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37화 (37/232)

§37. 마법에 관한 진지한 담론

아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책상에 제 둔부를 갖다놨는데, 가만히 앉아서 듣자니 성미가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 얘기는 거기까지만 하지. 여기까지 와서 자네는 여전히 이야기의 대미를 감추고 있어."

그는 내게 은근한 재촉을 보냈다.

"내가 런던에서 사는 40년 동안, 하늘이 그렇게 파도치는 광경은 본 적이 없어.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별이 문자 그대로 출렁였지. 나는 차라리 밤하늘보다는 밤바다라고 부르겠어. 그것도 자네와 관련이 있어, 아닌가?"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지."

"그게 내가 딱 기대하던 대답이야, 필로."

문득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골프 가방을 찾은 뒤, 그 안을 마구 헤집었다. 총알 가방 같은 위험한 것조차 침대 위에 패대기치니 그 아서조차 놀라며 내 기행을 지켜봤다.

마침내 가방 밑바닥에서 흑천복음 사본을 찾아내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움켜쥐었다. 이 불경한 서적은 진창에 빠져 더럽혀졌으나, 그 추악함이 흐려지기는커녕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바다에서 온 그것이 젖는다고 그 빛깔을 잃을 리가 없는 법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겨, 누락된 부분이 있나 확인했다. 다행히 모든 페이지는 제자리에 있었고, 나는 겨우 안심하며 이를 덮었다. 나는 편집증 환자나 다름없었다.

"그 더러운 책이 뭐길래 그리 조심스러운가? 보기에는 꼭 하수구에 빠트린 것 같은데."

오늘은 비도 오지 않은 날이다. 아서는 표지에 젖은 흙이 묻은 것을 보고,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멀쩡한 추측을 내놓았다.

"아니, 여기 묻은 것은 살점과 피라네. 칼라스 교수, 그자의 것이지. 상상할 수 있겠나, 별빛 아래에 한 사람의 육신이 거름과 부토로 썩어 문드러지는 광경을. 나는 그의 육신을 대가로 악마와 거래했네."

나의 목과 입안에는 여전히 갯강구와 갯지렁이의 발톱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폭풍우가 치던 밤, 나는 물안개 너머에서 들리는 속삭임에 밤새도록 이것을 적었네. 잉크에는 피가 섞여 있고, 촛불조차 켜지 않았으나 글을 쓰는 열기만으로 소금기 젖은 땀이 종이 장마다 스며들었지. 이것은 해저인의 신에게 바쳐진 외경이요, 계시록이야."

맨입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말할수록 혓바닥 사이에 해초가 얽혀드는 듯이 비린내가 입을 가득 채웠다.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했다.

"해저인이 인어 같은 귀여운 것은 아니겠지."

"그들은 여전히 우리 발밑에 살고 있네. 템스 강과 이어진 런던 전역의 하수도를 타고, 각 가정집 아래에서 다시금 뭍으로 올라올 복수의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 마리 퀴리... 그녀를 데리고 간 자들도 바로 이들이지."

"뭐? 그녀가? 이런, 세상에.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더니."

아서는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그것이 그토록 끔찍한 것이라면 차라리 불태우지 그랬나?"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지. 광증이 그 원인이었네. 내 안의 광기가 런던의 파멸을 바라고 있었기에, 나는 이것을 간직할 수밖에 없었어. 아니, 그뿐만 아니라,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밤마다 구절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영어로 해독했네. 그리고, 지킬 박사의 유산을 삼켜 내 정신이 봉합된 이후로도, 여전히 이걸 없앨 생각은 하지 못했지. 지구의 음지를 엿본 대가였어. 예정된 파멸이 닥치는 순간에, 반드시 이 힘을 빌려야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고, 이 불길한 짐작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지. 이 복음서가 없었다면, 나는 어제 뇌 없는 시체가 되어 칼라스 교수가 만든 괴물 중 하나가 되어 있었을 테니...."

아서는 턱에 엄지를 댄 채, 입 다물고 한참 고민했다.

"마법 같군."

그리고 나온 첫 마디는 그답지 않게 건조했다.

"마도서가 따로 없군. 그날 자네는 마법을 쓴 거야. 틀렸나?"

"아니... 아니, 맞아. 자네 말대로... 세상에, 그 끔찍하고 이단적인 현상을 묘사할 영어 단어가 마법밖에 없나? 차라리 요정의 장난이라고 하지그래."

"정확히 말하면 마법(Magic)의 어원은 조로아스터교의 제사장(Magi)과 그들이 행하던 신비술에 대한 고대 페르시아어니까, 그렇게 귀여운 표현은 아니지. 그리고 켈트 신화에서 요정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알고 있나?"

"좀, 집어치우게!"

나는 질색하며 소리 질렀다.

"여하튼!"

"아, 하나만 더. 뭣만 하면 그놈의 '여하튼'으로 말을 돌리는 버릇이 있다는 거 알고 있나?"

나는 벌떡 일어나 아서의 목을 조르려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나의 살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똑똑.

노크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함께 돌아갔다.

"부탁하신 밀크티를 가지고 왔습니다."

마리의 목소리에 나와 아서는 동시에 몸을 떨었다. 아서는 문을 열고, 마리가 가져온 찻잔 받침을 자신이 잡았다.

"고맙네. 하지만 지금은 남자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이라, 차는 내가 전해주지."

"아니, 마리, 자네도 들어오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야."

아서가 고개를 돌리고는 미간을 좁혔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보다는 불쾌가 앞서 있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프랑크 학술회에는 협력하겠네. 자네가 원한다면 서명을 해도 좋아. 하지만 내가 거는 조건은 받아줘야겠어. 아주 쉽네. 내 이름 아래에 그녀의 이름도 같이 써넣는 것뿐이니까."

"뭐? 잠깐. 이야기 좀 해야겠어."

그는 마리의 눈앞에서 문을 닫고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밀크티가 흘러넘쳐 그의 엄지 위로 쏟아졌다.

"필로, 농담할 때가 아니야."

"농담은 신사의 소양이라지만, 내가 멋진 신사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지하네."

"학술회라고. 그 의미를 모르나?"

"아, 그런 이름이었나? 나는 또 아서 프랑크의 괴짜 모임인 줄 알았지. 위대한 새앙쥐 종격막 탐구회처럼."

"내가 마리 퀴리를 사랑한 이유는 그녀가 선천적으로 높은 지능을 가진 교육 받은 인재이기 때문이야. 자네 가정부는 그냥 길바닥에 차이는 그냥, 그냥 하녀잖나! 아무리 잘 쳐줘도 죽었다 살아난 하녀야. 무슨 착각을 했는지 몰라도, 교육받지도 않은 가정부를 학술회에 넣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야."

마구 따지던 아서는 마침내 내 의도를 짐작한 것인지, 입을 다물었다.

"아, 이제 알겠군. 아주 유치한 생각을 했어, 안 그래? 내가 자네가 죽으면 그녀를 소홀히 대할 거라 생각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군.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야."

"자네도 나이를 먹었어."

"늙지 않는 자가 보기에는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정하다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에 런던을 떠나 지금쯤 뉴욕의 아파트에서 랍스터나 먹고 있었겠지."

아서는 반쯤 질린 표정으로 컵을 건넸다. 아서가 쏟은 탓에 잔 손잡이는 젖어 있었다. 나는 입을 밀크티 한 모금으로 적셨는데, 너무 식힌 탓에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사실 썩 죽음이 사랑하는 남자는 아니었지. 인정하네. 최전선에만 2년을 복무하고, 완치자보다 병사자가 많다는 말라리아로 고초를 겪고도 살아남았지. 그런데, 그때마다 저승사자가 병상 위에 누운 내 목전까지 다가와 이렇게 속삭이곤 했네."

나는 아서의 눈을 마주 봤다.

"언제까지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저승사자도 산 사람한테 쓸모 있는 충고를 하긴 하더군. 나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고, 그러면 남겨진 마리는 어떻게 되겠나. 그녀는 이미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낼 수 없는 몸이 되었고, 그건 온전히 내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네. 그녀의 인생을 보상하기 위해, 나는 써먹기로 했지. 아무튼, 자네는 손님을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니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자네가 죽으면 그녀를 내 저택에 데려갈 생각이었어."

"단순한 보험이야. 내가 왜 자네를 의심하겠나?"

나는 잠깐 생각하고 정정했다.

"아니, 자네는 충분히 의심할 만한 사람이야. 여하튼, 나는 그녀가 내 탓으로 음지에 살게 된 이상, 내가 가진 모든 비밀을 그녀와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네. 프랑크 학술회는 그 시작이야."

아서는 불쾌한 표정으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방을 돌던 끝에, 내 발 근처가 빙글빙글 돌기 좋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 주변을 파리처럼 맴돌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토하며 선언했다.

"역시 그녀를 되살린 건 실수였어."

그는 방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는 여전히 마리가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니까, 잔은 뺏긴 그 자세 말이다. 왜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프랑크 학술회에 온 걸 환영하네. 보통은 조금 더 무게를 주고 하는 말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약식으로 한 것을 용서하게. 그리고 이 직후에 멋있는 저택 비밀 장치도 보여주고 하는데, 뭐 어쩌겠나. 저 망할 친구가 모든 일을 망쳐놨는데."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주인님, 이게 다 무슨...."

나는 그녀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공손히 내 근처에 와서 손을 모은 채 섰다. 아서는 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기어코 내 발 근처에 머물렀다.

"오늘, 아니, 어젯밤 있었던 일이네. 나는 하늘을, 우주를 바다로 만들었네. 그것은 내 힘은 아닐뿐더러, 이 사악한 마도서가 간직한 힘도 아니었어. 나는 그 사악한 주술, 마법을 부리려고 한 순간, 영적 체험을 했네. 성인들이 했다는 묵시와 같았지."

나는 밤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를 힘겹게 토해냈다.

나조차 다 이해하지 못한 환시를 과연 문자화할 수 있을까. 그렇게 스스로 의심했건만, 뜻밖에 아주 쉽게 해냈다. 그 모든 것은 한 문장 안에 압축되었다.

"나는 신의 음성을 들었네."

문장을 입에 담는 순간, 내 눈앞에 파노라마가 스쳐 흘러가며 내 정신은 다시금 과거로 돌아갔다.

"내 영혼은 우주 공간을 가르고,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래에 이르렀네. 인류는 사멸하고, 태양과 달, 그리고 어떤 별조차 남지 않았지. 죽은 우주의 끝에는 오로지 영원을 약속한 어둠만이 있었고, 열원이라고는 발밑에 우글거리는 개미 떼의 날숨뿐이었지. 그곳에서 겪은 혹한과 비교하면 죽음조차 어머니의 품보다 따뜻한 것이었네. 나는 장장 사십일간 개미에게 살점을 파먹히며 방황했네."

"마태오 복음 4장, Tunc Iesus ductus est in desertum ab Spiritu ut temptaretur a diabolo, et cum ieiunasset quadraginta diebus et quadraginta noctibus postea esuriit."

(역 : 그리고 예수께서 성령의 부름을 받아 광야로 나가니 악마께서 그분을 시험하였다, 그분께서는 사십 일과 사십 야를 단식하여 시장하셨다.)

아서의 말에, 마리의 수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며 아서와 나를 번갈아 교차했다. 그가 굳이 라틴어를 사용한 이유는 뻔했다. 마리를 괴롭히면서 내게 항의하는 것이다. 이래도 그녀에게 자격이 있느냐고.

하지만 나는 반쯤 미쳐서 말을 쏟아내는 중이었기에, 그녀를 차마 돌보지 못했다.

"방황 끝에 내가 목격한 것은 열 개의 검은 등불이었네. 나는 그것이 인류의 새 주인임을 의심하지 않고, 하느님에게 순명하기로 맹세했네. 나 이외에도 네 명이나 되는 메시아가 이미 그분을 섬기고 있었기에, 나는 말석에서 그분을 향해 절했네. 그분은 자신의 성스러운 이름을 가라사대...."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마리는 내 동작을 살피더니 눈치 빠르게 책상 위의 펜과 노트를 건네줬다. 나는 차마 발음조차 할 수 없는 신명사문자를 위에 기록했다.

「YLTH」

아서는 내가 펜을 놓기가 무섭게 노트를 낚아챘다.

"셈어?"

"알아보겠나?"

"Y로 시작하고 H로 끝나는 네 글자 자음 모음을 적어 놓는다면, 그게 야훼(YHVH)의 이름으로 장난친 거란 것 정도는 누구나 알겠지. 정확히 말하면 셈어 계통 문자를 알파벳으로 치환한 거겠지만, 그래서, 이건 어떻게 읽지? 옐? 일? 얄?"

아서는 대답을 촉구하듯 마구잡이 발음했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야. 나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만, 무엇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스페인이었다면 지금 발언으로 화형대에 매달렸을걸."

나와 마리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아서는 자신의 농담이 시기적절하지도, 썩 재밌지도 않았다는 걸 자각했는지 애꿎은 노트를 구겼다. 나야 그런 반응이 익숙했지만, 마리는 놀라 어깨를 떨었다.

"나는 그곳에서 앞선 다섯 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의 공물을 바쳤네. 그러자 열 뿐이던 등불이 아홉으로 줄었지."

"방금 앞선 다섯이라 했나? 처음에는 넷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점은 나도 확신할 수 없네. 분명 메시아는 다섯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건 넷뿐이었어."

아서는 고개를 저었다.

"점점 복잡해지는군. 그러면 자네는 이제 사탄의 사도 같은 거고? 혹시 가족과 친구를 제물로 바칠 예정이 있다면 미리 귀띔 좀 해줬으면 하는데. 그 전에 교우 관계를 정리해두고 싶거든."

"설마!"

나는 질겁하며 외쳤다. 갑자기 커진 목소리에 점점 가라앉던 마리의 고개가 위로 튀어 올랐다.

"정신을 차린 뒤로, 내가 무슨 불경스러운 맹세를 입에 담았는지 똑똑히 알겠더군. 그건 신은커녕 악마야. 나는 결단코 그런 존재를 모시지 않을걸세."

아서는 팔짱을 낀 채,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뭔가?"

"아니, 여기 이미 피해자가 한 명 있지 않나."

나는 눈을 껌뻑였다.

"알잖나, 자네는 그토록 충직한 가정부도 물어 죽인 사람인데...."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아, 늙은이가 럭비 선수 흉내라도 내시려고?"

나는 마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아서의 악의적인 농담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두 귀족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하튼, 나는 공물을 바치고... 말 그대로 하늘을 바다로 바꿨지. 나와 그 여학생에게 다가오던 괴물들을 바다에 담근 것은 순수하게 이 마도서... 흑천복음에 기록된 세 가지 주술 중의 하나라네. "

"하지만, 자네가 봤다는 환시, 그 몽상들, 그게 전부 사실이라면 큰일이군."

아서는 불쾌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말인가."

"자네가 부린 그 마법 말이야. 자네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는 자네와 같은... 마법사가 최소 넷, 최대 다섯은 더 있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들도 자네와 같다면 자신이 한 맹세를 후회하고 그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나름 수를 부리고 있을 테고. 그런 상상 못할 힘을 다루는 자들이 대체 어떤 일을 저지를지, 짐작도 안 가는군."

나는 아서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들은 공물을 바쳤다고 했지."

"그래."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고백했다.

"내가 바친 것은 온전한 정신이었네. 그것이 적당한 공물이라고, 그 자리에서는 그리 생각했지. 아니, 달리 말하면 내가 그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어."

아서가 놀라며 비아냥거렸다.

"한 번 미치는 걸로는 부족했나 보지? 내 목을 넘보기만 해봐."

"아니야, 그런 게 아닐세!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정신은 여느 인간과 같지 않네. 지킬 박사가 남긴 하이드를 마신 이래로, 내 정신은 무수한 파편으로 나뉘었지. 그게 내가 미칠 수 없는 이유라네. 그 많은 일을 다시 겪고도 여전히 이성을 간직한 이유기도 하고."

"그걸 고스란히 다시 갖다 바쳤다는 거 아닌가?"

나는 신음을 흘렸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네. 하지만 내게 유예가 주어졌다는 건 확실해. 적어도 그 힘...."

내가 입을 달싹거리자 아서가 외쳤다.

"그만! 지금부터 마법은 진지한 단어야! 그만 부끄러워하라고! 젠장, 자네 때문에 내가 뭐하는 짓인지!"

"그래, 알겠어, 알겠네. 마법을 사용한 직후에, 나는 미쳤단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멀쩡하지. 그 원인이 내 정신 구조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네."

아서는 내 대답에서 무언가 깨달은 듯이 손뼉 쳤다.

"아, 과연, 그래서 리들 양이 자네의 머리를 후려친 거군."

"리들?"

그는 내 질문에 깜짝 놀라며 나를 타박했다.

"세상에, 자길 구해준 숙녀분의 이름조차 모르는 건가? 그 여학생 말이야."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엔 그가 옳았다. 나는 진작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어야 했다. 신사답지도, 군인답지도 않은 행동이었다.

"그래."

"직접 통성명하지 않은 숙녀의 이름을 말하고 다니는 건, 영 신사답지 않은 행동이지만...."

아서는 푸념하면서도, 말하는 것과 달리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이름을 읊었다.

"그녀의 이름은 앨리스 리들이라네. 저 헨리 리들 경의 영애지."

"앨리스 리들?"

"아는 사람인가?"

그 이름에 기시감을 느끼고, 나는 몇 번이고 소리 내지 않고 발음했다. 아서는 잠시 후 한 마디 덧붙였다.

"그녀가 스스로 소개하기론 자신의 미들 네임을 플레전스라고 하더군."

앨리스 리들.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방금 깨달은 진실에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그녀가 앨리스였다. 루이스 캐럴의 뮤즈가 된 소녀 앨리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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