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프랑크의 바보들
여기서 뇌내 독자 여러분께 살짝 민감할 수 있는 발언을 하나 하겠다.
감히 고백하건대, 나는 크툴루 신화를 싫어한다.
그리고 어쩌면 21세기에 여러 창작물을 즐기는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왜냐고?
사실 나는 전생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읽어본 적 있다 수준이 아니라, 대부분 유명한 작품을 읽어봤으며, 그 중 일부는 내가 살던 대한민국에 번역되기 전에도 읽었다. 수많은 창작의 영감이 된 고전 호러의 명가에 조심스러운 존중마저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언급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부터 폭발적으로 유명해진 이후부터 문제였다.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없던 신화적 존재들이, 전혀 크툴루 신화하고 관계가 없는 창작물에서도 갑자기 튀어나와서 깽판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마치 창작자가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느 샌가 공포의 대상이었던 작중 이형의 신들은 판타지 배틀물의 전투력 측정기가 되서, *짱쎈* 괴물의 대명사쯤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세태에 염증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크툴루 신화를 싫어했다.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즐겼지만, 그것의 판타지적 해석은 여전히 내 관심사 밖이었다.
아, 그래.
그렇다고 정통파 크툴루 소설 속에 들어오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크툴루."
아서는 내가 직전에 한 말을 따라 읊었다.
"흐쑬루, 크흘루? 크툴루. 이상한 어감이군. 발음하는 법도 모르겠어. 재밌어. 그게 네 감상이야?"
직전의 격분이 거짓말처럼 언제나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온 아서가 물었다.
그가 발음을 혼동하는 이유는, 순전히 내 발음의 문제였다. 전생에만 존재하던 개념을 마주한 나는 무심코 한국어를 말하듯이 음절을 끊어 발음했고, 아서는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면, 이 동상이 뭘 묘사한 건지 알고 있었다든지."
나는 잠시 내 어리석음을 저주했다. 나는 지난 40년간 내가 전생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왔다.
거기에는 네 가지 지당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런던에서 미친놈 취급을 받고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머리에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뇌를 절단한다. 그 수술 장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런던에서 입을 조심하게 되기 마련이다.
둘째, 알려서 좋을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 두 번째 고향을 욕보이고 싶진 않지만 런던은 무정한 도시다.
명성이 아닌 유명세는 어떤 의미로건 독이 되기 마련이었다.
셋째, 내가 정말로 미래에서 왔는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몇 가지 사실은 알고 있다. 1895년에 죽었어야 하는 다윈은 멀쩡히 살아있고, 이제 막 병역을 마쳤을 아문센은 벌써 남극해를 여행하고 있었다. 거기다, 암흑 대륙이라니?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그리고 대망의 네 번째 이유.
나는 눈앞의 상대를 노려봤다. 네 번째 이유께서는 동상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히죽거렸다. 그래, 진짜 이 녀석한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잘 기억나지 않는군. 아마 해외에서 봤겠지. 여러 곳을 다녔으니."
"아, 좋아. 마침 이것도 해외에서 왔거든."
내 어설픈 능청에 그는 즐거운 표정으로 감탄했다.
"내 선친께서 반세기도 전에 암흑 대륙에서 발견한 물건이지. 그분은 어떤 열정에선지 이것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마음먹고 평생을 수소문하셨지."
나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선방했다.
암흑 대륙이라면 나도 일가견이 있다. 아서 같은 영국 토박이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속여넘길 자신이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암흑 대륙이었던 것 같군."
"선친께선 이 동상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기 위해, 동상을 한 탐험가에게 맡겼지. 암흑 대륙을 횡단하고자 하는 뜻이 일치했기에, 그는 기꺼이 선친의 지원을 받기로 하고 암흑 대륙으로 떠났지."
아서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마음 한켠에서부터 불안감이 스멀스멀 잠식했다. 불안감의 출처는 명확했다.
일찍이 설명한 바가 있지만, 암흑 대륙은 19세기 현대에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얼마나 세상이 아프리카에 무관심 했으면, 희망봉의 초라한 케이프 시티를 넘어서는 측량조차 완성되지 않은 그런 시대란 말이다.
그런 세상에 암흑 대륙 전역을 횡단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인물을 많이 알지 못했다.
...아니, 딱 한 명 알았다. 그것도 아주아주 유명한 사람으로.
"설마 리빙스턴 박사 말인가?"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탐험가의 이름은 데이비드 리빙스턴. 암흑 대륙 횡단하고 돌아온 그는 도리어 미궁에 빠졌지. 그런데 자네는 보자마자 이름까지 맞춰버렸군. 인상적이야."
물렸다.
어떤 일에도 재능을 보이던 아서였지만, 그중에서도 그는 한 가지 특출난 재능을 가졌다. 그는 아주 뛰어난 변사였고, 무의미해 보이던 짧은 잡담조차 복선이 되어 청자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멋들어지게 상대의 노림수에 걸려준 것이다.
아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대단한 리빙스턴 박사도 알아내지 못할 걸, 네가 어떻게 알아냈지?'
우연히 봤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겠지.
리빙스턴 박사는 암흑 대륙에 있어서 고작 4년 반짝 탐험가인 나보다 훨씬 저명한 인물이니까.
이것이 빅토리아 시대의 부조리였다. 교과서에서밖에 본 적 없는 번쩍거리는 위인들이 한 두 다리만 건너가면 죄다 아는 사람이 되는 거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마치 뱀 앞의 개구리가 마비되듯이, 어줍잖은 변명을 해봐야 아서에게 잡아먹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아서는 그 정적에서 무슨 대답을 얻었는지, 더 추궁하는 대신 책상 위에 한 덩어리의 종이 뭉치를 올려놓았다. 종이가 들썩이며 사이사이 쌓였던 먼지가 쏟아져 나왔다.
"콜록콜록...! 세상에, 이게 다 무슨 난리인가?"
"나는 동상을 받아보자마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더군. 이건 뭐로 만들었을까? 청동? 은? 아니면 옥인가? 적어도 지금껏 봤던 어떤 광석과도 다르단 것만은 직감적으로 알았지."
나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나도 이것을 보자마자 기이한 빛깔을 가진 이상한 재질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저 그 형태에 압도되어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뿐.
"그래서 나는 동상을 잘라내서 왕립 학회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지."
"뭐?!"
아서의 당돌한 선언에 나는 펄쩍 뛰며 소리 질렀다.
"세상에, 알트!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가!"
나는 동상을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무거워 애를 먹었다. 동상을 빙빙 돌리던 나는 발톱인지 발가락인지 모를 길쭉한 부위에서 부자연스러운 단면을 발견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아주 최근에 잘려나간 흔적이었다.
"이걸 무식하게 통으로 잘라낸 건가? 하다못해 깎을 수라도 있지 않나!"
"무슨 시시한 얘기를 하나 했더니... 필로, 너까지 바보 같은 소리 하기야? 19세기는 화학의 시대야. 선친께서야 그런 방법을 택할 수 없었다고 해도, 우리는 현대인답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지."
아서는 당황한 내가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태연했다. 아니, 오히려 내 *어리석은* 항의에 볼멘소리를 내며 불만을 표했다.
나는 다시금 21세기와 19세기의 상식이 얼마나 다른지 재인식하게 되었다.
여기는 19세기.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궤멸적으로 부족한 시대였다. 사학적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문화재가 수집가에게 헐값에 팔린다든지, 학구적인 이유로 문화재를 훼손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내가 여기서 21세기의 상식으로 아서의 *지적인* 방식을 따지고 들면, 그는 나를 아주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초조함을 다 없앨 수 없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동상이다. 크툴루가 아닌가? 그것이 정말로 실존한다면, 이 동상 또한 어떤 마력을 지니고 있을 터다. 나는 아서의 경솔한 행동이 어떤 저주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내 걱정도 모르고, 아서는 내가 별말을 하지 않자 순응했다고 생각했는지 기분이 좋아져, 희희낙락 분석표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나는 마지 못해 그 중 한 장을 집어들었다. 왕립 학회 인장이 찍힌 번드르르한 문서였다.
잠깐 내 소개를 다시 하자.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으며, 학문을 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위 위원회를 통해 정식으로 박사 학위를 인정받기도 했다. 거기다 21세기의 지식을 가진 이점으로 몇몇 분야에 한해서는 현대 최고의 전문가들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19세기 현대 기준으로 나는 대단한 식자층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내가 무식한 게 아니라 이 표의 작성자가 불친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알아?"
아서는 알아보지 못할 전문용어로 씨름하는 나에게 성분 분석이 적힌 표를 내밀었다.
"45%의 백금, 23%의 철, 그리고 0.5%의... 텔루륨? 이건 도무지 뭔지 모르겠군."
"중요한 건 거기가 아니야. 더 읽어봐."
나는 몇 가지 이름만 들어본 원소 성분을 더 발음했다. 그리고 그 끝에 도착하니, 복잡한 화학 용어 대신에 구구절절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나는 소리 내어 읽었다.
"당 왕립 학회는 이하 3개의 원소가 지금껏 지구상에서 발견된 어떤 것과도 다르다는 것을 확신한다. 허나 샘플이 부족하여 상세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학회에서는 과학과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동상 전체의 기증을 희망한다...?"
나는 슬쩍 아서를 올려다봤다. 그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때?"
"미친놈들."
아서는 내 외마디 욕설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동상을 보내지 않을 거야."
"당연하지!"
아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사람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고쳤다.
"아니, 내 말은 보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거였어."
───드륵!
아서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분석표를 읽어볼 생각으로 집어든 나는 그의 돌발 행동에 멀뚱멀뚱 눈을 껌뻑였다. 그는 동상을 품에 끌어안고 말했다.
"가자, 보여줄 게 있어."
"뭐? 잠깐!"
나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에게 그의 템포를 맞춘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서는 내 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나갔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열심히 절뚝거리며 그 뒤를 쫓았다.
───삐걱 삐걱.
───끼익 끼익.
물을 먹어 여지없이 썩어 있는 나무 복도가 걸을 때마다 귀를 간지럽히는 비명을 질러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이 빠지지 않을까 연신 조심하는데, 아서는 익숙한 것처럼 오히려 쿵쿵 걸어댔다.
"돈도 많을 텐데 복도라도 좀 수선하는 게 어떤가?"
"물어보고 싶은 게 제법 있었을 거야. 아마 궁금하겠지. 20년 전과 비교해 저택은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가. 다른 사용인들은 어디로 갔고, 저 기이한 외모의 집사는 누구인가. 내가 어떤 경위로 이 동상을 물려받게 되었는가. 내 십 년 연구는 대체 무엇인가."
말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아서의 태도에는 신물이 났지만, 하나씩 말하는 것들이 너무 흥미로운 것들이라 나는 불평조차 하지 못한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어째서 늙지 않았는가."
나는 두 가지 점에 놀랐다. 첫째는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자각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내 궁금증을 그토록 잘 이해하면서도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있던 그의 뻔뻔함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설명은 조금 뒤로 미뤄두자고.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이니까. 안 그래?"
나는 뒷모습밖에 볼 수 없었지만, 지금쯤 아서가 히죽거리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는 아무래도 뛰어난 변사였으니까 말이다. 모든 변사는 청자가 안달 날 수록 신이 나는 법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래, 모든 것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선친의 부고를 담은 편지였지."
그는 머나먼 과거를 회고하는 것처럼 독백했다.
하지만 나는 프랑크 백작의 첫 기일이 아직 지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선친이 타계한 후에, 초대한 적 없는 무례한 손님이 한 명 방문했지. 보험 조사원이었어. 그는 심지어 경찰이랑 변호사보다도 이틀이나 먼저 저택에 방문했지. 그는 선친의 죽음과 우리 가문의 재산에 하나라도 꼬투리 잡을 것이 있는지 꼼꼼히 조사했어. 새벽 벽두부터 가로등 심지가 꺼질 때까지, 내리 일주일을 그리했으니 그 정성이 보통 대단한 게 아니었지. 그래서 그가 결국 뭘 찾았을 거라 생각해?"
나는 한참 이야기가 흥미로워지자 어김없이 말을 끊는 아서의 화법에 심통 나서 비아냥거렸다.
"글쎄, 널 놀라게 하려면 여간 비싼 게 아니면 안될 텐데. 또 다른 상속권자라도 찾았나?"
"...."
아서는 잠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더니, 잠시 후 히스테릭하게 웃었다.
"내 쌍둥이 형이야. 정말 누구도 몰랐지. 이 저택에 그런 비밀 지하실이 있을 줄도,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학대당한 형이 있을 줄도 말이야. 대단해, 필로, 정말 대단해."
나는 발을 멈췄다. 아서는 조금 더 걷다가 따라 멈췄다. 그는 몸을 돌려 내 쪽으로 향했다.
"우리 가문은 저주받았어. 필로, 나는 저주받은 거야."
아서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마저 하지. 보다시피 선친의 광기와 아집은 우리 가문의 대들보부터 나사못 하나에까지 배어 있지. 그 저주의 근원을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내 소명이 된 거야. 운 좋게도 내 수중에는 선친이 남긴 막대한 재산이 있었고, 또 다행히도 요즘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지 않나? 나는 방법을 모색했지."
아서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더 느린 걸음이었기에 따라가기 힘들진 않았다.
믿기 어려웠지만, 나는 그가 나를 배려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일간지도 보나?"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실린 그 고약한 장난 말인가?"
"프랑크의 바보들이라 하더군. 마음에 들어.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마침내 내 마음에 드는 일을 해냈어."
뜬금없는 화제였다. 나는 아서의 눈치를 살폈다. 갑자기 그가 이런 화제를 꺼내는 의도는 뭘까.
아서를 모르는 자는 그가 아주 충동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보여주는 치밀한 면모는 결코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다운 장난은 아니었지."
"어째서?"
그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정답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유머가 없어."
나는 짧게 일축했다. 실제로 그랬다. 이건 아서 프랑크의 방식이 아니었다.
만약에 그가 이름난 명사들이 얼마나 무식한지 까발리고 싶었다면, 그들의 전문 분야에서 깔아뭉갰어야 했다. 가짜로 초대해놓고 문을 걸어 잠그는 건, 세살배기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억지에 불과했다.
"그러면 이 농담에 유머를 부여하려면 뭘 더해야 할까?"
유머를 더한다고?
나는 아서가 주는 이 골치 아픈 수수께끼를 풀어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프랑크의 바보들.
피해자들은 이번 소동을 유치한 장난으로 치부하고 아서를 욕보여 명예를 회복할 것이다.
그런 그들이 알게 되면, 세상에 알려지면 가장 수치스러울만한 것은 뭘까?
실제로 그들이 무지했다는 걸 까발리는 거겠지. 저택을 들어갈 방법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찾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고. 애초에 그들은 뭣 때문에 초대됐다고 했더라? 프랑크 가문이 주도하는 학술회?
"그거였군, 그거였어. 입구에서 그 바보 같은 장난마저 테스트였나?"
내 표정을 보고 대답을 짐작한 아서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바보라는 말이 좋아. 미지란 언제나 납득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 파헤쳐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신을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진짜 바보가 섞이면 곤란하지. 나도 나름대로 거름망을 만든 셈이지."
아서는 벽면의 촛대를 손으로 잡고 아래로 꺾었다.
아, 이런 동작, 고전 영화에서 꽤 많이 봤는데.
예를 들어서,
───달칵.
그래, 비밀 방이라던가.
하얀 벽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날 법한 좁은 길이 열렸다. 어두운 통로 너머로 따뜻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어서와, 필로. 프랑크 학술회는 실존해."
아서는 비밀을 고백하는 아이처럼 수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