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7
이실리프 뱅크는 결국 대한민국의 모든 시중은행을 인수했다. 주식 지분율은 95% 이상이다.
경영권을 장악한 이후 최초로 시행한 일은 이자율 인하였다. 거의 이실리프 뱅크 수준으로 낮춰 버린 것이다.
모든 시중은행 대출상담용 의자엔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하게 하는 ‘Always tell the truth’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하여 대출시 신용등급을 조회하지 않는다. 담보도 요구하지 않고, 연대보증도 요구하지 않는다. 꺾기도 없다.
이실리프 뱅크로부터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들은 양심이 올바르지 못한 인간들이다.
이들은 돈 구하는 게 몹시 어려워졌다.
이실리프 뱅크가 시중은행들의 경영권을 장악한 이후 이자율이 높던 저축은행들이 모조리 문을 닫은 때문이다.
그들이 취급하던 서민고객들을 이실리프 뱅크와 시중은행들이 모조리 흡수한 결과이다.
거액의 이자를 받아 챙기던 대부업체와 사채업자들도 거의 모두 사라졌다. 경쟁이 안 되는 때문이다. 이는 홍진표 대통령이 제안한 ‘이자제한법’ 때문이기도 하다.
새 정부는 출범 초기에 이 법률을 손질하여 최고이자율을 연 10%로 대폭 낮추는 한편 이 법을 어길 경우 가혹한 처벌을 받도록 하였다.
건당 최하 징역 10년이니 100건이면 1,000년간 교도소에 수감되도록 한 것이다.
개정된 ‘감형에 관한 법률’을 보면 형기의 5분의 1 이상을 모범수로 생활을 했을 경우에만 최대 절반까지 형기가 줄어들도록 되어 있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징역 1,000년이 선고된 자는 일단 200년간 교도소 생활을 해야 한다.
이때까지 말썽부리지 않고 모범수로 살았다면 최대 500년을 감형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300년을 교도소에서 더 살아야 바깥 공기로 호흡할 수 있다.
게다가 단 한 건이라도 이자상한선을 넘기거나 불법 복리이자를 취했을 경우 취급 금액 전액을 국고에 환수하는 징벌 조항을 신설시켰다. 가진 돈을 다 빼앗는 것이다.
친척 중에 고위 경찰관이 있어 개정된 법을 우습게 알고 사채업을 하던 자 하나가 최초로 이 법을 적용받았다.
그 결과 전 재산이 몰수되었고, 징역 760년에 처해져 있다. 152년을 모범수로 살아야 감형을 노려보는데 체포되었을 때 나이가 42세였다.
196세가 될 때까지 모범수로 살아야 하고, 최대한 감형을 받아도 228년을 더 갇혀 있어야 한다.
이런 일벌백계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불법 사채와 무리한 추심을 하던 자의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사채업자 거의 전부가 사라졌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의 금융시장은 현재 이실리프 그룹이 모조리 장악하고 있다. 외국의 은행들은 들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경쟁력이 없는 때문이다.
참고로, 이실리프 뱅크의 2대 행장은 김지윤이 역임했다.
천지건설 박진영과 2018년 12월 24일에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축의금 대신 들어온 쌀은 전량 고아원과 양로원에 기부되었다.
현수는 이들 부부에게 우미내 마을의 단독주택을 선물로 주었다. 대지 385평, 연면적 100평짜리 고급 전원주택이다.
걸그룹 다이안은 모두 은퇴했다.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가 되었음에도 매년 자선공연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2311년 8월 어느 날, 현수는 오래전에 썼던 회고록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어느새 326년이나 살았다. 그동안 회고록을 보고 또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바탕 활극 같은 인생이다.
“여보! 우리 거기 또 가면 안 돼요?”
따끈한 커피를 가져온 지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현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자기 왔어?”
현수는 자연스레 지현의 허리를 잡아 당겨 무릎에 앉혔다.
“네! 거기 또 가요. 우리.”
현수가 차원이동을 하고 있음은 100살쯤 되었을 때 이야기 해주었다. 그 후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라냐와 테리나, 설화와 함께 아르센 대륙을 다녀왔다.
10서클인 차원이동마법을 창안해 낸 결과이다.
그곳에서 카이로시아 등을 만났다.
다른 세상에 감춰둔 부인이 무려 21명이 있었음에도 지현 등은 아무런 불만이 없다.
같이 있는 동안 항상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고, 보살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절륜한 정력도 한몫했다.
현수는 300살이 넘었어도 아직 바이롯의 신세를 지고 있지 않다. 여러 번에 걸친 바디체인지 덕분이다.
그랜드 마스터의 체력을 지녔기에 28명의 부인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현수가 창안한 10서클 마법은 또 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부활마법 리절렉션이다.
다만 상처 없이 사망했을 때만 가능하고, 숨이 멎고 30분 이내만 효과가 있다.
아주 많은 시험 끝에 만들어진 마법이다.
그러다 리노와 셀다의 후손 중 하나가 죽었을 때 성공시켰다. 하지만 사람에겐 써 본 적이 없다.
“그나저나 하일라를 어쩌지?”
지난번 방문 때 이실리프 제국의 아카데미에서 정령학 학장으로 재직 중인 하일라 토틀레아가 사랑을 고백했다.
300년 가까이 기다렸으니 자신을 받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 엘프가 세계수의 잎을 사내에게 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하일라가 준 것은 왕국 개발 초기에 수맥을 찾을 때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현재 숲의 종족인 토틀레아 일족은 아르센 대륙뿐만 아니라 콰트로 대륙과 마인트 대륙에서도 산다.
현수의 권유로 나뉘어 이주한 것이다. 그리고 아리아니가 각 대륙마다 세계수의 씨앗을 심은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토틀레아 일족은 세 대륙 인간들과 화합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현수는 이들 토틀레아 일족의 덕을 많이 보았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각종 식물의 효능을 알 수 있어서 여러 종류의 신약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와 루게릭병이 정복되었다. 특효약이 개발된 것이다.
콰트로 대륙에서 발견한 약초 덕분에 다운증후군(다운 증후군(Down syndrome) : 21번 염색체가 정상적인 2개가 아니라 3개 존재하여 정신 지체, 신체 기형, 전신 기능 이상, 성장 장애 등을 일으키는 유전 질환.)과 터너증후군(터너 증후군(Turner syndrome) : 성염색체인 X염색체 부족에 의하여 난소 형성 부전과 함께 저신장증을 포함한 다양한 신체 변화가 함께 나타나는 유전 질환.), 그리고 에드워드증후군(에드워드 증후군(Edwards syndrome) : 정상적이라면 2개이어야 할 18번 염색체가 3개가 되어 발생하는 선천적 기형 증후군.)의 예방약을 만들 수 있었다.
마인트 대륙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은 알츠하이머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상당히 많은 질병이 정복되거나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
이 모든 성과는 토틀레아 일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수는 이들 일족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짐작했다.
하일라와 정식부부로 맺어지면 일족의 안위가 보다 확고해지고, 안정적이 된다.
현수는 이 문제를 카이로시아 등과 의논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승낙되었다. 결국 하일라마저 받아들인 것이다.
인간이 미(美)의 상징인 엘프와 맺어졌다.
지구의 사내들이라면 다들 부러워할 일이지만 현수는 그렇지 않다. 아내로 맞이한 여인들 중 하일라와 비교했을 때 뒤처지는 미모는 없는 때문이다.
* * *
“마나의 권능으로 죽은 이에게 새 숨결을 부여하노라. 리절렉션(Resurrection)!”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고 약 2분 후 방금 전 숨을 거뒀던 싸미라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린다.
그리곤 멈췄던 가슴의 기복이 다시 시작된다. 다음 순간, 눈꺼풀이 올라가며 맑은 눈빛이 드러난다.
현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묻는다.
“싸미라! 괜찮아? 괜찮은 거지? 그렇지?”
“아아, 자기……! 자기!”
싸미라는 10서클 부활마법 리절렉션이 정말로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마인트 대륙의 황제를 비롯한 즐비했던 9서클 마스터들도 이론상 불가능하다고 추측을 했던 마법인 때문이다.
러절렉션은 마법이 아니라 신의 권능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여 숨을 거두면 즉시 부활마법으로 살려내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지난 생을 회고하는 마지막 인사를 했었다.
현수 덕에 슈퍼 포션을 복용하여 바디체인지를 겪으면서 300년을 살았다. 하여 남길 말이 많았다.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당신의 아내여서 행복했다고, 아이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등등의 구구절절한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숨은 거둔지 불과 2분 만에 부활했다. 70대 노파의 모습이었는데 조금씩 젊어지고 있다.
현수의 리절렉션 마법에 ‘전쟁과 수명의 신’ 데이오의 권능이 섞여 들어간 결과이다. 하여 앞으로 300년을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쨌거나 싸미라는 다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하여 짙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흐흑!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세상에……! 정말 10서클이네. 허어, 내 생전에 부활 마법을 보다니. 대단해! 정말 대단해! 자넨, 정말 대단한 친구야. 그리고 진짜 놀라운 일이야. 안 그래?”
라이세뮤리안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러게요. 이건 전대 로드들도 못하던 권능인데.”
라이세뮤리안과 부부의 연을 맺은 제니스케리안도 몹시 놀란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드래곤들의 역사서에도 리절렉션은 사용된 기록이 없는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부활한 싸미라를 조심스레 일으켜 앉힌다. 혹시라도 부작용이 있을까 매우 긴장된 표정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멀쩡하다.
“싸미라, 이제 다시 시작이야.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네에, 사랑해요. 여보! 흐흐흑!”
와락 안겨드는 싸미라를 안고 있는 현수의 팔목엔 ‘전능의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게 해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티펙트이다.
이 팔찌는 현수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되면 스르르 분해되어 사라진다. 생명반응이 사라지면 분해마법이 구현되도록 설계된 때문이다.
현수는 싸미라의 등을 조용히 토닥이며 나직이 속삭인다.
“나도 싸미라가 있어서 아주 좋았어. 사랑해!”
“흐흑! 흐흐흑! 저도요.”
- 대미(大尾) -
17장 맺는 말
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시지요?
드디어 긴 글의 끝을 보았습니다.
전작이면서 미완인 ‘신화창조’를 쓰면서 많은 자료조사를 하는 것이 힘들어서 쉬어가는 이야기로 쓰기 시작한 것이 ‘전능의 팔찌’입니다.
2011년 초에 시작되었는데 2015년 끝 무렵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4년이 넘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독자이던 시절엔 장편소설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을 뿐 진짜로 장편인 소설이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3권짜리 소설이 대부분이었지요.
너무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데 일찍 종결되는 것이 아쉬워서 긴 글을 찾아봤지만 길어봐야 4권이었습니다.
하여 늘 긴 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전능의 팔찌’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처럼 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곤 작가인 저도 상상치 못했습니다.
다 써놓고 서가에 꼽힌 것을 보니 길기는 정말 깁니다.
1편부터 다시 읽으려면 매일 한 권씩 읽었을 때 두 달 가까이 걸릴 만큼 엄청난 분량입니다.
저처럼 장편을 찾던 누군가에게 꽤 오랜 시간 읽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준 것 같아서 뿌듯하면서도 아쉽습니다.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거든요.
그동안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53권이라는 긴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모두 여러분들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미완으로 남겨두었던 신화창조의 완결을 쓸 예정입니다. 부디 이글도 많은 관심 당부드립니다.
끝으로 긴 글을 출판해 준 도서출판 청어람과 임직원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랫동안 이 글과 함께 한 권태완, 박은정 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뵙겠습니다.
2015년 깊은 가을에
김현석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