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학사모와 화환을 위하여
나는 대뜸 결론을 내놓았다.
"■■■ ■■ ■■■는 실존하지 않아."
모닝 코트를 차려입고 옷매무새를 정돈하던 아서는 나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굉장히 시시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실존하지 않는다고?"
"그래, 왕립 학회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지. 굳이 말하자면 올드코트 전체가, ■■■ ■■ ■■■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 젠장, 칼라스 학장 대리는 처음부터 정답을 말했군. 올드코트는 ■■■ ■■ ■■■의 양식장이었던 거야. 아니, 하나의 거대한 ■■■ ■■ ■■■였던 거지."
"잠깐, 잠깐. 숨 좀 쉬면서 말하지그래? ■■■ 아브라카다가 뭐 어쨌다고?"
"아브라카다가 아니라 ■■ ■■■라네. ■■■ ■■ ■■■."
나는 그의 말대로 숨을 골랐다.
"어디 외출하나?"
"아, 빨리도 눈치챘군. 왜, 내가 허락이라도 맡았어야 했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제집에서 외출 좀 해도 될까요? 오후 6시 전까지는 꼭 돌아올게요."
"말 한마디로 뭘 그렇게 삐딱하게 구나."
이제 막 눈치챈 사실이지만, 아서는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뜸들이지 않고 그 이유를 말했다.
"노란 외벽 회사(Yellow Facade Company) 경영 회의에 초대받았어."
노란 외벽 회사, 혹은 런던에서 가장 더러운 9개의 건물. 세간에서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대기 중 암모니아로 하얀 외벽이 노랗게 물드는 것은 런던에서도 가장 비위생적인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달리 말하면, 런던 중심가 말이다.
그리고 런던 시민은 누구나 그 말똥 더미 앞에서 일하고 싶어했고, 땅값은 쌓여 있는 말똥을 은으로 바꿔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곳에 각각 4층짜리 고층 건물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10개의 보험사를 두고 사람들은 조롱과 경애를 담아, 노란 외벽 회사(YFC)라 부르곤 했다.
한때는 리치먼드 Co.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소송 끝에 장렬히 해체되어 현재는 9개 회사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본래 실체가 뚜렷하던 집단은 아니었지만, 이들이 조합 문화에 받아들인 후에는 여러 분야에서 협업하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물려받은 자산을 까먹는 줄만 알았는데, 불리려는 기특한 생각을 하는지 몰랐군!"
아서는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말을 강조하고 싶거나, 기분이 나쁠 때 종종 그런 손동작을 취했다.
"내 장담컨대 거기서 득 되는 일은 무엇하나 건져올 수 없을걸. 그 승냥이 같은 강도 놈들은 내 정당한 유산을 자기들 것이라 착각하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아무리 꼬드겨도, 그놈들은 내게서 단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거야!"
그는 세차게 콧방귀 뀌었다.
"그러면서 가는 건 또 뭔가?"
"이게 좀 복잡하게 됐어. 그 작자들이 내 법적 상속인들과 손을 잡은 모양이야. 내가 정기적으로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멋대로 사망 신고를 넣더군. 한밤중에 찾아와 잠 깨운 조사원이 날 보고 죽었느냐 묻는데, 미치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 조만간 그들 입김이 닿지 않은 변호사를 불러서, 유언장을 다시 적을 거야."
그는 이 생활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 듯이, 드물게도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과연, 그가 심기 불편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서는 손가락을 다시 접었다.
그는 당장 자신의 기분을 풀어줄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으라고, 그렇게 얼굴로 재촉했다. 한참 전에 만났던 조카가 이런 표정을 짓곤 했다. 그때가 열 살이었던가. 정신 연령은 얼추 맞았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였지? ■■■ 블라디 블라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날 밤 동안 규합한 정보를 정리해 설명했다.
"■■■ ■■ ■■■는 1727년부터 모든 왕립 학회 논문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네. 햇수로만 169년간 모든 분야에서 학회 논문을 교정할 정도로 첨단에 서 있었다는 뜻이지. 설령 그가 모종의 수단으로 장수했다고 해도, 한 인간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나?"
"장수와 박학, 언뜻 보기에 불가능한 과제가 둘이나 있군."
아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차라리, ■■■ ■■ ■■■라는 이름이 올드코트 교수진 전원을 지칭하는 거라고 결론지었지. 대대로 그 이름을 빌린 교수들이 공동 교정하고 있다면 두 가지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니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학장 이름으로 나온 논문이 없다는 것도 설명되네. 교정이라면 몰라도, 논문 발표는 교수 개인의 이름으로 한 것이지."
그는 낮은 소리로 신음했다. 내 말이 그럴싸하다는 사실이 그에겐 썩 불쾌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건 말이 되는군. 하지만 왕립 학회는? 그들은 학장과 접선하려 하고 있지 않아?"
"그 대답은 쉽네. 올드코트 대학은 처음부터 왕립 학회의 종속 기관이었던 거야. 런던에 있는 대학이 학회 영향권 하에 놓인 것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잖나. 1727년, 올드코트 수도원이 올드코트 대학으로 간판을 바꾼 이래로 그곳은 줄곧 학회 산하의 학술 기관이었던 거지. 하지만 차마 ■■■ ■■ ■■■의 이름은 왕립 학회 명단에 실을 수 없었겠지. 그는 실존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니까."
결국, 아서는 자신이 학장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듯이 따졌다.
"그것만으로는 부재의 증명이라 할 순 없지. 자네는 이미 불가사의한 일을 수도 없이 목격했는데, 죽지 않는 천재쯤이야 한둘 정도 있을 수 있지 않겠어?"
"지혜라네. 지혜가 그것을 증명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어제 올드코트를 조사하던 중 학생 한 명을 만났네. 그녀는 내가 가지지 못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지. 올드코트가 연구한 그 육감 말이야. 지혜를 가진 자는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미래조차 엿본다고 하더군. 자네의 말대로라면, ■■■ ■■ ■■■는 가장 지혜로운 인간일 텐데 어째서 나를 내버려두고 있지? 내가 그라면 자신의 뒤를 캐고 다닐 자를 받지도 않았을 텐데. 오히려 지혜는 그 자체로 학장의 부재를 증명하는 거야."
아서는 더 할 말이 없었는지 말없이 뚱한 표정만 지었다. 나는 그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진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싫증난 것이다.
■■■ ■■ ■■■라고 하는 초인의 내막에 대해, 그는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내가 내놓은 결론은 너무 평범하고 현실적이었다. 차라리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편이 그를 즐겁게 했겠지.
정말로 건방진 사고방식이었다. 심지어 그는 얼마 전까지 ■■ ■■■ 학장을 두려워하고 있었건만.
놀라울 것도 없이, 아서는 늘 그랬다. 프랑크 학술회 일에는 조금 더 진지할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충동적이고 쾌락적이었다.
"좋아, 네 말이 전부 맞았다고 쳐. 하지만 왜?"
아서의 검지가 위로 솟았다. 오늘만 두 번째였다.
"2세기 가깝게 그 많은 교수들이 자신의 명예를 포기하고, ■■■ ■■ ■■■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뭐지? 차라리 충실한 애국자 한 명이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왕립 학회에 충성하고 있다는 게 훨씬 합리적으로 들리지 않아?"
"죽지도 않고, 모든 학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애국자겠지."
그렇지만 그 지적은 옳았다. 나는 여전히 그 부분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도 맞네. 여전히 올드코트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가득하지. 어째서 세 개의 칼리지는 그토록 단절되어야 했고, 캠퍼스 내에 가득한 불가시한 존재들은 또 무엇이며, 뇌척수액을 보관한 병과 숨겨진 방은 또 뭔지, 육혜 시계와 대학 문양을 비롯한 발명은 누가 한 것이며, ■■■ ■■ ■■■가 온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말이 늘어질 수록, 새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깨닫고, 나는 서서히 목소리를 낮췄다. 아서의 눈썹이 위로 튀었다.
"비밀 방이라고?"
"뭐? 제발, 알트. 난 진지하네."
"아니, 뭐? 이보게, 나도 공과 사 정도는 구분할 줄 아네, 잘나신 필레몬 허버트 남작 나으리. 그냥 흔히 생각해도 숨겨진 방 너머에 비밀을 감춰두지 않겠나? 내가 자네보다 너무 똑똑한 건가?"
아서는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옳았다. 지난 한 달간, 나는 건물 벽 너머에 존재하는 공간에 집중했고, 비밀 방은 끈기 넘치는 수사로 찾아낸 유일한 단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 명인지 모를 학생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걸 안 이상, 또 다른 단서를 찾아 시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곳에 가는 수밖에 없겠지. 자네 말이 맞아."
"보이지 않는 괴물이 있다고 그랬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나는 여러 대책을 구상하긴 했으나, 무엇도 마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죽기나 할까?
"위험할까?"
"내가 받은 느낌대로라면, 그곳엔 사람 한두 명쯤은 손쉽게 죽일 비밀이 묻혀 있네. 적의 실체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반대로 키우는 괴물은 아주 투명하지. 인생에 유례없던 도전이 될 테지."
아서는 고개를 까닥거리다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물러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목숨을 걸만한 일은 아니잖아?"
그는 마치 아담과 하와를 꾀는 뱀처럼 속삭였다. 나는 어째서 그가 저토록 불경한 흉내를 내지 못해 안달이 난 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의 반쪽 피의 영향일 수도 있고, 그냥 성격이 나쁜 탓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말했다.
"아니, 충분히 목숨 걸 만한 일이네. 나는 여왕 폐하 앞에서 무고한 자들을 지키기로 맹세했고, 그건 아직도 유효해. 무고한 학생과 런던을 위해서."
"그래, 그리고 우리 학술회를 위해서도 말이야."
아서가 웃으며 덧붙였다. 나는 질색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까진 계산에 없었는데."
"나는 이번 원정에 아주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올드코트가 정말로 왕립 학회와 이어져 있고, 그곳에 우리가 막아야 하는 이형의 것들이 존재한다면, 필히 왕립 학회가 지난 이백 년간 연구해온 자료도 있겠지. 나는 자네가 돌아올 때, 어떤 전리품을 가지고 올지 벌써 기대가 돼."
나는 아서의 속 편한 낙관에 조심스럽게 찬물을 끼얹었다.
"거사를 앞에 두고 초를 칠 생각은 없지만, 잘 안 풀렸을 때도 염두에 둬야 하지 않겠나? 나는 전쟁을 겪은 자로서 말하자면, 단언컨대 영웅적 승리보다 보잘것없는 패배가 많은 법이야."
"아, 그건 걱정 마. 너는 죽지 않아."
"꼭 집시처럼 말하는군. 그걸 어떻게 확신하나?"
내 질문에 아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차, 나는 그제야 그가 이 한 마디를 위해 공들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 지혜로운 자는 미래를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아서는 속 편히 웃어 재꼈다. 정말 그는 타고난 재담꾼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나는 자택에서 외출 준비를 하며, 골프 가방 안에 소총을 넣었다.
소총 가방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보다 남의 눈을 피하기 좋은 것은 없었다. 골프 가방이란, 신사가 어디 들고 다녀도 어색하지 않은 물건이니 말이다.
그리고, 총뿐만 아닌 다른 것을 넣기도 좋았다. 아서가 준비해준 몇 가지 소소한 장비들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감히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것도 가방 속에 넣었다.
어쩌면 이것을 써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올드코트는 적지였고, ■■■ ■■ ■■■가 오는 날이다. 거의 2세기를 살아온 망령을 어설프게 환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끼이익....
"마리, 자네인가?"
문쪽에서 한기가 느껴져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거기 서 있었다.
지난 한 달간, 그녀와 내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물론, 희곡처럼 극적인 드라마는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두려워했고, 조류처럼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달과 지구에 비해서는 상황이 나았다. 그 둘은 그저 멀어지기만 했으니까.
그녀는 골프 가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인님, 그건 총인가요?"
"내가 골프 치러 다니진 않지."
"위험한 일을 하시는 건가요?"
나는 습관적으로 둘러대려고 했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예전에는 내가 사라지면, 그녀는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네.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들에게 뇌를 빼앗길 수도 있고, 완전히 미쳐서 어떤 학자의 이름을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집 안에서 얌전히 기다리게. 아서가 자네를 데리러 올 거야."
"저도 가면 안 될까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생전에도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크게 놀랐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녀의 표정을 살피려 들었지만, 조각처럼 조형된 얼굴은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쉽게 속내를 드러내던 그녀였건만, 이제는 좀처럼 생각을 읽기 어려웠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고 있는 불편한 감정에는 이런 요인도 있겠지.
"조금 생각해봤는데, 그건 안 되겠군."
"왜요?"
"나이 사십에 보모를 데리고 다닐 순 없지 않나? 나는 교수 신분이라고."
그러자 마리가 낮게 웃었다. 현이 나간 바이올린을 긁는 듯한 유쾌한 소음이었다.
"돌아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들려주세요."
"아, 학생들이 자네만큼만 내 이야기에 관심 둬줬으면 좋으련만."
"그럴 줄 알았어요."
나는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왔다. 그녀는 비가 올지도 모른다며 우산을 쥐여줬는데,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 수 없었다. 런던에만 40년 살고 있는 내 눈에도 런던의 회색빛 하늘은 늘 같아 보이기만 했다.
마차를 잡아타고, 나는 도착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 눈을 붙이려 했다.
그렇지만, 그건 대체 무슨 뜻인가. 그럴 줄 알았어요, 라니.
내가 말을 못하기라도 한다는 것 같은 말 아닌가. 생각할수록 심기가 불편해져, 나는 끝내 마차에서 잠들지 못했다.
그날의 수업은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어릴 적 들었던 성당 신부님 목소리를 재현했다. 높낮이에 기복 없는 목소리가 강의실에 흐르고, 창 너머에서는 흐릿한 겨울 햇빛이 산란하며 눈가에 흰 도형을 그렸다.
그 이후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돌발 행동이었다.
한 명의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그 이름을 떠올린 나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봤지만, 강의실 내에는 어떤 가시적인 변화도 없었다. 학생의 표정도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얼굴 가죽이 구겨지며 드러난 것은 환희가 아닌 순수한 공포와 경악이었다.
"창밖에 침엽수!"
그건 가히 비명이라 불러 부족하지 않았다. 나와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캠퍼스 내부를 향한 안쪽 창가로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이십만천이백구십오장, 이제 보입니다! 지혜는 우주에서 오는 것입니다! 가겠습니다, 가장 큰 우주에게 가겠습니다!"
학생의 검은자위가 구멍처럼 크게 벌어졌다. 동공과 홍채 사이의 갈라진 균열마저 선명히 보였다.
"아... 아아...."
그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이 턱 쪽에서 들리더니, 하관이 그대로 아래로 늘어졌다. 턱이 빠진 것이다. 눈의 실핏줄이 터져나가며 붉게 충혈되었다.
학생은 흥겹게 춤추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일제히 손뼉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게도 은근한 압박을 줬다. 내가 당연히 그들의 영문 모를 축제에 동참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은, 서 있는 학생의 상태가 그보다 심각하게 안 좋아 보이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를 멈추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졸업 축하합니다!"
"졸업 축하합니다!"
졸업식.
그 기쁜 날에도, 학생은 표정을 펴지 않았다. 붉게 물든 그 얼굴은 점차 흑색으로 죽어갔다. 대신에, 그는 아주 즐겁게 춤췄다. 왈츠처럼 몸을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고, 폴카처럼 폴짝 뛰어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동작을 알아봤다.
그리고, 창백해진 표정으로 서둘러 강단으로 되돌아갔다. 학생은 그대로 춤추며, 강의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수업은 끝이야... 빨리 다들 나가게!"
"네?"
학생들은 내가 유별난 반응을 보인다는 듯이 당황했다. 저들에게는 이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졸업식 풍경이었다.
나는 벽면에 조심스럽게 세워둔 골프 가방을 난폭하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강의실을 급하게 뛰쳐나왔다. 이놈의 느린 걸음이 다시금 발목을 잡았다.
복도에 학생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길게 이어진 핏자국이 그가 향한 길을 그려주었다. 나는 급하게 뒤를 쫓으며, 가방에서 소총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춤이 아니었다. 몸부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