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7화 (7/232)

§07. 신비하게 빛나는 녹색 운석

같은 날 오후, 우리는 템스 강 유역을 걷고 있었다.

우리라는 표현에서 알았겠지만, 나 혼자가 아니었다. 퀴리 부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내 바로 옆에 붙어서 따르고 있었다. 사실 저번에도 그런 면모가 얼핏 보였지만, 그녀의 이런 소극적인 면모는 나로선 의외였다.

전생의 역사서나 위인전에서 본 기록을 통해, 자연스럽게 더 당당하고 여장부다운 스타일을 상상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그런 강직한 면모들이 형성된 것은 당대의 차별과 불운한 상황들이 만들어낸 후천적인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녀에게도 풋풋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위인은 없구나.

나는 역사의 숨겨진 이면을 엿본 기분으로 홀로 감탄했다.

그런 퀴리 부인이 지금 뭘 하고 있느냐면,

"우웁...."

내 옆에서 헛구역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괜찮나?"

"네, 네에... 견딜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벌써 방사능 부작용이 나타난 것인가 놀랐지만,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곧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런던 템스 강 자체에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몇 번이나 강조한 바이지만,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다.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 강은 그 오염의 정수로, 템스 강 주변에 지어진 건물은 그 악취로 창문조차 열지 못했다. 「프린세스 앨리스호 침몰 사건」 당시 구조된 승객 130명이 강물을 마셔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 17년 전에 불과했다.

당연히 외국인인 퀴리에게 너무 생소한 환경인 것이었다. 아니, 생소하다기보다는 역겹다고 할까. 런던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도시는 이렇지 않나 보군?"

그렇지만 이 정도로 호들갑 떨 정도인가. 약간 서운해진 나는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파리는 조금... 그렇지만 제 고국에는 이런 게 없어서요...."

퀴리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 대답에 나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과연, 파리는 조금인가. 그래, 피차 산업 국가의 수도인데, 프랑스도 크게 다를 리 없지.

애초에 퀴리 부인이 비참한 말년을 보내는 이유는 프랑스의 편협함 때문이었다. 영국이었다면 그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고국이라면 바르샤바, 폴란드인가. 아름다운 도시라 들었지."

사실 이 시대에 폴란드라는 나라는 없었다. 유럽의 3대 열강인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이 이 가련한 나라를 셋으로 쪼개 분할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폴란드의 국민 정체성은 희석되지 않았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리 퀴리 같은 애국자를 배출하고 있었다. 그녀의 유별난 애국심은 그녀가 처음 발견한 원소에 지은 이름이 폴로늄이란 것만으로도 엿볼 수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내 대답에 퀴리는 창백한 안색 그대로 반색하며 답했다.

"맞아요, 400년 역사의 자랑스러운 도시죠."

두 애국자는 서로 프랑스와 러시아 제국을 욕보인 것만으로 즐거워 마주 보며 웃었다.

어느 샌가 역사 속 위인을 상대하고 있다는 감정은 희석되고, 딱 그 나이에 맞는 장래 유망한 연구자와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 번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런던에서 저 같은 외국인은 환영받지 않아서요."

"열정적인 학자를 돕는 건 언제나 큰 기쁨이지. 그렇잖아도 제이콥 섬에는 볼일이 있었으니 말이야."

"아까 말씀하셨던 조사 건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행하게 된 퀴리에게는 미리 내 조사에 대해 상세히 전했다.

"아까는 미처 묻지 못했지만, 자네야말로 날 선택한 이유가 뭔가?"

"학자로서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부족할까요?"

"영광이네만, 설명으로는 부족한 편이지."

사실 퀴리가 내게 의탁한 것은 꽤 의아한 일이었다. 그녀와 내가 만난 것은 2달 전 프랑크 저택 지하에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조차도 좋은 인상을 준 적은 없었다.

반면 그녀는 학술회의 정회원으로, 아서가 주장하는 한 최고의 지성인들만 모였다는 학술회에 그녀의 연구를 도울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할 순 없었다. 적어도 아서 본인이라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가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발을 뺄 리가 없는데.

"사실, 회장님과 박사님의 관계를 모르는 만큼, 가급적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부담 없이 말하게."

사실 아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따끔거렸다. 기억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함께 상기된 탓이었다. 그런 한편, 그의 근황에는 적잖은 흥미가 있었다. 그런 모순된 감정이 내 안에 혼재했다.

"프랑크 학술회는 마비됐습니다."

"뭐?"

"그날 이후, 회장님은 하루종일 기분이 나빠 보이셨어요. 누구하고도 대화하지 않고, 방에서 나오는 일도 줄어드셨죠. 그러다 한 달 전쯤에 아무 통보도 없이 저택을 폐쇄하셨어요."

퀴리의 담담한 고백에 나는 충격받았다. 아서 같은 독불장군이 내 일탈에 그토록 격하게 반응했다는 것도 그렇고, 그의 무책임한 태도 그 자체에도 크게 놀랐다.

"다른 회원들도 있지 않나?"

"아... 그게 말이죠."

내 질문에 퀴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프랑크 학술회는 어디까지나 회장님의 개인 학술회예요. 회원 선정도 그분 마음대로 하시죠. 그런 만큼... 어...."

"괴짜들만 있겠군."

"...그런 편이죠. 다들 학술회로만 연결된 사이다 보니, 저택이 폐쇄되니 연락할 수단이 없더라고요. 다들 런던 어딘가에서 각자의 연구를 하며 저택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겠죠. 회장님에게 받은 생활비가 남은 만큼 저도 그럴 생각이었고요."

퀴리는 고개를 휙 들었다.

"하지만 이번 운석에 대해 들었을 때만큼은 참을 수 없었어요. 동상 기억하시나요?"

"그 두족류 머리를 가진 동상 말이군."

나는 크툴루의 형상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그것*을 본 이후론 크툴루 동상 역시 끔찍하게 부정하게 여겨져 기억하기조차 꺼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오른 게 있었죠. 아니, 사실 처음부터 그 가능성밖에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아는 한, 이런 야광 속성을 가진 원소는 많지 않죠."

"우라늄 말이군."

"맞아요. 하지만 우라늄은 자연 상태에서는 빛나지 않죠. 하지만 그런 게 있다면요?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그런 원소의 존재에 대해 느끼고 있었어요. 남은 것은 검출법의 연구와 증명이죠."

나는 그녀가 암시하는 것의 정체를 알았다.

라듐.

그 원소의 발견은 퀴리 부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였다. 그녀가 10톤의 우라니나이트에서 10g의 라듐을 추출해내는 것은 3년 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그 존재를 눈치챈 것은 물론, 그 속성마저 이해하고 있었다. 역사의 흐름을 생각하면 너무 빠른 발견이었다.

"혹시 이 모든 야광 광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방사능 말이군."

내 대답에 퀴리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학에도 소질이 있으신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지식의 출처는 어디까지나 전생의 기억이다. 21세기 기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개념인 방사능의 원리에 대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퀴리 부인 같은 전문가 앞에서 아는 척하는 대신 솔직히 말했다.

"베크렐 교수의 연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지."

"그렇다면 베크렐선에 대해서도 알겠군요."

베크렐이 베크렐선, 그러니까 방사선의 발견을 발표하는 것은 1년 뒤의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너무 빨랐다.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모든 과학적 발견이 앞당겨지고 있었다.

오라클.

나는 증기를 먹는 그 강철 괴물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100년 일찍 나온 컴퓨터의 소행인가? 아니면 어떤 존재의 암약인가? 나는 애써 불길한 상상을 멈추고 태연한 척 대답했다.

"그래."

"저는 운석에서 나오는 베크렐선의 강도를 측정할 생각이에요. 이번 조사는 제 연구를 크게 앞당겨줄 거예요."

퀴리는 잠시 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니면, 아예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던가요."

그녀의 불안은 지당했다.

가설에 불과하지만, 만약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거대한 라듐 덩어리라면? 그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자, 훗날 지지기반이 되어줄 라듐의 발견이 하늘이 내린 기적으로 치부되며 그대로 사라질 상황이었다.

비록 미래를 모르는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하더라도, 연 단위 지속해온 연구가 이번 운석으로 없던 것이 될 상황이니, 남이나 다름없는 나를 수소문 해서 찾아온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반대로 생각하게. 자네는 행운아야. 만약 운석이 그토록 값진 것이라면, 세상의 그 어느 학자보다 먼저 조사해볼 기회를 받은 거니까. 자네는 젊어. 나랑은 다르게 말이야."

미래를 아는 나였기에, 나는 퀴리를 위로할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그녀 정도 천재라면 하늘에서 라듐 덩어리가 날아온 걸로 더 대단한 연구를 하게 될지.

"베크렐 교수님이 방금 그 얘기를 들으셨으면 방방 뛰셨을걸요. 자긴 아직도 젊다고."

"마흔이 넘으셨나?"

"올해로 마흔한 살이세요."

퀴리와 나는 잠깐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악취는 점점 심해졌다. 나는 악명 높은 제이콥 섬이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했다. 평생을 런던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장소였다. 악취는 그 이유가 아니었지만, 이유로 더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잠깐."

그늘 속에 앉아 있던 두 명의 경관이 일어나 우리 둘을 가로막았다.

"그 여자는 창녀입니까?"

경찰봉을 뽑아든 경관은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나는 무심코 반문했다. 퀴리는 그런 저속한 영단어까지는 익히지 못했는지,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경관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여자가 창녀인지 물었습니다."

"세상에, 뭐가 문제인가. 자네들이 정녕 여왕 폐하에 충성하는 영국인 경찰이 맞나?"

갑작스러운 무례한 질문에 나는 노성을 간신히 억누르며 물었다. 표정이 얼굴에 쉽게 드러나는 타입이었다면, 지금쯤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을 것이다.

"어딜 가는지 몰라도, 이 앞은 중년 장애인과 외국인 여자 둘이서 들어갈 만한 장소가 아닙니다."

"여긴 영국이고, 나는 나의 여왕께서 허락하는 한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네."

두 경관은 서로 마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우리는 경고하는 겁니다. 설령 로열 패밀리라고 해도 이 뒤에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경관은 경관 봉을 제 뒤쪽으로 흔들었다. 고작 몇 미터로 그곳은 런던과 다른 장소가 되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오물과 쥐의 주검만으로 그 장소의 악명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여긴 제이콥 섬입니다."

런던 최악의 빈민가. 템스 강의 모든 해충이 모여 사는 섬.

그럼에도 내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내 몸 하나 간수 못 할 사람으로 보이나?"

두 경관은 내 말에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이봐요, 선생님. 귀족인지, 부자인지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몰라도 그런 건 안 통합니다."

나는 코트 속에 언제나 차고 다니는 빅토리아 훈장을 뜯어 앞으로 내밀었다.

"다시 묻지. 내가 내 몸 하나 간수 못 할 사람으로 보이나?"

두 경관은 가늘게 뜬 눈으로 훈장을 살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경관모를 푹 눌러쓰며 고개를 돌렸다. 의미는 명백했다.

"실례했습니다. 지나가십시오."

"흥!"

나는 일부러 크게 콧방귀 뀌며 턱을 치켜세우며 그 자리를 지나갔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운석이 떨어진 이후로, 제이콥 섬은 정말로 이상한 곳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순간, 경관 한 명이 내게 속삭였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물으려 했으나, 두 경관은 이미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굳이 길을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게 뭔가요? 그 런던 경찰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넘어가다니."

퀴리는 감탄하며 물었다.

"군 훈장이네. 이거랑 바꿨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훈장을 다시 양복 위에 채우며, 지팡이로 의족을 툭 쳤다.

"아, 죄송해요."

"신경 쓰지 않아도 좋네."

21세기 감각으로 보면, 참 어리석은 일이다. 군대에 자원입대도 모자라, 거기서 다리를 날려 먹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나 역시 내 처지를 한탄하고 원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21세기 감각으로 보나, 19세기 감각으로 보나 말이다.

어쨌거나 경관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작 몇 걸음 만에 이토록 다른 공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참을 만한가?"

"네... 코가 마비된 덕분에요."

제이콥 섬.

그렇게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 시민들이 부르는 그 이름은 섬 그 자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제이콥 섬과 그 인근 오염 구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빈민굴이었다. 평소 나는 그 구분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와보니 그 구분은 명백했다.

냄새였다. 냄새가 공간을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건...."

나는 인상을 팍 썼다.

연소된 건물 잿더미 위로 새까맣게 탄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뿐만 아니라 그 수는 수십에 달했다. 내 시선 방향으로 고개를 꺾은 퀴리는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결국 토했다. 나 역시 군에서 익숙해지지 못했다면 토했을지 몰랐다.

"분명 기사에는 작은 화재로 인한 소동이라 적혀 있었는데 말이지."

나는 이 참상을 작은 소동으로 격하시킬 수 있는 기자들에게 혐오감마저 품었다.

운석이 떨어진 날, 제이콥 섬은 불길에 뒤덮였다.

운석이 떨어진 충격에 의한 화재인지, 또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불길은 폐유로 뒤덮인 섬 전체를 삽시간에 집어삼켰고, 비가 온 다음 날 저녁까지 꺼지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수용되어 살던 부랑자들은 도망치지 못한 채, 화마에 삼켜지고 만 것이다. 이런 건물이 제이콥 섬에는 수십 채나 더 있었다.

이것이 19세기 런던의 실체였다.

나는 이 현실을 알았기에 필사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여기 있는 소사체 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빈민굴 속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졌다. 가득한 것은 시체뿐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독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나한테 붙게."

"네?"

나는 그 기시감의 정체를 눈치채자마자 퀴리에게 붙었다.

"절대 떨어지지 말고 붙어있게."

그리고 거듭 강조해 당부했다.

처음에는 시체를 잔뜩 본 탓에 떠올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이 통할 상황이 아니었다. 경관의 말을 옳았다. 상황은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쫓기고 있네. 아마추어야. 하지만 몇 명인지 모르겠군."

나는 이 감각을 전장에서 느꼈다.

내가 다리를 잃었던 그 순간, 사방에서 살의를 띈 적군이 거리를 좁혀오던 그 순간.

"아주 많아."

나는 품속의 훈장을 꾹 움켜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