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제이콥 섬
그 후로 나는 열병에 시달렸다. 체온은 화씨 100도(*섭씨 38도)를 넘나들었고, 심한 구토감에 죽조차 삼키지 못하고 토해냈다. 마리는 따뜻한 물을 수건에 적셔 입가에 한 방울씩 짜서 흘려주었는데, 그런 보람도 없이 밤새 식은땀을 흘려 결국은 탈수증이 찾아왔다.
죽음에 있어서 나는 사랑하는 소녀나 마찬가지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스틱스 강의 목전에서 산만하게 왕복하던 나는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고열로 앓아 누운 지 2주 만의 회복이었다.
내가 일어나 멀쩡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목격한 마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울며 내게 매달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세상에,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죽을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과장이 심하군."
"주인님이 며칠 누워있는지 모르셔서 그래요!"
열병에 시달리는 동안 의식이 혼미했던 탓에 나는 며칠이나 누워 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마리의 얼굴이 반쪽이 된 것을 봐서는 하루 이틀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물었다.
마리는 말을 더듬으며 그간의 고생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왕진 의사는 내일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세 번 번복했으며, 변호사가 찾아와 내가 12년 전에 썼던 유서를 확인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가족 중에서는 둘째 형만 찾아왔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중국 도자기에 심은 하얀 난초를 가지고 왔다.
마리는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나를 돌봤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런던에서 그녀처럼 훌륭한 가정부를 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참,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녀는 1주일 전쯤의 어느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운석이 떨어진 날처럼 세찬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빗소리가 들려, 혹시 내 방에 창문을 열어뒀나 확인하러 문을 연 마리는 기괴한 광경과 마주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는 비바람을 맨몸으로 받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밤하늘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시끄럽게 외쳤고, 그때마다 물안개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가 대답하듯 뱃고동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공포에 젖은 마리는 문을 닫고 도망치려 했으나, 미쳐 버린 내가 평생 비바람이나 맞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방 안에 들어와 억지로 창문을 닫았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녀의 충성심에 감탄했다.)
더욱 이상한 일은 다음 순간에 일어났다.
창문이 닫히자 내 몸이 실 풀린 마리오네트처럼 힘없이 늘어지더니, 애써 책상에 앉고는 그녀에게 펜과 노트를 요구한 것이다. 마리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며, 묽은 스프를 데워 함께 대령했다. 하지만 나는 식사에 입조차 대지 않고 무언가를 미친 듯이 기입했다는 것이다.
"그건 불가능해."
나는 단언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밤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었고, 그 밤으로부터 다음 날도, 다음다음 날도 고열로 앓으며 움직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정말이라니까요! 이걸 보세요!"
그녀는 억울해하며 내가 적었다고 주장하는 노트를 내게 건넸다. 노트의 표지에는 이런 제목이 적혀 있었다.
「흑천복음(The Gospel of Blackriver)」
그것은 분명 내 필적이거나, 누군가 내 저서를 보고 교묘하게 본뜬 글씨체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조차 구분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뭐라 적혀 있지? 읽어봤나?"
"아니요. 아무래도 불길하게 느껴져서...."
나는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내 노트를 뒤져보지 않기로 한 마리의 충직함에 감사했다. 그것은 서장부터 내가 믿고 있는 유일한 신에 대한 모독과 저주를 은밀한 태도로 고백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숨겨온 내 본심인 것마냥 말이다.
또한, 양을 살아 있는 채로 해체하여 제물로 바치는 과정에 대해 11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묘사했으며, 그에 관련된 3가지 주문의 양식과 절차가 쓰여 있었다. 다음 15페이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외설스러운 산문이 내 경험담처럼 쓰여 있었다.
페이지의 1/3은 매번 식은땀으로 젖어 있어 번진 잉크 때문에 알아볼 수 없었고, 뒤로 갈수록 흘린 피가 늘어났다. 내 손에 수없이 난 자상의 원인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잉크 촉으로 자해한 것이었다.
이 얇은 노트의 광기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피로 쓰인 문자는 내가 제이콥 섬에서 보고 들은 것들, 그 흉물스러운 존재들이 입에 담았던 모든 말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내 기억이 끊긴 시점부터는 끝도 없이 괴물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적혀 있었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그것이 그들의 기도문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이 불경스러운 일지는 누구도 읽어서는 안 된다.
"방금 그 얘기, 누구에게도 하지 말도록."
나는 서랍을 뒤져 체인과 작은 책 상자를 찾아내고, 마리가 보는 앞에서 노트를 상자 안에 넣고 체인을 걸어 잠갔다. 상자는 내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열어볼 수 없을 것이며, 훗날 변호사를 불러 내가 죽은 후에는 함께 소각하도록 유서를 고쳐 쓸 것이다.
"그게 뭐길래 그런가요?"
마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안구 표면에는 그녀가 본 폭풍우 치는 밤의 광기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속여 안심시킬지, 어느 정도 사실을 공유할지 고민했다.
"내 개인적인 치부일세. 어쩌다 이런 것을 적었는지 모르겠군."
이것은 누군가와 공유해서는 안 되는 지식이었다. 특히나 그녀는 충직함의 대가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바로 무지라는 축복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군인 시절 품었던 자부심의 정체를 이해했다. 나는 그녀와 같은 무고하고 선한 자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해야 하는 일은 여느 때보다 선명해졌다.
어설픈 변명이었지만 마리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수은 체온계를 내 몸에 가져다 댔다.
"나는 멀쩡해."
"그래도 열이 내려야 확실히 낫는 법이에요."
마리는 체온계 눈금을 읽어 나갔다.
"화씨 95도? 몸이 얼음장 같으시네요."
"줘보게, 고장 난 거 아닌가?"
다시 체온을 재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섭씨로 따지면 35도 언저리로, 정상과는 거리가 먼 체온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 나는 체온계가 고장 났다고 판단했다.
"한동안 집에서 요양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일이 잔뜩 밀렸네. 오늘이 며칠이지?"
"5월 31일이네요."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31일? 확실한가?"
"네. 왜 그러시나요?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으신가요?"
나는 옷걸이에 있는 코트를 급하게 껴 입었다. 마리는 얇은 손으로 바지에 말려들어간 코트 끝을 꺼내줬다.
"오늘이 바로 리치먼드와 은랑백의 공판일이네."
재판이 끝나면 진실을 밝혀낼 기회가 영영 사라진다. 운석은 은랑백과 리치먼드, 둘 중 하나의 손으로 넘어가고, 섬은 두 사람의 계획에 따라 이전과 전혀 다른 것이 될 터였다. 퀴리 부인을 구할 기회 역시 영영 사라질 것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다.
"나가실 거면 꼭 우산을 가지고 가세요."
그런 나를 보며 마리가 당부했다.
"비가 아주 많이 오거든요."
창밖에는 거센 비바람이 불어치고 있었다. 운석이 떨어진 날과 똑같았다.
늦은 아침.
나는 은랑백의 집무실에 있었다. 모든 것이 가지런히 정돈되었으며, 무엇하나 쓸모를 하지 못하는 물건이 없는, 그야말로 주인의 성품이 엿보이는 검소한 집무실이었다.
은랑백은 글라스의 반을 채운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
"조식과 석식 이후, 글라스의 1/3 정도 레드 와인을 따르고 거기에 식초 두 스푼. 그렇게 위를 씻어주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지."
그는 입을 열지도 않았으면서, 콧수염도 적시지 않고 잔을 비웠다.
"강물에 빠져 열병에 걸렸다고 들었네."
"운이 나빴습니다."
"아니, 운이 좋았다고 봐야지. 템스 강에 빠지고도 목숨을 건졌으니 말이야."
잔을 옆으로 치운 은랑백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가 없는 나만큼이나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창가를 바라보며 중얼였다.
"허버트 남작도 젊을 적에 템스 강에 빠진 적이 있는 걸 아는가?"
"몰랐습니다."
"그렇겠지. 득남하더니 뻔뻔한 얼굴로 엄격한 아버지 행세를 했거든."
나는 그가 그런 얘기를 하는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업무를 다루는데 사사롭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백작이 친구의 아들을 눈앞에 뒀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두가 길었군. 그래서, 그 골프 가방은 이번 건과 관계가 있나?"
은랑백은 내 쪽으로 고개만 돌려 쳐다보며 물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등에 골프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한참 영국에서 인기를 끄는 스포츠였지만, 물론 나는 왼다리 때문에 제대로 골프를 쳐본 적이 없었다. 안에 있는 것이 골프채는 더더욱 아니었다.
스나이더 엔필드 소총.
가방 안에 든 낡은 소총을 꺼냈다. 제대 이후로도 애착을 가지고 꾸준히 정비했지만, 아무래도 세월을 이겨낼 수는 없었는지 나만큼 늙은 총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총알 정도는 내보낼 줄 알았다.
나는 총구를 돌려 은랑백을 겨냥했다.
"무슨 장난인가?"
"장난도 뭣도 아닙니다. 백작님께서는 무고를 증명해주셔야 할 겁니다."
"자네, 미쳤나!"
그렇다, 나는 미쳤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일로, 지독한 열병에 시달려 광기 어린 글을 쓰기 이전에, 제이콥 섬에서 어인과 마주하기 이전에, 프랑크 저택의 잔혹한 비밀을 알기 이전에, 외딴 사르데냐 섬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기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미쳤다.
"섬과 운석에 대해 숨기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주셔야 합니다."
"제정신이 아니군... 제정신이 아니야...."
은랑백은 충격받은 듯이 몇 번이나 중얼였다. 그의 주름진 주먹이 배신감에 파르르 떨렸다.
"뭐가 목적이지? 리치먼드 그 쥐새끼의 사주인가?"
"저에게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저 자신과 여왕 폐하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하는 고국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겁니다."
백작의 얼굴로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충격, 공포, 망설임.
"허튼소리치고는 담력이 좋군. 언젠가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했지. 자네가 무엇을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여왕 폐하를 섬기는 종으로서 말해주는 수밖에."
그 끝에, 그는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목소리에는 어떤 진실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 가문의... 아니, 나 개인의 치부라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40년 전, 나의 아버지, 윌리엄 에식스 백작께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셨네. 오늘처럼 많은 비가 내리던 날이었지."
말하던 은랑백은 빗물이 흐르는 창문을 응시했다. 자신을 겨누고 있는 소총의 존재마저 잊은 사람 같았다.
"사고였네. 윌리엄 백작께서는 템스 강에 떨어졌고, 빗물이 만든 급류는 그분을 바다로 끌고 갔지. 두 달을 수색했지만, 장례를 위한 시신조차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았어."
그의 마르고 주름진 손이 창문을 쓸었다.
"어머니께서는 실의에 빠져 앓다가 1년 뒤 치매가 찾아와 강으로 뛰어들었네. 아버지를 찾아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렇게 그녀는 떠났지. 나는 두 이별을 마주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지만, 변호인은 담담한 어조로 내가 물려받아야 마땅한 유산을 읊었네. 백작위, 나의 권리와 재산, 그리고 의무 같은 것들 말이네."
창문에 비친 늙은 백작의 눈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분노.
"그중에 그 섬이 있었네. 제이콥 섬. 아버지를 수장시킨 그 저주받을 섬."
은랑백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수상하게 여긴 자는 나뿐만이 아니었지. 운 좋게도 나는 몇몇 유능한 협력자를 얻을 수 있었어. 그중에 자네 아버지도 있었네. 허버트 남작은 아주 유능한 탐정이었지. 우리는 몇 년에 걸쳐 조심스럽게 섬을 조사했고, 끝내 진실에 도달했다네."
백작의 눈이 번뜩였다.
"나의 아버지는 살해당한 거야. 그 무례하고 끔찍한 부두 노동자들의 손에!"
───쿠릉! 쿠르릉!
번개가 내리치며 실내가 암전되었다. 창 밖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벼락을 맞은 목재 전신주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끊겨 나간 전선으로부터 하얀 전기의 섬광이 튀었다.
"그들은 몇 번이나 아버지를 찾아와 항구 임대료를 타협하려 했지. 하지만 그때마다 완강한 아버지가 거절하자 노선을 바꿔 한 공장주와 손을 잡았지. 그들은 템스 강의 급류가 거센 날을 기다려, 아버지를 섬으로 불러들인 뒤 살해했네."
나의 눈에는 이형의 존재들이 보였다. 기이할 정도의 유대감을 지닌 그들이 정말로 변이된 후에 그런 유대감을 가지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일평생 죄를 공유한 자들의 업인가.
"노동자들은 그 사악한 행위의 대가를 요구했지만, 공장주는 말을 바꿔 그들이 백작을 살해한 증거를 고발하겠노라 협박하며 그들을 노예처럼 부렸지. 몇몇은 후회하고 나를 찾아와 용서를 빌었지만 나는 그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어."
실내의 불빛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은 귀기 어린 백작의 눈뿐이었다. 나는 총구를 올렸다. 이 어둠 속에서 맞출 수 있는 표적은 백작의 머리밖에 없었다.
"나는 복수를 맹세했네. 이 한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 타락한 자본가와 섬 전체에 파멸을 내리겠노라 저주했네."
백작은 웃기 시작했다. 허탈한 실소였다.
"공장주는 이미 죽었네. 사고였네. 비 오는 날, 템스 강에 빠져 죽었지."
그는 실성한 듯이 웃어 재꼈다. 연로한 폐로 너무 웃은 나머지 숨을 헐떡이며 침을 토해냈다. 그 숨소리는 마치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처럼 들렸다.
"공장주가 남긴 모든 유산도 파괴되고, 남은 건 난개발로 오염되고 침식되고 있는 외딴 섬뿐이었네. 비가 올 때마다 섬은 조금씩 잠겼지. 아주 많지도, 적지도 않게, 그들이 죄를 깨닫고 뉘우칠 만큼 느긋하게 침강했지. 건물이 가라앉고 있다며 재개발을 요구하는 주민의 탄원서를 몇 번이나 받았지만 나는 모두 벽난로에 던져넣고, 대신 관리들에게 웃돈을 쥐여주며 지도를 작성할 때마다 그 지역을 누락시켰네."
나는 그제야 그 기이한 거리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1층이 없는 건물들과, 지도와 다른 거리 모두 운석과는 무관했다. 그 모든 것은 백작이 쓴 복수극이었던 것이다.
"공들인 복수는 곧 끝날 예정이었어. 그 저주받을 섬과 종자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러했듯, 템스 강의 물결에 쓸려갈 운명이었지. 그런 와중에 그 녀석이 나타난걸세."
"휘트니 리치먼드."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섬의 개발권을 주장하며 나섰고, 그건 나에게 최악의 상황이었네. 질 리가 없었지만, 만에 하나 패소하게 되면 모든 걸 잃을 상황이 된 거야."
"그가 개발을 위해 제이콥 섬을 조사하면, 지난 수십 년간 측량 결과와 실제가 얼마나 다른지 드러날 테고, 백작님의 부정도 밝혀질 테니 말이죠."
내 담담한 추측에 은랑백은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내 영혼에 상처를 입혔다. 나는 인간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포마저 느꼈다.
"아니야. 만약에 그자가 섬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섬이 가라앉지 않게 되잖나?"
───투둑 투툭....
정적에 휩싸인 방 안에 빗소리만이 허무하게 울렸다. 직전까지 공간을 지배하던 열광적인 광기는 식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삶의 동력을 잃은 노인이었다.
"이 죄는 주님 앞에서 고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건만, 허버트의 자식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줄이야. 주께서 짜놓은 계획은 정말로 인간이 모를 것이구나...."
은랑백은 말을 시작하기 전보다 훨씬 연로한 모습이었다.
몸 전체를 두르고 있던 날카로운 기세는 완전히 마모되어, 일흔이라는 나이에 어울리는 주름지고 연약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거진 20년의 세월을 10분 만에 맞았으나, 표정은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원하는 대답은 찾았나? 이제 나를 고발하고 그 죄인들을 구할 텐가?"
"결국 당신께서는 운석에 관여한 것이 없군요."
"죽은 자네 아버지의 이름에 맹세코, 나는 이 이상 숨기는 게 없네."
나는 소총을 내려놓고, 코트 안주머니는 뒤져 철제 태그를 꺼냈다.
"기뻐하십시오, 백작님. 당신의 복수는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죽음보다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당신이 아닌 어떤 자의 실수에 의해서 말입니다."
"리치먼드...."
리치먼드 Co.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리치먼드는 사기꾼입니다. 그가 운석 낙하 일주일 전에 땅을 샀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운석이 그 자리에 떨어진 건 우연이기 때문이죠."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어렴풋이 이 재판의 진상을 깨달았다.
"그는 애초에 승소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대신, 땅의 적법한 소유자인 백작님께서 운석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운석의 채굴권 같은 터무니없는 소송을 건 겁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것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나는 손목시계를 살폈다. 시침은 마침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 말대로라면 마치...."
백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석의 주인은 리치먼드입니다. 그리고, 제이콥 섬의 모든 관계자가 재판에 주목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줄곧 기다려온 시간이겠죠."
재판이 시작되기 1시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