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위대한 템스 강
────콸콸콸!
템스 강은 분노한 듯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비가 와도 범람한 적 없었던 강둑은 무용지물이 되어, 오수는 도로까지 침범해 쏟아졌다. 레인 코트를 쓴 노동자들은 항만 끝에 엉거주춤 선 채로 작업을 계속했다.
"배는 안 나오는가?"
"이 날씨에 미쳤습니까!"
나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발을 돌렸다. 시간 낭비했다. 혹시나 배라도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인데, 당연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가장 큰 선박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차도, 자동차도 다니지 않았기에,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한산했다. 천둥소리에 놀란 말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런던 시내에 늘 보이던 말똥이나 휘발유 기름때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 내음이 났다.
언제나 코를 시큰거리게 하던 런던 특유의 악취는 비바람에 씻겨나가고, 동쪽으로 30km 넘게 떨어진 바다 특유의 소금기가 런던 상공을 점유했다. 냄새는 바다와 도시의 경계를 허물었다.
나는 환시를 봤다. 빅 벤과 버킹엄 궁이 밀물에 잠기고 있었다.
그것은 먼 과거인 동시에 머지않은 미래의 풍경이다. 1억 년 전, 대륙은 아직 다 나뉘지 않았고 지면은 끝없이 침강과 융기를 반복했다. 그 당시 런던은 해저 깊숙이 잠겨 있었고 이 땅의 원래 주인은 어인이었다. 그들이 만든 흉측한 장식물은 여전히 영국 곳곳에 남아,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인류의 멸망을 예언했다.
대지가 정립되고 인간이 뭍 위에 선 뒤, 그들은 바다로 떠났다. 하지만 조바심내지 않았다. 땅은 언젠가 다시 물 밑으로 가라앉고, 그때 인간은 살기 위해 어인에게 빌며 가축을 자처할 테니 말이다.
21세기에서 온 나는 그 예언이 사실임을 안다.
해수면은 지난 수천 년간 멈추지 않고 상승해왔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200년 뒤에, 런던은 바다에 잠길 것이다. 여왕의 거처는 그들의 사악한 신을 위한 제단으로 바뀔 테고, 국회의사당은 인간을 사육하는 양식장으로 쓰일 것이다.
어인은 그들의 오랜 영토를 되찾고, 인류를 악으로 다스릴 것이다!
마르스! 그들이 섬기는 악신이야말로 마르스다!
나는 악몽 같은 환각에 헤엄쳤다.
누가 어떤 의도로 나에게 이런 환시를 보여주는가, 나는 신음하며 비틀거렸다. 지팡이가 빗물에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다.
"선생님, 괜찮습니까?"
한 젊은 순경이 내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서둘러 달려와 부축했다.
"위험합니다, 자택에 돌아가시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순경의 부축에 일어나며, 문득 하늘이 보였다. 검게 물든 하늘에서는 아침부터 내리던 빗물은 더욱 세차게 쏟아져 세상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1000년 전까지, 인류가 신의 분노라고 믿었던 그 하늘이었다.
"나는 가야 하네."
"어디 가십니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외쳤다.
"제이콥 섬!"
모든 비극이 시작되고, 런던의 멸망이 시작될 그곳!
────쏴아아아!
제이콥 섬의 입구에 도착한 것은 1시간 30분 무렵이었다. 마차가 다니지 않은 탓에 예정보다 30분 늦은 시간이었다.
"정말 여기가 맞습니까?"
순경은 불안한 듯이 물었다. 순경이라고 해도 이런 빈민굴에 다가오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장 경험 많고 잔인한 경관만이 이런 빈민굴에 배치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날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관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태업한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짙게 깔린 혈흔이 그 증거였다.
"벌써 지나갔군."
혈흔은 그대로 템스 강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살해된 뒤, 템스 강에 버려진 것이다. 흔적을 지울 필요도 없었다. 앞으로 한 두 시간이 지나면, 모든 혈흔이 그대로 빗물에 씻겨 사라질 테니까.
"핏자국...!"
젊은 순경은 깜짝 놀라며 혈흔을 향해 다가갔다.
"놀라지 말게. 지금부턴 더한 걸 볼 테니까."
그는 쭈그려 앉은 채 핏자국이 빗물에 쓸려나가는 의미 없는 광경을 내려다봤다. 나는 그 틈에 가방에서 소총을 꺼내고, 빗물이 총구로 스며들지 않도록 총신을 아래로 낮췄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 ...! 선생님, 그건 대체!"
"스나이더 엔필드라네. 연식은 꽤 있지만 아직 쓸만하지. 나처럼 말이야."
"그런 질문이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총기가 허용된 영국이라고 해도, 그걸 시내 한복판에서 꺼내는 것은 별개였다. 순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게 다가왔다. 마음만 먹으면 쏴버릴 수 있을 만큼 무방비한 동작이었다. 경험 부족.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데려다 줘서 고맙네. 돌아가게."
아무래도 그는 이런 일에 끌어들이기에 너무 젊었다. 런던을 위해 누군가의 피가 필요하다면, 그건 어른의 것이 되어야 했다.
"그런 말로 넘어갈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셔야 할 겁니다."
나이에 안 어울리게 고지식한 규칙을 읊어오는 순경을 향해 나는 빅토리아 훈장을 꺼내 보였다. 말로 설득할 자신도 없었고,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이것이야말로 내 신원과 지금 상황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해설이었다.
"런던은 공격받고 있네, 순경."
군 훈장을 가진 퇴역 군인, 낡은 군용 소총, 공격당한 경관들.
훈장을 알아본 순경은 지금 상황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눈치챈 듯했다.
"또한, 이건 어떤 영광과도 거리가 머네. 고국과 여왕 폐하를 위해 순직할 준비가 됐나?"
나는 그를 재촉하지도, 책망하지도 않았다. 대신, 눈을 내리깐 순경을 지나쳐 제이콥 섬 안쪽으로 향했다.
"저, 저도 가겠습니다. 선생님 혼자 보낼 순 없습니다!"
나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름이 뭔가?"
"피터입니다. 피터 윌슨입니다."
"필레몬 허버트일세."
마음 같아서는 젊은 그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도움을 마다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환시에 시달리고 있었다. 런던이 가라앉는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나는 무엇이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거리는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사뭇 달랐다.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냄새였다. 런던 거리와 제이콥 섬을 명확히 구분 짓던 악취의 벽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소금기 쩔은 바다 내음뿐이었다. 이미 런던과 제이콥 섬의 구분은 무너지고 있었다.
"여기가 정말 런던이 맞습니까?"
윌슨이 주변을 둘러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정을 모르는 그가 불안해하는 건 당연했다.
전말을 알고 있는 나도 2주 전과 비교해, 지면이 얼마나 더 침강했는지 깨닫고 전율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당시에는 2, 3층 정도 높이였던 건물들은 더더욱 가라앉아, 거의 진흙탕에 파묻혀서 원시적인 움막처럼 보였다.
도로는 또 어떠한가. 그래도 돌 바닥이 깔렸던 도로는 이미 진창에 잠겨, 매 걸음마다 발목까지 파고들었다. 진창 위로는 벌레인지 생선인지 모를 이름 모를 원시 생물이 펄떡거리며 기어 다녔다.
"우웩!"
전신주와 가로등은 전부 쓰러져 물길 끝에 너저분하게 방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쓸려온 거대한 물고기 주검이 수십 구나 방치되어 있었다. 윌슨은 그 역겨운 광경에 구토했다. 비위가 강한 나마저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다가가 주검을 살폈다. 정확히 말하면, 그건 아직 사람이었다. 2주 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어류에 가까운 그것들의 몸에는 벌써 파리가 까놓은 구더기 알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나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고 지팡이만으로 뒤적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대량의 혈액을 잃고 바짝 말라 있었는데, 출혈부는 가슴에 뚫린 총상이었다.
"혼자서는 이렇게 못 하지."
나는 수십 구나 되는 주검을 돌아봤다. 그것들은 마치 줄을 서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져 있었고, 이런 형태는 오직 일제 사격만이 만들 수 있었다.
"이 괴물들은 다 뭡니까?"
"죄인들이네. 한 노인의 저주를 받아 이런 모습이 됐지."
"그건... 무슨 농담입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백 마리의 괴물 생선과 총으로 무장한 무장 폭도를 상대할 준비는 됐나?"
"아니요...."
"마침 나도 그러네."
예상대로 리치먼드는 이곳에 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의 곁에는 총화기로 무장한 여러 명의 용병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이 끔찍하게 싫은 동시에 어떤 위안을 느꼈다.
"윌슨, 부탁이 있네. 섬 어딘가에 있는 여인을 찾아야 하네. 나는 다리가 불편한 탓에 할 수 없네. 자네가 할 수 있겠나?"
나는 그에게 퀴리의 이목구비에 대해 전했다. 윌슨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탕!
────탕! 탕!
리치먼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거센 빗소리 사이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비명과 화약 터지는 소리를 따라가면 될 뿐이었다. 그는 예상과 다르지 않게 제이콥 섬에 있었다.
"전부 죽여!"
"역겨운 괴물 놈들!"
소총과 심지어 기관총까지 동원해 무장한 여섯 명의 용병이 욕설을 내뱉으며 도망치는 어인을 쏘고 있었고, 리치먼드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태연하게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허버트! 강물에 빠졌다고 들었는데, 용케 살아 있었군그래!"
내 모습을 알아본 리치먼드는 능청스럽게 금니를 드러내며 인사했다.
"그래서, 지금쯤 법원에 있을 네가 왜 여기 있지?"
"법원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내 대답에 리치먼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신이 그랬듯이, 저도 은랑백도 말이죠."
"자넨 성가실 정도로 유능하군."
"그걸 기대하고 절 찾아온 게 아닙니까?"
리치먼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자네가 백작과 친분이 있다고 하길래, 거짓말 좀 섞어서 속물적인 제안을 하면 어떻게든 그가 승소하게 하려 할 줄 알았지. 2주일 동안 런던 도서관에 틀어박혀 먼지 묵은 법률서나 뒤적거리면서 말이야."
그는 자기 생각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하듯 말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낙천적인 어조였다.
"자네가 그날 바로 제이콥 섬에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자넨 상상도 못할 거야."
"운석을 되찾으러 온 겁니까?"
직전까지 눈웃음 짓고 있던 리치먼드가 정색했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알겠지만, 그건 원래 내 물건이야."
"저건 인간의 물건이 아닙니다."
"그래, 나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서 이걸 훔쳤네."
리치먼드는 담담히 고백했다.
"25년 전, 나는 아메리카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자살을 시도했네. 사업에 실패하고 진 빚 때문이었지. 미국에서 평생 일해도 빚을 갚을 전망이 보이지 않더군, 그래서 대서양 한가운데로 투신했네. 하지만 마지막에 무슨 행운이 닿았는지 나는 죽지 못하고 살아남았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그의 복잡한 채무 관계는 신문에서도 종종 다뤄지는 이슈였다.
"나는 이상한 섬에 도착했네. 아니, 그건 대륙이었어. 밀물에 잠긴 대륙이었지. 얕은 바닷물에 잠긴 그 광활한 갯벌은 끝도 없이 이어져 지평선을 뒤덮었고, 그중에 내 무릎보다 높게 올라오는 굴곡이 없었네. 자라는 생물은 무엇 하나 없었고 모든 것이 죽어 부패하는 땅이었지. 물 위에 비추는 것이라곤 나 자신과 푸른 하늘 뿐이었네."
리치먼드의 얼굴이 환희에 젖었다.
"거기서 발견한 거야, 그 신비하게 빛나는 녹색 운석을. 어떤 사악하면서도 원시적인 종족이 숭배하던 것이지."
그는 원시적인 종족을 강조하며 눈을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총기 앞에 무력하게 죽어나가는 어인이 놓여 있었다.
"미국의 상선에 구조된 나는 곧장 런던으로 돌아왔네. 내 손에는 운석이 들려 있었고, 이걸로 나는 무엇이든 해낼 힘이 있었네. 우연찮게도, 나에게 빚을 받을 채권자들은 모두 불운한 해난 사고로 실종되었고, 덕분에 나는 사업을 키울 시간을 벌 수 있었지."
그렇다. 그를 따라다니는 무성한 소문의 근원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그 복잡한 채권 관계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충분히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나는 모레턴이라는 시골 마을을 사들였지. 바다와 떨어진 조용한 마을이었네. 나는 그곳에 공장을 짓고 사람들에게 일감을 줘서 구원했지. 이 정도면 훌륭한 미담 아닌가?"
"운석이 제이콥 섬에 떨어진 건 설명되지 않는군요."
내 질문에 리치먼드는 갑자기 소리 질렀다.
"내 운석은 도난당한 거야! 한밤중에 내 처소에 들어온 저 비열한 생선들에 의해서!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준비한 덕에 대부분 그 자리에서 쏴죽였지만, 몇 놈을 놓치고 말았지! 나는 평생에 걸려서라도 그 열등한 종족을 박멸하고, 내 운석을 되찾고자 맹세했네!"
기관총 불빛에 비친 리치먼드의 눈에는 선명한 광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2주 전, 마침내 놈들이 숨어 사는 프랑스 해안 마을을 발견하고 일망타진했지. 운석이 다시 내 품에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더는 기다릴 수 없었어."
폭풍우 치는 밤의 무리한 비행. 나는 그것을 강행하도록 요구한 것이 리치먼드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이 시대에 존재할 리가 없는 기술에 대해서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운석은 내 거야! 부랑자 새끼들이 가질 게 아니라, 내 거란 말이야!"
────부우웅....
물안개 너머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Yjzuq'hacha Fhanglu Fhtagn!"
"IA! IA! Tekeli-li Dagon Fhtagn!"
분위기가 바뀌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학살의 현장에서, 비명을 내지르던 어인은 광신적인 기도문을 외쳤다. 그것들은 스스로 총탄을 향해 뛰어들었다. 비늘이 갈라지고 머리가 터져나가도, 바로 뒤에 다른 어인이 나타났다.
"IA! IA! Tekeli-li Dagon Fhtagn!"
"IA! IA! IA! IA!"
비정상적인 행동과 반대로 이들은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어류 특유의 눈으로 인간들을 응시했다. 입은 작게 오므라져 먹이를 눈앞에 둔 생선 같았다.
───탕! 탕! 탕! 탕!
"사장님, 도망쳐야 할 것 같습니다!"
공포에 질린 용병 한 명이 외쳤다.
"안돼! 쏘란 말이야, 머저리들아! 고작 부랑자 새끼들을 못 막겠단 말이야?"
리치먼드는 발을 구르며 외쳤다.
"어어?"
마침내 한 용병의 머리에 어인의 손이 닿았다. 그는 머리채를 잡힌 채, 바닥을 뒹굴었다. 그를 구하기 위해 원호 사격이 이어졌지만, 용병을 붙잡은 어인들은 몸을 숙이고 빠르게 그들이 왔던 장소로 돌아갔다.
"도와줘! 도와줘! 아아아아!"
어인들은 과시하듯 눈앞에서 붙잡힌 용병을 해체했다. 그건 고문이었다. 그것들은 붙잡힌 용병이 몸에서 모든 피를 짜내고 죽기 전까지 그에게 고통을 줬다. 용병이 죽을 때, 이목구비 중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감정한 어류의 눈에는 한 가지 공통된 감정이 존재했다. 분노, 복수. 용병들은 겁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이미 늦었다. 차라리 뒤로 자빠져 머리가 깨져 죽은 자는 행복한 편이었다.
광기 어린 전투의 끝이 다가온다. 리치먼드는 직접 총을 들고 개머리판으로 어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꺼져! 내 몸에 손대지 마!"
어인의 지느러미에 붙잡힌 리치먼드가 발버둥쳤다. 어인은 리치먼드와 수십 구나 되는 동료의 주검을 끌고 강으로 향했다. 부랑자들은 이미 인간보다 생선에 가까운 존재가 된 것이다. 리치먼드가 끌려간 물속에서 부글거리는 거품이 올라왔다.
모든 것이 끝났다.
세상이 적막에 휩싸였다.
직전까지 있었던 지옥의 한 장면 같던 전투가 끝나고, 소름 돋을 정도로 한기가 올라왔다.
────부우웅....
나는 물안개 속에서 어떤 존재를 마주했다.
런던의 어떤 건물보다 거대한 그것은 템스 강 위에 우뚝 선 채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갯속에서도 선명한 두 눈은 해저 생물 특유의 무기질적인 정서를 담은 채, 런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악... 학...."
그 존재를 눈치챈 나는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숨조차 쉬지 못한 채 헐떡였다. 한 번의 날숨을 쉴 때마다 바다 곰팡이와 기생충 배설물 악취가 지상을 휘감았고 뱃고동 소리가 런던 전역을 울렸다.
아아, 그래, 비행기는 악천후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아주 강한 힘을 가진 무언가 손가락 끝으로 날개를 잡아당긴 것이다.
그 존재를 올려다보며 나는 질식했다.
"허억... 허억... 허억...."
제이콥 섬은 운석과 함께 가라앉고 있었다. 나 역시 가라앉을 것이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바다로 돌아가야만 한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바다로 돌아가야만 한다.
"선생님! 선생님! 정신 차리십시오!"
윌슨이 나를 일으키며 외쳤다.
저 눈! 눈!
"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윌슨의 눈알을 파내려 했다!
"안갯속에! 안갯속에! 그가 온다! 바다로! 바다로! 바다로!"
일주일 후, 나는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번 사건이 내 정신에 미친 여파는 끔찍했으나, 불행하게도 나는 미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공포를 이겨내는데 써야 했고, 비가 오는 날마다 발광했다.
책과 신문은 공포를 외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간의 이목이 모였던 운석 재판은 관계자 누구도 참석하지 않는 희대의 사건으로 흐지부지되었다. 이의를 제기할 리치먼드마저 실종되었으니 누구도 이 재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실 어떤 판결이 나와도 의미 없었을 것이다. 제이콥 섬도, 운석도 모두 템스 강 아래로 가라앉아 사라졌으니 말이다.
세간은 바로 다른 이슈에 주목했다.
상속자가 없는 리치먼드 Co.를 채권자들이 어떤 식으로 나눠 가질지에 대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모레턴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의 주민이 하룻밤 사이에 전원 증발한 사건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대신 지역 신문에서 짤막하게 다뤄질 뿐이었다.
런던 경기는 태풍 이후로 연일 최악을 기록하고 있었다.
템스 강에 더 이상 배가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물길이 거세진 것이다. 태풍 당일 정박했던 배와 수백만 파운드의 가치를 가진 화물이 수장됐고, 곳곳에 설치된 항만 시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런던 최악의 날이었다.
요양하는 와중에, 두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한 통은 은랑백의 부고를 알리는 편지였다. 사람들 말로는, 그가 하루아침에 3~40살 가까이 나이를 먹더니 그 다음 날 노환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평소 식습관이 밝혀지며 식초와 레드 와인을 섞으면 몸에 안 좋다는 속설이 돌았다.
다른 한 통은 윌슨에게 온 편지였다. 그는 몇 가지 안부 말과 함께 노트 한 권을 보냈다. 첫 장에는 이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리 퀴리」
나는 그것을 읽는 것을 잠깐 보류하기로 했다. 그녀는 과연 강으로 갔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나는 그 대답을 아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창 밖에는 여느 때처럼 템스 강이 흐르고 있었다.
템스 강은 지난 100년 중 그 어느 때보다 깔끔했다. 강은 언젠가 본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강이 늘 그러하듯, 언젠가 생명이 넘치는 푸른 바다가 될 것이다.
나는 샤워할 때마다 하수도 밑으로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바다로 가지 못한 그들은 런던의 하수도에 살고있는 것이다. 나는 강이 바다가 되는 순간, 그들이 복수를 위해 뭍으로 올라올 것을 직감했다.
그 순간 나는 영국 군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매일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