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기깔찬 향기
그날 이후, 나는 한 달간 내외적으로 올드코트 대학에 대해 알아보고 다녔다.
수업을 나간 날은 하루종일 대학에 머무르며 학장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찾아보고 다녔고, 그러지 않은 날에는 올드코트 졸업생 위주로 찾아다니며 탐문했다.
다행히 내게는 올드코트 재임 교수라는 명분이 있었고, 졸업생들과 약속을 잡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의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어떤 소문이 돌지 모르는 이상, 대놓고 학장에 대해 파고들 수는 없으니 적당한 핑곗거리가 중요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마리 그녀의 이름을 빌렸다.
"내 밑에서 일하고 있는 똑똑한 가정부 여성이 있는데, 그녀가 대학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올드코트에 편입시킬까 하는데, 졸업생의 시각에서 대학의 명예를 흠잡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터무니없는 질문이지만, 그것이 이 시대에는 통용됐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듯이, 세계 최고의 선진 대학 케임브리지만 하더라도 여성 칼리지를 별도로 나눠놓고, 그들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 그 외 대다수 대학이 여성 입학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하층민 여성의 특례 입학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걸 고려한다면, 내가 만난 올드코트 졸업생 절반이 격분하며 반대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놀라운 부분은 절반이나 되는 졸업생이 중립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일 터다. 올드코트는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드물 정도로 열린 사고를 품고 있었다. 그 말도 안 되게 중세적인 폐쇄주의 관습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일단, 그렇게 약속을 잡고 나서, 나는 또 다른 기이한 체험을 했다.
첫 인사말에 따라, 상대의 반응이 극적으로 바뀌는 체험 말이다.
"저는 이번에 성 헨리 8세 칼리지의 교수로 취임한 필레몬 허버트입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이름은 런던에서 제법 알려진 편이다.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나는 내 이름을 말했을 때 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무수히 봐왔다. 그러나, 올드코트 졸업생들은 달랐다.
그들은 내 이름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칼리지의 이름을 들으면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눈꼬리를 찢었다. 거기 담긴 것은 그저 멸시뿐으로, 그때부터 그들은 어떤 말에도 무성의한 대답을 하고 마는 것이다.
"저는 이번에 올드코트 대학에 교수로 취임한 필레몬 허버트입니다."
반면, 그들의 폐쇄적인 문화에 어울려, 이렇게 칼리지를 언급하지 않고 인사하면 그들은 아주 교양 있는 신사 숙녀가 되었다.
이토록 인사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상대가 프리메이슨인지 뭔지를 흉내낸 비밀주의에 빠져 있는 얼간이들이라면 말이다.
일단 이렇게 이야기를 텄더라도, 곧바로 본론을 꺼낼 순 없었다.
나는 온종일 상류 사회에서나 통용될 법한 지루한 사냥 이야기 같은 것을 지껄이다가 이야기의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지나가듯이 조심스럽게 말이다.
(자연스러운 유도 후에) "말이 나와서 그렇습니다만, ■■■ ■■ ■■■ 학장님은 귀하께서 재학하실 때도 그랬습니까?"
이 말을 꺼내는 순간, 사교적인 웃음을 짓고 있던 그들의 얼굴에서 가식이 사라졌다. 그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내 의도를 살피며 애간장을 태웠다. 말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반대로 물은 더욱 많이 마시게 되었다.
그들은 모든 말을 "어..."나, "음..."으로 시작했는데, 좁아진 어깨 폭만큼 자신감도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겁니까?"하고 되려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학장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습니까?"
"나쁩니다, 몹시 나쁩니다. 모르십니까?"
내 입에서 나온 학장이라는 단어가 무슨 불경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들은 하늘을 힐끔힐끔 살폈는데 마치 신께 아첨하는 모양새였다.
"■■■ ■■ ■■■ 학장님은 예나 지금이나 신비로운 분이죠. 그분은 진흙을 모아 진주를 만드는 자니까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얘기하지 맙시다."
그들은 그렇게 선을 그었다. 두루뭉술한 대답을 마친 그들의 눈에서는 어떤 정보도 읽을 수 없었는데, 그만큼 남에게 속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 깊었다.
졸업생들은 여전히 학장의 그림자 아래에 갇혀 있었다. 나는 어떤 자가 이토록 오래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 ■■ ■■■라는 인물에 대해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렇게 외부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나는 겨울 학기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 수업은 첫날 이후 아주 여유로워졌는데, 한때 가득 찼던 강의실은 이제는 텅 비어 있었다. 남은 학생은 가장 열정적이던 학생도 아니고, 내게 적대적이던 학생도 아니고, 그저 말없이 필기하던 학생들이었다.
남은 학생은 고작 대여섯뿐으로, 그나마 정기적으로 내 수업에 들어오는 건 넷에 불과했다. 나는 그 사실에 적잖은 자괴감을 느꼈는데, 어디선가 티가 났는지 그 친절한 학생이 나를 위로했다.
"어... 원래 첫 수업 때는 다들 그래요. 이 수업만 유별난 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도 그다음 수업부터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 수업이 그 뒤로도 썩 재밌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참 어린 대학생에게 걱정 받았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내 마음을 더욱 충동질했다. 나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는데, 그 탓에 대학 내부 조사는 별로 진전되지 않았다.
일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은 알았다. 물론 나도 알았다! 그렇다고 교수로서 소임을 방기하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유치한 승부욕이 아니라, 내 의무를 다하려는 책임감의 발로인 셈이다.
여하튼, 내가 받은 첫인상과 다르지 않게, 올드코트 학생들은 아주 학구적이었고, 그들은 수업이 끝나고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들을 내게 건넸다.
그것에 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교내에 남을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그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밖에 조사할 시간이 없었는데, 그마저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 ■■ ■■■는 그가 미치고 있는 영향력에 비하면 아주 투명한 존재였다. 그의 흔적은 어디에나 있으나, 정작 그 본인의 자취는 무엇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날도 별 성과없는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올드코트는 중세가 만든 영국 최대의 미로였다.
벽 안에는 길이 있고, 길 너머에는 벽이 있었다. 큰 복도에서 벗어난 샛길은 대부분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고 끊겼는데, 5분 정도 걸은 끝에 방 하나 없이 막다른 길이 나타나는 허무맹랑한 일도 있었다. 여러 차례의 개축 끝에도, 올드코트의 건물들은 여전히 중세 시대의 비밀통로를 대부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빈 복도를 '세실 로드'라고 불렀는데, 유명 정치인 겸 기업가 세실 로즈의 목적 없는 허풍선이 식민정책에 대한 조롱을 담은 말장난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학생도 다니지 않을 것 같은 세실 로드 위주로 걸어 다니며 지도를 작성했다. 밖에서 봤을 때와 안에서 봤을 때, 벽 사이에 아주 넓은 공간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별로 놀랍지도 않지만, 아마 이 벽 안에 숨겨진 길이나 방 따위가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딘가에는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을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다이너마이트로 벽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아직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았기에 역시 그건 마지막 수단으로 미뤄뒀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세실 로드를 방황하고 있었다. 어감이 조금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인기척은 모퉁이 너머에서 느껴졌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는데, 입보다는 코에서 나는 비음이었다. 그곳이 막다른 길이란 사실은 전에 지나가다 기록했기에 알고 있었다. 사람이 있을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누가 갑자기 덤벼도 곧바로 반격할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벽을 잡고, 목발 소리가 최대한 들리지 않게 조심스러게 모퉁이에서 꺾었다.
모퉁이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벽면에 코를 붙이고 있는 여자였다.
"아."
눈이 마주친 그 젊은 여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벽에서 코를 떨어트렸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지?"
나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방심할 수 없었다.
우연, 그런 표현으로 넘어가기엔 이상한 점이 많았다. 그녀는 올드코트에서 가장 많이 나와 마주치고 대화한 사람이었다. 바로 석 달 전, 도서관에서 만난 이래로 몇 번이고 내게 말을 걸어 온 학생이었으니까.
주께서는 당신의 계획 아래 우연이 이토록 자주 일어나게 방치하지 않았다. 도서관과, 강의실이라면 몰라도 이런 장소에서 *우연하게* 마주치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아니요, 아무것도."
그녀는 서툰 말투로 변명했다. 그 말투가 아니더라도 거짓말이 뻔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닌 이상, 심지어 길을 잃었다고 해도 이런 막힌 골목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그녀는 재빨리 덧붙였다.
"제가 좁은 곳을 좋아해서요. 어두운 곳도 좋아하고요. 좁고 어두운 곳은 더 좋아해요."
수상쩍다고 할지, 유치한 말장난 같은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잘 속여 넘겼다고 믿는 눈치였는데, 내게는 어린아이가 커튼 뒤에 숨어놓고 어른 눈을 피했다고 믿는 꼴로밖에 안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속였다고 믿게 내버려뒀다.
이걸로 확신한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나와 무관한 이유로 여기에 있었다. 그걸 알고도 내막을 파고드는 것은 신사된 도리가 아니었다. 일단은 숙녀의 사생활이 아닌가.
나는 손에 쥔 힘을 풀어, 그녀 모르게 지팡이를 제자리로 되돌렸다.
"그래."
그러자 그녀는 굉장히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전분가요? 더 물어보시지 않나요?"
"자네는 아주 참견 많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모양이군."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비밀을 공개하는 마술사에게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 만났던 그녀는 갓 성인이 된 대학생 특유의 어른스러움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주변의 눈치를 상당히 살핀 가식이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아셨나요?"
"자네가 몇 살이지?"
"올해로 18살이요. 17살에 입학했죠."
"그래, 18세쯤 되었으면 대학에 와서까지 다른 사람이 신경 써주길 바라지 않지. 오히려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즐긴다면 모를까. 그런데 자네는 고작 교수가 사생활을 꼭 물어봐 줘야 한다는 듯이 말하지 않았나. 집에서 저녁 식사 후에 아버지에게 일과를 보고하듯이 말이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희 아버지는 옥스퍼드 대학 학장이시거든요. 그분은 제가 어디서나 어른스럽게 굴길 바라세요. 제 모든 사생활에 간섭하고 싶어 하시고요."
나는 유감을 담아 말했다.
"아, 그래, 그것참 큰 불행이구나."
"왜요?"
"아버지께서 케임브리지 학장이 되지 못하셨다는 뜻이니까."
내 대답에 학생은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 시원하게 웃는 여자였다. 런던에서는 크게 웃는 여자를 경박하다고 여기건만, 그녀는 차라리 소녀 같아서 그리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네요."
"사이가 나쁜가?"
"어... 그렇진 않아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제가 만나는 사람에 관심이 너무 많으셔요. 심지어 어디선가 드림캐쳐 같은 걸 구해와서 제가 자유롭게 꿈꾸지도 못하게 하신다니까요."
농담인가 싶었지만, 그녀는 썩 진지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녀는 처음보다 편하게 보였다.
"내가 듣기엔 꽤 근사한 아버지 같은데...."
"어휴... 교수님이 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셔서 그래요."
그러더니 이제는 맞먹으며 농담까지 한다.
처음 봤을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오래 얘기하고 보니 그녀는 아주 당돌했다. 집안에서 적지 않은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강한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어,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아니, 괜찮네."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사과했다.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어린 학생이 나를 가지고 농담한다고 화난 기색을 보일 만큼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
"교수님이야말로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길을 잃었네. 건물이 원체 복잡해야지 말이야."
나는 미리 준비한 변명을 읊었다. 언젠가 누군가 마주치고 물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도 그녀는 내 변명을 짧게 일축했다.
"왔던 길만 되돌아 다니면 되는데, 어떻게 길을 잃을 수가 있나요. 그거 거짓말이죠? 남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는 거죠? 비밀로 해드릴게요. 대신 제가 여기 있었다는 것도 비밀로 하겠다고 엄숙지게 약속해주세요. 그러면 공평하죠?"
사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내 변명은 아주 어설펐다. 왜냐하면, 런던에 사는 사람은 티가 나는 거짓말을 들으면, 도리어 물러나는 특유의 조심성이 있기 마련이니까. 다만, 이 말괄량이 아가씨에게는 그런 접근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엄숙지게?"
하지만, 영 이상한 표현이 있어 되묻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변명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만든 말이에요. 어릴 적부터 말을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어른이 되고도 버릇처럼 남아있어서요. 이건 영어 단어가 아닌가 보네요."
"뭐, 의미는 통했네. 그래, 약속하지. 엄숙지게."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그녀가 내게 조금도 적대적인 기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들은 바로, 그녀는 입학 1년, 기껏해야 2년 차에 불과하니, 어쩌면 학장에게 열광할 시간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뭐가 됐건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기깔차네요."
"그건 뭔지 모르겠군."
"어... 이것도 영어 단어가 아닌가요? 아주아주 좋다는 뜻이에요."
이것도 아마 그녀가 만든 신조어일 터다. 도무지 출처를 모를 그녀의 유아적인 표현력은... 솔직히 과감하고 대단한 편이었다. 19세기는 실제로 그런 언어학이 태동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학문적인 접근이 수반되었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런던 사람답지 않게, 자신의 기쁨을 여과 없이 얼굴에 드러냈다. 그리고 내 쪽으로 성큼 다가오려다가 앞으로 기우뚱 쓰러졌다.
아마도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었던 것일 터다. 그래서 다리가 풀려 앞으로 넘어지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나는 가까스로 앞으로 뛰어 그녀의 몸을 받쳤다.
"조심하게."
"아,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놀란 듯이 눈을 껌뻑였다. 나는 자세를 추스르다가, 어떤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들었다.
모퉁이 입구 쪽에서는 나지 않았던 냄새가, 안쪽으로 들어오니 선명하게 코끝을 자극했다. 그것은 음식물이 썩는 듯한 지독한 악취였다.
"교수님?"
나는 그녀의 불안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벽면에 몸을 붙였다. 이 벽 너머에서, 그간 여러 사건을 거치며 익숙해진 그런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잠깐 비켜보게."
"어라...."
맹한 소리를 내는 학생을 살짝 밀어놓고, 나는 벽면을 훑듯이 살폈다. 이 너머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리 생각하니 모퉁이 쪽에 돌 블록 하나가 유독 손때를 탄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거기에 손을 올리고 힘껏 밀었다.
────쿵.
나는 이런 광경을 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래, 프랑크 저택에 있던 지하실 입구 말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것은 조금 더 원시적인 동력을 사용하는지, 안쪽에서 도르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벽면이 갈라지고 철로 된 문이 드러났다.
그 굉음에 놀라 머리를 감쌌던 학생이 힐끔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글쎄, 우리가 올드코트의 201번째 비밀 통로를 발견한 것 같은데. 놀랍지만, 어떤 의미로 놀랍지 않군."
나는 애써 평정을 가장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건 사실이었지만, 설마 이렇게 노골적으로 존재할 줄은 몰랐다. 나는 기껏해야 구멍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건만, 중세 수도원의 비밀 통로를 여는 장치라니. 이토록 고전적일 수가.
벽이 갈라진 후, 악취는 더욱 심해졌다. 그 근원지는 분명 문 너머였다. 꿀꺽, 하는 침 삼키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어느샌가, 학생은 바로 옆까지 다가와 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게."
나는 위험한 기색을 느끼고 그녀를 만류하려 했지만, 그녀는 그대로 걸어가 철로 된 문을 밀어 열었다. 맨손으로 차가운 철문을 밀었으니 쓰릴 텐데, 그런 기색은 전혀 비추지 않았다.
사실 누군가와 같이 이 안에 들어가는 건 예정에 없었다. 나는 그녀를 멈춰 세울 생각으로 뒤따랐다.
실내는 청결한 도축장이었다.
돌과 벽돌로 지어져 찬 기운이 감돌던 외부 복도와 달리, 실내는 현대식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었다. 심지어 내부에는 복도에도 없는 에디슨 전구가 붙어 있어 그 열기로 따뜻하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벽면에는 뼈와 가죽을 자르기 위한 톱날이 크기별로 나열되어 있었고, 한편에 「포르말린」과 「알코올 소독약」이라고 적힌 병이 꽉 잠겨 있었다. 이미 많은 손이 거쳐 간 듯이 그 뚜껑에서는 알싸한 향이 매캐할 정도로 풍겼다.
그 바로 옆에는 어떤 명찰도 붙어 있지 않은 액체가 놓여 있었다. 물과 같이 맑은 액체에 약간 점성이 있어 보였는데, 전깃불에 비춘 그 액체가 깨끗한 숲 속 호수 표면처럼 아름답게 비추었다. 왠지 모르게 역겨웠다.
사람 한 명이 올라가 누울 만큼 거대한 철판이 중앙에 놓여 있었는데, 나는 프랑크 저택 지하에 있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험실을 떠올렸다.
물론, 내가 그것 때문에 도축장이란 표현을 쓴 것은 아니다.
혈향이었다.
아무리 닦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아주 짙은 피 냄새가 벽과 바닥에 배어 있었다. 꿉꿉한 습기가 실내 가득 맴돌아 썩은 고기조각 같은 악취를 풍겼다.
─────킁킁.
그리고, 바로 옆에서, 그녀는 게걸스럽게 냄새를 빨아 마시며, 넋이 나간 듯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아, 기깔차네요."
그녀의 입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