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과 영원
런던 열차는 두 얼굴을 가졌다.
주말이 되면 북적거리던 런던행 열차는 텅 빈 채로 도착해, 평소엔 역에 잘 보이지 않던 손님들을 데리고 런던 밖으로 떠난다. 더러운 런던에서는 입기 어려운 화사한 색상의 옷가지와 사교계에서 다져진 기품 넘치는 동작으로 무장한 이들은 가죽 소파에 앉아 교외의 휴양지로 떠난다.
이들이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은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이른 아침인데, 떠날 때는 그토록 가볍던 걸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 느리고 지친 걸음으로 역을 떠난다.
이토록 다른 둘이지만, 결국 런던을 떠날 수 없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았다.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런던이 있다.
런던은 진정 영원에 이른 도시다.
─────덜컹 덜컹...
열차는 별과 별 사이를 달리고 있다.
그저 어둠뿐인 하늘의 양 끝에는 흉흉한 쌍성이 붙박여 있었다. 두 별은 끝이 보이지 않은 선로의 지평 위에 놓인 탓에 우리를 별 틈을 떠도는 여행자로 만들었다.
또한 수분이 없는 세계다. 그 때문에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끼지 않았다. 우주와 인간 사이에는 어떤 벽도 없건만, 간간이 일어나는 모래 돌풍만이 별에 닿고자 하는지 높게 솟구쳤다.
나는 마리를 돌아봤다. 우리는 가까이 있음에도 서로 윤곽밖에 볼 수 없었다. 붉은 사막을 등진 검은 실루엣. 흔들리는 열차가 절거덕거리는 소리에 맞춰 울리는 폴리페무스의 절규.
아, 그렇다.
그녀는 신도 인간도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불쌍한 괴물 폴리페무스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신성을 부여한 나는 갈라테아인가, 혹은 그녀의 손에 무참히 찢겨 죽을 가여운 아시스인가.
별은 이렇게 쉬지 않고 불길한 신탁을 내렸다. 예술을 익히지 못한 나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끼이이이익....
몽환적인 풍경에 넋이 나가 있던 나는 사람의 비명을 닮은 연결기 마찰음에 정신을 차렸다. 당장 뜯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팽팽히 당겨져 있었는데, 이미 열차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속도를 넘어선 모양이었다.
"내가 먼저 가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테라스 난간 위에 섰다.
하늘에는 별이 떠있고, 지상에는 사람이 있다. 이 공간에서는 그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토록 별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불길하게만 느끼며 부주의하게 발을 떼었다.
─────덜컹!
그 순간, 열차가 흔들리며 몸이 기울었다. 의족은 흔들리는 열차에서 중심을 잡을 만큼 탄탄하지 않았고, 나는 난간을 붙잡아 간신히 버텼다.
"주인님!"
충직한 마리가 곧바로 나를 잡아 일으켜 주지 않았으면 큰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제가 먼저 건너갈게요."
그녀는 내 몸을 완전히 뒤쪽까지 끌어올린 뒤에, 개울가 사이를 건너가듯이 난간 사이를 사뿐히 뛰어넘고는 손을 내밀었다. 자존심을 내세우자니 조금 전에 보인 추태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다리를 잃은 이후,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한 일은 타인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었다. 나는 순순히 마리의 손을 잡고 조심히 틈새를 건넜다.
객차의 벽면에는 날카로운 인쇄체로 출력된 숫자 「4」 모양의 철 장식이 걸려 있었다.
나는 객차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 칸의 승객이 전부 사라지다니?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곳은 달리는 열차다. 뒤가 아니라면, 앞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내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그들 전원이 앞쪽 칸으로 넘어간 것이다.
앞으로 달리는 열차이니, 뒤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맞거늘 그들은 관성을 거스르고 있었다.
"찾은 거라도 있나?"
나는 걸음을 늦추는 마리를 뒤돌아보며 물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마리 역시 열차를 둘러싼 험악한 기류를 읽은 듯이 물었다.
"걱정하지 말게. 요즘 것들 한두 명에게 당할 내가 아니야. 그리고 여기 무기도 있지 않나?"
나는 지팡이 끝을 고쳐 잡아, 세이버처럼 허공에 휘둘렀다. 마리는 그런 내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다 조용히 물었다.
"그게 무기라고요?"
"그래. 그리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내가 검술을 익혔다는 말을 했던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어느 정도 과장이 섞이기는 했다지만, 실제로 검술이라고 부를 만한 잡기를 몇 가지 익히고 있기도 했다. 나는 마리의 찬사를 받을 준비를 했지만, 그녀는 늘상 그렇듯이 내 기대를 배반했다.
"주인님은 생활에 도움이 안 될 수록 해박하시군요?"
"왜 그런 식으로 말하나?"
결코 그녀의 말에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3」
나는 일등석 말미 칸 테라스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실내는 아수라장이었다.
고급 카펫 위에는 흙 묻은 신발 자국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고, 벽지는 사람의 손톱에 마구 찢겨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난장판이었다.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조금 춥군그래."
마리가 내 쪽을 돌아본 탓에, 나는 한 마디 급하게 말했다. 아니, 객실 안은 정말로 바깥보다 서늘했다. 혹시라도 내가 이 난장판에 불안해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일등석에는 당연히 2개의 방이 있었는데, 문에는 손자국이 잔뜩 있었으나 열린 기색은 없었다.
나는 첫 번째 문에 다가가 노크했다.
─────똑똑.
"실례합니다."
"누구 신가요?"
안에서는 겁먹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쪽 칸에서 왔습니다. 혹시 여기 누가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그 성난 폭도들 말인가요?"
"폭도라고요?"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 네, 그들은 아주 무례하고, 야생, 야생, 야만적이었습니다! 제때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어떤 봉변을 당했을런지."
그녀는 말하는 와중에도 어떤 끔찍한 가능성을 떠올렸는지 목소리를 떨었다.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이요?"
"저랑 비슷한 연령대 남자인데."
"아, 그래요. 있었습니다. 그, 약간 냄새나고, '대중적인' 억양을 사용하는 남자 말이죠?"
여인은 조심스럽게 경멸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자도 당신처럼 이것저것 묻더니 앞으로 갔습니다."
나는 앞서 간 남자가 무사히 이곳을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다.
"감사합니다."
"당신도 조심하세요. 어쨌거나... 야만적인 자들이니까요. 그들이 돌아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빨리 떠나세요."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또 다른 방문 앞에 갔다.
그리고 노크.
─────똑똑.
"누구 신가?"
"뒤쪽 칸에서 왔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안에서는 성난 남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 그 무례한 작자들이 왔다 간 얘긴가! 그런 짐승 같은 자들도 처음에는 정중하게 노크하더군."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왜 그래야겠나? 하지만... 말해주지. 할 일도 마땅히 없으니."
그는 목을 가다듬고는 서두를 꺼냈다.
"그들은 처음에 정중하게 노크했지. 내가 앞서 말했듯이 말이야. 내가 물었네. 누구 신가?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더군. 저희는 뒤쪽 칸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네. 뒤쪽 칸에서 온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그러니 그들은 답했지. 열차 밖을 보셨습니까?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발 안전한 방 안에 들여줄 수 있습니까?"
남자는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이 느리고 지루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그를 재촉하기 직전에, 남자는 갑자기 목소리를 키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위험한 일이 일어났다면 더더욱 문을 걸어 잠가야 할 일이 아닌가. 그걸 위해서 비싼 돈을 내고 일등석에 탄 것인데. 나는 당연히 안된다고 대답했지. 그러더니 그들은 결국 천한 본성을 드러내서 욕설을 퍼붓고, 문을 두드리더군. 이 문이 아주 튼튼해서 망정이지 위험할 뻔했어. SMR이 물건은 제대로 만들더군. 돈값을 해서 다행이야."
나는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
"그들이 지나간 뒤에, 저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인데."
"아, 그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자 말인가?"
"그가 맞을 겁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신사답게 그에게 경고했네. 그렇지만 그자는 꼭 운전수를 만나 봐야겠다길래, 그러라고 했지."
결국 여기서 쫓겨난 이들은 모두 앞쪽 칸으로 향한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네도 앞쪽 칸으로 가나?"
"그럴 셈입니다."
"그렇다면 조심하게. 그들과 섞이면 자네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아주 괜찮은 신사야."
더는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우리는 3번 칸 객차에서 나왔다.
그러자 찬 바람이 전신을 덮쳤다. 사실 이 공간은 1월이란 걸 고려하면 아주 따뜻한 편이었는데, 우리가 잠깐 3번 칸에 있던 사이에 겨울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쌀쌀해졌다.
나는 세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뺨이 얼어붙는 듯하여 코트 깃을 여몄다.
"어디 안 좋으세요?"
내 모습을 보고 마리는 생뚱맞은 질문을 건넸다.
"자네는 추위를 못 느껴서 좋겠군."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곧 그것이 실언임을 눈치챘다. 당연히 마리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말 없는 뒷모습이 많은 것을 대변했다. 나는 그녀에게 사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마리."
그 순간, 하늘에서 이 세상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괴성이 들렸다.
나는 그 정체를 알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빨을 봤다.
─────딱!
급하게 고개를 숙이자, 내 머리가 있던 위치에 거대한 어금니가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것은... 새였다! 열차의 바로 위에, 포유류와 같은 머리를 가진 새가 나를 잡아먹으려 했다!
원근감이 흐려질 정도로 거대한 괴물의 모습에 급하게 외쳤다.
"달리게!"
내가 소리 지르자, 앞장서던 마리가 허겁지겁 2번 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스스로도 어디서 나온 지 모를 순발력으로 틈새를 건너 뛰고는, 마리가 연 문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것은 미련이 남은 듯이 주변은 두어 차례 훑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디서 이런 새가 나타난 건지, 나는 문을 살짝 열고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것은 하늘에 있었다.
열차의 상공에는 그런 새가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 마리나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열차에서 나는 죽음의 냄새를 맡은 저승사자다. 여윈 열차가 증기를 다 토해내고 쓰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무언가 위험한 것이 있으리라 예측은 했지만, 설마 저런 것일 줄은 몰랐다. 나는 심장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마리는 나를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그녀를 가볍게 밀쳐내며 사양했다.
2번 칸.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자, 마침내 긴 여정 일부가 끝났음을 알았다. 마침내 사라진 4번 칸의 승객들과, 앞서 간 거름 냄새나는 남자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들은 열차 구석에 모여 있었다. 무당벌레가 그러하듯, 추위를 피하고자 모여서 웅크린 모양새였다. 아, 그렇다. 이곳은 못비 추웠다. 런던에서 가장 추운 겨울도 이토록 춥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코트를 여몄다.
"다, 당신도 왔습니까? 빠, 빨리 이쪽으로 와요. 얼어 죽지 않으려면...."
남자는 이를 떨면서 내게 손짓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바, 바깥의 새는 아직도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잘 피해서 오셨군요. 저, 저것들은 벌써 사람 세 명을 물어갔습니다. 우, 우리는 여기 갇혔습니다."
그는 혀를 움직이는 것도 녹록지 않은 지, 혀짤배기소리로 짧은 문장만을 말했다. 이 추위에 방치된 지 아주 오래 지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들 여기 모여 있는 건가? 차라리 방 안에 들어가면 안 되나?"
"소, 소용없습니다. 저, 저들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무, 문은 열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방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안쪽에서는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들렸는데, 도저히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쿵쿵쿵!
나는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 듣고 계십니까? 바깥에 열 명도 넘는 사람이 얼어 죽으려 합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쿵쿵쿵!
나는 다시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말소리는 들렸다. 간간이 느긋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 말했지 않습니까. 우, 우리 목소리는, 저들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 추위가 끝나기를 여기서 기다리려 합니다."
─────쿵쿵쿵!
나는 다른 문을 부숴질 새라 두드리고, 나중에 가서는 발로 차기까지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마리, 여기 있게."
"아니요, 저도 나갈게요. 여기서 저는 도움이 안 돼요."
마리는 기어코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그녀를 굳이 물리지 않았다.
"어, 어디 가십니까? 바깥은 위험합니다! 돌아오세요!"
만류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나는 문 손잡이를 잡아 밀었다.
─────딱!
내 눈앞에서 거대한 어금니가 마주쳤다. 그 영악한 새들은 우리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리 꺼져! 이 망할!"
나는 내 몸집 만한 머리를 피하며 앞으로 뛰었다.
그 순간,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경험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서서히 정체하는 그런 감각 말이다.
정체의 세계,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미학의 경지에 도달했다. 열차 굴뚝에서 나온 저 수증기를 보라. 알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주보다도 반짝이고 있다. 또 내 머리 위의 새는 어떤가. 그것은 개나 말과 같은 추악한 얼굴을 가졌는데, 그것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역겨운 것이었다. 가죽 위의 모공과 잔털 개수마저 셀 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모래바람에 실린 자갈, 그것은 가히 별과 빗댈 만한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외침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순간아,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열차는 영원 위에서 달리고 있다. 오로지 우주와 시간만이 가질 수 있는 속성이었다.
우리는 1번 칸 테라스 위에 올랐다.
문 손잡이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가죽 장갑을 끼지 않았더라면, 아예 살가죽이 달라붙어 화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세차게 문을 열었다.
아,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실로 도원경이란 말이 부족하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퇴폐적인 웃음소리와 음탕한 열기가 흘러나왔다. 유한은 그들의 향락에서 우스운 개념이었다. 그들은 진정 영원한 즐거움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이곳은 향락과 정체의 세계다.
그들은 내 존재를 비웃듯이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흘렸는데, 나는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했다. 객실 끝에는 부자연스러운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향해 곧장 걸었다. 불길한 감각이 전신을 스쳤다. 녹색 형광, 일찍이 본 것 중에 가장 불길한 색이었다. 나는 어떤 광물로 만들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검은 비석을 집어 들었다.
그 위에는 「8」이라 적힌 녹색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