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공동묘지에 사는 연금술사
나는 땅을 디디고 서 있음에도 공간 속에서 길을 잃었다. 사지는 흙과 돌에 붙잡혀 어디로 향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어떤 빛도 닿지 못하는 이곳에서 나는 맹인이나 다름없었다.
입 안에는 흙과 이끼, 그리고 자갈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고, 귀 뒤로 다족류 특유의 분주한 발톱놀림이 살가죽을 파고들었다. 가장 괴로운 점은 그토록 작은 벌레의 울음소리조차 선명히 들려오는 부분이었다.
맨손으로 바위를 파헤친 탓에 가죽 장갑은 찢어지고, 손톱이 부러지며 뾰족한 자갈이 손 틈을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고통스러워 할 여유가 없었다.
숨이 거칠어지며 안면에 입김이 묻었다. 그리고 이 퍽퍽한 공간의 수분은 그것 뿐인 양 빠르게 말라붙기를 반복했다. 부족한 산소로 사고는 점점 뿌옇게 흐려졌다.
그렇다.
나는 생매장되었다.
─────터벅 터벅.
흙 속을 파헤치던 나는 손을 멈추고 숨죽였다. 위쪽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충격음이 전해졌다. 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 근처에 묻힌 걸 알고 있다.
발걸음 소리가 어느 시점에 멈췄다. 나를 찾은 걸까?
사박사박, 땅을 헤집는 소리가 들리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아악! 아아악! 살려줘! 아아악!"
남자의 목소리는 서서히 작아졌다. 나는 남자가 절명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남자를 멀리 끌고 가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건, 내가 시간을 조금 벌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지면을 헤집었다.
파삭, 하고 눈앞의 바위가 부스러지며 나는 마침내 땅속에서 기어나왔다.
"쿨럭 쿨럭...."
나는 매미 유충처럼 필사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폐 속의 흙먼지를 토해냈다. 한 번 기침할 때마다 모래가 손등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하아... 하아...."
마음 같아서는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늦장 부릴 여유가 없었다. 언제라도 그들이 되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바위틈 사이로 손 하나가 구조를 요청하듯 삐져나와 있었다.
"자네, 괜찮나?"
나는 돌을 치우며 그 손을 잡아당겼다. 흙더미를 헤집어 상대의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질겁하며 그 손을 놓았다. 그것은... 먹다 남은 음식이었다. 나는 안면 없는 시체를 외면하고 쩔뚝이며 걸었다. 지팡이도 부러진 탓에 매 걸음 자세를 다시 잡아야만 했다.
"도와주세요...."
그 순간, 땅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절박함은 작지 않았다. 그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요.... 다리를 다쳤죠...?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나는 바닥에 엎드려 두꺼운 돌조각을 들었다. 그리고 땅 위에 쌓여 있는 황토를 내리찍어 부쉈다. 흙에는 대변이 잔뜩 섞여 있었는데, 포유동물 특유의 독한 암모니아 악취가 묻어났다.
"허억... 허억... 허억...! 아아아...."
"진정해! 진정하고 숨부터 쉬게!"
나는 땅 속에 묻혔던 청년의 몸을 끄집어내고 등을 두드렸다.
"저, 저것들은 다 뭐죠?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퉷퉷!"
청년은 얼굴에 범벅된 배설물과 흙을 털어냈다. 그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침착했다.
"왜 저런 것들이 런던 지하에 있냔 말입니다...."
"모르겠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네."
"나가는 길은 아십니까?"
나는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공기가 흐르는 방향을 읽었다. 하지만 이 굴에는 바람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거운 공기만이 짙게 깔려 폐쇄감을 더했다.
"이럴 수가...."
청년은 나와 비슷한 결과에 도착했는지 절망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게. 묘지에 들어왔다고 산 자가 죽은 자의 흉내를 내면 쓰나."
나는 그를 격려해 일으켰다. 여기서 나가려면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여기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 박사님은 여기 왜 오신 겁니까?"
"사람을 찾아서."
"사람? 이런 지하 묘지에 말입니까? 여기 살아 있는 것이라곤 우리하고 저것들밖에 없어요!"
"알고 있네."
알고 있었다. 나는 애초에 산 자를 찾아서 들어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셜리 마리. 나는 그녀의 시체를 찾으러 왔다.
.........
.....
...
..
.
산채로 묻히기 전날, 나는 아서 프랑크의 저택에 있었다.
아서는 내가 정신을 차리자 어떤 안부의 말도 묻지 않고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내게서 모든 대답을 듣기 전까지 놔주지 않을 기세였고, 나는 순순히 그 질문에 하나씩 답했다.
저택을 나온 뒤, 내가 제이콥 섬에서 보고 들은 것들...
퀴리 부인의 실종과 그녀가 남긴 노트....
지킬 박사의 사악한 실험과 런던의 짐승들....
그런 것들 말이다. 아서는 내가 한 마디를 말할 때마다 두 마디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허겁지겁 대답하고 말았다. 그탓에 나는 평생 홀로 품을 예정이었던 비밀도 몇 가지 털어놓았다.
결국 내가 마신 앰풀에 대한 설명까지 마치자,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면 너는 지킬 박사와 같은 것을 마신 거군. 어떤가, 좀 이성적인 기분인가?"
그 질문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려한 것과 달리 내 정신은 온전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나는 나 자신을 잃기는커녕 회복했다.
"아니. 나는... 똑같아."
"원래 네가 미쳐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겠군. 아니면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난 탓에 약효가 떨어진 건가? 이봐, 필로. 아직도 미쳤나?"
그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나를 다시금 당황하게 하였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
지킬 박사가 남긴 앰풀, 하이드를 마신 이후, 내 정신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영역에서 재조립되었다.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광증은 벗겨져 나갔고, 마치 신생아와 같은 총명함만이 남았다.
아서는 그 모든 불가사의에 대해 흥미를 감추지 않았다.
"지킬 박사, 그자는 원래 프랑크 학술회에 초청하려고 했었지. 만약 그가 왕립 학회 회원만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했을 거야.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무리해서라도 우리 학술회로 끌어들였어야 했어."
"알트."
"농담이야, 필로. 나라도 살인자를 회원으로 받진 않아."
나는 아서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회적 규범 위에서 춤추는 사내였다. 도덕과 법률이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더 말해봐. 내가 없는 동안 런던에 어떤 일이 일어났지? 너는 제이콥 섬의 침몰 현장에도 있었고, 늑대인간을 추격하기도 했고, 이제는 도시 어딘가에 숨은 실그윈 숲의 야수에게도 쫓기게 된 거군."
"자네한텐 이게 재밌나? 몇 명이 죽었는지 알긴 하나?"
마침내, 시종일관 즐거워 보이는 아서의 모습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신경질적으로 외치고, 나는 다시금 무기력해져 얼굴을 에워싸며 중얼였다.
"그리고 셜리 마리, 내가 그 불쌍한 여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사고였어."
"살인이었네! 나는 의도를 품고 그녀를 살해한 거야!"
아서는 내 외침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내 앞을 어지럽게 왕복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내가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아이 같고 무책임한 발언을 더는 인내할 생각이 없었다.
침묵이 몇 분이나 이어졌다. 먼저 말을 꺼내놓은 것은 아서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방법이 없진 않아."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으레 나오는 말투였다.
"뭐가 말인가?"
"일전에 네가 봤던 프랑크 학술회는 단편에 불과해. 내가 계획한 학술회는 더 복합적인 영역에서 인류 전반의 진보를 꾀하고 있지."
"쉽게 말하게."
"어쩌면 네가 느끼는 죄책감의 근원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아니, 충분히 가능하겠지."
나는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내 죄책감을 없앤다면,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자네 설마...."
"그러기 위해서, 네가 찾아와야 할 물건이 있지."
아서는 내 말을 끊고, 방의 벽면에 붙어 있는 런던 지도를 가리켰다. 펜으로 무수히 많은 기호와 도형, 그리고 특유의 악필로 장황한 문자를 기술해놓은 그 지도는 원형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그중에 한 점을 찔러 가리켰다.
"그 가정부는 무연고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있을 곳은 여기밖에 없겠지."
그날 밤, 나는 런던 남부 교외에 나와 있었다.
1836년, 런던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계획도시였고, 가장 높은 인구 밀도를 자랑했다.
그러자 예상 못 한 문제가 발생했다. 시체였다. 사방에 시체가 넘쳐났다. 기존의 향토적인 장례법으로는 이 많은 사망자를 감당할 수 없었고, 도시 곳곳에 세워진 소규모 묘지는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더욱이 비위생적인 관리법 때문에 전염병도 심각한 수준이었고, 일각에서는 묘지를 태우고 다니는 반매장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시체는 선택이 아닌 선결 과제였다.
거기서, 한참 세계 최고의 도시라는 자부심에 도취해 있던 런던 시청은 실험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런던 남부에 대규모 조경 묘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묘지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연공원으로 시민 휴양 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과감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웨스트 노우드 공동묘지였다.
고딕 복고 양식을 따른 예술적인 조형, 인공적으로 조성된 잔디밭, 조광을 받는 좋은 입지에도 불구하고 이 시설은 시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묘지였으니까. 누구도 묘지에서 휴양을 찾지 않는다.
런던은 그렇게 수천 파운드의 예산을 대가로 묘지를 공원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여하튼, 그런 불운한 배경에도 이 묘지는 자신의 소임에 충실했다. 묘지는 지난 50년간 런던에서 쏟아져 나온 대부분의 시체를 빨아들이는 배수구였다. 16헥타르에 달하는 부지엔 빽빽하게 묘비가 들어섰고, 적을 묘비명이 없는 이들은 지하 카타콤에 매장되었다.
묘지는 런던에서 가장 품위 있는 쓰레기 매립지였다.
운구마차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묘지 입구에 도착했다. 런던은 시체가 많은 도시였고, 죽음은 마차가 아직 자동차에 내주지 않은 몇 안 되는 사업 중 하나였다.
그렇게 시체가 도착하면 묘지기와 화장터 관리인이 나와, 시체를 화장터까지 직접 들고 들어갔다. 화장터 굴뚝에서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이름 모를 사망자의 영혼을 하늘 끝까지 올려보냈다. 타고 남은 유물은 성의 없이 마대에 담겨 지하에 뿌려졌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멀리서 엿봤다.
묘지기는 시체를 화장터까지 날랐지만, 화장터는 여전히 차게 식어 있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거나 불빛이 새어나오는 일도 없었다. 아서에게 들은 소문과 같았다.
나는 묘지 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어떤 용무십니까, 선생님?"
그러자 감시라도 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묘지기 한 명이 튀어나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그가 묘지기라고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입고 있는 옷이 너무 고급스러운 탓이었다.
"꽃을 바치러 왔다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하얀 조화를 보였다.
"어느 분이십니까?"
"셜리 마리."
"찾는 걸 도와드릴까요?"
그는 깔린 묘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아니라 저쪽이라네."
내 손가락 방향을 알아본 묘지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카타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건물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저곳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왜지?"
"길을 잃고 실종되는 분이 많아, 민간에는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논리였다. 나는 항의하려고 했으나,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느 틈엔가 화장터 안에 있던 다른 묘지기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밖으로 나와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차가운 눈으로, 무감정한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쌍둥이처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기이하고 폐쇄적인 광경에 공포를 느낀 나는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알겠네. 어쩔 수 없군."
나는 거의 도망치듯이 묘지 밖으로 빠져나왔다. 묘지 입구를 통과하는 와중에도 그들의 시선은 내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컹컹! 철컹철컹!
묘지 창살 너머로 사냥개 한 마리가 달려들며 울었다. 나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그 묘지기가 일부러 내 쪽으로 달려들게 풀어놓은 것이다. 그 거친 사냥개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묘지의 경비치고는 아무래도 너무 삼엄했다.
더욱이 나는 그들에게서, 그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 이상의 기괴한 유대감을 느꼈다. 그들의 정신은 거의 얽혀 있는 수준이었다.
위험한 일이다. 그리 직감했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서의 말대로라면, 마리의 시체는 온전할수록 좋았다. 그녀의 시체가 이 지하 묘지에 버려진 것이 1달 전이란 걸 고려하면, 낮은 기온을 생각해도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했다.
전해 들은 대로 이 묘지에서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변화의 시작은 한 달 전이었다. 런던에 미약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말 몇 마리가 넘어지는 등 경미한 피해가 발생했지만, 그조차도 작은 소동에 불과했다. 런던 시민들은 그 지진에 대해 곧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웨스트 노우드 공동묘지는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시체는 끊임없이 화장터로 들어갔으나, 소각로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석탄을 공급하는 일도 없었다.
그에 관한 여러 추측이 음지에서 조용히 오갔다. 시청에서 석탄을 아끼기 위해 화장을 금지했다는 추측이 한동안 가장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소문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차피 죽은 자의 사정인 것이다.
그것이 산 자의 관심을 사게 된 것은 또 다른 사건 이후였다.
천한 묘지기와 화장터 관리인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은을 양손 가득 담아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은의 출처에 대해 짜기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었고, 그 돈으로 묘지 인근의 땅을 사들였다.
타지 않는 소각로, 정체불명의 은.
두 소재는 호사가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기 충분했고, 각종 저질스러운 소문이 지역 사회에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그러다 그 소문은 끝내 상류사회에까지 퍼지게 되었는데, 고상한 그들은 죽은 자와 관련된 저급한 소문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소문에 대해 떠들고 싶다는 저열한 욕심을 포장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웨스트 노우드 공동묘지에는 연금술사가 산다. 그는 시체를 은으로 바꾼다." 라고. 우연히도, 이국적인 풍모의 비쩍 마른 외국인이 묘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같은 시기였다.
나는 밤새 묘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회를 엿봤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진실에 대해, 나는 아서와 달리 별 관심이 없었다.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그저 속죄라는 두 문자의 업보뿐이었다.
그것이 설령 어떤 죄악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나는 이미 그보다 큰 죄를 지은 자였다.
하지만 그날 밤 내내 경비가 약해지는 일은 없었다. 묘지기들은 어떤 규칙에 따라 교대 감시를 반복했고, 내가 본 사냥개만 해도 종류가 셋을 넘었다.
오히려 개보다 구분하기 힘든 것은 사람이었다. 묘지기는 각자 다른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인상만은 기괴할 정도로 비슷했다. 그들은 다들 무표정했고,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또 경직되어 있었다. 나는 한 집단이 그토록 통일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군대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늘 같았다.
운구마차가 도착하면 시체를 나르고 화장터로 들어간다.
그것이 전부였다.
결국, 나는 날이 새도록 빈틈을 찾지 못했다. 오늘은 단념하고 돌아갈 생각으로 몸을 일으킨 나는 균형 감각을 잃고 넘어졌다. 빈혈인지 뭔지 세상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진이었다.
한참 동안 이어진 그 약한 지진에, 나는 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런던 시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직 지진이 완전히 멈추진 않았는지, 벽을 짚고 가자니 그 떨림이 전해졌다.
그날 아침, 나는 몇 부의 신문을 사서 전날 밤 지진에 관한 기사를 찾아봤다. 하지만 어떤 기사에도 그에 관한 서술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곧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느꼈던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