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44화 (44/232)

§39. 옥스퍼드 직행 열차

──────우우우우...

저 멀리, 열차가 선로를 달려오며 경적을 울렸다.

"물러나시오! 물러나시오!"

종을 든 역무원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열차가 들어오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 많은 구경꾼을 뒤로 물렸다.

종이 두 번 울릴 때마다 경적 한 번. 그들은 합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좋은 듀엣이었다.

──────부우우우!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굳이 역무원이 더 애쓸 필요 없었다.

노선 가까이 서 있던 승객들이 경적 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하며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말로만 듣던 증기 기관차가 이토록 크고 빠르고 시끄러울 줄 몰랐던 자들은 입을 헤벌린 채 연신 감탄했다.

평생 성당을 다니면서도 일절 경건할 줄을 몰랐던 이들의 눈에 신앙이 깃들었다. 육중한 검은 철체에 압도된 나머지 공포와 경외 어린 시선을 보냈다.

흔히 말하는 도시뜨기(Urban hick)였다.

모든 게 해결되는 런던에서 일평생 살다가 처음으로 도시를 나가는 자들 말이다. 이틀이나 사흘 정도 런던 밖으로 여행 다녀오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래, 주말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정거장 풍경이었다.

그런 한편,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익숙한 중산층 이상의 신사 숙녀는 도시뜨기들이 보이는 추태를 탓했다. 그들은 진작 철로 밖에서 뒷짐 지며 기다리다, 역무원의 안내에 따라 그제야 선로 쪽으로 느긋이 걸었다.

열차는 이렇게 탑승하기 전부터 사람을 구분했다.

승차장은 작은 사회였다. 여기서는 천국보다 세분화하여 사람을 나눴다.

게으른 베드로는 그저 천국행과 지옥행만을 나눈다지만, 열차는 도착지가 같음에도 기어코 사람을 셋으로 분류했다. 일등석과 이등석, 그리고 삼등석으로 말이다.

모든 사람은 좁은 플랫폼 안에서 제 분수를 다시 확인했다. 기관장이 보내는 정차 신호에 맞춰, 열 명의 역무원이 열 개의 입구에 발맞춰 섰다. 캔 안에 든 견과처럼 승객들은 자신이 있을 자리로 스스로 향했다.

우선 일등석 대기 줄부터 보자.

그들은 뭘 해도 우아하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느리게 걷는다. 보폭이 좁을수록 고상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도 거의 없거늘 줄이 생기는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물론 밀거나 재촉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열차 전방 3칸은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칸마다 8명은 족히 들어갈 만한 방이 2개씩 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주로 두세 명에 불과했다.

다음은 이등석 대기 줄이다.

이등석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인상도, 의상도 각양각색이라 보는 재미가 있다. 돈주머니를 꽉 쥔 근검한 사업가도 있고, 차마 삼등석의 족속들과 상종할 수는 없지만 일등석에는 가지 못한 영락한 귀족도 있다. 어쩌다 분수에 넘치는 거금을 만진 기술공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양복쟁이다.

열차 중앙 3칸은 그들을 위해 있다. 좌석은 2인석으로 총 6개 놓였고, 두 좌석씩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합승은 비일비재했다. 좌석 사이에는 열차에 고정된 철제 테이블이 하나씩 놓였는데, 그것이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유일한 칸막이였다.

어쨌거나, 적어도 그들에겐 소파가 있었다. 페르시안 양식 덮개가 씌워진 따뜻한 소파 말이다.

마지막으로 삼등석이다.

그들에겐 좌석이 없다. 열차 말미 4칸에는 수용 한도 없이 승객이 꾸역꾸역 들어찼다. 그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보였는데, 실제로 둘을 놓고 구분하라고 하면 그리할 자신이 없었다. 허름한 복장도 그랬고, 제대로 씻지 못해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도 그랬으며, 무엇보다 표정이 비슷했다.

삼등석 손님은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 노려보며, 자신의 주머니를 품에 꼭 안았다. 그들은 몇 시간이고 그렇게 서 있은 탓에, 기차에서 내릴 즈음엔 타기 전보다 어깨가 살짝 더 굽어 있었다.

그 때문에 열차의 앞뒤를 구분하기도 아주 쉬웠다. 말미에 붙은 삼등석 칸에는 신체 일부가 항상 삐져나와 있었다. 사람은 그렇게 많거늘 안에선 수 시간 동안 거친 숨소리와 기침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10칸 열차가 영국 어느 정류장에도 들어가는 가장 보편적인 표준 규격이 되었다.

우리가 탄 것은 다섯 번째 칸이었다. 그러니까, 이등석 정중앙 칸 말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마리를 가운데, 열차 정면을 바라보는 자리 창가에 앉히고 복도 쪽에 앉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속삭였다고 하기보다는 평소 목소리에서 음계만 낮아진 꼴이었다. 도통 감정을 담기 어려운 성대다. 그나마 감상적인 표현을 써보자면, 그것은 음산하고 울적한 단조 음을 내는 플루트 같았다.

"그래, 내가 자네를 삼등석에 세워 보내고 혼자 이등석에 앉아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마리는 말을 씹었다.

"말벗 하라 데려왔다고 생각하게. 자네에겐 그럴 자격이 있어."

"하지만 주인님은 돈도 없으시잖아요."

평소 같았으면 마리의 말이 거슬렸을 텐데, 나는 어쩐지 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물론 내가 아량 넘치는 성격과 그녀에 대한 막대한 죄책감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이 대화 자체가 극심한 기시감을 일으켰다.

나는 이 대화를 전에 한 적이 있다. 아마도 한두 번이 아니라 많이.

"이봐, 마리 혹시."

그녀가 무어라 답하기 전에, 또 다른 승객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리는 남들 앞에서 말하기가 껄끄러운지, 결국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들어온 건 한 부부였다. 그들은 전통적인 부부관을 재현할 셈인지 엄숙하게 거리를 벌리고 있었는데, 서로 사랑을 표현하기를 아끼진 않았다. 그들의 애틋한 눈길을 보자면, 자리에 앉고도 그들은 이상할 정도로 서로 거리를 두었다.

나는 그들이 단순한 벼락부자라 생각했다. 의상과 장신구 중 조화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아주 독실한 신자임이 분명했다. 행동거지가 이토록 단정했으니 말이다.

부부가 앉은 뒤에 들어온 것은 유약한 인상의 노신사였다. 그는 불안한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봤는데,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 창밖을 쳐다봤는데, 나는 정말로 누가 그를 쫓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들어온 것은 홀로 여행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누구와도 일행이 아닌 건 분명한데, 말없이 노신사의 옆에 자리 잡았다. 어쩌면 여성이 혼자 다니는 것이 단정하지 못하다 믿는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 같기도 했다.

우리 바로 뒷좌석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는데, 대신 그 맞은 편에 거름 냄새나는 두 남자가 앉았다. 가축을 기르는 부자 같은데, 아버지 쪽은 벌벌 떨었고 아들 쪽은 손을 비비는 꼴이 정신이 이상한 자들 같았다.

"출발합니다!"

열차 밖에서 역무원의 외침이 들렸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그러더니 경적이 울리고도 조금 뒤에 한 뚱뚱한 남자가 부산스럽게 객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광이 날 정도로 훔쳤다.

이걸로 모든 승객이 탑승했다. 역무원과 기장의 목소리. 경적 소리. 주말의 열차.

열차가 출발하지 않은 객실은 소요 직후의 적막이 감돌았다.

제때 열차에 탑승했다는 안도, 앞으로 수 시간이나 낯선 이들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불안, 기차가 사고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앞으로 이틀간 런던을 떠날 수 있다는 해방감.

아니, 그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모든 사람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불안해하며 떨었다.

나는 창 너머를 바라봤다.

창밖에는 조지 허드슨 주니어, 그자가 무언가 외치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를 멈춰야 한다는 편집적인 망상에 사로잡혔는데, 객차 문이 바로 닫히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내려서 멱살이라도 붙잡았을 것이다.

"피곤하신가요?"

"그래,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군."

"꼭 주인님답지 않게 말씀하시네요."

"나답지 않다는 게 뭔 말인가?"

"나이 든 노인 같이 말한다고요."

나는 장갑을 낀 채로 수통을 꺼내, 병마개를 열었다. 안에 거의 가득 찬 위스키를 잔뜩 목에 털어 넣었다. 식도가 타는 듯이 뜨거웠지만, 곧 가라앉았다. 위에서 알코올이 부글거리며 휘발되어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입말이다.

"딸꾹."

"어쩌시려고 그렇게 술을 한 번에 드세요."

이성이 흐려지고, 공포가 물러간다. 나는 어둠을 사랑한다. 지성보다는 사람을 구원하는 무지의 베일을 아주 사랑하는 자다. 누구도 나보다 적막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겠지.

──────부우우우!

열차 경적이 울렸다.

그 우렁찬 소리는 묵시록에 예견된 나팔수의 나팔 소리 같이 절망적이었다. 열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네 고통과 절망을 연료 삼아, 지옥의 기관이 힘차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바퀴가 돌아간다.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체가 온전히 제힘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 걸음만도 못했지만, 서서히 탄력을 받기 시작하더니 말보다도 빨리 달렸다.

창밖으로 오직 열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예술의 파괴 말이다. 열차의 발명은 모든 낙천적인 예술가를 절망시켰다. 마차 뒷자리에 앉아 흘러가는 하늘과 초원을 바라보던 낙은 완전히 사라지고, 눈 깜짝할 사이면 지나치고 말 희미한 들꽃의 잔상만이 안구를 스쳤다.

객실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화했다.

모든 사람이 불안증에 걸린 환자처럼 초조해했다. 병적인 중얼거림과 박자가 맞지 않는 다리 떨림,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우울한 신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마리는 그런 와중에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아주 태연했다.

"열차가 처음이신가요?"

그녀는 내게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나?"

"하지만 굉장히 떨고 계시는걸요."

그랬다. 나는 창밖을 보기가 두려워 등을 돌린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열차가 가속하는 횡가속도가 몸에 가해질 때마다, 가죽 소파에 살점 채로 매장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었다. 내가 열차를 처음 탄 것도 아닐 텐데!

어느새 열차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 길을 달리고 있었다.

내게는 이 모든 것이 불길한 암시처럼 보였다. 전원적인 풍경이 스쳐 갈 때마다, 런던에서 멀어지는 매 순간이 지옥으로 가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역무원이야말로 뱃사공 카른 그 자체다!

──────부우우우!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맞춰, 객차 안의 긴장감이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사람들은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너무 빨라, 너무 빨라."

"떨어져요, 내게 붙지 마요."

"아버지!"

"뒤쪽 칸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죽여야 해!"

"콜록! 콜록 콜록!"

"당신이야말로 나한테 붙지마!"

"앉아있으렴. 앉아있으렴. 다 지나갈 거야."

열차는 가속을 멈추지 않았다.

"다들 왜 저러죠?"

마리는 내게 살짝 몸을 붙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고가 났나요?"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열차가 멈추지 않으면 사고가 아니지, 멈추지 않으면... 그래도...."

그 순간, 나는 환청을 들었다.

────말했잖습니까, SMR 웰스호는 절대로 늦지 않는다고.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절대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멈춰야 해!"

"주인님?"

체감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시속 84마일, 시속 85마일, 시속 86마일, 시속 87마일....

"열차는 멈춰야만 해!"

시속 88마일.

─────덜컹!

열차가 위아래로 크게 들썩였다.

"또야, 또 시작됐어!"

"안 돼, 이번엔 안돼!"

"여보, 사랑해요."

"절대 여기서 움직이지 말아라. 한 발자국도 말이다."

"나도 사랑해. 죽는다 해도, 함께 할 거야."

"손이, 손이 아파요!"

"절 지켜준다고 약속해줘요, 제발요."

"창문! 저 창문을 보세요!"

모두가 일제히 창밖을 돌아봤다.

검은 우주에는 불길한 쌍둥이별이 우리 존재를 비웃으며 교교히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가 떠올렸다.

"갇혔어."

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열차는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네, 영원히 도착하지 않으면 그야 멈추지 않겠지!"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이 시간에 갇혔네!"

객차가 비명에 잠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