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주홍글씨
나는 거인의 내장 위를 걷고 있었다. 그것도 죽은 지 이틀이 지나 말라 비틀어진 거인의 내장 말이다.
도처에 파리가 까놓은 알과 구더기가 기어 다녔는데, 나는 그것들을 의도치 않게 자꾸 밟게 되었다. 그때마다 구두 밑창 너머로 불쾌할 정도로 선명한 감각이 느껴졌다. 수많은 중세 화가들이 지옥을 묘사해 대중을 겁주려 했으나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저 죽은 지 이틀 지난 말의 내장을 보여주면 충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화를 신고 올 걸 그랬군."
"원래 방침대로라면 곧바로 치우는 게 맞습니다."
내가 불평하자 윌슨은 경찰을 대변하듯 변명했다.
"하지만 국장님 지시로 오늘까지 현장을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진만 봐서는 어떤 모습인지 모르실 거라고 말입니다."
"이틀 전이라면 내게 아직 수사 협조 요청을 하기도 전 아닌가?"
윌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잠깐 그를 노려봤지만, 그게 괜한 화풀이라는 걸 인정하고 그만뒀다. 어쨌거나 그 말을 옳았다. 두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달랐다. 만약 내가 내장 융털을 눈으로 보지 못했더라면, 벽면에 발라진 이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말 주검 부근으로 다가간 뒤, 지팡이를 휘둘러 그 위에 무리 지은 파리 떼를 쫓아냈다.
"이 부분은 뭐지? 치운 건가?"
윌슨은 내가 말하는 부분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도 내장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창백한 안색으로 구역질했다. 그제야 나는 이 지독한 악취 속에서 내가 너무 태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지저분하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마리의 말이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 그건... 순경이 쓰러져 있던 자리입니다."
죽은 말이 찬 안장 뒤로 유일하게 내장이 발리지 않은 공간이 있었다. 가로로는 두 뼘, 세로로는 네다섯 뼘쯤으로 간신히 성인 남성 한 명이 웅크려 누울 정도였다.
"자세히 좀 말해보게."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틀 전 새벽 1시나 2시 무렵이었다.
보통 밤에는 기마를 동원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늑대인간과 스프링힐드 잭을 발로 쫓을 수는 없다는 현장의 의견을 수용한 수사국은 기마의 사용을 허가했다. 기마 순경은 그렇게 야간 순찰을 하던 도중 어떤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종류를 불문하고 짐승인 것만은 분명했는데, 그는 보지 않고도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맹수 특유의 낮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수색하던 순경은 마침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피조물을 마주했다.
그것은 늑대인간이었다!
얼굴 전체에는 무성한 갈기 털이 나 있었으며, 반대로 몸은 사람과 같아 제대로 옷가지를 걸치고 있었다. 순경은 곧바로 그것을 쫓았는데, 그것은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이 영악하게 골목 속으로 숨었다.
그것은 네발로 뛰어다녔는데, 말로도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에 잠시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인간도 짐승도 아닌 것 같은 괴성이 바로 옆에서 들리더니 말이 쓰러졌고, 순경은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그대로 기절했다.
순경이 발견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고, 짐승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늑대인간을 봤다는 순경을 만날 수 있나?"
윌슨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나는 물었다. 이야기에는 영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윌슨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는 다리가 부러져서 요양 중입니다."
"혹시 혓바닥도 같이 부러졌나?"
윌슨은 우물쭈물하다 순순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맞습니다. 늑대인간을 본 이후로 그는 면담을 거절 중입니다. 하물며...."
윌슨은 살짝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짐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벗을 가장 처참한 형태로 잃은 것이다.
"나약하긴. 전쟁터에서는 전우를 잃는 것도 한순간이었어."
나는 눈앞에 있지도 않은 이름 모를 순경을 핀잔하며 탓했다.
"사냥을 마친 짐승이 뭘 하는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갑작스러운 질문에 윌슨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먹지. 짐승은 먹기 위해 사냥하지, 전시하지 않네."
나는 골목을 크게 둘러보았다.
"이 작업에 얼마나 걸렸을까, 한 시간? 두 시간? 피 냄새를 맡고 싱싱한 먹이가 눈앞에 둔 짐승에게 그 정도 집중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살짝 허리를 숙이며 죽은 말을 살폈다. 썩은 살갗은 부패하여 점액질 덩어리처럼 되었으나, 나는 아직도 많은 정보를 거기서 찾을 수 있었다. 말의 동공에는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뚫려 깊숙이 파여 있었다.
"덮치는 순간에 엄지로 눈을 노렸군, 말을 잡는 법을 알아. 군인 출신인가?"
다음에는 내장이 쏟아져 나온 복부 가죽을 지팡이로 뒤적였다. 부채꼴 모양으로 내용물을 쏟아낸 그 역겨운 모습과 달리 뱃가죽 쪽 털에는 핏물이 거의 묻어 있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말의 목 쪽에서 작은 상처를 발견하고는 그 아래 덮여있는 내장 조각을 지팡이로 긁어서 떼어냈다. 예상대로 그 밑에서는 선명하고 넓은 핏자국이 나타났다.
"이자는 아주 뛰어난 기술을 가졌군. 한 번에 목을 지나는 혈관을 잘랐어. 이 정도 출혈량이니 죽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겠지. 내장을 쏟아내고 죽은 게 아니라, 죽은 다음에 내장을 꺼낸 거네."
나는 바닥에서 말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목에서 피를 쏟아내는 장면을 떠올렸다. 범인은 그것을 멀리서 방관하며 말이 죽기를 기다리다가, 죽은 말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 것이다. 그것은 늑대인간 같은 허황한 망상보다도 훨씬 끔찍했다.
"아까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러면 말이 되는군. 범인은 공간 감각이 뛰어나며, 런던 지리에 해박한 자임이 틀림없네. 일부러 말이 달리기 힘든 좁은 길로 유인했으니 순경은 상대가 말보다 빠르다고 착각한 거야. 그리고 그런 자라면 이렇게 샛길 많은 골목에서 추격자의 사각을 잡기도 쉬웠겠지."
내 머릿속에는 범인의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명쾌했다.
사족보행이나, 갈기 털 같은 것은 밤이 만들어낸 환각 속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었다. 혹은 착란을 일으킨 순경이 자신의 기억을 날조해서 증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질문이 하나 남는군, 왜 그랬을까?"
하지만 마지막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매듭이 풀려나가는 와중에, 마지막 고리 하나가 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단히 묶여 풀리지 않았다.
"왜?"
누가 무엇을 위해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사교 집단의 이단적인 제사 장면이 떠올랐다. 그들은 새벽녘에 사악한 주문을 외우며 말의 내장을 그들이 섬기는 악마에게 바치고, 정결한 순경의 영혼을 더럽혔다.
"대체 왜?"
하지만 그조차도 상황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들이 경찰을 덮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문득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졌다. 하지만 내게는 시계가 없다.
이렇듯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기괴하고 역겨운 상상조차도 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했다.
"왜?"
나는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꾸물거리는 파리 구더기를 내리찍었다. 런던의 저변에 어떤 끔찍한 존재가 다시 태동했단 말인가? 그 악마는 온 런던 시민을 제 먹이로 삼을 테고, 내 시계를... 젠장! 그 망할 놈의 시계 때문에 사고가 돌아가질 않는다!
"선생님."
윌슨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내가 조금 격양된 모양이었다. 이게 다 시계를 잃어버린 탓이다.
"미안하지만 돌아가서 좀 쉬어야겠네... 집에서 시계도 좀 찾고 말이야."
"그 전에 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윌슨이 내미는 편지 봉투를 받았다.
"박사님께서 전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요."
"박사?"
편지지의 겉봉에는 발신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헨리 지킬 박사」
그날 저녁, 나는 런던 중심가에 있는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다.
나를 데려다 준 마부는 내 목적지를 듣고는 굉장히 공손한 태도로 대접해줬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썩 좋아져서 그에게 팁으로 웃돈을 쥐여줬다.
「르 호튼」
런던 길드홀이 보이는 장소에 놓인 이 격조 높은 레스토랑은 놀랍게도 50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 상류층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당시 귀족의 사교장은 아름다운 템스 강을 배경으로 한, 소위 '강물파(River line)'라고 불리는 6개 레스토랑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학 관계는 산업화가 본격화 되며 완전히 뒤집히게 되었는데, 템스 강이 그저 식욕을 떨어트리는 흉물로 전락한 이후 강물파는 모두 폐업하거나 이전했고, 르 호튼은 이견 없이 런던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거듭났다.
영국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프랑스 식사를 제공하는 이 레스토랑에서 유감스럽게도 음식은 주역이 아니었다. 대부분 손님은 셰프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그나마 메뉴를 지정하는 손님은 자신이 아는 프랑스어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뿐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왕가에 충성하는 명망 높은 귀족, 런던에 공장을 소유한 기업가, 그리고 대부분은 그들과 친해지고 싶은 아첨꾼이 음식에 꼬인 파리처럼 모여들었다.
나 역시 한때는 이곳에서 런던의 명사들과 친분을 다지곤 했지만, 4년 전 귀족 사회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 이후로는 첫 방문이었다.
───딱. 딱.
목발과 지팡이 소리는 이럴 때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시선을 느끼며,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부분의 시선은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가끔 신문에 실리는 것 말고 이렇다 할 재주가 없는 런던 괴짜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몇몇 시선은 꽤 끈질겼는데, 그것은 주로 악의에서 비롯되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그나마 호의에 가까운 눈빛을 찾아냈다.
맹금류 같은 눈을 가진 말쑥한 신사였다. 그는 거의 눈을 깜빡이지 않았는데, 어쩌다 한 번 깜빡일 때는 1초 이상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는 그 눈에 거의 감시당하고 있다 싶었지만, 사실대로 고하자면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지킬 박사님?"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지킬은 놀라운 첫인상을 주는 신사였다.
겉으로 봐서는 나와 비슷한 연배처럼 보였는데, 그에게서는 어떤 충동적인 기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규칙에 강박적으로 충실한 것이 분명했는데, 모든 손톱이 일정한 길이로 자라 있었고, 긴 수염에서도 삐져나온 털이 하나도 없었다.
지킬은 아주 넓은 미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살면서 한 번도 화내본 적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허리는 그가 지켜온 규율의 올곧음을 엿볼 수 있을 만큼 아주 꼿꼿했고, 어깨는 정확히 그 위에 수직으로 놓여 있었다.
그런 선한 인상과 반대로 눈매만은 아주 날카로웠는데, 나는 금고를 연상했다. 그 안에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감히 캐내려 들 생각은 들지 않는 견고한 금고 말이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 척추가 피뢰침이 된 것처럼 전류가 관통했다. 그는 진짜로 지킬 박사였다!
나는 악수하는 내내 얼떨떨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어떤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내가 평생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놀랍군요, 정말로 실존하는 줄 몰랐습니다."
나는 떠보듯이 물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아, 그런 소리를 종종 듣지요. 저보다 그 소설이 더 유명세를 떨쳐서 곤란합니다.' 하지만 지킬은 내가 원하는 어떤 대답도 주지 않았다. 그는 눈썹을 왼쪽 눈썹을 15도 정도 기울인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무슨 뜻이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남작님께서 이번 수사에 참가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이런 분야에서 런던 최고 전문가 아니십니까."
"빈말로라도 사실이라 말하기 어렵군요. 그러면 혹시 박사님께서도?"
지킬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 협력 요청을 받으면 가급적 거절하지 않고 있습니다."
"훌륭하시군요."
"과찬이십니다."
겸양을 말하고 있었지만 지킬은 스스로 예우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겸손함과 당당함을 동시에 겸비한 이중적인 면모는 그의 독특한 매력을 완성했다. 만약에 그가 *그* 지킬 박사만 아니었더라면 단숨에 흠모하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걸 보고 오셨다고 들어서, 입맛이 없으실까 생각해 식사는 메인만 주문해 뒀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그의 배려에 감사했다. 사실 그 역겨운 골목에 다녀온 이후로 뭔가 먹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오는 도중에도 계속 무례하지 않게 식사를 거절하는 방법 따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지 않아 웨이터가 다가와 각자 앞으로 접시를 내려놨다. 접시 위에는 4조각으로 슬라이스 된 이름 모를 얇은 고기가 놓여 있었다.
"어떤 고기 같습니까?"
지킬은 수수께끼를 내듯이 물었다. 나는 그가 뭔가 특별한 주문을 했으리라 짐작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고기를 먹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예의상 한두 점이라도 먹어두자고 생각한 것이다.
지킬은 나이프로 고기를 작게 잘라 입에 가져갔다. 너무 작게 잘라 심지어 입을 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는 최소한의 턱 근육만 이용해 고기를 씹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를 따라 고기를 잘랐다. 지킬의 것보다 얼추 2배는 큰 조각이 나왔지만, 이 경우는 비교 대상이 너무 작았을 뿐이었다. 나는 먹지도 않고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놨다.
"말고기군요."
"드셔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 번 타거나 만진 적은 있죠. 먹은 적은 없습니다만."
나는 너무 충격받은 나머지 심장이 떨렸다. 다른 영국인과 달리, 나는 말고기를 먹는데 어떤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지만, 그는 내가 보고 온 것을 알면서도 이런 주문을 했다. 그 의중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제 생각에 영국인은 말을 더 먹어야 합니다."
지킬은 담담히 말하며 고기를 잘게 잘랐다. 그 작은 고기조각은 지킬의 입가에 도착하면 증발하듯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가 씹고 삼키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지경이었다.
"적기조례가 폐지되지 않습니까. 마부들은 말을 내놓을 테고, 말 값이 아주 싸질 겁니다. 흑사병이 퍼지고 소를 먹기 시작한 것처럼, 이제 영국인은 돼지 대신 말을 더 많이 먹게 될 겁니다. 사회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거죠."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물로 입을 헹궜다. 처음 그에게서 느꼈던 신비한 매력은 이제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전 여기까지만 먹겠습니다."
"아쉽군요. 영국에서 이런 요리를 맛볼 장소는 흔치 않거든요."
지킬은 나를 따라서 식기를 내려놓고, 접시를 옆으로 치웠다.
"오늘 초대 드린 건 다름 아니라, 남작님께 경고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는 품에서 사진 두 장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각 사진은 다른 두 명의 여인을 담고 있었는데, 둘에게는 닮은 점이 아주 많았다. 젊은 나이가 그랬으며, 적은 수입을 대변하는 듯한 조촐한 작업복 차림이 그랬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내장을 드러낸 시체라는 점이었다. 짐승에게 파먹힌 듯이 이빨 자국 같은 게 남아 있었다.
"끔찍하군요."
"런던에서 늑대인간이 출현했다고 알려진 세 번 중 나머지 두 번입니다. 아시다시피, 헨리 6세께서 통치하신 이래 영국에는 사람을 덮칠 만한 대형 맹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늑대인간이라 부르는 거겠죠."
그는 사진을 돌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빨 자국은 분명 사람입니다. 자, 어떤 사건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16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죠. 당시엔 정확히 말해서 먹지는 않았습니다만."
지킬은 사진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진범이 잡히고 사건은 끝났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마틴 패트릭에게는 아내 헬렌과 딸 셰리가 있었죠. 둘은 런던에서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웨일스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변하는 건 없었고, 헬렌은 자살을 선택합니다. 셰리는 지역 고아원에 들어갔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겨진 셰리는 고아원 내에서도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린 그녀는 고아원에서 도망쳐,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늑대가 출몰한다고 알려진 실그윈 숲이었죠. 저는 아마 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지방 사람들에게는 꽤 설득력 있었던 모양입니다. 누구도 저주받은 아이를 위해 숲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패트릭 가족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지킬은 정말로 끝이라는 듯이 말을 멈추고 물컵을 입가에 대었다. 만약 그가 나와 인내심 대결을 할 생각이라면 나는 기꺼이 패배할 의향이 있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방금 이야기에서 놓친 점이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박사님께서 놓친 부분이 있을 것 같군요."
지킬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놓쳤죠. 그래서, 15년 뒤 숲 속에서 헐벗은 여인이 나타났을 때, 누구도 셰리라는 소녀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여인이 되었겠거니 하는 점을 떠올리지 못했으니까요. 그보다 사람들은 그녀의 다른 특징에 주목했는데, 그녀가 사람보다는 짐승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저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그랬듯이 늑대에게서 길러진 아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그녀는 서커스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담담하게 사실만을 나열하는 지킬의 화법은 사람은 지나치게 지치게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끊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셰리 패트릭이었다고 말하려는 겁니까?"
"모릅니다. 확실한 건, 그녀의 행방이 그 뒤로 묘연하다는 점입니다. 누구는 그녀가 서커스단의 학대에 죽었다고 말하고, 누구는 그녀가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숲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합니다만."
지킬은 아까와 다른 사진을 꺼냈다.
"얼마 전, 우연히 찍은 사진입니다. 마틴과 헬렌을 닮은 고운 흑발이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빅 벤을 배경으로 한 사진 속에는, 반라의 여인의 흐릿한 윤곽이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여인은 팔을 다리처럼 땅에 붙이고 있었는데, 그 탓에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몸 위에 덮어져 감히 갈기라고 부르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녀가 16년 전 사건의 복수를 하려 한다는 겁니까?"
"미치광이의 생각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지킬은 무심하게 답하고 식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면, 부모를 앗아간 런던에 복수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16년 전, 남작님께서는 꽤 눈에 띄신 줄 압니다. 이건 그런 의미에서 경고입니다."
────달칵 달칵.
한동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지킬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고기를 잘라 입에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거리에는 통행인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열쇠로 잠금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늦은 밤이다.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는지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현관이 잠겼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집안을 두루 돌아보며 모든 창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커튼이 다 닫혔는지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확신이 든 뒤에야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방의 불을 켜고, 코트와 모자를 벗어 건성으로 옷걸이에 걸쳐 놓았다. 나쁜 습관인 줄은 알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쓰러지듯이 침대에 앉아 피로를 풀었다.
오랜만의 외출이었음에도 너무 장시간 돌아다닌 탓인지,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잠깐만 누울 생각으로 침대에 몸을 눕히자, 내가 감히 어찌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마가 나를 덮쳤다.
────덜컥.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 쪽에서 난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나는 창가를 응시했다. 창문 너머로는 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창문을 열어놓고 잤던가?
그럴 리가 없었다. 템스 강과 가까운 우리 아파트는 창문을 열면 냄새가 고약해 어떤 식으로건 깨닫기 마련이었다. 방금 소리는 창문이 열린 소리였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도둑이나 강도가 창문을 따고 들어오려 한 것이라면 들어와도 진작에 들어왔어야 했다. 그럼에도 바깥은 으스스할 정도로 적막했다. 나는 전등을 켰다.
────핑....
필라멘트에 열이 돌며 전구 표면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고요함 속에서는 전기가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이다.
방 안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아니, 변화가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분명히 입고 잠들었던 양복이 어느 틈에 벗겨져 있었다. 나는 거울 속에서 내 팔에 새겨진 붉은 글씨를 발견하고 팔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윽...."
그 순간, 팔이 타는 듯이 뜨거워, 무심코 신음을 흘렸다.
팔 위에는 붉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수사를 멈춰라」
내가 그것을 읽자 글자가 흔들리며 움직였다. 그것은 내 팔의 굴곡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 그래, 그건 글자가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이것은 상처였다. 잠든 사이에 누군가 내 팔에 칼로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