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39화 (39/232)

§39. 옥스퍼드 직행 열차

──────우우우우...

저 멀리, 열차가 선로를 달려오며 경적을 울렸다.

"물러나시오! 물러나시오!"

종을 든 역무원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열차가 들어오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 많은 구경꾼을 뒤로 물렸다.

종이 두 번 울릴 때마다 경적 한 번. 그들은 합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좋은 듀엣이었다.

──────부우우우!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굳이 역무원이 더 애쓸 필요 없었다.

노선 가까이 서 있던 승객들이 경적 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하며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말로만 듣던 증기 기관차가 이토록 크고 빠르고 시끄러울 줄 몰랐던 자들은 입을 헤벌린 채 연신 감탄했다.

평생 성당을 다니면서도 일절 경건할 줄을 몰랐던 이들의 눈에 신앙이 깃들었다. 육중한 검은 철체에 압도된 나머지 공포와 경외 어린 시선을 보냈다.

흔히 말하는 도시뜨기(Urban hick)였다.

모든 게 해결되는 런던에서 일평생 살다가 처음으로 도시를 나가는 자들 말이다. 이틀이나 사흘 정도 런던 밖으로 여행 다녀오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래, 주말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정거장 풍경이었다.

그런 한편,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익숙한 중산층 이상의 신사 숙녀는 도시뜨기들이 보이는 추태를 탓했다. 그들은 진작 철로 밖에서 뒷짐 지며 기다리다, 역무원의 안내에 따라 그제야 선로 쪽으로 느긋이 걸었다.

열차는 이렇게 탑승하기 전부터 사람을 구분했다.

승차장은 작은 사회였다. 여기서는 천국보다 세분화하여 사람을 나눴다.

게으른 베드로는 그저 천국행과 지옥행만을 나눈다지만, 열차는 도착지가 같음에도 기어코 사람을 셋으로 분류했다. 일등석과 이등석, 그리고 삼등석으로 말이다.

모든 사람은 좁은 플랫폼 안에서 제 분수를 다시 확인했다. 기관장이 보내는 정차 신호에 맞춰, 열 명의 역무원이 열 개의 입구에 발맞춰 섰다. 캔 안에 든 견과처럼 승객들은 자신이 있을 자리로 스스로 향했다.

우선 일등석 대기 줄부터 보자.

그들은 뭘 해도 우아하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느리게 걷는다. 보폭이 좁을수록 고상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도 거의 없거늘 줄이 생기는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물론 밀거나 재촉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열차 전방 3칸은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칸마다 8명은 족히 들어갈 만한 방이 2개씩 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주로 두세 명에 불과했다.

다음은 이등석 대기 줄이다.

이등석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인상도, 의상도 각양각색이라 보는 재미가 있다. 돈주머니를 꽉 쥔 근검한 사업가도 있고, 차마 삼등석의 족속들과 상종할 수는 없지만 일등석에는 가지 못한 영락한 귀족도 있다. 어쩌다 분수에 넘치는 거금을 만진 기술공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양복쟁이다.

열차 중앙 3칸은 그들을 위해 있다. 좌석은 2인석으로 총 6개 놓였고, 두 좌석씩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합승은 비일비재했다. 좌석 사이에는 열차에 고정된 철제 테이블이 하나씩 놓였는데, 그것이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유일한 칸막이였다.

어쨌거나, 적어도 그들에겐 소파가 있었다. 페르시안 양식 덮개가 씌워진 따뜻한 소파 말이다.

마지막으로 삼등석이다.

그들에겐 좌석이 없다. 열차 말미 4칸에는 수용 한도 없이 승객이 꾸역꾸역 들어찼다. 그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보였는데, 실제로 둘을 놓고 구분하라고 하면 그리할 자신이 없었다. 허름한 복장도 그랬고, 제대로 씻지 못해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도 그랬으며, 무엇보다 표정이 비슷했다.

삼등석 손님은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 노려보며, 자신의 주머니를 품에 꼭 안았다. 그들은 몇 시간이고 그렇게 서 있은 탓에, 기차에서 내릴 즈음엔 타기 전보다 어깨가 살짝 더 굽어 있었다.

그 때문에 열차의 앞뒤를 구분하기도 아주 쉬웠다. 말미에 붙은 삼등석 칸에는 신체 일부가 항상 삐져나와 있었다. 사람은 그렇게 많거늘 안에선 수 시간 동안 거친 숨소리와 기침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10칸 열차가 영국 어느 정류장에도 들어가는 가장 보편적인 표준 규격이 되었다.

우리가 탄 것은 다섯 번째 칸이었다. 그러니까, 이등석 정중앙 칸 말이다.

나는 가운데 자리에서 열차 정면을 바라보며 창가에 앉았고, 그 옆을 마리가 채웠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속삭였다고 하기보다는 평소 목소리에서 음계만 낮아진 꼴이었다. 도통 감정을 담기 어려운 성대다. 그나마 감상적인 표현을 써보자면, 그것은 음산하고 울적한 단조 음을 내는 플루트 같았다.

"제가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내가 지팡이를 창가에 걸치느라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듣지 못한 줄 알았는지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 자네를 삼등석에 세워서 보내고 나 혼자 이등석에 앉아 가라는 건가?"

"하지만."

마리는 말을 씹었다.

"말벗 하라 데려왔다고 생각하게. 자네에겐 그럴 자격이 있어."

"하지만 주인님은 돈도 없으시잖아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따라서 마리도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말없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에도 객실엔 승객이 계속 들어왔다. 우리 맞은 편 자리에는 속물적인 부부가 앉았다. 그들은 남사스럽게 공공장소에서 서로 애정을 표현했는데, 나는 고개를 휙 돌리고 눈살을 찌푸리는 걸로 내가 해야 할 모든 표현을 다했다.

그들은 얼추 보아도 흔한 벼락부자로, 의상은 말끔하건만 치렁치렁한 장신구 중 조화를 이루는 것이 없었고, 행동거지도 서민이나 다를 게 없었다. 나참, 손을 깍지낀 꼬락서니를 보라지!

부부 뒤로는 금욕적인 인상의 노신사가 홀로 앉았다. 그는 미간 주름의 깊이만큼이나 엄격해 보였는데, 그 대상은 남이고 자신이고 할 거 없어 보였다. 심지어 자리에 앉고 나서도 한 번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는데, 나는 그가 아주 현실적인 인물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노신사의 맞은 편에는 사연 있어 보이는 여성이 홀로 앉았다. 여성이 홀로 여행한다는 것부터가 여러 상상을 하게 만들지 않던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 바로 뒷좌석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는데, 대신 그 맞은 편에 거름 냄새나는 두 남자가 앉았다. 가축을 기르는 부자 같은데, 그들이 들어오기 전과 후의 객실 냄새가 많이 달라졌다.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출발합니다!"

열차 밖에서 역무원의 외침이 들렸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그러더니 경적이 울리고도 조금 뒤에 한 뚱뚱한 남자가 부산스럽게 객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광이 날 정도로 훔쳤다. 그리고 뒤뚱뒤뚱 걸어와 우리 바로 뒷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걸로 모든 승객이 탑승했다. 역무원과 기장의 목소리. 경적 소리. 주말의 열차.

열차가 출발하지 않은 객실은 소요 직후의 적막이 감돌았다.

제때 열차에 탑승했다는 안도, 앞으로 수 시간이나 낯선 이들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불안, 기차가 사고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앞으로 이틀간 런던을 떠날 수 있다는 해방감.

침묵은 말 많은 대변인이다.

나는 지친 눈으로 창가를 돌아봤다.

플랫폼 한가운데서 허드슨이 입을 쩍쩍 벌리며 뭔가 소리 지르고 있었는데, 그가 오늘 역에 들린 것은 그저 열차의 첫 발차를 기념하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그는 정말 대단한 목청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리가 제법 되었는데도 창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기차 설계에도 대단한 재능을 보인다는 그지만, 어쩌면 성악을 했다면 더 대성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두 업계 중 하나는 인재를 놓친 셈이다.

"피곤하신가요?"

"그래 보이나?"

나는 장갑을 벗고 눈가를 어루만졌다. 아침부터 역까지 걸은 탓에 다리가 불편한 게 아주 나른했다. 품속에서 새로 산 수통을 꺼내고, 그 안에 담긴 위스키 한 모금을 목에 흘렸다.

목이 타는 듯하니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피곤하다고 자꾸 위스키를 마시니까 피로가 안 풀리는 거에요."

"이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좀 끄게."

마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소리 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제 앨리스에게 받아온 소개장이었다.

수신인은 헨리 리들, 옥스퍼드 학장이자 그녀의 아버지였다. 내가 여행지를 옥스퍼드로 정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왜 그렇게 그녀를 신경 쓰시나요?"

내 손에 들린 종이를 발견한 마리가 물었다.

"마리, 자네 혹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을 들어본 적 있나?"

"그건 책인가요? 아니면 동요?"

"아니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감의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이미 성년이 다 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앨리스가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킬 박사나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온전한 창작물 속의 존재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모든 점에서 뒤죽박죽이었다.

부모를 닮지 않은 금발, 피를 좋아하는 잔인한 면모, 종종 비추는 불가사의한 유년기의 기억, 루이스 캐럴이 창조한 수많은 말장난...

"됐네, 신경 쓰지 말게."

나는 소개장을 접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소개장을 구기는 게 예의는 아니라지만, 리들 경이 그런 것을 문제 삼을 정도로 작은 인물일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아서 역시 그녀의 어린 시절을 파헤친다는 내 계획에 적극 동참했다. 그에게도 앨리스는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그는 넌지시 내게 "쉬었다 오는 김에 옥스퍼드에 다녀와."라고 말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날 밤, 처음에는 아서도 그녀를 반겼다.

아서는 괴짜를 사랑하는 자다. 그녀가 가진 선지 능력과 이질적인 성격은 그의 호감을 사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아서를 피해 다니다가, 슬며시 내게 다가와 속닥거리며 물었다.

"저 사람은 뭐에요?"

"아서 말인가?"

"이름이 아서인가요?"

"그래, 아서 프랑크 백작. 런던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괴짜.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그러자 앨리스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면 진짜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게 아니면 뭐라고 생각했나?"

그녀의 대답에 아서가 지은 표정은 근래 본 것 중 가장 유쾌한 것이었다.

"거미요. 다리가 잔뜩 달린 거미."

열차가 경적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체가 온전히 제힘으로 세차게 달려나갔다. 처음에는 사람 걸음만도 못했지만, 서서히 탄력을 받기 시작하더니 말보다도 빨리 달렸다.

창밖으로 오직 열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공간이 뒤로 쫓겨나는 광경 말이다. 한때는 말을 타던 귀족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전해졌던 환상적인 광경이 열차를 통해 모두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객실 분위기가 한껏 누그러졌다.

열차가 출발하니까 다들 여유로워졌다. 말이나 마차와 달리 기차는 엉덩이를 때리지도 않으니, 앉아있기도 훨씬 편했다. 노신사는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담배에 성냥 불을 붙이고 껌뻑껌뻑 피워댔다. 단 냄새보다 쓴 냄새가 짙은 걸 보니, 그리 질 좋은 담배 같지는 않았다.

마리는 가만히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작은 호기심이 일었지만, 인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넌지시 물었다.

"열차는 처음인가?"

"아니요. 그렇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구경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렇겠지. 그녀는 삼등석밖에 타본 적이 없을 거다. 그곳에서는 창 너머를 구경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는 차라리 그녀를 창가에 앉히는 게 나았을 거라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자리를 바꾸자는 것도 우스운 꼴이다.

어느새 열차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 길을 달리고 있었다.

런던에 있다 보면 종종 잊게 되지만,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토록 목가적인 풍경이 줄지었다. 런던의 악취조차 우릴 따라올 순 없었다.

──────부우우우!

한껏 여유로운 분위기에 우렁찬 기적 소리가 재차 울렸다.

충분히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열차는 더욱 가속하고 있었다. 허드슨이 그토록 자신한 이유를 알만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열차일지도 몰랐다.

"너무 빠른데... 너무 빠른데...."

내 뒷자리에 앉은 뚱뚱한 남자가 허벅다리를 들썩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는데, 듣자니 아예 기차를 처음 타보는 사람처럼 불안해하고 있었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대중은 아직 속도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빠른 건 사실이었다.

저 멀리 미국에서 발명한 가장 빠른 열차가 시속 65마일(*약 105km)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열차는 그보다도 빠르게 느껴졌다. 열차는 어찌나 속도에 탐욕스러운지 그러도고 가속을 멈추지 않았다.

"위험해!"

뚱뚱한 남자가 목을 쥐어짜듯이 외쳤다.

─────덜컹!

열차가 위아래로 크게 들썩였다.

"뭐지?"

"무슨 일이야?"

"무서워요."

"아버지."

"콜록."

"세상에, 진짜였어. 진짜였어."

"꽉 잡고 있어. 다치지 않을 거다."

"괜찮아, SMR 기차는 탈선하지 않는댔어."

사방에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객실 안이 어둠에 잠겼다. 조금 전까지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 외쳤다.

"창밖을 보세요!"

객실 안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창 너머에 있어야 할 한적한 시골 풍경은 없었다. 대신 칙칙한 황야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3층 건물 높이의 모래 폭풍이 솟았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했고, 크고 작은 바위만이 드문드문 이정표처럼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현실감을 잃게 하는 것은 하늘이었다.

새까만 하늘에는 쌍둥이 별이 우둥커니 박혀 있었다. 둘이서 태양과 달의 역할을 다하는 듯이, 그리 밝지도 않은 별빛은 수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바위의 윤곽마저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새까매요."

"우리가 터널로 들어왔나?"

"아무 것도 안 보여요."

"뭐? 여긴 허허벌판이잖아, 어떻게 된거지?"

"아아, 세상에, 들어와버렸어, 진짜 들어와버렸어."

"콜록, 콜록."

"잘 보렴, 저기 하늘에 별이 있잖아. 여긴 바깥이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같은 걸 보면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말했다.

어떤 자는 별빛이 비추는 광야를 목격했고, 그렇지 않은 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을 호소했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전에 한 적이 있다.

이 세계는 지혜가 비추고 있다. 지혜 앞에는 빛과 어둠도 감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덜컹!

달리는 열차가 다시 한 번 크게 들썩였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내 팔에 무언가 이질적이고 끔찍한 게 달라붙었다. 마리였다. 그녀는 겁먹은 듯이 주변을 애타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차가운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마리, 창밖에서 뭘 봤지?"

"별이요. 별, 끔찍한 쌍둥이 별이요. 아아,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죠?"

"괜찮아, 우리는 아직 선로 위에 있네. 탈선한 기차는 이렇게 올곧게 달리지 못해."

나는 그녀를 달래며 상황을 파악했다.

거름 냄새나는 두 남자 중에 아버지라 불린 쪽이 일어났다.

"제가 어떻게 된 건지 운전수에게 묻고 오겠습니다. 너는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라."

첫 말은 우리에게, 그다음 말은 앉아있는 아들을 향했다. 그러자 뚱뚱한 남자가 갑자기 외쳤다.

"다들 일어나지 마세요!"

그는 자신의 말을 가장 먼저 어겼다. 그 무거운 몸을 번쩍 들고 일어난 것이다.

"당신이 뭔데 지시합니까?"

남자는 객실 문 앞에서 멈춰선 채로, 뚱뚱한 남자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는데, 그 못 미더운 모습에 더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는지, 남자는 아예 등을 돌렸다.

"바로 다녀와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앞쪽 객차로 나아갔다. 문이 잠깐 열렸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모래 먼지가 객실 안으로 쏟아졌다. 홀로 앉아 있던 여인이 세차게 기침했다.

"콜록 콜록!"

"가면, 가면 안 됩니다!"

뚱뚱한 남자는 문이 닫힌 뒤에야 외쳤다. 부산떠는 것에 비해 모든 것이 한 박자씩 느린 어설픈 자였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뒤쪽에서 상황을 보고 오겠네. 삼등석에서 사람이 넘어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미리 말을 맞춰놔야지."

노신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언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솔선수범하는데 보람을 느끼는 귀족이 분명했다. 그러자 뚱뚱한 남자가 여자처럼 가는 목소리로 외쳤다.

"제 말을 들어야 합니다! 저는 보편사무국(General Service Bureau) 소속입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

노신사는 냉담히 일축했다.

"그리고 설령 자네가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었다 해도 따르지 않았을 거야. 나는 내 운명을 남의 손에 맡겨두는 머저리가 아니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오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뒤쪽 객차로 나갔다.

"콜록 콜록!"

다시 한 번 모래 바람. 다시 한 번 기침 소리.

남겨진 여덟 명은 조용히 서로 눈치를 살폈다.

누구나 선택을 해야 했다. 앞선 둘처럼 나가서 상황을 살필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릴지. 어느 쪽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기 앉아있게."

내가 지팡이를 잡고 일어나자, 마리의 손이 내 팔을 잡았다.

"마리?"

"저도 갈게요."

"뭐? 안돼!"

"그러고 또 반쯤 죽어서 돌아오실 거잖아요!"

"자네가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라고 항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남들보다 반 정도 죽어 돌아오는 일이 잦긴 했다.

"잠깐 확인하고 올 뿐이야."

"늘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네는 왜 그렇게 고집불통인가?"

"하지만 주인님이 없어지면."

마리는 말을 멈췄다. 그녀는 고장 난 시계처럼 턱을 떨었다.

"저는 뭘."

"손을 주게."

나는 마리의 말을 끊었다.

"일어나고 보니, 열차가 흔들려서 도무지 걷지를 못하겠군. 제대로 부축하게."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몸을 이끌었다. 덕분에 한결 걷기가 쉬워졌다. 그녀는 객차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바닥에 딱 붙은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아마 몸이 무거운 덕일 터다.

"당신들도 가면 안 됩니다!"

"아까부터 왜 그렇게 가면 안 된다는건가?"

내가 신경질적으로 묻자, 뚱뚱한 남자는 입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위험하니까요."

"세상에, 그러니까 가는 거잖나, 이 모자란 양반아!"

뚱뚱한 남자는 기가 죽었는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객실 중앙에 섰다. 공교롭게도 열차 정중안에 선 나는 여기서 앞과 뒤, 어디론가 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객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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