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48화 (48/232)

§48. 꿈에서 꿈으로

옥스퍼드는 한 그루 나무였다.

도시는 두 강이 만나는 위치에 뿌리내린 이래로 천 년의 세월을 버티고도 여전히 생기 왕성했다. 노후한 체관 사이로는 신선한 수액이 끊임없이 수혈되어, 실로 연식에 어울리지 않는 혈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거리를 떠도는 갓 스무 살 청년들은 푸른 잔디밭 위를 걸어 다니며 그들이 지닌 열기를 뿌리고 다녔다. 그런 한편, 도시에 대한 경외를 잃지 않았으니 도시는 조화로운 기적 위에 세워져 있었다.

전통과 혁신. 얼핏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존재가 이곳에선 함께 숨 쉬고 있다.

저 유명한 북문의 성 미카엘 성당과 화려하게 지어진 성 바르나바 성당 사이에는 832년과 600m의 간격이 존재했다. 이런 도시에서 시간의 제약이란 이토록 쉽게 잊히고 퇴색되는 것이다.

옥스퍼드는 아주 천천히 성장한 도시다.

나무에서 가지가 돋고, 풀이 자라며, 나이테가 그려지듯이, 도시 또한 그렇게 느리고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모순적이게도, 이 도시에선 사람의 손길이 오래 닿아 있을수록 자연스러웠다. 언제 세워진 지 모르는 돌담과 벽돌벽 하나하나가 자연미를 담은 예술품이었다.

런던의 암 종양 같은 기형적인 발전을 생각하면 옥스퍼드의 존재는 영국의 큰 자랑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사실은 이 아름다운 도시가 온전히 하나의 대학에 봉사하기 위해 바쳐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과연 옥스퍼드는 영국 굴지의 학문 도시라 불릴만했다. 그 위명은 케임브리지 다음 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또, 도착하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옥스퍼드는 영국에서 제일가는 여행지이기도 했다.

내게 그런 확신을 준 것은 여관이었다. 골목마다 숙박 시설이 하나씩 달려 있었는데, 심지어 교통의 중심인 런던에도 숙박 시설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

아무 대책 없이 찾아온 탓에 잠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내 모습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옥스퍼드는 영국 전역에서 학생이 모여드는 유명 대학이었고, 그 말은즉슨 부유하고 극성맞은 부모 형제가 비일비재 방문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학생들도 고향에 돌아가는 겨울철이니 거리도 한산했지만, 분명 날이 풀린 여름에는 거리 가득 돈 많고 까탈스러운 학부모가 즐비할 터다. 그리고 그들이 허술한 마차 여관 따위에 만족할 리도 없었고, 그곳엔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공간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옥스퍼드 장사꾼들은 아주 철두철미했다.

전통 있는 주점들을 앞다퉈 2층을 정리해서 손님 방으로 만들었고, 어떤 자는 심지어 실내 주점을 통하지 않고도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계단을 빼두기도 했다.

학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흘리고 다니는지 몰라도, 이들이 보여주는 지극정성은 런던 제일가는 장사꾼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많은 여관 중 우리가 들어간 곳은 '여왕의 머리'라는 이름의 주점이었다.

아, 물론 나도 눈이 달렸고, 그 이름이 얼마나 경망한 줄 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시내, 그러니까 대학에 가까운 곳에 묵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 상태가 나빠진 탓에 걷기가 힘들었다.

열차에서 내린 이래, 내 몸은 시시각각 안 좋아지고 있었다.

샨타크 때문이었다.

그것에게 산채로 씹힌 이래로, 내 육체는 안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졌다. 나는 걷는 내내 지독한 환상통을 느꼈는데, 당연히 옷을 들춰봐도 상처 하나 없었다.

무엇보다 날 괴롭힌 건 왼 다리였다.

이미 있지도 않은 그 부위는 어디보다 가려웠다.

그 불충한 '여왕의 머리'는 파격적인 이름과 달리 전혀 특별한 점이 없었다.

1층에는 술집이 있고, 취객 사이를 헤치고 계단 위로 올라가면 2층에 손님 방이 있고, 그런 전통적인 가게였다. 날 놀라게 한 부분은 그런 인테리어 외적인 부분이었다.

"손님 두 분 하루 묵습니까?"

주인 내외는 우리 모습을 보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들은 이런 손님을 맞는 게 아주 익숙해 보였고, 심지어 런던 제일가는 호텔 직원보다 자연스럽게 숙박객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둘로."

주인은 손가락만으로 비용을 말했다.

그것이 적정가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오로지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사기를 칠 셈이라면 지금이 적기였다. 나는 기꺼이 내 지갑이라도 던져줬을 테니까.

비용을 지불한 뒤, 우리는 열쇠를 받아 안으로 걸었다.

술집을 가로지르는 와중에 여러 시선이 우릴 향했는데, 대부분 취기로 몽롱한 눈이라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나는 속으로만 그들의 무례한 호기심을 탓했다.

그러면서 잠깐 둘러본 바로, 손님은 크게 두 무리로 나뉘었다.

하나는 소란스러운 대학생 무리였다.

그들은 누가 들어와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네 축제를 이어갔다. 대학생이 으레 하는 그런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냄새나고, 무례한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대학을 나온 지 17년에서 18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 사이에 대학생 수준이 아주 낮아지고 말았다.

이들은 주량을 자랑하기 위해 대학에 온 것처럼 입에 술을 쏟아 넣었는데, 별로 술이 세지도 않아서 결국 모든 걸 망쳐놓곤 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언제나 쏟아진 에일의 달고 신 냄새와 함께 지성의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고약한 난봉꾼들 같으니!

다른 하나는 지역 단골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워낙 자연스럽게 붙박여 있는 탓이었다. 사람보다는 인테리어의 일종이라 하는 편이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10년 정도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깔고 앉은 나무 의자는 이미 옛적에 그들의 엉덩이 모양에 맞춰 닳아 있었다. 심지어 벽에 슨 곰팡이마저 그들의 우중충한 표정과 똑 닮았다.

그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모든 소란통을 노려보며, 자기네가 얼마나 교양 있는 손님이었는지 푸념하곤 했다.

기성과 신진의 대립, 영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긋지긋한 서사였다.

형태 없고 일방적인 대립을 가로지르면, 마침내 계단 위로 낡은 문 네 개가 나타났다.

그중 오른쪽 둘이 우리 방이었다.

"자네가 가장 안쪽 방을 쓰게."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리에게 열쇠를 건네고, 말없이 내 방으로 향했다.

실내는 실망할 것도 없는 흔한 시골 방이었다.

다리 높이가 균일하지 않은 나무 의자.

곰팡이 냄새나는 매트리스.

닦은 지 1년은 족히 지난 거울.

습기를 먹어 물러진 나무 바닥.

방 전체에 배어 있는 시큼한 냄새.

천장 전체에 그려진 수상쩍은 얼룩.

나는 누르스름한 이불보를 펼쳐서 매트리스와 몸이 닿는 면적을 최대한 줄였다. 이런 침대에서 잤다간 피부병이 일어나기 딱 좋은 탓이다.

한편, 나는 마리가 걱정이었다.

알다시피 마리는 남들보다 배는 무겁지 않은가. 이 무른 바닥과 낡은 가구가 그녀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아무리 귀 기울여도 그녀의 방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얹어놨다. 그리고 쓰러지듯이 누웠다. 그대로 꼬박 하루를 앓으며 잠들었다.

옥스퍼드에서 첫날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두 가지 꿈을 꿨다.

휴프노스는 아주 공정한 신이라, 곧바로 내게 그것이 악몽이라 일러주었다.

첫 번째 악몽은 한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자였는데, 나는 어쩐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 그래, 그자다! 황야 위에 서 있던 마른 남자 말이다. 그는 이 세상이 아닌 어느 끔찍한 이차원 속에 있었다.

나는 그자를 조용히 따라다녔다. 그는 이곳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때로는 즐거운 듯, 때로는 지친 듯했다. 나는 그가 아주 오래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딱 한 번 멈췄는데, 아무 이유 없이 자리에 앉아서 수 시간 울어댔다. 어찌나 울었는지, 눈은 반쯤 툭 튀어나와 토끼처럼 빨갛게 변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자살 직전의 우울증 환자가 남긴 무성 영화를 보는 듯이 고요하고 불안했다.

갑자기 어느 순간,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광인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 편집적인 움직임은 완전히 미치지 않고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뭘 하나 지켜보던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그가 무얼 찾는지 눈치챈 것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아니면 적어도 고개를 돌리려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꿈속에서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의 고개가 멈췄다. 그는 한 지점을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꿈은 꺼지듯이 깨어났다.

"허억... 허억... 허억...."

나는 깨어나고, 다시 바로 잠들었다. 나는 현실을 교두보 삼아 꿈 사이를 여행하는 방랑자였다.

무성 영화였던 첫 악몽과 달리, 두 번째 악몽은 생생한 소리에 관한 꿈이었다.

그 소리는 옥스퍼드 남부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익사자가 내지르는 단말마처럼 부글거렸다. 그다음에는 젖은 몸이 육지에 올라온 것처럼 철퍽거렸고, 그다음에는 뚝뚝 물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지구상에는 오직 두 소리만이 남았다.

내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와, 서서히 다가오는 불온한 물방울 소리.

나는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침대 위에 붙박인 듯이 움직일 수 없었다. 꿈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이윽고 2층 창문 앞까지 도착했다.

뚝. 뚝.

물방울 소리가 창틀을 때렸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선 채, 몇 시간이고 잠든 내 모습을 응시했다.

한참 뒤,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지상에 내리쬐었다.

"아악! 아아악!"

나는 빛을 받은 덕에 잠에서 깨어났다. 공포와 광기가 뒤섞인 눈으로 창 너머를 살폈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나는 잠에서는 깨어났지만, 여전히 현실과 악몽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몸이 축축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내 몸에서 나온 체액으로 침대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매트리스와 이불보가 빨아들이지 못한 땀은 마룻바닥에까지 흘러 고여 있었다. 마치 비 온 뒤에 고인 물웅덩이 같았다

나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달빛이 비치는 거울에는 앙상한 괴인이 있었다. 미라였다. 한 번 신문에 실린 미라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과 아주 닮은 건조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였다!

나는 물을 찾아 헤매다가, 누가 따라놓은 것인지 모를 주전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미지근한 물을 전부 삼켰다.

달그락.

텅 빈 주전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에, 나는 바닥에 쓰러져 다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바닥에서 깨어났다.

날이 아직 풀리지 않았음은 물론, 벽난로 온기도 닿지 않는 외진 방이었기 때문에, 내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나는 아침부터 코트를 챙겨 입고 몸을 녹였다.

몸에 온기가 돌아온 후에, 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염려한 바와 달리, 나는 꽤 건강했다. 아니, 사실 그 이상이었다. 하루종일 날 괴롭힌 환상통이나 광증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똑똑.

"누군가?"

"주인님, 일어나셨어요?"

"그래, 들어와. 들어오게."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마리를 방 안에 들였다.

"벌써 외출복을 입으셨네요?"

그녀가 말하는 의도는 뻔했다. 내가 생각보다 부지런한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물론 내가 평소에 썩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내 군인 경력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었다.

"어제는 피로하셨나 봐요."

"여독이 쌓인 모양이야. 아, 그래, 어젯밤은 뭘 했나? 내가 자네를 혼자 두고 말았군."

"주인님이 주무시고 계시길래, 방 안에 있었죠."

물을 필요도 없이 당연했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질문을 다시 했다.

"그나저나 어제 내 방에 들어온 적 있나?"

"한 번은 주인님이 뭐 하고 계시나 하고, 그리고 주무시길래 물을 받아놨어요."

"잘했군, 아주 잘했어."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칭찬했다.

"주인님이 제 고생을 다 알아주시고, 별일이네요."

"나는 칭찬할 일에는 언제나 칭찬해. 알잖나."

마리는 대답하지 않고 접시를 내밀었다.

"식사를 받아왔어요."

접시 위에는 구운 강낭콩과 끄트머리가 검게 탄 구운 빵이 간촐하게 차려져 있었다. 주인 내외와 같은 식사임이 분명했다.

평소 같았으면 부실한 식사에 투정이라도 한마디 했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위까지 건강한 느낌이라 군말 없이 식사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다 문득 마리가 자신의 접시를 들고 구석으로 가는 걸 보고 의아하여 물었다.

"자네도 식사를 하나?"

"네."

그녀와 동거한 지 두 달 만에 안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어디까지나 신체를 조성하고자 했고, 사람이 그러듯이 양분을 동력 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혹시 모르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궁금해한 적도 없었네."

그럼에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철저히 내 무관심 탓이었다.

나는 마리가 돌아온 뒤, 모든 가정사를 그녀에게 다시 일임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모든* 가정사 말이다. 내가 아는 몇몇 사교계 친구들에게 넌지시 말했다가 지탄받은 일이지만, 나는 가계조차 스스로 챙기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식사 준비에 관여하는 것은 둘 뿐이었다. 식재료 비용을 대는 것과, 밖에 나가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심부름해오는 것 말이다.

사실 마리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나는 심부름도 직접 하지 않았다. 대신 믿을 수 있는 몇몇 꼬마를 시켜, 심부름값을 쥐여주고 해결했다.

이런 속사정 속에서, 내가 그녀의 식습관을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걸 인정하는 한편,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식비에 대해서는 왜 미리 말하지 않았나?"

"제가 온 첫날부터 주인님은 제게 필요한 건 전부 사도 된다고 하셨는걸요."

"그래도 말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주인님은 저하고 말하려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리고 저는 전부 가계부에 적었으니 당연히 주인님도 아시는 줄 알았죠. 설마 주인님쯤 되시는 분이 두 달간 가계부 한 번 들춰보지 않으실 줄이야."

나는 말없이 포크로 구운 콩을 떠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나는 내 입에 들어오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전혀 흥미가 없었다. 심지어 내 무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도 있었다.

일상의 그런 소소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인내심이 깊은지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미리 말했어야지...."

나는 손으로 빵을 찢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달그락, 달그락.

식사는 엄숙한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고, 오로지 식기 부딪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내가 특별히 청교도적 신념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식사에 집중하면서 대화하는 걸 귀찮게 여긴 탓이었다. 그러고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당연히 마리는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침묵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는 마리에게 등 돌리고 식사했다.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애초에 예의를 따지자면 그녀와 내가 겸상하는 것부터가 바른 일은 아니지 않나. 어쨌거나,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건만 그녀가 식사하는 광경을 도무지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기계적으로 입안에 음식을 떠 나르는 그녀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독적이고 이질적이었다. 내가 그녀를 인간이라 인정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달그락, 달그락.

나는 식사를 반 정도 해치우고 접시를 내려놓았다. 조금 전까지 왕성했던 식욕은 착각이었는지, 위는 금새 또 말썽을 일으켰다.

젊은 시절, 온갖 못 먹을 것을 먹으며 연명한 탓에 망가진 위는 십 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문제였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전상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일말의 자부심도 느낄 수 없었다.

"전부 드셨나요?"

"그래, 더 먹으면 하루를 또 누워 보내야 할 것 같군. 치워주게."

그녀는 내 접시 위에 올려진 빵을 제 접시 위에 담았다.

"자네가 그렇게 식탐이 많은 줄 몰랐네."

"네? 아니에요. 제가 원래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아시잖아요. 제 몸 때문이에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 저었다.

"아니, 아니야. 자네는 예전부터 먹는 욕심이 꽤 많았어. 이제야 기억나는군."

어쨌거나, 그걸 고려해도 그녀는 정말 많이 먹었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몸에서 어디가 그리 많은 열량을 요구하는지 몰라도, 그녀는 성인 남성보다 족히 두 배는 먹는 듯했다.

내 추측이지만, 가계 불안정의 원인은 그녀의 식비에 있을지도 몰랐다. 꽤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다. 그리 생각하고 나니, 평소에 그녀가 내 씀씀이를 탓하는 건 정말 괘씸한 일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외출할 테니까 준비하게."

"리들 경과 만나시는 데 제가 필요할까요?"

"아니, 오늘은 시내 관광이나 할까 하네. 저번에 자네에게 쉬러 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자네에게 너무 일만 시키긴 했지."

그렇게 말하면 마리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왠지 그녀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고용주가 이렇게 신경 써주면 억지로라도 좋아하는 티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의 무심함에 실망했다. 한참 동안 식사하는 소리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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