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주다와 패트릭의 저녁 식사
이튿날, 나는 마리의 재촉에 밀려 면도했다. 2달 만의 쾌거였다.
"어머, 그래도 수염을 다듬으니 훨씬 보기 좋네요."
막상 깎고 나니 개운한 것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에 나는 별말 없이 수긍했다. 그렇지만 샤워만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마리에게 부탁해 양동이 가득 물을 받았다.
마치 해군 시절처럼, 나는 수건을 적셔 몸 구석구석 조심스럽게 닦았다. 몸을 닦은 수건을 짜내자 검은 흙탕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군 시절이나 탐험하던 시절에 워낙 불결하게 지내는 게 익숙했던 탓에 별 감흥은 없었다.
그 광경에 오히려 충격받은 건 마리였다.
그녀는 양동이에 가득 찬 땟국물을 버리고 오더니, 어떻게든 방 청소를 하겠다며 나를 내쫓았다. 방 안에서는 부산스럽게 바닥을 쓸고 닦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너무 결벽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보세요, 먼지가 이렇게 나왔어요."
그리고 한참 뒤에 마리는 먼지 뭉치를 모아오더니 자랑스럽게 내게 선보였다.
"솔직히 말하지. 일평생 먼지 덩어리를 보여주고 반응을 보려는 사람은 처음이라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네."
"주인님 방이 이렇게 더러웠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먼지야 쌓이는 법이지."
"아무리 그래도 누가 이렇게 먼지를 쌓아놓고 사나요!"
"자네가 아직 더러운 꼴을 못 봐서 그러네."
나는 마리의 잔소리를 상대하는 데 지쳐 방으로 돌아갔다. 확실히, 바닥과 침대는 얼추 봐도 전보다 깨끗했다. 나는 괜히 흠잡을 곳이 없나 찾아보다 그만두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양복을 추스르던 나는 문득 빠진 것을 눈치채곤 책상 위를 살폈다. 다음은 서재 위, 그다음은 침대 위, 마지막으로 창틀을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찾는 물건은 없었다.
나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했다.
"마리, 혹시 내 손목시계 봤나?"
"손목시계요?"
"그래, 자네가 치웠나?"
방 안에 들어온 마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주인님 물건에 손대지 않는 건 아시잖아요."
"물론 잘 알지. 하지만 나도 자네도 아니라면 대관절 시계에 발이라도 달렸다는 건가?"
나는 불쾌한 투로 읊조리며 베개를 들췄다.
────찌르르.
현관 쪽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빨리 좀 찾아보게."
나는 급하게 시계가 들어있을 리도 없는 서랍을 뒤적거렸다.
"시계라면 제가 찾아올 테니 일단 다녀오세요."
"뭐? 나보고 시계도 없이 외출하라는 건가? 그럴 순 없네!"
마리는 완전 고집불통이었다. 나는 거의 마리에게 떠밀리다시피 현관으로 밀려났다.
"이봐!"
"그러시다가 또 안 나간다고 하실 거잖아요."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가는 것이 더 우스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했다.
"좋은 아침이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모시러 왔습니다."
문밖에 서 있던 윌슨은 경관모를 눌러쓰며 인사했다.
수사 민간 협력 요청.
나는 가끔 이런 제안을 받곤 했다. 그래, 마치 추리 소설 속 탐정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만큼 통찰력이 있느냐고 하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사실 내가 이런 제안을 받게 된 것은 어쩌다 쌓게 된 묘한 평판에서 비롯했다. 어쩌다 그런 이상한 명성을 쌓게 되었는지는 개인적으로도 의문이었다.
분명한 건, 내가 해결했다고 알려진 어떤 미제 사건이 첫 단추라는 것이다.
"14년 전 사건이었죠."
윌슨은 느리게 걸으며 말했다.
"노퍽 저녁 사건, 알아봤습니다. 유명 인사셨더군요."
"덕분에 원치 않는 명성을 좀 얻었지."
"훌륭한 일을 하신 겁니다."
1881년, 영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괴기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노퍽 거리의 한 가정집으로, 예로부터 글 쓰는 양반들이나 모여 사는 런던치고는 조용한 거리였다. 피해자는 총 5명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는 것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지저분한 사건이었다.
모든 것은 해리스 주다가 그의 저녁 식사에 마틴 패트릭을 초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식사 자리엔 주다의 두 딸과 아내도 있었죠."
"비극적인 일이었네."
그것은 런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디너였다.
처음 신고한 것은 이웃집 주민이었다. 신고자는 주다의 집에서 비명과 이상한 괴성이 들리자 곧장 경찰에게 뛰어가 통보했다. 그는 경찰에게 "옆집에 강도가 든 것 같다"고 말했다. 주다네 식구는 언제나 교양 있게 행동하고 소리 지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토록 주다는 이웃에게 신뢰받는 신사였다. 순찰하던 두 경관은 즉시 주다의 집으로 출발했다.
신고자와 경관들이 도착할 무렵,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려오던 비명과 고함은 이미 멎어있었다. 커튼 처진 창문 너머로는 불빛이 새어나오니 빈집은 아니었다. 두 경관은 정황 파악을 위해 문쪽으로 다가갔다.
───쩝쩝.
노크하려던 두 경관은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참 이상한 것이, 주다가 그토록 교양 있는 신사라면 이렇게 게걸스러운 소리를 내진 않을 것이다. 듣고 있으면 사람보다는 개나 돼지가 사료를 먹을 때 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두 경관은 노크하려다 말고, 문이 열려 있는 것은 깨닫고 살짝 문을 밀었다. 그러자 열린 문틈 사이로 도축장을 방불케 하는 악취가 쏟아졌는데, 이는 피와 내장, 그리고 장에 낀 오물이 뒤섞여야만 나는 그런 냄새였다.
그들은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모든 것이 붉었다.
식탁에는 다섯 명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배가 갈라져 내장이 새어나오고 있었으며 눈알이 온전한 자가 없었다. 조촐하게 차려진 식탁 위에는 귀를 비롯한 알아보기 쉬운 인체 부위가 여럿 얹어져 있었고, 식탁 아래 깔린 아라비안 카펫은 흘러나온 핏물은 머금어 붉게 염색되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네 명은 시체였고, 움직이는 것은 한 명뿐이었다. 해리스 주다는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며 딸의 내장을 파먹고 있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주다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죠."
"과다출혈이었지."
추후 현장을 분석하던 경관들은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대받은 손님인 패트릭 역시 이 배덕한 만찬에 기꺼이 참가했다는 것이다. 그의 위에서는 소화되지 않은 손가락이 몇 개나 발견되었고, 입에서는 주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식도가 발견되었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였다. 주다와 패트릭은 저녁 식사 도중에 다른 가족을 죽이고 서로 짐승처럼 물어뜯은 것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런던뿐만 아닌 영국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명망있던 두 신사는 역사상 가장 엽기적인 살인자가 되었고, 패트릭의 가족은 사탄을 숭배한다며 지역민의 괴롭힘을 당하다 시골로 도망쳤다. 그러나 고향에도 그들이 머물 자리는 없었고, 런던에서 쫓아온 기자에게 두려움을 느낀 마틴 패트릭의 아내 헬렌은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살했다.
그날 이후로 식사에 이웃을 초대하는 정겨운 관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웃끼리는 서로 두려워하며, 어느 집을 들러도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경우는 없었다. 이렇게 이웃을 두려워하는 현상이 영국 도처에서 발생했는데, 사회학자들은 이에 대해 '주다 증후군'이라 명명했다.
신문사는 연일연시 자극적인 기사를 써내기 바빴고,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그들이 돈더미에서 헤엄치며 기쁜 비명을 지는 동안,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범죄 수사국의 신음은 깊어졌다.
"갓 출범한 수사국이 처음 맞는 난관이었습니다. 강력 범죄 처단을 내세우고 재편한 수사국이 언론에 주목을 받는 첫 사건이었으니까요."
런던 경찰조차 설립된 지 70년 안밖에 불과하건만, 그 안에서도 범죄 수사국의 역사는 유독 짧았다. 전 수사국 국장이 야심 차게 형사 200명을 차출하여 수사국을 개편한 것도 사건 발생 기준 고작 3년 전인 1878년의 일이었다.
대규모 재편 이후 마땅히 내세울 공적이 없었던 수사국에게 이번 사건은 입지를 다질 좋은 기회였다. 잘만 해결한다면 런던 시민에게 신뢰를 얻을 그런 기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기괴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너무 명백했다. 처벌할 사람도, 처벌할 방법도 없건만 민중은 어떻게든 해결만을 부르짖었다.
수사국은 무작정 수사를 감행했다. 전속 형사 30명이 투입되었으며, 현장 경비에는 군견 6마리와 군마 2필이 상시 동원되었다. 말 그대로 심혈을 기울였으나 대부분 형사는 뭘 조사하라는 건지도 알지 못한 채 시간만이 흘렀다.
대중의 기대와 관심이 시들 무렵, 수사국은 마지막 수단으로 민간인 수사 참가를 독려했다. 각 신문사에는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황과 어떤 사소한 단서라도 제보 바란다는 첨언이 붙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의 편지가 수사국에 도착한 거죠."
"대중은 극적인 연출을 좋아하지. 수많은 형사의 노고보다 어떤 천재가 편지 한 통으로 사건을 해결했다고 믿는 게 쉬운 거야. 애초에 나는 고작 두 문장밖에 쓰지 않았어."
1881년은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왼 다리는 사라졌고, 평생 근속하려 생각한 군에서는 명예 제대했으며, 뭘 하건 노인처럼 의욕이 없었다. 나는 잠깐 빌린 아파트에서 새 일을 찾아본다는 명목으로 신문이나 책을 읽는데 하루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던 나는 자연스럽게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시간이 남아돈 나는 추리 소설의 해답을 추측한 팬레터를 보내는 가벼운 마음으로 편지 한 통을 작성해 수사국에 부치고 완전히 잊었다.
어떤 호사가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사건의 전말과 범인의 이름까지 곧바로 유추해냈다고 주장했지만, 이건 아주 틀린 말이었다.
나는 무성의하게 딱 두 문장만 적어 보냈고, 그것이 21세기와 19세기간의 상식 차이를 메우며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 것이었다. 이는 19세기의 특성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알다시피, 19세기는 유독 과학관의 팽창이 두드러진 시기로, 개인과 대중의 상식 차가 아주 극단적으로 벌어진 시대이기도 했다. 과학은 과학보다는 기술처럼 느껴졌다. 어떤 장인이 아는 비결을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다 과학 수사라는 개념은 확립되지도 않아, 수사관과 전문가가 협업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몇 가지 잡학에 능통한 탐정 나부랭이가 경찰 앞에서 목에 힘을 주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내가 상식이라 생각하고 보낸 그 문장은 우연히도 사건의 핵심을 관통하는 단서였고, 두 달 뒤에 배후의 진범이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무렵, 나는 영광호(HMS Glory)에 연구자 신분으로 탑승하여 대서양 위에 떠 있었다. 그 말은 즉슨, 어떤 허위 기사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사건의 마지막 단물까지 빨아 먹겠다고 민간 협력자로 알려진 나에 대한 갖은 소설을 써댔는데, 아주 괴기 소설이 따로 없었다. 여하튼 나는 덕분에 이런 불가사의한 사건에 한해 불쾌한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런던에서 기괴한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반드시 날 찾아왔고, 그때마다 관계자로 내 이름이 언급되니 나의 불명예스러운 경력이 더욱더 확고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저번의 제이콥 섬 재판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많은 사건을 해결하셨잖습니까."
"그래, 사람들이 항상 나를 보면 말하지. 집에 귀신이 씌였고, 자식에게 악마가 들렸다고. 나는 그치들한테 마루를 고치고, 자식과 대화를 좀 하라고 권하지. 이것도 해결이라면 해결이겠군."
가뜩이나 신문사에게 미움받게 된 나는 이런 사건들과 얽히는 건 사실 달갑지 않았다. 내가 기묘한 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그들은 입꼬리에 미동도 안 오는 별명을 만들어 나를 조롱하려 들었다.
"하지만 살다 살다 늑대인간을 잡아달라는 요구는 처음이네."
"저도 그런 요청을 하는 건 처음입니다."
윌슨은 쓴웃음 지었다.
"그래서,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잊었을까 봐 첨언하네만, 나는 걷는 게 썩 특기가 아니라네."
"이제 금방입니다. 저 골목만 지나가면 됩니다."
이야기하는 와중에, 우리는 큰길에서 벗어나 꽤 으슥한 골목까지 들어와 있었다.
"신문에는 늑대인간이 매일 밤 나타난다고 쓰여 있더군요."
"위스키를 좀 마시면 늑대인간을 발견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수염 기른 사람이야 어디나 있으니까 말이야."
윌슨은 잠깐 나를 쳐다봤다.
"뭔가?"
"아니요, 오늘따라 기분이 나빠 보이셔서 말입니다."
나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괴팍한 중년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시계 하나 잃어버렸다고 투덜대는 꼴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영 아니었다.
"계속 말하게."
"경찰이 파악한 것으로 늑대인간이 출몰한 것은 3번입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많군."
"그리고 어쩌면 늑대인간일지도 모르는 것이 5번 더 있습니다."
거기까지 듣자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늑대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건 또 뭔가?"
"아시다시피 우리는 두 사건을 동시에 수사하고 있습니다. 늑대인간과 스프링힐드 잭. 그 5번의 출현은 어쩌면 스프링힐드 잭일지도 모릅니다."
문장 자체는 알겠는데 도통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고약한 수학자가 만들어놓은 수수께끼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딜 가고 있지? 경시청 방향은 아닌 거 같은데."
"사실, 선생님께서 꼭 보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윌슨은 골목을 돌며 말했다. 런던의 뒷골목은 미로 같이 꼬여 있어 어디로 가나 또 다른 길이 나타났다. 길 곳곳에 묘한 악취가 묻어 있었다. 마냥 싫지만은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역겨운 쪽에 가까웠다.
"늑대인간이 마지막으로 출몰한 것은 이틀 전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피해자를 보러 갈 겁니다."
"아, 좋군. 뭐라 하는지나 들어보지."
나는 어떤 사기꾼이 모습을 드러낼지 궁금했다. 요즘 런던에는 유명해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는 젊은이가 너무 많았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윌슨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그는 마지막 외진 골목에서 방향을 꺾었다.
그러자, 파리 떼가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것은 부패하기 시작한 주검이었다. 흐릿해진 동공 위로는 구더기가 기어 다녔고, 축 늘어진 혓바닥은 나뭇조각보다도 건조했다. 배가 갈라진 채로 내장은 좁지 않은 골목의 구석구석까지 쳐발라져 있었다. 우연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공들인 작품이었다.
"당일의 피해자는 경찰마였습니다."
골목을 들여다보며 나는 모던 아트를 연상했다. 말의 내장으로 그린 세계 최초의 추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