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6화 (6/232)

§06. 1895년 5월 17일, 세 명의 손님

프랑크 저택에서의 소동 이후로 2달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요양 중에 있었다.

어느덧 완연한 봄이 된 런던 거리에서는 겨울 동안 잊고 있었던 매캐한 기름 냄새가 풍겼고, 나는 창문을 여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 정도가 내게 일어난 모든 변화였다.

"나가서 조금 걷는 게 어때요?"

마리는 점심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아, 청어 튀김이라. 끔찍하군.

"왕진 오신 의사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이제 조금씩 걸으면서 근육을 회복해야 한다고."

"날이 풀리면 좀 걷지."

나는 늘 하던 변명을 입에 담았다. 평소라면 이 정도로도 넘어갔을 마리였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는지 그녀는 커튼을 밀어내고 창문을 열었다.

"이봐."

"이대로 여름까지 누워 계실 게 아니면, 말씀하신 날은 진작에 풀렸답니다. 벌써 60도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59도겠지."

"그거나 그거나죠!"

"아니, 전혀 다르지. 앞자리가 다르지 않나."

나는 머리맡에 놓인 화씨온도계를 살피며 말했다. 지난 40년간 익숙해진 단위였지만 여전히 섭씨로 환산하지 않고는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섭씨로는 얼추 15도에서 16도.

벌써 그렇게 되었나?

매일 신문을 통해 날짜가 지나는 것을 보고 있었지만, 그날의 사건 이후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내가 두 달 동안 한 것이라고는 온종일 아편에 취한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저택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로, 더럽혀진 내 영혼은 여전히 그 미로 같은 저택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시간도 공간도 모든 것이 모호한 그곳에서 무수한 문을 여닫으며 떠돌고 있는 것이다.

"주인님, 주인님!"

나는 눈을 깜빡였다.

"선생님을 불러올까요?"

"아니, 괜찮아. 약이 독해서 말이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마리를 향해, 나는 매번 하는 변명을 입에 담았다.

"주인님은 약도 안 드시잖아요."

마리는 약통을 쳐다보며 말했다. 2주 전에 왕진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그 약은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약통과 마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무슨 시답잖은 변명으로 상황을 타개할지 궁리했다. 그 순간이었다.

───찌르르.

현관 쪽에서 들린 초인종 소리에 나와 마리의 고개가 꺾였다.

"손님이 오기로 했나?"

"아니요. 나가볼게요."

"아."

"문 말이죠. 닫아놓을게요."

마리는 내 말을 끊고 문을 닫고 나갔다. 어중간하게 말이 끊긴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을 홀짝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웅성거리며 들려왔다.

잠시 후,

───덜컥.

"이런, 식사 중이었나?"

"아니요, 딱 좋습니다. 입맛이 없었는데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군요."

나는 한 입도 먹지 않은 청어 튀김이 담긴 접시를 밀어내며 말했다.

"하하, 나도 자네 같았으면 좋겠군. 그러면 뱃살도 쉽게 빠질 텐데."

문을 열고 나타난 남자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귀족이라면 하지 않을 언동이었다. 실제로 그는 귀족이 아니었지만, 그 사실로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런던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얼굴에 기름이 흐르는 초로의 남성이었다. 날씨를 생각하면 조금 버거울 정도로 요란한 양복과, 손가락에 끼워진 보석 반지 3개, 앞니가 있을 자리에 채워진 금니 등, 어딜 봐도 부티가 흐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과장스러울 정도로 부유한 모습이 겉치레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자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첫 번째는 아서였지만 말이다.

휘트니 리치먼드, 소위 노란 외벽 회사라 불리는 리치먼드 사의 창업자이자 런던 굴지의 사업가가 바로 그였다.

"그나저나 평소엔 달관한 서생처럼 굴더니만, 자네도 아직 젊더군그래. 아편이라도 했나?"

"무슨 말씀입니까?"

리치먼드가 실실 웃으며 말하자, 나는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아편이라는 단어를 듣자, 저택의 사건이 직전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거 말이네, 그거. 바지를 벗고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지 그래?"

리치먼드는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주제였기에 나는 급하게 손사래 쳤다.

"오해가 조금 있습니다."

"겸양 떨지 않아도 좋아. 나는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으니까."

"정말로 큰 오해가 있습니다."

아무리 더 이야기해봤자 오해가 풀릴 것 같진 않았기에, 나는 급하게 주제를 돌렸다.

"약속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좋은 일 아닌가. 진짜 돈 되는 일이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라네. 그때마다 형식이나 규제에 발목 잡히는 멍청이는 한 푼도 챙기지 못하겠지만."

미국인(Yankee), 그는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

이 성공한 중년 기업인은 화려한 성공 경력만큼 짙고 어두운 그림자를 발치에 끌고 다녔다. 런던 내 누구보다 시기와 질투를 받는 인물이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악평은 허황되게 느껴질 정도로 과장되고 있었다.

소문 속 리치먼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런던 시장과 청탁 관계로 잡혀가지 않는, 그야말로 그린 듯한 악덕 기업인의 표본이었다.

그 모든 소문을 믿건 믿지 않건, 그가 공공연히 몇 가지 소소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번에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그러네. 운석 채굴권으로 시비가 붙었어. 그 건에 자네의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지."

"운석 채굴권이란 게 뭡니까?"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희한한 표현이었다.

"그래, 아무리 틀어박혀 사는 자네라도 런던에 운석이 떨어진 건 알고 있겠지?"

"네, 들었습니다. 제이콥 섬이었다죠."

제이콥 섬.

런던의 동부, 템스 강 하류에 위치한 이 작은 섬과 인근은 산업화의 역풍을 가장 강하게 맞은 동네였다. 공장과 가정에서 쏟아져 나온 오물은 강물을 타고 와, 이 작은 섬 전역을 뒤덮었고 땅과 건물은 썩고 버려졌다. 섬에는 온갖 해충이 들끓었고, 사시사철 어디서나 시체 썩은 냄새가 풍겼다.

런던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이 이 기피 지역에 살았다. 창부, 노숙자, 범죄자... 도시에서 소외된 이들은 떠밀려 온 기름투성이 생선을 먹으며 살았고, 런던 시는 이 지역의 관리를 포기했다. 대신 경찰을 보내 이들이 런던으로 다시 기어나오지 못하게 통제했다.

그런 런던 최악의 동네, 제이콥 섬의 한가운데에 운석이 떨어진 것은 이틀 전 새벽, 폭풍우가 치던 날이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지만, 제이콥 섬 전역의 개발권은 공식적으로 우리 리치먼드 사에 있다네."

나는 공식과 비밀이라는 표현을 함께 쓸 수 있는 리치먼드의 언어 구사에 감탄했다.

"그랬습니까?"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거든."

들은 적 없는 사실에 되묻자, 그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러니까 거기 떨어진 운석도 공식적으론 우리 회사 소유지."

"음... 계속하시죠."

논리의 비약이었다. 나는 판단을 보류하며 추임새를 넣어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 자식이 소송을 제기한 거야."

"그 자식이 누구죠?"

"누구겠나, 에식스의 이빨 빠진 늑대 새끼지!"

잠깐 생각하던 나는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은랑백(Silver Wolf) 말이군요."

"그 늙은이가 말하길, 운석이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 일주일도 더 됐을 테고, 일주일 전에는 섬이 자기네 소유

였으니 운석은 자신의 것이라더군. 그 노인, 치매라도 걸린 것 아닌가?"

리치먼드는 아직도 분이 식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며 말했다.

"법률문제라면 회사에 자문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저보다 나을 텐데요."

"아, 그래, 그 식충이 놈들도 문제야. 판례가 없다면서 하나같이 사리지 뭔가? 그따위니까 놈들이 그것밖에 못 하는 거야. 내가 사업을 위해 모레턴 전체를 사들였을 때, 전례가 있었나? 아니, 나는 언제나 처음이었고, 선두였어! 영국인이란 자고로 미지를 개척해야지!"

사실 이토록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리치먼드는 영국 기준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나는 문득 그가 그런 면에서는 아서와 닮았다고 느꼈다. 어쩌면 감정에 솔직한 것이 재산을 불리는 데 무슨 영향을 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네는 그런 풋내기들과 아예 다르지. 이런 돌발 상황에는 프로가 아닌가?"

"남들보다 삶의 굴곡이 조금 많긴 했죠. 하지만 프로라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난색을 표하며 부정했다. 노력해서 나름 평범히 살았다고 자부하건만, 돌발 상황의 프로라니 터무니없었다. 리치먼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내 조건은 하나뿐일세. 재판 일 전까지 뭐가 됐건, 나한테 유리한 증거를 가져다주게.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우리 회사에 적당한 자리를 하나 마련해 보겠네. 자네도 고정 수입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가."

여느 때와 같았다면 나는 그 제안을 거부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기가 안 좋았다.

프랑크 저택에서 *그것*을 보고, 두 달도 되지 않아 빛나는 운석이라는 불길하기 짝에 없는 것이 내 인생에 나타난 것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절묘했다.

그럼에도 그 제안은 구미가 당겼다. 사실 나는 금전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군인 연금은 런던 생활비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2달간 은둔 생활을 하는 탓에 그것을 메꿔주던 강연비나 소소하게 투고해온 칼럼 원고료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모아둔 저금은 제법 있었지만, 인생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한 저금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깐 고민한 끝에 긍정이나 부정 대신 소극적인 대답을 돌려줬다.

"뭔가 찾아내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시죠."

"완벽하군."

리치먼드는 자랑스럽게 금니를 내비치며 웃었다.

...잠시 후, 리치먼드가 떠난 실내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런던 거리의 소음이 멀게 느껴질 무렵, 나는 옆에 치워뒀던 청어 튀김을 돌아봤다. 딱딱하게 굳은 튀김의 표면엔 기름이 굳어 있어 아까 전보다도 훨씬 식욕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대체 왜 영국 요리사는 튀기는 것 말고 생각을 못하는 거지?

나는 무식할 정도로 일관적인 영국의 조리법에 불평하며 접시를 다시 허벅지 위로 올려놨다. 리치먼드와 대화 도중 정신 차린 나는 지난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는 걸 떠올렸다.

이래서야 마리가 걱정할만도 했다.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잡았다.

그 순간,

───찌르르.

초인종 소리에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다시 접시를 옆쪽으로 치워놨다.

리치먼드씨가 뭘 두고 갔나?

나는 침대에 앉은 채로 바닥과 옷걸이 쪽을 살폈지만, 그런 고급스러운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덜컥.

"주인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누구지? 일단 들여보네."

현관문이 열리고, 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나는 방문객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시간을 잘못 잡았나?"

"...아니요, 딱 좋습니다. 입맛이 없었는데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군요."

살갗이 베인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노인이었다. 절도 있게 뻗은 하얀 콧수염은 그야말로 영국 신사의 표본이었고, 일흔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깨는 각지고 허리고 꼿꼿했다.

"그런가."

나는 그 담백한 한 마디에 어깨를 움츠렸다. 누구라도 저 눈앞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은랑백. 왕가를 맴도는 흰 늑대.

필 에식스 백작은 차가운 눈으로 내 방을 살짝 훑었다. 나는 숙제를 검사받는 학생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남작 부인께서는 무고하신가?"

잠시 후, 에식스 백작은 적막을 깨고 상투적인 인사치레를 말했다.

물론, 나는 결혼하긴커녕, 평생 연애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여기서 남작 부인이 내 아내를 뜻하는 게 아니란 건 나도 그도 알았다.

"어머니께서는 별 탈 없이 지내고 계십니다."

"기쁜 소식이군."

나는 그것이 완전히 의미 없는 인사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에식스 백작은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의 오랜 지인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소개를 통해 에식스 백작과 몇 번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귀족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아버지가 에식스 백작과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 그가 귀족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소박하면서 기품을 잃지 않은 옷차림이나, 단정한 외모와 절도 있는 동작, 자신감 넘치는 태도, 그야말로 모든 것이 귀족적이었다.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는 아버지와 마지막까지 교류한 귀족이니, 그의 인사를 그저 그런 예의상 한 마디로 치부하는 건 지나치게 무례한 생각일 터였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버지의 장례식이었으니,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때까진 아슬아슬하게 중년이라 부를 수 있었지만, 지금 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키는 더 작아졌고, 머리 색은 하얗고 숱도 적었다. 하지만 그 눈매만은 내 기억 속보다도 날카롭게 예기를 띄고 있었다.

"허버트 남작께서는 재산은 잃었지만 존엄을 잃는 일은 없었다."

에식스 백작은 영문 모를 화제를 꺼냈다. 그는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반면 자네는 돈도 명성도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더군. 어느 경망스러운 귀족 자제가 추태를 보였나 했더니, 신문에 자네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지."

나는 그제야 에식스 백작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깨달았다. 그저 작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나 정도의 인물이 바지를 벗고 런던을 달린 이야기가 런던 최고의 사업가와 명망 높은 백작의 귀까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선친의 이름에 맹세코 추문이 퍼지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에식스 백작의 차가운 눈초리에 내 허리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절로 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친의 친우로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네."

감정이 절제된 영국 귀족의 전형인 에식스 백작이 설마 나를 걱정하는 말을 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그를 쳐다봤다. 표정은 여전히 냉담하기 짝에 없어서, 나는 무심코 내가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대등한 사업 얘기니 정으로 말하진 않겠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와 닿진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선을 긋는 듯했다. 나 역시 굳이 사양하지 않고, 내가 가진 패를 미련없이 꺼내놓았다.

"운석 건이군요."

에식스 백작은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알고 있다면 부연 설명은 삼가지. 나는 현재 복잡한 소송 상황에 놓여 있네. 상대는 돈밖에 모르는 양키놈이지."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에식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석이 떨어진 장소는 알고 있는가?"

"제이콥 섬이죠."

"그래, 그리고 그 섬을 우리 가문이 지난 200년간 다스려온 사실도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문의 선조, 모리스 에식스 백작께서 당대 국왕이셨던 찰스 2세 폐하께 제이콥 섬을 수여받은 이래 우리는 그 땅을 질서로 다스렸네."

책 속에서만 들어본 과거의 인물이라 생각했던 전 국왕의 이름이 나오자, 과연 귀족의 일이라는 체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야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런던 최악의 빈민가가 질서로 다스려졌다라....

"그런데 어제 그자가 나타났네. 리치먼드의 장사꾼 놈 말이네. 쓰레기에 벌레가 꼬이듯, 그자는 운석이 떨어진 장소에 쥐새끼처럼 솟아났지. 그리고 누구 하나 속이지 못할 법한 조잡한 위조문서로 운석의 소유권을 주장하더군. 가장 놀라운 점은 런던 법원이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거지."

에식스 백작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드문드문 그답지 않은 분노를 표현했다. 그가 이번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쉬이 짐작 가는 대목이었다.

"이런 종류의 법적 분쟁에 자네의 입김이 제법 강하다고 들었네."

"금시초문이군요."

오늘 그런 소리만 벌써 두 번째였다. 평생을 성실히 살았다고 믿었는데, 이런 괴팍한 사건에 연이어 찾아오는 손님에 나는 내 일생을 의심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뭐가 됐건, 재판에서 그 사기꾼의 낯짝을 까발릴 증거를 부탁하네. 듣자하니, 외부 강사 일을 하고 있다던데,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자네를 정교수로 추천하는 추천장을 써주겠네."

그건 정말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에식스 가문의 은랑백 정도 되는 사람의 추천장이라면 어느 대학에서도 가볍게 여기지 않을 터였다.

나는 문득 물었다.

"운석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설령 하늘에서 순금이 떨어졌다고 해도, 그건 결코 중요하지 않지."

에식스 백작은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는 듯이 천천히 말했다.

"중요한 건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사실 하나뿐이네."

그는 짧으면서도 격식 있는 인사를 마치고 방을 떠났다.

...리치먼드에 은랑백, 10년에 한 번씩 맞기도 힘든 손님을 연이어 맞이한 탓인지, 나는 묘한 탈력감에 침대에 쓰러지듯 기댔다. 내 고개 옆으로는 차갑게 식고 퍼석퍼석하게 굳은 청어 튀김이 놓여있었다.

마리를 불러서 다시 데워달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모든 것이 귀찮아져 그냥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찌르르.

"젠장!"

나는 무심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나는 접시를 다시 옆으로 치웠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지난 2개월 동안 병문안으로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그깟 운석 한 번 떨어졌다고 이렇게 손님이 들이닥칠 수가 있다니.

───덜컥.

"주인님."

"누구든 좋으니 들어오라고 해! 이것 좀 가져가서 데워오고!"

나는 무고한 마리에게 화풀이를 하며, 청어 튀김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엔 얼마나 대단한 손님이 방문했는지 보자는 심정에 문쪽을 노려봤다.

잠시 후, 방문이 다시 열리고, 대망의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제가 방해했나요? 저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불만 한 마디 나오지 않았다.

런던에서 내로라하는 부르주아, 저명한 백작 나리와 비교하면 세 번째 방문객은 초라하기 짝에 없었다.

하지만 진정 역사에 남을 이는 누구도 아닌 눈앞의 여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퀴리 부인, 오늘은 어떤 일로?"

"혹시 런던에 떨어진 운석에 대해 들으셨나요?"

나는 오늘의 세 번째 질문에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