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필레몬 허버트는 죽었다...(후략)
"마리, 거기 있나?"
프랑켄슈타인이 떠나고, 나는 공연히 불안한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다행히도 불안은 기우에 그쳐, 마리는 금방 방문 너머로 나타났다. 그녀는 말없이 선 채, 내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는데, 나 역시 이렇다 할 용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곧바로 말하진 못했다.
"...차를 좀 갖다 주게. 목이 타는군."
성의없는 핑계였다.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내게는 그저 기괴하게만 보일 뿐인 저 움직임에서, 나는 미약한 들뜸을 발견했다. 그녀는 여전히 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믿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 더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멍하니 문 너머를 응시하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서가 보낸 편지 봉투를 들어 올렸다. 나는 그에게 이미 세 통의 편지를 받았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은 여기 담겨 있을 것이다.
그는 의미 없는 일을 사랑하지만, 진지할 줄 모르는 자는 아니었다. 굳이 일반우체국에 대한 정보까지 프랑켄슈타인에게 전한 것은, 이 편지를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이라는 그 나름의 권고임이 분명했다.
나는 마리의 일은 잠시 제쳐두고 편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봉투 옆면이나 밑면에 세공의 흔적은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인장이 다시 붙어진 것이 아닌지 확인하며 뜯어 열었다. 안에는 손으로 잡아 찢은 듯이 투박한 종이 한 장이 꽂혀 있었는데, 그걸 편지지라 불러도 될지 고민했다.
어쨌거나, 종이는 아주 부자연스러웠다. 누군가 검열한 흔적이라면, 그자는 첩보원으로서 재능이 지독할 만큼 없는 자가 분명했다. 고로, 나는 이것을 아서의 장난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편지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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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몬 허버트는 죽었다.
그는 용감한 해군이고,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생이며, 위대한 새앙쥐 종격막 탐구회의 회원이지만, 상류 사회의 낙오자이고, 대학의 교수이자, 여자를 모르는 정결한 자이며, 잔인한 살인자이다. 또한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고, 아비를 잃은 고아이며, 불미스러운 추문 많은 자이며, 바지를 혐오하는 지독한 노출광이었다.
그를 잃은 것은 비극이지만, 왕립 해군은 그가 없어도 여전히 건재하다. 장례식에서는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ps.지난 세 통의 편지는 내가 보낸 것이 아니니, 믿지 말고 아궁이에 태워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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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지에는 악의적인 문구가 가득했다.
장난으로라도 남에게 보낼 만한 편지는 아니었다. 아서가 비록 세상에서 제일 나이 많은 장난꾸러기라고는 해도, 그는 이렇게 유치하게 타인을 조롱하지 않는다. 그는 아주 점잖고 예의 바르게 상대를 욕보일 방법을 찾는데 일생을 바친 자였다.
이건 장난이었고, 그것도 말장난이었으며, 그렇다면 암호였다.
나는 이런 말장난에 대해 잘 알았다. 이건 내가 그와 같은 클럽에 속해 있던 20년 전에 그가 개발했는지, 혹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족히 두 달은 주변 사람을 괴롭힌 말장난이었다.
물론 그 주변 사람의 범주 안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 있었고, 나는 두 달 넘게 그 모든 수수께끼로 골치를 썩혀야 했다. 덕분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번잡한 문장의 의도가 훤히 들어왔으니 세상 일은 도무지 모를 것이다.
나는 천천히 문장을 읽었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찌르르....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마리는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있고, 아마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그녀가 손님을 맞는 것이 문제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편지를 내려놓고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갔다.
잠금을 풀고, 문을 열자 문앞에는 웬 군인 한 명이 서 있었다.
"허버트, 잘 지냈나?"
해군 장성복을 입은 남자는 내게 친한 척하며 인사했다. 그의 가슴팍에는 왕실 빅토리아 기사 훈장이 걸려 있었는데, 나는 그 남자의 정체를 아주 잘 알았다. 비단 눈앞의 군인이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군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입대했고, 같은 전투에 참여한 전우였다. 그는 사르데냐의 전쟁 영웅이자,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만난 역사 속 유명 인물이었다.
"로버트! 자네가 어쩐 일인가!"
남자의 이름은 로버트 팰컨 스콧, 아문센과 남극점을 두고 다툰 경쟁자로 이름을 남길 해군 대령이었다.
"아주 잘 나간다고 들었네. 대령이 되었다지?"
"운이 좋았지."
말로는 겸양을 떨어도, 스콧의 가장 세밀한 동작마저 타인의 찬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통 있는 해군 집안 출신인 그는 군인다운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는데, 짐짓 오만하게 보이는 그 태도 때문에 아군만큼 적을 많이 만들곤 했다.
나는 그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이 신축 아파트의 모든 층에는 응접실이 달려 있었는데, 건축가가 마지막에 급하게 떠올린 것처럼 좁고 구석진 곳에 놓여 있었다. 굳이 필요하다고 하니 마지못해 지은 티가 역력했다.
그래도 며칠 전과 비교하면 응접실은 새것 같이 깨끗했다. 비록 쥐구멍은 여전히 뚫려 있었지만, 적어도 쥐들이 집주인의 행차를 방해할 만큼 콧대 높진 않았다.
스콧은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말했다.
"출소 축하하네."
"공공연하게 축하받을 일은 아니긴 하지만... 고맙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떨떨했다. 내가 감옥에서 나온 지 고작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통 믿기지 않았다.
"자네는 어째 제대하고 난 뒤에 더 혈기왕성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 같군. 차라리 해군에 재입대하는 것은 어떤가?"
"지독한 농담이군."
"아니, 정말로,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나는 아직도 자네만큼 군인이 어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스콧은 진지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말을 돌렸다.
"언제부터 말을 그렇게 잘하게 됐나? 너무 띄워 주니 귀가 가렵군."
"15년 전 여름을 기억하나?"
"사르데냐."
나는 낮게 읊조렸다.
"꿈 많은 청년들의 무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나는 자네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스콧은 웃으며 말했다.
"섬에서 가장 위험한 전장이라는 곳에 가보면 항상 자네가 있더군. 꼭 죽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물불 가릴 줄을 몰랐지. 그해 여름에 우린 모두 자네에게 목숨을 빚진 거야. 그런 게 군인 정신이지. 안 그런가?"
나는 이와 같은 말을 언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그래, 분명 아서였다. 1년 전, 프랑크 저택에서 20년 만에 재회한 아서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자네가 그렇게 열렬한 모병관인 줄 몰랐군. 어쨌건, 그 용맹한 청년 이야기는 잘 들었네. 그래서 이 늙은 다리 병신한테 할 얘기가 뭔가?"
스콧과 하는 대화는 나를 20년 전으로 되돌려줬다. 나는 무심코 군 시절에나 쓰던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스콧은 내 실수를 말로 지적하는 대신 히죽 웃고는 본론을 꺼냈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퇴역한 장교가 아니라, 모험가로서 지식이 필요해. 괜찮겠나?"
"내 도움이라고? 물론이지, 자네와 내 사이 아닌가! 목숨조차 맡긴 사이인데 이제와서 사양할 게 뭔가?"
이 시점에서 나는 그가 어떤 용건으로 날 찾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말했듯이, 스콧은 현재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군인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의 도전은 오래도록 이름을 남겼다.
"발견 원정이라고 들어봤나?"
"귀를 틀어막고 사는 게 아닌 이상, 런던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겠지."
발견 원정.
20세기가 코앞까지 당도한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는 급격하게 좁아졌다. 과거에는 족히 한 달은 걸리던 여행길이 기관차로 하루 거리로 좁혀진 이 시대. 여전히 세계 지도에는 공백이 가득 남아 있었다.
남방의 암흑 대륙, 세계의 끝에 위치한 북극점과 남극점, 고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태평양의 작은 섬, 그리고 아메리카 서쪽에 있는 서방의 신비하고 주술적인 국가들까지.
그런 미지에 인류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민중의 탐구열은 극에 달했고,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도착적으로 갈망했다.
구미권의 각 국가는 위신을 걸고, 국제적인 경쟁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했고, 수많은 탐험가가 부와 명예를 좇아 밝혀지지 않은 해안선 너머로 출발했다. 전통적인 해양 강호, 대영제국이 거기에 뒤처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왕립 학회, 왕립 지리 학회, 왕립 해군이 손을 잡았다.
항구에 잠들어 있을 뿐인 영국 함대와 우수한 해군 장교들이 원정 계획을 통해 세계 각지로 출발했다. 이것은 세계적인 관심사였고, 어떤 의미로 국제 스포츠 시대의 서막과도 같았다. 모든 런던 시민은 영국의 승전보만을 애타게 기다렸고, 내 출소 소식이 신문을 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이제는 내가 탐험으로도 자네보다 낫지 않군."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인물을 로버트 팰컨 스콧이다. 아문센과 경쟁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인자 말이다.
남극 원정대장으로 선출된 그는 이미 국민적인 기대를 한몸에 받는 매스컴 영웅이었고, 이 시대의 진정한 주역 중 한 명이었다. 보잘것없는 경력뿐인 내가 아닌 그가 말이다.
"무슨 말인가. 영국에서 암흑 대륙에 관해 자네만큼 유명한 자는 없어."
"리빙스턴 박사가 있지 않나?"
나의 지극히 정당한 반박에 스콧을 할 말을 잃고는 눈을 굴렸다. 그는 방금보다 훨씬 어색한 말투로 나를 변호하려 들었다.
"과거의 인물과 경쟁하는 건 올바르지 못하지. 일단, 지금 런던에서는 자네가 제일 유명한 편 아닌가."
"내 유명세에 대한 왈가불가는 이쯤하고, 용건이나 계속 얘기하지."
"알고 있겠지만, 이번 남극 원정대에서 대장을 맡게 되었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하네."
"그리고 나는 자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해."
그의 진지한 눈을 보고, 나는 그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내 제대 사유에 대해 알고 있지 않던가?"
"그래, 그리고 자네는 다리를 핑계로 제대하고 1년 만에 탐험가로 전직했지. 그 소식을 듣고 우리가 얼마나 네 욕을 했는지 상상도 못할걸."
할 말이 없었다.
"그때는 젊었고, 거기는 암흑 대륙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나는 대부분 시간을 배 위에서 보냈네. 강을 타고 대륙을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됐고, 다른 비결은 없었어. 남극과는 완전히 다르지."
"마치 남극을 가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스콧은 예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간교를 부릴 줄 모르던 자였는데, 나이를 먹으니 여우처럼 눈치 빨라졌다. 나는 애써 말을 돌렸다.
"왕립 학회의 작자들이 날 데려가는 걸 좋아하진 않을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말게. 학회는 대원을 선정할 권리를 일임했고, 나는 그저 그들이 지정한 몇몇 학자를 동반하고, 몇 가지 측량 자료만 제출하면 뭘 해도 내 자유라네."
그는 완전히 고집불통이었다.
사실, 그의 제안은 특혜나 다름없었다. 영국에 사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남극 원정대에 참가하고 싶어했다. 그럼에도 그는 친분을 이유로 내게 먼저 제안한 것이다.
"남극이라...."
나는 흔들렸다. 올드코트 대학 취임이라는 중대사를 눈앞에 뒀음에도, 내 마음은 그의 제안에 끌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런던을 떠나고 싶었다. 지난 1년간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몇 년간 미지의 세계에서 방랑하는 것도 좋을지 몰랐다.
그 순간, 문 손잡이가 돌아갔다.
나는 간신히 마리에게 맡긴 일을 떠올렸다. 아무 말도 없이 방에서 응접실로 이동한 탓에, 마리는 차를 들고 나를 찾고 있을 테고....
"잠깐, 들어오지 말게!"
남극 이야기로 정신이 팔린 탓에 반응이 너무 늦고 말았다. 문이 열리고, 차 주전자와 스콘 바구니가 얹어진 쟁반을 들고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린 스콧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에 광기와 공포가 소용돌이쳤다. 누구보다 많은 자를 죽인 군인은 죽은 자를 그토록 두려워한다. 생과 사가 낳은 기괴한 순환고리이다.
"뭔가, 저 괴물은?"
"로버트, 진정하게. 그녀는 내 가정부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리는 그 기세에 놀라 뒷걸음질쳤다.
"자네 미쳤나! 아니면 내가 미친 건가? 저걸 어떻게 가정부라고 부를 수 있지? 믿을 수 없어! 저런 괴물을 집 안에 숨겨 기르고 있었다니!"
"로버트!"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돌발적인 공포는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가 사고를 치기 전에 멈춰 세우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 나와 달리, 그는 아주 건장한 현역 군인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마저 하지! 자네의 집이 아닌 곳에서 말이야!"
스콧은 문 앞에 서 있는 마리를 밀치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직후, 곧바로 거칠게 닫는 소리가 따라왔다. 마리의 몸은 기우뚱 바닥으로 쓰러졌다. 쟁반에 든 차와 빵이 바닥에 뒹굴었다. 나는 지팡이를 내던지다시피 그녀에게 달려가 안아 일으켰다.
"마리, 괜찮나? 다친 곳은...."
멍청한 질문이었다. 다친다는 표현은 생물에밖에 쓸 수 없다.
"주인님...."
마리가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괴물인가요?"
"...나를 원망하나?"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그렇겠지.
"저는 정말로 어디도 갈 수 없군요."
"미안하네...."
프랑켄슈타인이 옳았다. 나는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 차라리 나는 이 순간 내가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져 사탄의 아가리에 처박히길 바랐다. 하지만 마리는 원망조차 말하지 않았다.
"주인님, 사라지지 말아 주세요."
나는 깨달았다. 진정 혐오스러운 괴물은 나 자신이다. 이 순수한 처녀의 모습은 내가 얼마나 혐오스럽고 옹졸한지 생각하면 비할 바 없이 정결한 것이었다.
나는 마리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의 눈을 마주 봤다. 죄책감을 핑계로 한 도피를 끝낼 때였다.
"오늘 밤, 내 방으로 오게. 나와 자네에게 일어난 일, 지금 런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전부 말해주겠네. 틀림없이 듣기 괴로운 것이고, 이야기가 끝나면 나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네."
마리의 눈이 부자연스럽게 깜빡였다.
"오지 않는다면, 내일 당장 수소문해 한적한 시골에 집을 한 채 마련하겠네. 햇빛에 약하다고 말하고 얼굴과 몸을 가린다면 의심받진 않을 거야. 그래도 의심한다면 다른 곳에 이주할 수 있도록 돕겠네. 돈은 매달 부족하지 않게 부칠 테니,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내가 망친 삶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나는 마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눈으로도, 얼굴로도 말할 수 없는 벙어리였다. 눈으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나의 오랜 믿음도 그녀 앞에서는 런던 새벽의 물안개보다 불투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조금 진정된 것 같다고 믿었다.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번에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며 급조한 먼지 많은 그 방 말이다.
잠시 후, 나도 내 방으로 향했다. 바닥에 떨어진 스콘은 쥐 새끼 말고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아서의 편지가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것을 다시 살폈다. 그의 암호는 어린아이조차 간단히 풀 수 있는 단순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저 무수히 많은 의미 없는 문장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만 맞춰보면 되니까.
그저 편지를 거꾸로 읽으면 된다.
『그를 잃은 것은 비극이지만, 왕립 해군은 그가 없어도 여전히 건재하다. 장례식에서는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왕립 해군(Royal navy)은 내가 없어도 된다. 그리고 나는 용감한 해군(Navy)이다. 즉, 남는 건 Royal이다.
필요한 것은 예의(Polite)이고, 나는 상류 사회(Polite society)에서 추방되었으니, 남는 것은 Society다.
합치면 Royal Society, 왕립 학회를 말한다.
그리고 추신에 아서는 이렇게 말했다.
『ps.지난 세 통의 편지는 내가 보낸 것이 아니니, 믿지 말고 아궁이에 태워버리게.』
그는 아주 정성 들여 이 한 문장을 말하려 한 것이다.
나는 편지를 내려놓고 숨을 집어삼켰다. 아서는 적의 실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왕립 학회를 믿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