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서 프랑크의 기괴한 저택
거리로 나오자 템스 강의 비릿한 향기가 코 끝을 찔렀다.
런던을 가로지르는 이 런던의 흉물스러운 상징물은 수십 년간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수로 어떤 생물로 살 수 없는 썩은 물이 되었다. 문장으로 묘사하자니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만, 감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 불쾌한 기름 냄새를 사랑했다.
비록 10년 정도는 군 생활과 탐험가 생활로 떠나 있었지만, 두 번째 일생을 런던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고향의 냄새였다. 가까이 가면 아토피가 도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템스강 주변을 따라 걷는 것을 즐겼다.
───빵빵!
"비켜요! 비켜요!"
"어이쿠."
어느 틈엔가 뒤에 바짝 다가온 마차가 아슬아슬하게 등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적기를 단 마차 뒤로는 직전 크락션을 울린 자동차가 매연을 뿜으며 느긋한 속도로 지나갔다.
"눈 뜨고 다녀요!"
나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고 지나가는 마부를 얇은 눈초리로 노려봤다.
"요즘 것들은...."
요즘 것들은!
아, 평생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이를 먹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21세기의 기억을 가진 풋내기가 뭔 소린가 싶겠지만, 19세기의 내가 보기엔 요즘 것들은 다 글러 먹은 놈들밖에 없었다. 내가 어릴 적 품었던 어른과 귀족에 대한 공경심을 보이는 청년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전생자로 살다 보면 이런 아이러니를 수도 없이 만나곤 했다.
의회에서는 역사적인 악법, 적기조례의 폐지로 한참 시끄러웠지만 나는 그 역사적 순간에 어떤 감격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규제를 잃은 자동차들이 얼마나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닐지 걱정스러울 따름이었다.
꼰대라고? 무슨 말씀을. 이래 봬도 진취적 사고의 21세기 현대인이다. 그런 내가 19세기 꼰대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여하튼, 나는 길 끝에 선 채, 몇 번이나 곤혹을 치른 끝에 마차를 잡을 수 있었다.
"어디로 갈깝쇼?"
마부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묻자,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말했다.
"시외, 프랑크 저택으로."
"프랑크 저택이요?!"
그러자 마부는 놀란 듯이 눈을 부릅뜨며 반문했다.
"왜 그러지?"
"나리, 나쁜 말 하지 않습니다만, 아마 속고 계신 걸 거예요."
"뭐?"
고작 지인 저택을 방문하겠다는데 설마 마부가 말릴 줄은 몰랐기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프랑크 백작님이 주최하는 신비학 학술회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다고요. 보셔요."
마부는 옆구리에 꽂아놨던 일간지를 내게 건넸다. 아, 데일리 텔레그래프. 노동자들이 즐겨 읽는 일간지였다. 나는 그다지 즐겨 읽지 않았다.
"농담란에 실린 명단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있었다. 프랑크의 바보들. 거기에는 나도 알법한 명사들의 이름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이게 뭔가?"
"피해자 목록입니다. 프랑크 백작님께서 친히 저택 앞까지 도착한 바보들의 이름을 적어 제보한 겁니다. 어르신도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시면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아하, 보아하니 아서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주 화려한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그것도 런던 시민이라면 마부조차 알 정도로 유명한 소동을 일으키면서 말이다.
아서 프랑크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어디서나 눈에 띄고, 상상도 못한 기행을 마구 저질렀다.
"아니, 가주게. 내 걱정은 말고. 나는 아는 사람을 보러 갈 뿐이야."
"가신다면야 저야 말리지 않습니다만...."
마부는 미련이 남은 듯이 중얼거리곤 고삐를 흔들었다.
"이럇!"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끄는 말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트를 통해 중독적인 흔들림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나는 뚫린 창 위에 팔을 걸치며 그 너머로 회갈색 런던 하늘을 구경하며 생각했다.
'아서는 왜 나를 찾았을까?'
그는 인복이 아주 많은 인물이다.
학자를 원한다면, 아서는 병상에 누워 있는 찰스 다윈을 일으켜 세우고 남았다.
탐험가를 원한다면, 남극해를 떠도는 로알 아문센의 뱃머리를 돌릴 수도 있었다.
군인을 원한다면, 여왕께서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첫 번째 왕실 드라군 근위병에서 가장 훌륭한 병사를 내줄 것이다.
모두 나보다 낫다면 나았지 못한 것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나는 몇 가지 특이한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대학 시절부터 아서가 내게 보여준 관심은 비정상적이었다.
철없던 시절에는 부유한 그의 호의를 즐기기도 했지만, 그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진 것도 내가 입대한 것과 무관하진 않았다.
제대한 이후로 그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나는 완전히 그의 눈 밖에 난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편지가 날아온 것이었다.
"정말로 놀려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마부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서가 그의 부유한 진짜 친구들과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에 앉아서, 요 몇 년 반짝 유명인이 절뚝거리며 문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며 낄낄대는 것 말이다. 내 치부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던 신문사는 좋아라고 날 조롱하겠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음습한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애써 불안한 생각을 떨쳐내고 잠들려고 시도했다. 노력까진 필요도 없었다. 수마는 마차의 편안한 흔들림을 틈타 날 순식간에 꿈속으로 끌고 들어갔으니까.
.........
.....
...
..
.
"어르신, 도착했습니다."
나를 깨우려던 마부는 손이 닿기도 전에 내가 눈을 부릅뜨자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좀처럼 깊이 잠들지 못하는 건 군 생활 이후로 생긴 버릇이었다.
내 다리가 불편한 것을 눈치챈 마부의 도움으로 마차에서 편하게 내려온 나는 감사의 뜻으로 팁을 듬뿍 더해 마부에게 건넸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하지만 이런 외진 곳이면 마차를 잡기도 힘들겠군요. 시간을 알려주시면 마중 나올까요?"
나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감사한 배려였지만 이번에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알트가 자동차를 갖고 있거든. 그가 시내까지 데려다 줄 거야."
잠시 알트가 누군지 곰곰히 생각하던 마부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프랑크 백작님 말씀이십니까?!"
나는 잠깐 유명인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독특한 즐거움을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부는 한동안 어벙한 표정으로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 허겁지겁 저택을 떠났다. 나에게 한 이야기로 무슨 해코지를 당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떠나는 마차를 지켜보던 나는 저택 입구에서 벨을 눌렀다.
───삐이이!
'정원사를 해고했나?'
내 의문은 정당한 것이었다. 담장 너머로 담쟁이덩굴이 절제 없이 빠져나오고, 심지어 그늘진 곳에는 이끼마저 피어 있었다. 저건 버섯인가? 모든 것이 명가의 저택치고는 후줄근했다.
문을 열어줄 사용인을 기다리며 고딕식 창살 대문 너머로 저택의 정원을 엿봤다. 젊은 시절에 몇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른 정원에 온 것처럼 바뀌던 화려한 풍경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내가 기대한 것과 많이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정원수만 갖다 놓은 것 같던 화려하고 조화롭던 정원은 어디 갔는지, 나는 그것을 정원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가시나무 투성이였다. 저택까지 이어진 돌길을 제외하고는 가시나무와 붉은 장미가 마구잡이로 엉켜서 자라고 있었다. 가시를 가진 두 식물이 서로 밀어내며 누가 더 뾰족한 가시를 가졌는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 쪽이 승리하건 이 정원은 파멸하겠지.
───덜컥.
내가 그런 감상을 품고 있자 대문이 저절로 열렸다.
"자동문이라고?"
세상에. 언제부터 이 저택이 이렇게 하이테크놀러지 해진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들어오자 그걸 감지라도 한 듯이 문이 저절로 닫혔다.
"저절로 닫히기까지?"
나는 한 번 다시 놀랐다. 이것이 영국의 기술력인가. 21세기도 적수가 되지 않는구나. 아마 200년만 있으면 따라잡을 수 있겠지.
가까이서 본 가시 정원은 더욱 장관이었다. 저택으로 향하는 돌길을 걸을수록, 양쪽의 가시덤불이 서서히 침범해와 종국에는 나를 삼키려는 것 같다는 착시마저 일어났다. 폐쇄공포증 환자라면 견딜 수 없을 감각이었다.
저택 풍경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수상쩍군...."
지난 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택은 음산한 추리 소설의 배경처럼 변해 있었다.
안 좋은 징조였다.
───쿵쿵쿵!
문 앞에 도착한 나는 문고리를 잡고 세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금쇠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분이십니까?"
"허버트. 필레몬 허버트."
잠금을 풀고 상대를 묻는 건, 조금 순서가 어긋나지 않나?
나는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순순히 이름을 불었다.
"...그런 분은 초청받지 않았습니다."
"뭐? 그럴 리가 없어. 리스트를 제대로 확인하게!"
상대의 대답에 내 머릿속에 마차에서 떠올렸던 불길한 가능성이 다시 떠올랐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에서는 종이 넘기는 소리가 태평하게 들려왔다. 끔찍하게 길게 느껴진 1분이었다.
"...다시 확인해도 그런 분은 없습니다."
"잠깐 그 바보 같은 리스트를 보여보게!"
"그렇게 말하셔도...."
───쿵쿵!
나는 난폭하게 문고리를 다시 내리쳤다. 그 자식은 나한테 편지를 썼단 말이야. 거기에 제대로 적혔던 이름이 다르게 적혀 있을 리가....
...설마.
나는 문득 떠오른 가능성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
"네?"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라는 단어는 없나? 그게 아마 나일 거야."
실내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다시 발음해주시겠습니까?"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
"플록시노...."
"시니."
"시니."
"힐리필리피케이션."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 아, 네, 있군요."
허탈한 나머지 무릎에 힘이 풀렸다. 나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온 힘으로 지팡이를 눌렀다.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
발음하기조차 끔찍하게 어려운 이 단어는 셰익스피어가 만든 말로....
아니, 집어치우자, 그건 우리 둘이 만든 일종의 농담이었다.
아서는 나를 공적 장소에서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라고 소개하고, 주변 사람들을 놀려먹는 그런 종류의 혈기왕성한 농담 말이다. 나는 그가 그 농담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기억하는 나 자신조차 너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달칵.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버트로 충분하네."
나는 노집사의 뻔뻔함에 기가 질려 힘없이 대답했다. 설마 들어가기 전부터 이렇게 진이 빠질 줄은 몰랐다. 나는 문을 열어준 노집사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가, 그것이 아주 무례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문제라도?"
"아니, 아무것도. 미안하네."
노인은 말 그대로 기괴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쭈글거리는 얼굴은 반쯤 녹아내린 것처럼 보였고,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것뿐이라면 고령의 노인을 부려 먹는 아서의 무심함을 욕하면 그만이었으나, 노인의 몸은 건장한 청년의 그것 같았다.
목을 경계로 노인과 청년, 다른 두 사람이 붙어있는 듯한 부조화의 화신이었다.
"그러면 허버트님, 주인 어르신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기괴함에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천히 앞장서 걸었다. 뒷모습만으로는 노인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어깨가 넓었으며, 허리는 곧았고, 키마저 더 컸다.
───삐걱... 삐이걱....
걸을 때마다 습기 먹은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귀신 들린 저택 같았다.
"마루를 가는 게 좋겠군."
"하하. 의미가 없어서 말이죠."
의미가 없다?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그 말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와중, 노집사와 나는 몇 개인지 모를 방문을 지나갔다. 사람이 사는 저택이라기보다는 호텔 복도를 걷는 느낌이었다.
나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물으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져 입을 다물었다. 노집사는 어떤 문 앞에 멈춰선 뒤에, 아주 정중한 동작으로 노크했다. 노크하는 방법을 방금 배운 사람처럼 말이다.
───똑똑.
"플록시노힐니필리피케이션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안쪽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는 아서의 목소리였다.
"고맙지만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이야. 들어오라 해."
"이런 무례를. 용서하시길."
나는 사과하는 노집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사과는 알트에게 받아내도록 하지."
나는 문고리를 잡고, 온 힘을 다해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나는 무례한 집주인에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항의를 다하기 위해, 고개를 뻣뻣이 치켜들고는 행진하는 군인의 심정으로 성큼성큼 응접실 안으로 행군했다.
흔들리는 샹들리에 아래에, 의자에 앉은 집주인은 그런 내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봤다.
"아, 필로. 나의 벗. 와줬구나."
아서 프랑크. 내 기억 속 모습과 전혀 변하지 않은 그는 거기 있었다.
나는 경악했다.
문자 그대로, 그는 변하지 않았다. 20년의 세월을 혼자만 빗겨간 것처럼.
"이게 무슨...."
"하하. 알아, 묻고 싶은 게 많겠지. 일단 앉아. 손님을 오래 서 있게 하고 싶진 않거든. 특히나...."
아서는 나의 의족을 보며 눈짓했다.
마침 발이 심하게 아파져 오던 참이었기에, 나는 군소리 없이 순순히 의자에 앉기로 했다. 내가 낑낑대며 의자를 앉는 것을 지켜보던 노집사가 손을 내밀었다.
"지팡이는 받아 드리겠습니다."
"됐네, 이건 내 다리야! 다리를 남에게 맡기는 사람을 봤나?"
그리고 나는 그 불쌍한 노인의 손을 거의 쳐낼 뻔했다.
그래, 인정한다. 나는 아주 무례했다. 분명한 과민반응이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라. 내가 이 저택에 도착한 이후로 본 수많은 기괴한 것들을. 호러 소설이었다면 작가의 과도한 장치에 한숨 쉴 정도였다.
그래, 이 정도 해놨으면 다음 페이지에는 괴물이 나오겠지. 살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둘 다 나오겠지. 기발하군. 괴물 저택에서 괴물이 나오다니. 아주 상상도 못했군그래.
그런데 지금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거기서 지팡이를 뺏어가겠다는 말은 마치...
그래, 인정한다. 나는 완전 쫄았다.
"세상에, 필로,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학구심에 불타던 순수하던 청년은 어디 가고 편협한 늙은이가 도착했지?"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 있었지."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오히려 너에게는 그 평범함이 부족했던 모양이군."
"하하, 그래? 잘됐네. 나는 특별한 게 좋거든. 평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못 참았을 거야."
아서는 내 말에 기뻐하며 웃었다.
"그 말이 아니라... 대체, 자네는 20년간 나이를...."
"그런 시시한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자."
"시시하다니!"
아서는 내 항의를 무시했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마저 내가 기억하는 아서 프랑크 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흥미 외의 것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년간 나를 대한 방식처럼 말이다.
그는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나는 그것을 보고 거의 비명을 질렀다.
"있었잖나! 제대로 된 사진이!"
"하하. 잘못 찍힌 쪽을 보내야 네가 올 거라 생각했거든. 너는 옛날부터 그랬잖아."
그것은 낮에 내가 받은 것과 비교해 훨씬 선명한 사진이었다.
"너는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무시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고평가하고 있어."
나는 항의를 위해 아서를 노려봤다.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눈을 마주보며 싱글거렸다. 아, 빌어먹을. 저 눈이다. 언제나 나를 사건에 말려들게 했던 그 눈이었다.
"너 같은 사람은 드물어, 필로. 자신감을 가지라고."
"너한테 듣기는 싫은 말인데."
"물론 나는 최고로 특이한 사람이니까. 설마 나하고 견줄 생각이었던 거야?"
봐라, 잠깐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 완전히 페이스를 빼앗기지 않나.
나는 억지로 사진 이야기로 화제를 되돌렸다.
"그래서, 이건 뭐지? 무슨 동상처럼 보였는데?"
"뭐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나는 사람 뒷모습이라고 생각했지. 팔과 다리가 있고, 앉아서 사색하는 그런 사람 말일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이야. 그런데 내 가정부 마리는 그게 아니라더군. 사람을 묘사한 것치고는 머리 모양이 너무 이상하다고. 나는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
봐도봐도 기이한 사진에서 눈을 뗀 나는 무심코 아서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만면으로 불쾌를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토록 싫은 표정을 짓는 것을 좀처럼 본 기억이 없었다. 내 이야기 어디에 그를 불쾌하게 할 만한 표현이 있었단 말인가.
"마리라고 했나?"
"응? 아, 그래. 다리가 불편한 나 대신 집안일을 해주고 있어."
"아주 나쁜 여자가 붙어 있었군그래. 돌아가면 당장 해고해. 가정부라면 내가 주선해 줄 테니까."
"뭐?"
나는 화제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진의 이야기를 하는가 했더니, 갑자기 가정부 얘기가 나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조금 더 순종적이고, 머리가 나쁘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사람이 좋겠어."
"무슨 말인가! 나는 관계를 소중히 하고 있어! 아무리 자네라도 내가 선택한 가정부를 쫓아내진 못할 거야!"
"필로, 나는 진지해. 그녀는 너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주고 있어. 네 자유로운 상상력을 망치고 있다고! 사람이라고? 내게는 그런 대답이 필요하다고!"
───쿵!
아서는 불쾌한 듯이 으르렁거리며 책상 위에 무언가를 올려놨다.
"대답해! 이게 뭐처럼 보이는지!"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동상이었다.
크기는 눈대중으로 상하 11인치(*약 30cm).
재질은 청동이나 옥인가 싶으나 알기 어려웠다.
표면에는 푸른 빛이 감도나 싶더니, 각도에 따라 녹색 빛을 비췄다.
그것은 뒷모습만 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크기에 비해 어설픈 조형으로 전체적으로 뭉툭하게 보였으나, 사진으로 볼 수 없던 세세한 디테일이 기분 나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게 감흥을 줄 수 없었다.
동상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 이후, 내 눈은 한 부분에 못 박힌 것처럼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머리.
거의 사람의 형태를 한 그것의 목 위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형태의 머리가 얹혀져 있었다.
그래, 굳이 비유하자면, 두족류... 문어나, 그와 비슷한 족속의 것.
결국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망할, 크툴루잖아."
그것은 소설 속에 묘사된 크툴루 상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