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빨간 봉오리
차마 숨쉬기도 힘든 악취 속에서, 그 앳된 여인은 꽃밭에 선 것처럼 향기에 도취하여 있었다.
"오싹오싹하지 않나요?"
그녀는 내게 물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지만 실은 혼잣말이었는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이 냄새가 좋아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거든요. 아무 걱정도 없는 그 평화롭던 나날. 노스탤지어. 거울. 플라밍고와 보낸 여름. 심장. 석탄 냄새. 검은 태양과 소방수와 기관장. 파란 장미. 내 키의 열 배는 되는 스톤헨지."
아무 관계성 없어 보이는 단어가 나열되었다. 이 순간, 그녀는 시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서정적인 광인 말이다. 그녀의 흐리멍덩한 눈 너머로 스노우 글로브처럼 반짝이는 동심이 한적히 흘렀다.
그제야 나는 모든 일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막힌 길 끝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녀는 여기 이어진 이 방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벽 너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향기가 난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마치 썩은 생선 위에 눌어붙는 파리처럼, 벽면에 붙어 몇 시간이고 그 냄새에 취해 있던 것이다.
나는 흐느적거리며 나아가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어라?"
내 악력에 붙들린 학생의 몸이 뒤로 기우뚱 기울었다. 그녀의 입에서 맹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러세요?"
"자네 아버지의 과보호도 슬슬 이해가 가는 참이네. 예전부터 그렇게 피 냄새를 좋아했나?"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게... 피 냄새라고요?"
그 말은 어쩐지 엉뚱하게 극적이었다. 피 냄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과 사랑에 빠지는 삶은 어떤 것일까. 흥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구태여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홀로 나지막한 고민에 빠진 그녀를 내버려둔 채, 나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학생을 대동하고 방 너머로 더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최소한 단서가 될 전리품을 챙기고자, 명찰이 붙어 있지 않은 유리병 앞으로 걸어갔다.
「포르말린」, 「알코올 소독약」, 그리고 이름없는 유리병.
나는 품속에서 찰랑거리는 수통을 꺼냈다. 그리고 안에 든 내용물은 단숨에 전부 삼켰다. 뜨거운 위스키가 목구멍으로 쏟아지며, 식도부터 위까지 이어지는 해부도를 생생히 그려줬다.
혀 위에 얹힌 알코올 잔향을 토해내며, 눈앞에 닫혀 있는 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뚜껑에는 투명한 액체가 묻어 있었는데, 그것이 묻은 탓에 가죽 장갑 끝이 미끈거렸다.
최악의 경우, 염산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렇지는 않은지 액체에 닿아도 장갑이나 수통은 멀쩡했다. 나는 수통을 깊게 담가, 그 투명한 액체를 가득 담았다.
지금 당장은 알아낼 방법이 없지만, 화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라면 답을 줄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있었더니, 멍하니 선 채로 사색하던 학생이 갑자기 내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내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지금 나가야 해요! 여기 있으면 안 돼요!"
그렇다고 끌려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녀의 절박한 분위기에 나는 무심코 병을 닫고 뒷걸음질쳤다. 문득 돌아본 그녀의 눈은 여전히 몽유병 환자처럼 흐릿했는데, 만약 그녀가 정말로 꿈을 꾸고 있다면 악몽임이 분명했다.
"빨리요!"
내가 힘으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지,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뒤늦게 톱날 같은 것을 보고 겁먹은 것일까, 그녀는 집안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듯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지금이 물러나기 딱 좋은 순간 같았다.
조사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여차하다 그녀가 다치거나 하면 나는 크게 낙심할 것 같았다. 퀴리 부인에게 닥친 비극은 여전히 내 마음 밑바닥에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 말괄량이 아가씨가 스스로 나가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순순히 그녀의 팔에 이끌렸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서 내 몸을 잡아끌었는데, 일찍 딸을 낳았다면 이 나이쯤 되었겠거니 하는 주책 맞은 감상마저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방을 나서고 철문이 닫히는 순간,
*쯧*
혀 차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벽이 닫혔다.
나는 잠깐 닫힌 문과 벽을 응시했다. 아무도 없던 그 방에 누군가가 있었다. 내게 지극히 악의를 품은 존재가 바로 뒤에 있었다.
"멈추지 마요. 고개 숙이고요."
그 어린 학생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노련했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런 일을 여러 번 해본 사람처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 걸어, 학생들이 다니는 큰 복도로 나왔다. 그제야 그녀는 내 팔을 놓아주고 날 노려봤다.
"정말, 얼굴이 들킨 건 전부 교수님 때문이에요, 교수님이 제때 안 나오니까! 지금까지 들킨 적 없었는데...."
그녀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지금까지 들은 적 없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꼭 아이가 토라진 모양새였다.
"어떻게 알았나?"
"뭐가요?"
"나는 심지어 그게 내 등 뒤에 붙을 때까지 눈치조차 못 챘건만, 보이지도 않는 그것을 대체 어떻게 알아챘느냐 묻는거네."
나는 내 경력에 나름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참전 군인만이 가질 수 있는 예리한 감각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조금 전의 사건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봤다는 것치고는 아주 빠르게 말했다.
그것이 사람의 도보 속도 정도로만 움직인다 쳐도, 그녀는 그것이 방 안에 들어오기 한참 전에 눈치챈 것이다.
"교수님은... 생각만큼 지혜로운 분이 아니셨네요. 그렇게 많은 일을 겪으신 것치고는요."
그녀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실망시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내게서 약간 거리감을 느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대체 그놈의 지혜가 뭔가? 자네가 말하는 지혜가, 현명한 자를 뜻하는 게 아니란 것은 이제 알겠네. 칼라스 학장 대리는 육감이라 표현했지."
"육감, 나쁘지 않은 표현이네요. 지혜란 통찰... 불가시(Invisible)의 적이에요."
그녀는 머뭇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누군가는 그것이 우주에서 온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것이 뇌에서 온다고 해요. 확실한 건, 그것을 가진 자는 남들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많은 것이라면?"
"말 그대로, 많은 것이요.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득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뇌 때문이에요. 인간의 조참한 뇌는 그걸 이해할 수 없기에 보지 않으려는 거예요. 하지만 지혜는 뇌를 성숙시키고, 본래 인간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하죠. ...죄송해요,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들으시겠죠?"
그 목소리 끝에는 체념이 묻어났다.
"인간의 인지 밖에 여러 존재가 있다는 건 알고 있네. 그 조참이란 표현 말고는 전부 알아들었으니 걱정 말게."
"그런가요?"
내 대답을 듣고,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조금 기뻐 보였다. 실망했다, 기뻐했다, 참 바쁘기도 했다.
"올드코트 학생은 모두 자네와 같은 걸 보고 있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밖에 몰라요. 학우들은 충분히 지혜롭지 못한걸요."
불운하게도, 나는 이 터무니없는 이야기의 태반이 진실임을 알았다. 인간의 정신이란 것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적의로 가득 차있는지 알았다.
"지금도 보이나? 그것들, 그 불가시한 존재들 말이네."
"이 대학에는 아주 많아요. 아주아주 많아요. 뇌가 없는 사람들이요. 눈도, 머리카락도, 눈썹도, 심지어 이마도 없어요. 그들은 언제나 벽면을 따라 걸어요."
나는 무심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는 내 옷깃을 잡았다.
"보이는 시늉하면 안 돼요. 이미 얼굴을 들켰으니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해요."
그녀는 다급하게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분명, 그녀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벽에 숨겨진 그 뻔한 장치조차 찾지 못하면서, 기이할 정도의 통찰력이었다.
"어떻게 될지 보기라도 한 것 같이 말하는군."
"어... 크게 다르진 않아요. 미래도 결국은 불가시한 것이니, 정말 지혜로운 자라면 미래조차 볼 수 있겠죠. 후... 이거 설명하기 정말 어렵네요."
그녀는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자네도 그런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어릴 적에는 좀 더 여러 가지를 봤던 것 같은데."
그 순간, 어째서인지 나는 오라클을 떠올렸다.
미래를 엿보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면, 그 기계장치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존재일 터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롭다는 ■■■ ■■ ■■■는 어떨까. 그 역시 미래를 엿볼 만큼 지혜로운 존재인가.
"그래, 그게 전부 사실이라고 하지."
"전부 사실인데요...."
그녀는 볼멘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게 있네. 그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
"그게 뭔가요?"
"자네야."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 봤다. 그녀는 멀뚱히 눈을 깜빡거렸다.
"자네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참상에 대해 어느 정도 통찰하고 있네.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들이 활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이 대학에 남아 있지?"
그녀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답답해하며 말을 이었다.
"학장 때문인가? 오늘 두 눈으로 봤겠지만, ■■■ ■■ ■■■는 출처가 불분명한 수상한 자야. 그는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이용한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네. 내가 자네였다면 대학을 떠나서 이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제야 내 말을 온전히 이해했는지, 그녀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아주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다른 학생들이 보여주는 열광적인 오르가슴의 대칭점에 놓인 것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유년기의 동심을 간직하고 있었고, 내게만 비밀을 고백하는 어린 소녀처럼 속삭였다.
"저는 오직 여기서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여기 남아 있답니다. 아, 그 흔흔했던 시절로 다시 한 번 돌아갈 수 있다면...."
그녀의 동심은 탁하고 붉었다.
나는 해질 무렵에 귀가했다. 학생과는 오늘 있었던 일을 서로 비밀로 하기로, 그리고 다시는 혼자서 그 비밀 방이 있는 곳에 가지 않기로 약속을 받은 후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후, 나는 실내에서 낯선 인기척을 느꼈다.
마리의 것은 아니었다. 최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녀는 사람 같은 기척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잘 조율된 태엽 시계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마리, 손님이 와 있나?"
그렇다고 하면 더욱 이상한 일이다. 마리는 자신의 변화를 자각한 이후, 나 없이는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인기척을 쫓아, 응접실로 다가갔다. 문 너머에서는 낮고 음울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아주 잘 알았다.
─────덜컥.
"프랑켄슈타인 박사."
호명된 마른 남자, 프랑켄슈타인은 고개만 돌려 내 쪽을 바라보며 묵례했다.
"주인 없는 집에 어쩐 일인가?"
"날이 워낙 추워서... 겨울에 손님을 문밖에 세워두는 것이 런던에선 흔한 일입니까?"
처음에는 변명하듯, 나중에는 퉁명스럽게, 그는 인격이 두 개라도 되는 듯이 굴었다.
"마리. 차라도 대접해 드리게."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래? 그렇다니까 가서 볼일을 보게."
자리에 앉아 있던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이전보다는 말수가 늘었다지만, 생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과묵했다.
나는 그녀가 떠난 자리에 앉아, 프랑켄슈타인과 마주 봤다.
"늦으셨군요, 올드코트 건입니까?"
"자네부터 대답하게."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리 때문인가?"
"지금쯤, 죽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불쾌한 말투였지만, 정작 화자 본인은 아주 담담했다.
"자해한 흔적도 없고, 감금한 것 같지도 않고, 놀라운 성과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밀랍으로 만들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죽음에서 조금 더 멀어진 기분이 드는군요."
"말해두지만, 날 기준으로 잡지 말게."
그러자, 프랑켄슈타인은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인간성을 정제한 완전한 이성을 마셨죠."
"그 얘긴 어디서 들었나?"
물을 것도 없었다. 나는 질문과 동시에 대답을 얻었다.
"아서가 섬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가 하는 말은 대부분 걸러 듣게."
그는 내 일화를 신나서 프랑켄슈타인 앞에서 풀어놨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내 *모험담*을 어떤 식으로 각색했을지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킬 박사의 유작이라 들었습니다. 그런 천재의 마지막 작업물을 음용한 경우이니, 역시 표본으로는 적절하지 않겠군요."
"그에 대해 좀 알고 있나?"
"화학도 중에 그를 모르는 자는 없을 겁니다. 왕립 학회에 그보다 나은 화학자도 없었으니까요. 그런 자를 사고로 잃은 것은 이 시대의 큰 손실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지킬 박사를 평가한다, 참으로 허황한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짧은 회화에서 많은 걸 얻었다.
아서의 의중에 대해서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왕립 학회에 대한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프랑크 학술회와 왕립 학회의 관계에 대해 모르고 있다.
그 의미는 명료했다. 아서는 프랑켄슈타인을 믿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는 애초에 처음부터 편지를 프랑켄슈타인에게 옮기게 하고, 그 내용을 암호로 적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내게 은유적인 경고를 남긴 것이었다.
나는 간만에 아서의 뜻에 동의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위험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
"용건은 그것뿐이었나?"
"제가 달리 방문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제 질문에 답해주시죠."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했던 말을 따라 했다. 물론 대답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이미 전해 들었겠지만, 올드코트 내부에는 미심쩍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일의 배후에 ■■■ ■■ ■■■ 학장이 관여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 말이 나온 김에 이걸 봐주겠나?"
나는 품에서 수통을 꺼내서 내밀었다.
"대학 내부에 정성스럽게 숨겨놓은 방이 있더군. 거기서 찾은 액체라네."
그는 미심쩍은 눈으로 수통을 바라보다, 야생동물처럼 조심스럽게 제 쪽으로 잡아끌었다.
"만지거나 냄새 맡아도 됩니까?"
"나는 둘 다 했고, 지금은 멀쩡하군."
"기왕이면 신뢰감이 들도록 더 과학적인 표현을 써주지 않겠습니까?"
"내 몸으로 임상시험 했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소리로 불평하며 수통 입구를 열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져간 뒤에, 손부채질하며 냄새를 맡았다.
"알코올 냄새가 납니다."
"그래, 몇 시간 전까지 위스키가 담겨 있었지."
나는 프랑켄슈타인의 시선을 외면했다. 결국엔 냄새를 맡는 건 포기했는지, 그는 자신의 손등 위로 수통을 기울였다. 약한 점성을 띈 액체가 그 위에 흘렀다. 여전히 맑고 불길한 빛깔이었다.
"혹시 이게 있던 방에 다른 것들은 뭐가 있었습니까?"
"포르말린. 알코올 소독액. 그리고 톱날이 네 종류 정도 있었지. 이 액체를 담았던 병은 혼자 명찰이 없고, 그중에서 가장 컸지. 뭔지 알겠나?"
"병은 얼마나 컸습니까?"
"대충, 2갤런 정도 되어 보였지."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손을 펼쳐 보였다. 2갤런, 리터로는 10리터 정도의 양이었다.
"정확한 결과는 제대로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당장 제 소견으로는...."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손 위에 고인 액체를 손가락으로 저으며 뜸들였다.
"이건 뇌척수액이군요."
"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뇌를 보호하기 위해 두개골 안쪽에 존재하는 투명한 액체 말입니다. 보기에는 아주 솜씨 좋은 의사가 수술한 모양이군요, 아니면 뇌척수액을 빼내는 수술법을 따로 개발했던가요. 보통은 두개골을 자를 때, 피나 뼛가루가 섞여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건 아주 맑으니 피 한 방울 섞인 것 같지 않습니다. 두개골 윗부분에 혈관이 지나지 않는 부위를 정확히 절제한 거겠죠."
그는 액체가 묻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집었다. 나는 그 동작이 아주 역겹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의 머리에서 핏줄이 지나지 않는 부위를 표시하고 있었다.
"측정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사람 한 명에게서 0.3, 아니, 0.35갤런 정도 뇌수가 나온다고 치면, 병 안에는 여섯 명 정도의 뇌수가 들어 있었다고 환산할 수 있겠군요. 액체의 단위를 명으로 새어보는 건 처음이군요."
뇌가 없는 사람들. 나는 문득 그 표현을 떠올렸다.
"체외로 나온 뇌수는 신체 부위 중 가장 빠르게 부패합니다. 여기서는 썩은 냄새가 나지 않으니 아마 몸에서 뽑아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당신의 추측이 맞았군요. 올드코트에서는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계산을 마친 뒤에,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이게 뇌척수액이 맞다고 한다면요... 조사해보면 더 자세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수통은 가져가게. 다시는 거기 뭘 담아 마실 것 같지 않군."
내 말이 끝나자 그는 마지 못해 내 수통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그는 마침내 모든 용무가 끝났다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나저나 그 ■■■ ■■ ■■■ 학장이라는 자 말입니다."
코트 깃을 여미던 프랑켄슈타인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그게 사람 이름인 줄 몰랐는데, 정말로 실존하는 인물이 맞습니까? 저는 그게 영국 학계의 전통 같은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프랑켄슈타인은 몰랐느냐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1727년 이래, 왕립 학회에서 발표한 모든 논문의 공동 저자 말미에 ■■■ ■■ ■■■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 혹시 모르셨습니까? 그가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올해로 최소 169세가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