름이 널리고, 또 널려 있다. 하지만 마인트 대륙은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김현수라는 이름이 없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하인스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청년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웠다.
자신이 찾는 하인스가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이며, 아르센 대륙의 위저드 로드라 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기사의 하늘인 그랜드 마스터이고, 이실리프 왕국의 국왕일 뿐만 아니라, 흑마법사의 나라 로렌카 제국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며, 장차 환 제국의 황제가 될 지고한 신분이라고 들었다.
놀랍고, 기쁘고, 황당하고, 어이없고, 두렵고, 이상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떤 사내든 손만 내밀면 무조건 그걸 잡아야 하는 와이퍼가 되기 싫으면 꽉 잡아야 한다.
건국 선포에 이은 즉위식이 있고, 바로 이어서 황후들을 맞이한다는데 7황후 자리 때문에 귀족들이 치고받을 정도로 논쟁을 벌인다는 소문을 접했다.
파티마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스스로 시녀를 자원했다. 하여 즉위식에 필요한 세팅작업을 도왔다.
그리곤 내내 기회를 엿보았다. 도 아니면 모라는 심정으로 이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내외빈 모두의 시선이 쏠릴 때 현수 역시 먼발치의 파티마를 바라보았다.
“방금 폐하의 여인이라 말씀하신 분은 불편하시더라도 앞쪽으로 나와 주십시오.”
요슈프 공작은 시끄러운 논란 때문에 갓 건국된 환 제국이 내우(內憂)에 시달릴 수 있음이 불편했다.
국론이 갈가리 찢기는 기분이다.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기심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뭐라 말하지 못했다.
자신의 딸이 황후 중 하나인 때문이다.
하시에라 공작도 마찬가지이다. 현수와 일면식도 없는 안젤라를 황후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렇기에 국론분열을 말없이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스스로 7황후라는 여인이 나타났다. 그렇기에 얼른 앞으로 나와 보라고 한 것이다.
파티마는 앞으로 나서기 전에 입고 있던 시녀복을 벗었다. 그러자 이 자리에 어울릴 만큼 우아한 드레스가 드러난다.
오늘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장만한 것이다.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곤 자박자박 걸어 앞으로 나섰다. 파티마를 본 내외빈은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황후가 될 만한 절세미모와 그에 걸 맞는 우아함을 인정한 것이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요슈프 공작은 더없이 정중한 어투로 묻는다. 황후가 되면 자신보다 웃전이 되기 때문이다.
“파티마 이브라힘이에요. 헤르마에서 왔습니다.”
“헤르마하면 자유영지를 말씀……?”
“맞아요. 마인트 대륙 동북단에 위치한 자유영지지요.”
“방금 전 폐하의 여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네! 폐하는 제 영혼의 소유자이세요.”
요슈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구체적으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때문이다.
하여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현수와 파티마를 여러 번 번갈아 바라본다. 자세히 말해달라는 뜻이다.
“폐하께서 제 입술을 가지셨습니다.”
“아……!”
마인트 대륙이 아닌 곳에서 온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단번에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내외빈들이 설명해 달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요슈프 공작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수를 바라본다.
“폐하! 이분의 말씀이 사실이온지요?”
“……끄응!”
현수는 참으로 난감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지만 파티마의 시선 때문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어서 고개를 끄덕여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라고 하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싶다.
‘에효!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냐? 끄응! 대체 나더러 뭘 어쩌라고? 끄응!’
“폐하! 정녕 이분의 입술을 가지셨사옵니까?”
로렌카 제국은 망했다. 그리고 키스를 하면 그 여인을 소유한다는 칙령은 로렌카 제국의 황제가 반포한 법령이다.
그럼에도 요슈프가 사실을 말해달라는 표정을 짓는 이유는 이 칙령이 무려 300년이나 유지된 관습인 때문이다.
하여 로렌카 제국과의 연관성을 깜박 잊은 것이다.
“폐하! 어서 말씀해 주시옵소서.”
내외빈은 요슈프와 현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마치 한국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일 것이다.
“으으음!”
현수가 답하지 않자 파티마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몇 발짝 앞으로 오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폐하! 경사스러운 날 마뜩치 않은 제가 나서서 잔치 분위기를 깨었사옵니다. 만장하신 내외빈이 계심을 잊고 계집이 욕심을 부리는 죽을죄를 지었음을 인정하옵니다. 하오니 저를 참수형에 처하여 다시는 같은 일이 빚어지지 않도록 본보기를 삼아주시옵소서.”
‘헐! 자기 목을 잘라 달래. 이 동네는 뭐 이래?’
대놓고 협박을 받은 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내놓고 그런 표정을 지을 수는 없다.
그러다 문득 아니라고 부인하면 어찌 될까 생각해 보았다.
파티마의 말대로 잔치 분위기를 깬데다 거짓을 고했다. 당연히 참수형에 처해질 중죄이다.
“끄응! 이쪽으로 와서 서.”
“……하오면 감사한 마음으로 폐하께 가겠사옵니다.”
공손이 예를 갖춘 파티마는 싸미라 등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곤 남은 자리에 앉는다. 어디서 뭘 배웠는지 몰라도 선술집 여급 같은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귀족가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영애 같은 모습이다.
한편 요슈프 공작은 7황후 자리를 차지하려는 각축전이 종식되는 것이 너무도 기쁜 듯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로써 환 제국의 건국 선언과 초대황제 즉위, 그리고 7황후와의 성혼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오늘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준비했으니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세!”
“7황후님 만세! 만세! 만세!”
모두가 환호성을 지를 때 마나 실린 음성이 터져 나온다.
“잠깐……!”
상당히 큰 음성에 놀란 사람들이 어디에서 난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아직 안 끝났다. 나!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 라이세뮤리안은 환 제국의 영원한 안녕을 위한 수호룡……. 나 제니스케이안도 역시 환 제국의…….”
또 수호룡 선포이다. 이번엔 70여 개체가 차례로 환 제국을 보위하겠노라 선언했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젠 다들 놀라지도 않는다.
가장 마지막으로 수호룡 선포를 한 블랙 드래곤 샤카이데마룬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들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하는데 아무도 그렇지 않은 때문이다.
‘뭐야? 이 인간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그런 거야? 샤벨타이거 간을 삶아먹었나?’
15장 세월이 흘러
이실리프 왕국, 쥬신 제국, 그리고 환 제국의 선포식이 끝났다. 현수는 지구로 귀환하여 밀린 업무를 보곤 다시 차원이동하여 바세른 산맥 아래 한옥단지로 갔다.
그곳엔 다섯 신부가 하하호호 하며 즐거운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현수가 가르쳐 준 윷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카이로시아를 필두로 모두에게 슈퍼 포션을 복용시켰다. 열흘 후 모두들 바디 체인지를 겪었다.
다들 20대 초반의 싱싱함을 되찾은 것이다.
전쟁과 수명의 신 데이오 덕분에 1,000년의 삶을 살게 될 다섯 여인은 젊음을 500년 이상 유지하게 될 것이다.
첫날밤을 치른 날 카이로시아는 현수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느라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이다.
로잘린도 그랬다. 그러면서 몹시 미안해했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고, 도움준 것도 없는데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며 평생 동안 갚겠다고 다짐했다.
성녀 스테이시와 합방한 날에 다시 한 번 가이아 여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너는 내가 간택한 내 딸의 배우자!
선택받은 성군이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영광이 있을 것이며
네 세상에서도 나의 힘을 허락하노라./
성녀의 배우자인 성군(聖君)이 되면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이 크게 늘었음을 알게 되었다.
방사능을 정화시킬 수 있으니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원전에서 방사된 것들을 원상으로 회복시킬 힘을 얻은 것이다.
마지막은 다프네였다.
드래곤의 딸로 태어나 버림받은 인생을 살았다.
몇백 살이 되도록 라수스 협곡 안에 갇혀 살 뻔했는데 현수를 만나 팔자 폈다면서 환히 웃었다.
* * *
“전하! 로스차일드 뱅크가 파산했다고 합니다.”
“오! 그런가? 그거 듣던 중 아주 반가운 소리군.”
집무실에서 결재 서류에 시선을 주고 있던 현수는 신은희 비서의 보고에 환히 웃는다. 유태인 자본 중 가장 큰 덩어리 가 드디어 사라진다니 기쁜 것이다.
“석유 메이저들의 성세도 크게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이실리프 엔진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연비가 기존보다 12배나 좋아지니 안 쓸 수 없는 것이다.
차량용뿐만 아니라 선박용, 비행기용, 중장비용, 발전기용 등을 생산하고 있다.
당연히 전 세계 유류 소모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선택온도유지 마법진도 전 세계로 수출되는 품목이다. 하여 난방과 냉방에 더 이상 전기나 연료를 쓰지 않는다.
그 결과 석유 메이저들이 다루는 화폐의 단위는 이전의 1,000분의 1 수준이 되어버렸다.
거래량 자체가 작으니 만지는 돈도 적은 것이다.
“전하! 올해 밀 거래가는 어떻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