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41화 (41/232)

§41. 틈새

우리는 홀린 듯이 원래 왔던 길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모든 이상 현상의 원인은 이 비석에 새겨진 녹색 문자임이 분명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빛났는데, 나는 이런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템스 강의 급류에 휩쓸려 간 신비하게 빛나는 녹색 운석. 비석 위의 문자는 그것과 같은 빛깔로 어둠 속에서도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실수로라도 착각할 수 없었다.

나는 지난 수 개월간 퀴리 부인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녀의 기록물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거기 쓰인 병적으로 섬세한 묘사와 편집적인 기록 하나하나가 내 끈적한 뇌수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도 운석의 녹색 형광에 홀린 퀴리 부인의 광기 어린 얼굴을 보았다.

"당신인가? 어떻게 됐나?"

칸을 지나칠 때마다 말들이 우리를 쫓아왔다. 그때마다 마리는 걸음을 늦췄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러게 가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떨쳐내고 열차를 거슬렀다.

5번 칸.

우리가 출발했던 열차 정중앙에 위치한 객차. 나는 날카로운 인쇄체로 조형된 철제 문구, 숫자 「5」를 보며 문을 열었다.

안쪽의 쾌쾌하고 갇힌 공기가 밀려나며, 그 자리를 붉은 모래바람이 채웠다. 여인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승객의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뚱뚱한 남자는 객실 중앙에서 무언가 열변을 토하다가, 우리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말을 끊었다.

누군가는 우리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눈에 희망을 품었지만, 대부분은 의구심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돌아온 것에 어떤 사연이 담겼으리라 예상했는지, 부르주아 부부 중 남편 쪽이 신중한 질문을 건넸다.

"다들, 쿨럭. 쿨럭 쿨럭."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쉽게 답하려던 나는 연신 기침을 토해냈다. 그때마다 붉은 모래 가루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마리가 조심스러운 시선을 건넸다.

"다들 무사합니다."

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도의 한숨이 뒤따르더니, 승객들은 말없이 박수를 시작했다. 나는 양손을 보이며 그들을 멈췄다.

"안심하긴 이릅니다.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열차가 영원히 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 뚱뚱한 남자는 노골적으로 눈을 피했다. 나는 의족을 티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성큼 걸어 그자의 목전에 섰다. 그는 내 당당한 기세에 질렸는지 겁먹은 눈초리로 내 턱을 바라봤다.

"자네는 지금 상황에 대해 뭔가 알고 있네. 내 말이 틀렸나?"

"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가 원하는 질문을 해줄 셈이었는데, 돌아온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에게 숨길 생각이 있다는 것마저 놀라웠다. 이자는 오히려 자신이 아는 사실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는데, 제 딴에는 잘 숨기고 있다고 믿은 모양이다.

"이런 걸 전에 본 적이 있나?"

내 신호에 맞춰 마리가 자신이 대신 들고 있던 비석을 그에게 보였다. 열차 끝에서 발견한 검은 비석이었다. 어두운 객차 안에 녹색 불빛이 선명히 드러나며, 남자의 뒤룩뒤룩 살진 얼굴을 비췄다.

"악! 내려놓으세요! 그거 내려놓으세요!"

그러자 그는 얼굴에 불이라도 닿은 사람처럼 허우적대다가 바닥에 웅크려 엎드렸다.

"뭔지 아는 모양이군."

"그냥, 상식입니다! 녹색을 피하라! 적색을 주의하라! 상식이라고요!"

그는 울먹이며 외쳤다.

"그러니 제발 그 망할 것 좀 치우세요! 아니, 열차 밖으로 집어 던지란 말입니다!"

"베크렐선 때문에 그런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베크렐선, 방사능 때문에 그런지 물었네."

"그게 뭡니까... 난생 처음 듣는 단어입니다."

아무래도 방사능을 의식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베크렐선, 그러니 방사선이 아직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몇몇 첨단 물리학자만이 이해하는 전문적인 지식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방사선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가 어째서 녹색 형광에 이토록 예민 반응하는가.

"자네가 아는 걸 전부 말하게. 애초에, 자네는 옥스퍼드에 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네. 오히려 이 열차에 타서 무언가... 예를 들어 속도를 계측한다거나, 그것이 목적이었지."

속도. 그 단어를 말할 때, 그의 두터운 뱃살이 떨린 것을 놓치지 않았다.

"속도로군. 속도가 정답이었어."

"시속 88마일."

남자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속 88마일, 약 141km/h였다.

"인류 한계 속도(Men's Limit)입니다. 인류는 결코 그 속도를 넘지 않도록 발전해 왔습니다."

"잠시만요, 대체 무슨 말이죠?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옷에서 거름 냄새가 나는 남자, 아마도 앞쪽 칸으로 향한 남자의 아들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이게 그냥 열차 사고가 아니라고요? 당신들은 뭔가 알고 있는 겁니까?"

"저는 확인하려고 탄 겁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감히 시속 88마일을 넘는 열차를 만들 줄 알았겠습니까!"

뚱뚱한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하물며 조지 허드슨 주니어, 철도왕의 자식이면 모를 리도 없건데...."

"철도왕? 그자의 자식인 게 무슨 상관인가? 철도왕이 살아 있었을 당시에, 가장 빠르다는 증기 기관차도 고작 시속 40마일 안팎에 불과했네."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철도왕도, SMR이 속한 노란 외벽 회사도 전부 알고 있습니다. 인류 한계 속도는 상류 사회에서는 보편 상식입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평범한 것으로 치부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였다. 내게는 그것이 더 수상하게 보였지만, 당장은 그가 가진 지식 출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에펠탑 낙하 사건을 아십니까?"

"1889년."

앉아서 시종일관 기침하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5명의 인부가 에펠탑 첨단에서 작업하다가, 철골이 무너지며 추락사했죠. 에펠은 그 보상금을 지급하느라 파산했고, 결국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자 에펠탑은 완공되지 않고 파리의 흉물로 남았죠. 그 사건을 말하는 건가요?"

뚱뚱한 남자는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그자는 남들보다 중력에 취약한 신체구조를 가졌다.

"그때, 처음 알려진 사실은 아닙니다... 아이작 뉴턴이 이론을 정립했죠. 일정 높이 이상에서 떨어진 물체는 낙하 전후에 다른 성분을 가진 것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꾸준히 연구해, 시속 88마일이라는 조건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트릴 수도, 그리고 그만큼 높은 시설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는 또박또박 한 글자씩 발음했다. 지금까지 그가 소리 지르거나 혼잣말하는 모습만 봤기 때문인지, 그의 지적인 면모는 아주 신선하게 보였다.

"하지만 에펠탑은 그 조건에 정확히 맞았죠. 인부들은 아무 장애물도 만나지 않고 그대로 300야드를 자유 낙하했습니다! 얼마나 세게 떨어졌는지, 신체 조각은 무려 100야드 바깥의 센 강에 떨어져 둥둥 떠다녔습니다!'

뚱뚱한 남자의 외침에, 부르주아 부부 중 여성 쪽이 낮은 목소리로 비명 질렀다.

"세간에는 다섯 명의 신체 조각이 뒤섞였다고만 알려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자들은 떨어지기 이전부터 붙어 있었던 겁니다! 낙하 과정에 인류 한계 속도를 넘은 끝에 어떤 현상인지 그들은 붙어버린 겁니다! 신이시여!"

그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외쳤다. 아니면, 도살장의 돼지처럼.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수백 야드 높이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고 떨어지지라도 않는 한, 인간이 그런 속도를 넘길 순 없으니까요! 기차가 더 빨라지지만 않았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겁니다!"

완전히 절망에 빠진 남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인류를 위해서 기술은 멈춰야 합니다! 제법 멈춰주세요! 테슬라, 허드슨 주니어, 오' 제럴드 학장, 그리고 튜더 회장! 아무나 그들을 멈춰주세요!"

그는 포탄이 옆에 떨어진 병사처럼 패닉에 빠졌다. 그의 울부짖음에 객차 내부의 기온이 2도는 족히 낮아진 듯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에 빠져 어찌할 줄 몰랐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래도 정신을 차릴 기색이 없길래 뺨을 때렸다.

"허억, 허억, 때리지 마세요!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정신이 좀 돌아왔으면 하나만 더 묻지. 자네의 말대로라면, 사라진 물건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다고 했지, 내 말이 맞나?"

다시 멍청해진 그는 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참이나 머리를 굴리는 시늉했다. 그리고는 두텁게 겹이 진 목을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열차가 시속 88마일보다 느려진다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현상만 알고 있지, 그 이상은 모릅니다."

"해볼 가치는 있다는 말이군."

"안 됩니다!"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낮게 말하거나, 소리 지르거나, 중간이 없는 고장 난 축음기 같았다.

"아까 새를 봤습니다! 코끼리보다도 큰 새입니다!"

"그래, 나도 아네."

"저것들은 우리가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멈추는 순간,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덮칠 거란 말입니다! 열차는 계속 달려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말입니다!"

나는 그의 한심한 꿈을 깨우기로 했다.

"멈추지 않는 열차란 없네."

그의 눈이 절망으로 탁하게 물들었다. 그 직후, 그는 마리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저것! 저것은 어디서 나셨습니까?"

"열차 끝에서 발견했네."

내 대답에, 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외쳤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열차의 또 다른 끝에 가보시죠! 거기도 뭔가 있을지 모릅니다! 두 개를 모으면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르고요! 열차를 멈추는 건 마지막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까는 집어 던지라더니, 이제는 모아 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열차의 증기기관이 멈추면 자신의 심장도 멈출 거라 믿는지, 어떻게든 내가 열차를 멈추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사정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열차를 멈춰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나는 그 모든 사람의 죽음을 재촉한 셈이 된다.

"그래, 그렇게 하지. 하지만 어떤 방법도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열차를 멈출걸세."

"그러시죠! 네, 그래야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마리, 가지."

"잠깐만요, 저도 가겠습니다!"

가만히 선 채로 거름 냄새를 풍기던 젊은 남자가 외쳤다.

"꺄아아아악!"

그 순간, 객차 한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아까부터 불안한 듯이 손을 꼭 잡고 있었던 부부였다. 그와 그녀, 아니, 성별과 개체를 구분 짓는 것도 의미 없어 보이는 그들의 몸이 접합된 것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살려주세요! 도와줘, 제발!"

그들은 허우적거리며 우리를 향해 기어왔다.

"잠깐만요, 제가 도와줄게요!"

"멈춰!"

청년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둘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이 달라붙은 둘의 살갗에 달라붙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청년도 끈적한 수액 위에 발을 올린 벌레처럼 찰싹 붙은 것이다.

"아아악!"

"날붙이! 아무거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뚱뚱한 남자가 가지고 온 가방에 칼집을 발견하고 뽑았다.

"앗! 그건!"

"입 다물게!"

뚱뚱한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그것을 꺼내 청년의 손끝을 잘라냈다.

"아아아악!"

"빨리 떨어져!"

청년의 어깨를 잡아, 뒤로 던지듯이 밀었다. 마리는 생전의 습관인지, 무심코 그의 몸을 받쳤는데,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고통 때문인지 그의 비명은 더욱 커졌다.

"움직이지 말게! 그 자리에 멈춰!"

"도와줘요, 살려줘, 제발요."

나는 몇 번이나 부부를 향해 경고했으나, 그들은 같은 말만 반복하며 우리를 향해 기어왔다. 흘러내린 살갗에 옷은 벗겨져 나가,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를 갖춘 추잡한 몸뚱어리가 드러났다.

"멈춰, 제발 멈추게!"

나는 벽면까지 물러났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멀어진 탓인지, 그들은 본능만 남은 짐승처럼 다음으로 가까운 상대를 향했다. 홀로 앉은 여인은 구석에 몰려서 도망칠 수도 없어 보였다.

"도와줘요...."

여인은 본능인지 계산인지 나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뽑아든 칼로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된 그 역겨운 살점 덩어리를 찍었다. 저항하지 않았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머리 두 개를 모두 잘라내고 난 뒤에야 그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죽었나요?"

여인은 안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어서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나는 칼날을 닦지도 않고 칼집에 다시 담았다. 어째서 뚱뚱한 남자가 이런 탐험가 칼을 들고 다니는지 물어볼 기력도 남지 않았다. 손에서 피가 흐르는 청년도, 더는 따라나서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마리."

"네."

마리는 객차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토록 빠르게 바뀔 수는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객차 문 앞에 섰다.

"괴물... 괴물이야...."

문을 여닫는 순간,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뚱뚱한 남자의 목소리가 마리에게 닿을까 봐, 나는 일부러 더 세게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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