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21화 (21/232)

§21. 인류의 지층

우리는 후두부가 박살 난 소인의 시체를 눈앞에 두고 아연히 마주 봤다.

"사, 살인한 건가요?"

노엘이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극이 이토록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당황한 것은 이자가 구울조차 아닌 아주 뒤틀린 형태의 인간이라는 부분이었다.

반대로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선 위안마저 얻고 있었다. 나는 둘 중에 누가 더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둘 중 하나는 인간의 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사람이라면 말이네."

"하지만... 구울은 아니잖아요."

"그래."

구울의 실물을 본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자를 내가 아는 구울에 대입할 수는 없었다. 구울의 가장 큰 특징은 몇 번이나 강조되는 개를 닮은 머리였다. 인간의 머리를 통째로 씹어 먹는 거대한 짐승의 대가리 말이다.

하지만 이자는 비록 그토록 흉물스럽게 변질했다곤 해도, 여전히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시체를 뒤적거리며 그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어둠 속에서도 대리석이나 석영을 보는 것처럼 흰 피부를 가진 종족이었는데, 얼마나 피부 빛이 옅었으면 그 밑에 있는 핏줄은 물론 장기의 형태까지 들여다보였다. 평생 햇빛이라고는 한 번도 못 보고 산 것이 분명했다. 만약 이런 피부로 불빛 아래로 나간다면 몸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낄 테니 말이다.

몸에는 걸친 것 하나 없었는데, 얇은 피부 때문에 부드러운 비단조차도 쓰리게 느껴질 것 같았다. 또, 몸은 매우 말라서 얇은 근육 사이로 뼈의 윤곽이 모두 보였다. 허리는 사족 보행하는 짐승처럼 굽었고, 팔 관절 역시 O자로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눈꺼풀을 넘기자 눈동자가 드러났는데, 홍채 근육은 완전히 풀어져 동공이 거의 눈알만 했다. 나는 이런 눈으로 사물을 볼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이미 인종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기괴한 형상이었으나, 나는 그가 토종 영국인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앵글로-색슨 말이다. 이런 말을 쓰는 게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외국인이었다.

나는 한참이나 앉아서 그것을 살폈다. 어떤 식으로건 그것이 인간이 아님을 증명할 증거를 찾듯이 말이다. 하지만 공을 들일수록, 나는 그것이 인간의 한 분파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결과밖에 얻을 수 없었다.

"더 보고 있어도 얻을 게 없겠군."

노엘은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부축했다. 그는 여전히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내게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지금 그가 이것저것 물었다면, 나는 전부 털어놨을지도 몰랐다. 내가 느끼고 있는 무수한 절망감에 대해 말이다. 실제로 나는 그 하얀 인간을 본 이래로 많은 희망을 저버리고 있었다.

지상과 지하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서, 저런 인간이 나타날 수 있을까.

저것이 정말로 인간의 한 분파라고 한다면, 고작 한두 세대 만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 것 같지 않았다. 런던 지하에서 그들은 수십, 수백 세대를 걸쳐 독자적으로 진화해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의 끝에 과연 지상으로 이어진 길이 존재할까 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계속 가지."

나는 몇 번이나 노엘에게 돌아가자고 말하려 하다 관뒀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나는 희망이건 절망이건, 매듭지을 것이 필요했다. 노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시체를 봐야만 한다.

터널, 터널, 터널, 터널.

터널은 계속 나타났지만 더는 안쪽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그것이 카타콤이란 건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오직 관성에 이끌려 계속 걸을 뿐이었다. 이곳은 내리막, 애초에 추락은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터널이라고 부르고 있긴 하나, 그 형태는 다양했다.

나는 고작 터널을 짓는데 이토록 여러 공법이 존재하는지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나타난 로마 양식의 아치형 터널부터 시작해서, 단축이 짧은 사각 터널, 하수도를 연상케 하는 원형 터널까지. 내려갈수록 그 형태는 서서히 인간의 것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터널은 점점 드문 것이 되었는데, 연식의 차이는 그만큼 크게 벌어지곤 했다. 그럴수록 건축 양식의 변화는 뚜렷하게 보였다. 기술은 조잡해지고, 예술 조형 역시 서서히 원시적으로 바뀌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장 속에 차오르는 공포를 느꼈다.

처음에는 인류의 기상을 담고 있던 건축물이, 밑으로 갈수록 이단적으로 변질하고 있었다. 카타콤의 해골뿐만 아니라, 이 길고 긴 터널 전체가 하나의 지층이라면 우리의 조상은 어떤 사악한 존재를 섬긴 것이다. 이것은 그 흔적이었다.

심지어 터널은 점점 기이하게 변모해, 더는 인간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그것은 인간보다도 대형 설치류에게 어울렸다.

"돌고 있어요."

노엘이 속삭였다.

"무슨 말인가?"

"우리, 아까부터 돌고 있어요. 이 길은, 원입니다. 아주 커다란 원이요."

나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는 정말로 길이 우측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지만, 이런 길이 계속된다면 틀림없이 원 모양을 그리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크기를 미뤄본다면, 겨우 웨스트 노우드 묘지나 남부 런던만을 감싸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런던 전체를 돌고 있군...."

나는 비명을 지르듯 탄식했다. 굴은 우연히 런던 아래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된 길이었다. 자신들이 다니기 쉽도록 바닥에 대변과 흙을 섞어놓은 복도 말이다.

그것이 무슨 의도로 지어졌건, 설계자는 런던 전체에 대한 악의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수천 년 전에 갈라져 나온 인간의 아종은 선한 이웃이 아님은 분명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지상에서 완전히 분리된 지하 세계로 넘어왔다.

지하 특유의 한기가 벗겨져 나가고, 지면에서 정체불명의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동사할 지경이었던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면 도리어 열기가 느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맨틀 같은 것보다 생물의 체온처럼 느껴졌다.

달리는 말 위에 올랐을 때 느껴지는 그런 열기 말이다.

"보세요, 박사님."

노엘이 손을 뻗었다. 아직 지구의 밑바닥에는 닿지도 못했건만, 길은 광활한 분기점을 만들었다.

광활하다는 표현에는 어떤 과장도 없었다. 원의 바깥쪽에만 있었던 터널 입구와 달리, 마침내 원의 안쪽에 나타난 틈새는 멀리서 보아도 족히 십수 미터는 되는 높이였다.

우리는 한참이나 더 걸어야 겨우 그 틈새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리고 틈새 너머 드러난 전경은, 거대한 지하 도시였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광경이 그저 비이성적이었다. 누가 감히 런던 아래에 또 다른 지하 문명이 존재하리라 예측할 수 있을까. 저들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도시를 짓고, 지상으로 굴을 파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어둠에 짓눌린 도시는 볼수록 익숙한 광경이었다. 건축 양식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이 우리에게 익숙한 유산이었다. 콜로세움, 바실리카, 배럴 볼트로 구성된 아치형 다리와 물이 흐르지 않는 송수로....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로마야, 여긴 로마였어."

2천년 전, 영국을 지배했던 로마는 몰락했다. 현재 영국을 지배하는 앵글로-색슨족의 침략을 받아서, 결국은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런던, 그들이 론디니움이라 불렀던 찬란한 도시는 야만족의 파괴에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론디니움은 여기 있다!

한때, 브리튼 제도를 지배했던 문명의 잔해가 고스란히 이 지하에 매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을 눈앞에 두고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로마인이었어."

"무, 무슨 말입니까?"

이건 유적지가 아니었다. 여전히 이곳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까 본 가짜 구울은 로마인이었단 말이네. 그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천 년 전부터 이 지하에 있었던 거야!"

내 머릿속엔 악몽 같은 영감이 번개 치듯 내리꽂혔다.

족히 수십 만 명은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도시가 매몰되며, 모든 시민이 생매장당한 것이다. 그들은 지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고, 수십 대에 걸쳐 근친 교배를 거듭한 끝에 그토록 변질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도시 쪽으로 걸어나왔다.

론디니움은 인간이 사는 도시 같지 않았다. 거리에는 마른 대변이 칠해져 있었고, 송수로에는 썩은 물이 흘렀다. 그것은 시체가 부패할 때 나오는 그런 썩은 핏국물이었다. 강물과 지하수를 끌어쓰던 축복받은 도시는 불결의 온상이 되어 있었다.

노엘은 토하려 했지만, 이미 모두 게워낸지라 신 위액만 맥없이 토해냈다.

"아무것도 만지지 말게."

"네... 네... 말하지 않으셔도 그러려고요...."

거리를 둘러본 노엘은 힘없이 대답했다.

이토록 불결한 환경이 수천 년간 얼마나 치명적인 균을 키워냈을지 몰랐다. 나는 그것에 대해 즉석에서 설명할 자신이 없어, 그저 주의만을 당부했다.

도시가 지하로 가라앉은 뒤, 공포가 거리를 덮쳤을 것이다. 그리고 지성은 몰락하고 기아와 고통만이 남은 채로 수백 년에 걸쳐 처절히 몰락했을 것이다. 건물 대부분은 밖에서부터 부서져 있었다. 약탈과 학살은 일상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도시는 그저 고요했다. 몇 명이나 살아남았을까. 어쩌면 우리가 죽인 자가 최후의 생존자일 지도 몰랐다.

"나가려고 했던 걸까요?"

노엘은 터널을 되돌아보며 물었다.

"지난 천오백 년 동안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뚫은 거겠죠. 그리고, 그리고, 염원하던 지상에 도착한 후에, 자신들이 더는 지상에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겠죠."

그는 불안한 목소리로 자신의 추측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묘지기들을 만나서, 그들이 가진 은으로... 먹을 것을 산 거고요."

노엘은 아직 그들의 불행한 역사를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그 역겨운 식성을 혐오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것처럼 심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은 평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흔적을 미뤄보아, 론디니움의 침강은 단시간에 일어났다. 시민 대부분은 대피조차 하지 못하고 수 킬로미터나 되는 지하에 생매장됐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이 지상으로 향했다면, 어째서 내려올수록 터널의 양식이 조잡해진 것인가. 오히려 가장 온전해야 할 것은, 도시가 여전히 로마로 기능할 때 지어진 마지막 터널이어야 했다.

여전히 이곳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왔던 길로 가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먼저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노엘은 아직 아버지를 찾고 있었고, 나 또한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셜리 마리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길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처참히 물어 뜯겨, 일말의 소생 가능성도 없는 육편으로 발견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우리는 걸어야 했다.

핏국물은 건물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르지 않은 진액은 하수도로 흘러내려, 송수관을 타고 거리에 흘러나왔다. 악취에 홀린 파리처럼 우리는 그것을 쫓았다. 바실리카. 한때, 라틴의 신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번갈아 섬겼을 사원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새로운 악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실리카의 문턱을 밟은 우리는, 마침내 발견되지 않은 묘지기와 광부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섬기는 원시 신앙은, 아마도 인신공양일 것이다.

"아버지!"

나는 그들의 손에 전시되고 있는 루벤 어거스틴의 시체를 보았다. 죽이기 위해 그리 한 것인지, 혹은 죽은 후에 가공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건, 나는 그 모든 해골이 어째서 검게 물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 로마인들은 노엘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겁먹은 짐승이었다. 노엘은 나를 밀쳐 넘어트리고는, 부숴진 건물 파편을 들고 미친 듯이 그것들에 다가갔다.

────퍽! 퍽! 퍽! 퍽!

"아악! 아악!"

목숨을 애원하듯 울부짖는 로마인들이 으깨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노엘 중 누가 더 짐승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바닥을 기었다. 쌓여 있는 시체는 묘지기와 광부뿐만이 아니었다. 더욱 오래된 시체도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

시체 더미를 파고 들던 나는 한 여인의 머리통을 품에 안았다.

"아아! 신이시여! 저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 순간, 지면이 요동쳤다. 바닥이 갈라지고, 무수한 시체 더미가 끝도 없는 어둠으로 꺼졌다.

"안돼!"

나는 루벤의 시체와 함께 떨어지려 하는 노엘을 막았다. 그는 멍하니 추락을 응시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고 급하게 일으켜 세웠다.

"어서 일어나게! 여길 벗어나야 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지진은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도시가 이토록 불안정한 지반 위에 서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노엘은 나를 부축한 채, 멍한 표정으로 계속 걸었다. 무너진 바닥 밑에서는 탈 듯이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그것은 생물의 날숨이었다.

도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인류가 수천년간 이룩해 온 문명이 깊은 심연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나는 건물이 가라앉은 도시의 바닥을 보았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런던은 추락해서 멸망했다.

노엘은 계속 걸었다. 걷는 것을 멈추면 죽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뒤편을 보았다. 로마인들은 땅을 파고 있었다. 모든 추측이 반대였던 것이다.

그들은 올라가기 위해 굴을 판 것이 아니다. 굴을 파서 스스로 도시를 지하에 처박은 것이다. 오직 먹히기 위해서, 수천 년간 멈추지 않고 일해온 것이다.

우리는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무수히 많은 터널 입구를 지난 끝에, 우리는 처음 떨어졌던 그곳에 도착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는데, 땅에 파묻혔던 시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직전의 지진에 모두 땅 밑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그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깡. 깡.

"거기, 사람입니까?"

뚫린 천장 너머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친 노동자 억양이었다. 깡. 깡.

"도와주게! 여기 떨어졌네!"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아니, 안돼! 사다리, 사다리를 내려주게! 어딘가 있을 거야!"

나는 마리의 머리통을 안은 채로 외쳤다. 노엘은 지상에 도착한 이후, 아무 말도 없이 웅크려 앉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그를 걱정해 몇 번이나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깡. 깡.

잠시 후, 남자가 돌아왔다. 깡. 깡.

"사다리가 화장터에 있었습니다!"

노엘은 말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도 사다리를 타는데 도움받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가 다 오른 뒤에 사다리를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사다리를 올려!"

"네?"

"올려! 빨리!"

엎어질 듯이 지상에 도착하고, 나는 사다리를 허겁지겁 잡아당겼다. 귓속에 맴돌던 땅 파는 소리가 홀연히 사라졌다.

"허억... 허억...."

"왜, 왜 그러십니까?"

나는 지하를 내려다봤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닐세."

"저, 아까, 그 일행 분은 아무 말 없이 갔습니다."

그러고보니 노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홀연히 묘지를 떠난 것이다. 나는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네는...?"

"마부입니다. 시체를 싣고 왔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길래 들어왔습니다."

"그런가... 잘 됐군. 나를 좀 태워줄 수 있나?"

"아뇨, 저는 시체만 날라서요."

나는 마리의 머리통을 보였다.

"그래, 잘됐군! 내가 부탁하는 것도 시체라네!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네! 빨리!"

마부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투둑. 투둑.

운구마차의 지붕 위로 빗물이 떨어졌다. 마부는 좌석에 앉은 내 눈치를 끊임없이 살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앞으로 있을 거사와 비교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저 멀리, 불길하기 짝에 없는 아서 프랑크의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은 우리의 이단 행위를 저주하듯 맹렬히 번개를 쏟아냈다. 저택의 피뢰침에 번개가 내리꽂혔다. 이렇듯  천벌조차 이젠 인간에게 닿지 않는 법이다.

인간은 신이 주지 않는 것을 악마에게서 찾는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사자소생.

"저를 용서하소서...."

광인의 발상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미친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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