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56화 (56/232)

§56. 2 파운드 소년

그날 이후, 아이들의 수법은 점점 대담해졌다.

이전처럼 집안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더는 숨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물끄러미 마주 봤다.

나는 망상에 가까운 확신을 품었다.

아이들이 런던 어딘가에 거대한 굴을 만들었고, 낮 동안 그 안에서 잠들어 있다가 밤이 되면 하수도를 기어 나오는 해충처럼 도시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고작 한두 명에 불과하던 아이 무리는 며칠 새에 부쩍 늘어, 이제는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 주변을 맴돌 뿐만 아니라, 런던의 모든 거리를 활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제 그들은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작정하고 덤빈다면, 내 몸조차 건사히 지켜낼 자신이 없었다.

이런 변화는 위협뿐만 아니라 불쾌도 동반했다.

내게 아이들은 점점 비인간적 존재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덜렁거리는 얇은 사지는 절지류의 다리 같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동공은 무수히 갈라진 겹눈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고 말해도 될지 조심스러웠다. 나방파리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는 법 아닌가.

그러니까, 사람이 벌레로 변한 셈이다!

그건 표현엔 어떤 과장도 없었다. 아이들의 행동은 벌레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게 점점 더 불쾌해졌다.

나는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문에 칠해진 마른 말똥 냄새에 숨쉬기가 어려웠다. 창가에는 쥐나 까마귀 주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하루 사이에 꼬인 구더기가 그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아이의 장난 수준은 진작에 넘어섰고, 악의는 순수라는 변명을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작 바닥 한구석을 차지하는 선에 그쳤던 낙서는 종양처럼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 생명력은 가히 경이로운 것이라, 몇 번을 지워도 같은 자리에 되살아나 더욱 크게 번졌다.

나는 결국 지우기를 포기하고 건물 외벽까지 그것에 통째로 넘기고 말았다.

낙서야 그렇다 쳐도 오물까지 방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쥐잡이나 신문팔이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치우게 시켰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는 집 앞을 지나는 아이도 없게 되어, 그럴 수도 없어 결국 방치하고 말았다.

결국, 내가 사는 아파트 1층은 밤이 지날 때마다 점점 더러워져, 사람이 살 수 없는 흉가처럼 황폐해졌다.

저항할 수단은 없었다.

낮의 도시는 어른의 것이지만, 밤의 런던은 영락없이 아이의 것이었다. 그들의 법을 어기면 어떤 보복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위협이 점점 뚜렷해지니, 나는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마리를 프랑크 저택으로 피난시키는 것이었다. 그녀는 도통 가지 않으려고 고집부렸지만, 내 의지가 워낙 뚜렷하니 어쩔 수 없이 승복했다.

그녀 역시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았으니, 내 판단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친필 편지 한 통과 네 권의 책을 맡겼다. 각각 내가 아서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흑천복음과 마리 퀴리 노트의 원본과 영문 번역본이었다. 그녀는

같은 날, 나는 두 불경한 문서의 필사본을 마저 들고 작은 형님이 일하는 은행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를 통해, 엄중한 은행의 가장 깊숙한 금고에 봉인한 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로써 급선무를 해결했다.

어떤 경위로 아이들에게 이 비밀스러운 마도서들이 알려졌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감히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두 책을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

나는 그 뒤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낮과 밤을 철저히 구분하여 생활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고, 밤에는 침입자들로부터 집을 지켰다.

그러니 잠들지 못한 탓에 육신과 정신은 서서히 마모되어 피폐해져 갔는데, 그런 나를 도와준 것은 의외로 윌슨이었다. 그는 내 사정을 알고 솔선하여 근 며칠 동안 대신 집을 지켜주었다.

덕분에 나는 짧은 시간이나마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수일간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다.

밤마다 나타나는 수많은 아이에게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은 상식선에서 해결되지 않았다. 반면, 내가 가진 단서라곤 고작 「윌리 N. 존스」란 이름이 적힌 시계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낮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 헤맸지만, 내겐 정말 사람 찾는 재주가 없었다. 뚜렷한 이름을 가지고 몇날며칠을 헤매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에서 호전되었다.

"교수님, 윌리 N. 존스라는 사람 찾아냈어요."

"자네가 여기 왜 있나?"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윌리 N. 존스이라는 사람, 찾고 계셨잖아요? 그렇죠?"

"아니, 자네가 대체 왜 여기 있나?"

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혹시 내가 천치가 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다시 한 번 풀어 물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래 어디서든 나타나잖아요."

그 한 문장으로 나는 완벽한 혼란에 빠졌다.

지적할 부분이 너무 많았던 탓에, 오히려 뭐라 지적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은 갑자기 이야기에 합류했다. 그녀는 완벽한 불순물이었다.

"선생님, 누가 왔습니까?"

우리의 대화가 길어지자, 윌슨이 현관으로 걸어나왔다.

집안에서 다른 사람이 나타날 줄 생각하지 못한 건지, 앨리스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우물쭈물 반쯤 열린 문 뒤로 숨었다.

참으로 유아적인 형태의 낯가림이었다.

"저분도 학술회 분이신가요? 혹시 제가 안 좋은 시기에 왔나요?"

윌슨이 뻔히 보고 있는데도 앨리스는 굳이 나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른 사람을 눈앞에 두고 예의바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복잡하네. 자네에게 그걸 말해줘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우선 소개하지, 이쪽은 피터 윌슨. 범죄수사국의 현직 형사라네. 요즘은 내 부탁으로 신변을 지켜주고 있지."

"와."

내 소개에 앨리스는 내 생전 들은 것 중 가장 멍청해 보이는 감탄사를 흘렸다.

"윌슨, 이쪽 숙녀...는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이라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윌슨은 너무 격을 갖추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주 무례하지도 않게 인사했다. 앨리스는 쭈뼛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낮은 목소리로 "반가워요."하고 짧게 웅얼거렸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보이는 추태에 낯을 붉혔다. 그런 내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앨리스는 날 돌아보며 신난 어조로 물었다.

"교수님이라면 형사와 아는 사이라고 해도 당연하네요. 하지만 신변 보호를 받는다니, 또 다른 음모에 휘말리셨나 보죠?"

또? 마치 내가 사고를 찾아 다니기라도 하는 듯한 말투 아닌가. 나야말로 진정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억울한 심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말을 받았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지 말지는 자네 이야기를 듣고 정하겠네. 내가 셈을 잘못한 게 아니라면, 벌써 세 번째 묻고 있네. 리들 양, 대체 내가 윌리 N. 존스을 찾는 건 어떻게 알고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건가?"

내 질문에 마침내 앨리스는 답할 의향이 생겼는지, 멋쩍은 표정으로 "아." 같은 맹한 소리를 냈다.

내가 그 의미를 짐작해보고 있자니, 그녀는 대뜸 말했다.

"선생님 뒤를 캤어요. 그래서 뭔가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아낸 거고요. 윌리 N. 존스, 그리고 하얀 꽃이 그려진 낙서 맞죠?"

"맙소사!"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대답이었다. 나는 깊게 탄식하며 이마를 부여 잡았다.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을 찾아왔으니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죠?"

앨리스는 불안한 듯이 내 눈치를 살폈다.

"아니!"

나는 단언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현관 문을 크게 열어 젖혔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졸지에 엄폐물을 잃어버리게 된 앨리스는 내 몸을 차폐막 삼아 윌슨에게서 숨었다. 그렇다고 18살 처녀가 제 몸을 완전히 감출 수 있을 리도 없을지언대.

헨리 리들 경과의 대담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녀의 이런 유아적인 행동들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여간 우리는 그렇게 어정쩡한 구도로 응접실 안에 들어가 앉았다. 자리에 앉은 뒤로, 앨리스는 아주 얌전해졌다. 그녀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다소곳한 숙녀다운 자세로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윌슨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얌전한 틈을 타서 엄숙히 경고했다.

"우선, 자네가 멋대로 내 뒤를 조사하여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고 말았으니, 굳이 감추거나 속이지는 않겠네. 나는, 그리고 어쩌면 런던은 위험에 빠졌는지도 몰라. 그리고 설명을 듣고나면 자네도 남일처럼 여기지 못할 거야. 내 솔직한 조언으로는, 그냥 모른 척하고 돌아가서 일상을 영위하라 하겠다만."

내 경고문이 길어질수록, 이 말괄량이의 녹안이 빛을 받은 호수처럼 점점 더 반짝였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멈추길 포기했다.

아서와 오랜 교류를 통해, 나는 설득을 포기하는데 아주 익숙했다.

"괜찮아요, 전부 말해주세요."

윌슨은 불안한 눈으로 날 돌아봤다.

얼추 보기에는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에게 이 불길한 사건의 실체를 알려도 되냐는 우려를 담은 눈이었다. 하지만 내가 함구해봤자 그녀는 스스로 더 위험한 곳까지 나아갈 것이 분명헀다.

그런 의미에서 앨리스는 나와 썩 닮은 셈이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나는 내가 지금껏 겪은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밤마다 찾아오는 아이들과 며칠 전 있었던 침입 사건. 떨어진 은 시계, 런던 곳곳에 그려진 하얀 꽃 낙서 같은 것들 말이다.

"이상하네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앨리스는 내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뭐가 말인가?"

"형사님이 왜 교수님을 도와주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렇잖아요? 지금 얘기 중에 형사님이 경찰에도 비밀로 하고 교수님을 도와줄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아무리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해도, 위험을 무릅쓰고 밤을 새워가면서 보초를 서준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앨리스는 계속 속삭였다. 부친을 닮은 직설적인 화법은, 나 역시 의문을 품고 있었던 부분을 거침 없이 파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 대답에 앨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은 많은 것을 대변했다.

앨리스와 윌슨, 두 사람 모두 내게 일반적이지 않은 호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의도가 무엇이건, 나는 지금 상황을 타파하기 전까지는 묻어두고자 했다.

"이제 자네 차례라네. 윌리 N. 존스가 누구지?"

그녀는 턱을 치켜 들며 자랑스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윌리 N. 존스이라는 사람, 매음굴을 운영하나봐요."

"맞습니다, 이건 제 시계입니다."

윌리 N. 존스는 은 시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기뻐했다.

"그 배은망덕한 개자식이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 주인의 물건에 손을 대? 어르신, 부디 녀석을 찾아내면 알려주시죠. 사례는 톡톡히 하겠습니다."

그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찾으면 어떻게 할 건가?"

"고약한 손버릇의 본보기로 손을 잘라 버릴 겁니다."

나는 그게 어떤 험악한 말장난 같은 건가 살폈지만, 그는 꽤 진지해보였다. 어쩌면 비슷한 일을 전에 해봤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시계를 찾아드린 보답을 드려야겠지만."

존스는 구두쇠 특유의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나는 곧바로 그가 원하는 대답을 줬다.

"그거라면 됐네. 대신에 이야기나 좀 들려줄 수 있나?"

"이야기요? 좋습니다, 말하는 걸로 충분하다면 뭔들 못 알려 드리겠습니까!"

내 예상대로 그는 반색하며 즉답했다.

"이 시계를 훔쳐갔다는 아이에 대해 듣고 싶네."

"토미 말입니까?"

"이름이 토미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토미건, 잭이건, 애새끼 이름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존스는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라는 듯이 시원찮게 말했다.

"그 아이는 고아인데 잡일을 시킬 생각으로 시골에서 2파운드를 주고 데려왔습니다. 싼값에 사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기를 당한 것이었지만요."

"사기라니?"

"2파운드나 주고 데려왔는데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으면 그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몸은 허약하고, 머리는 나쁘고, 청소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애새끼가 밥만 축내지 뭡니까. 그나마 목소리는 커서 삐끼를 시키니 그제야 일하는 사람 태가 나더군요."

그는 자신이 아이에게 얼마나 훌륭한 일을 가르쳤는지 자부심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다가 정색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제가 기껏 사람으로 만들어 놨더니, 2주 전쯤에 은혜도 모르고 도망친 거지 뭡니까! 심지어 제 시계까지 훔쳐서 말입니다!"

"그렇군. 그게 단가?"

"그것말고 말할 게 뭐가 있습니까?"

존스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분명 아이에 대해 물었지만, 정작 이름도 확실하지 않은 그 토미라는 소년에 대해서는 알아낸 것이 없었다. 기껏 해야 매음굴의 호객꾼 노릇이나 했다는 정도였다.

"아니, 충분하네. 이야기 고맙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다녀도 되겠나?"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쇼. 어르신처럼 훌륭한 분이 그런 못난 놈을 왜 신경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밖으로 나왔다.

오후의 창관은 아직 영업을 개시하지 않은 탓에 한산했다. 벽에서는 아편과 담배 탄 냄새가 섞여 특유의 고약한 악취가 묻어났는데, 오래 있으면 담배 한 대 태우지 않고 환각을 볼 것 같이 지독했다.

나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눈에 띄었는지 심심한 창부들이 모여 한 마디씩 쏟아냈다.

"토미라는 아이가 있었던가? 분명 청소하는 애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아이 도둑이 잡아간 거 아니겠어요?"

"기억나요. 포주가 그 아이를 아주 지독히 괴롭혔죠. 그러니 바보가 아닌 이상 도망치겠죠."

"손버릇이 나쁜 아이였어요. 뭐든지 주머니에 넣고 봤죠."

존스의 이야기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고 도움이 되는 대답은 없었다. 대답 대부분은 고아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에 불과했으니, 실제로 그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기대했던 바와 달리, 나는 아무 소득 없이 매음굴을 빠져 나왔다.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슬슬 해가 저물 시간이니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그러려고 하니, 매음굴 안쪽에서 나온 누군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르신, 토미를 찾고 있다고요?"

화장품 냄새가 진하게 나는 여인이었다. 리본 달린 실크 보닛과 코르셋을 차고, 분으로 얼굴을 하얗게 덮은 탓에 인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창부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모두 똑같이 두꺼운 화장을 하고, 똑같은 향수를 뿌리고,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여인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남들보다 곱상한 목소리로 몇 번이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강조했기에 유독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렇네만. 자네는?"

"루시라고 해요, 어르신."

나는 굳이 성을 묻지 않았다.

"뭔가 기억난 것이라도 있나?"

"아, 네. 이거는 그냥 소문인데요."

자신을 루시라고 소개한 여인은 무언가 숨기고 있는 티를 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들 아이 도둑이 토미를 데려갔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애가 사라지기 전날에 이상한 말을 했어요."

"이상한 말이라고 하면 예를 들어 뭐지?"

"천사요. 자신이 천사를 봤다고 말했어요."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착한 아이에게만 천사가 찾아와 진정 행복한 삶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분명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녀는 분명 소문이라고 말했지만, 아주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비밀을 숨기거나, 남을 속이는 일을 그닥 해보지 않은 것이 분명헀다.

지금도 내가 어떻게 대답할까 벌벌 떨며, 분칠 너머로도 보일 정도로 새파란 얼굴이었다. 어째서 저렇게 겁 먹으면서 내게 이 소문을 말하려 한걸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천사라. 그래, 고맙네. 많은 도움이 되겠군."

내 대답에 창백하던 여인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이 도둑.

여기서 그 화제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노예상으로 결론난줄 알았던 그것은 다시금 수수께끼의 유괴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천사와 도둑.

이토록 닮지 않은 두 존재가 하나의 사건에 묶여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