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봥소개구리와 스물여섯 마리 동물
출근길. 런던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도시다.
성실한 가정부는 제 주인이 깨어나기 전부터 분주히 집 안팎을 쓸고 닦았고, 걸레를 빤 구정물을 창밖으로 한 바가지씩 쏟아냈다
그런 물을 맞는 것은 언제나 가장 부지런한 노동자였다. 애꿎게 옷이 젖은 노동자는 위를 올려다보며 욕설을 내뱉지만 닿을 턱이 없었다. 그는 결국 오늘의 불운에 체념하고는 앞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노동자의 아침은 간촐하다. 그는 풋사과를 파는 가판대 앞에 줄 서고, 제 차례가 되자 동전을 내려놓고 작고 못생긴 사과 하나를 받았다. 그 줄 옆에는 버려진 앙상한 사과 뼈대가 떨어져 있었고, 그 위로 또 개미떼가 줄을 서고 있었다.
마부는 말이 사과 뼈대를 주워 먹으려는 모습을 보고, 졸린 말이 꾸벅 조는 줄 착각하고 "이럇!"하고 고삐를 당겼다. 그 옆으로 긴 장대를 짊어진 점등원이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런던 시내는 태엽이 잔뜩 들어간 복잡한 기계 장치처럼, 모든 것이 쉬지 않고 제 길을 걸었다. 멈춰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나만이 거리 한 귀퉁이에서 벽에 등을 붙이고 모난 돌처럼 통행을 방해했다.
내 옆구리에는 신문 한 부가 꽂혀 있었다. 고작 10분 전쯤에 산 것이다. 아직 펼쳐보지 않아 어떤 내용이 있는지는 몰랐다. 갓 인쇄기에서 구워져 나온 신선한 잉크 냄새가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럼에도 나는 신문을 보는 대신, 질리도록 봐서 익숙한 거리를 편집적으로 둘러보았다.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는데, 내게 신문을 건네는 신문팔이의 손을 본 것이다. 그 손은 각질 때문에 곳곳이 갈라진 황야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 낀 때는 족히 수년은 묵은 것처럼 보였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지, 손가락마다 손톱 길이가 들쭉날쭉했다. 병든 것처럼 누런 손톱 중에 약지 손톱만 유독 멀쩡한 것이 퍽 우스웠다.
어디서나 볼 법한 그런 손이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나이였다.
그 신문팔이의 손은 제법 나이를 먹었고, 그건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이상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몇 분이나 제자리에 붙박여 고민하고 있었다.
신문을 받은 순간부터였다.
나는 익숙한 런던 출근길을 걷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다른 도시로 떨어진 것처럼 어리둥절했다. 크고 번잡하기론 런던에 지지 않았지만, 뭔가 아주 이상한 도시였다.
나는 곧 깨우쳤다. 내가 본 것은 상실이었다.
찾으려 하니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있지도 않은 것을 찾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상실이란 그리 무정한 법이었다. 있는 것이 당연하다면, 없는 것 또한 그만큼 자연스러웠다.
거리에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올드코트 대학.
나는 작년 말부터 런던 북부에 있는 이 작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것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교육자로서 숭고한 사명이라 말한다면 제법 멋들어지겠으나, 실상은 아주 세속적인 이유였다.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내 생계가 불안한 것이다. 저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빈말로도 근검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한 번 저금에 손대면 금세 낭비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또, 지금 일을 그만두면 달리 손을 벌릴 곳도 없었다. 지금 직장조차 타계한 은랑백의 주선으로 얻은 것인데, 나는 거진 10년 만에 맛보는 고정 수입에 중독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지 않고 생활하며 수업까지 맡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나는 학구적인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오로지 돌아가 쉴 생각만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런 와중, 한 벽보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우연이라 볼 수 없었다.
분명, 누군가 내가 이리 올 줄 알고 붙여 놓은 듯한 벽보였는데, 흰 종이 위에는 먼지 한 톨 붙어있지 않았다.
그것은 통보문이라기보다는 읽기 어려운 시처럼 보였는데, 그 전문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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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봥소개구리의 뱃속에 있습니다.
그건 언제나 길쭉한 몸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데, 머리부터 머리까지 걷는데도 한참 걸리는 긴 동물입니다.
산뜻한 걸음으로는 392보를 걸어야 하고, 힘없는 걸음으로는 281보를 걸어야 하지요.
그건 머리가 넷 달리고, 주둥이는 여덟 달린 동물입니다. 저는 꽁무니로 들어왔다 생각하기 싫어서, 제가 들어온 쪽을 머리라 부르고, 맞은 편을 꽁무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꽁무니까지는 도통 가본 일이 드물지만, 분명 머리랑 똑같이 생겼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꽁무니로 들어왔을 테니까요.
봥소개구리의 뱃속에는 각양각색 동물이 있습니다. 머리부터 차례대로 호명하겠습니다.
-미국악어
-곰
-젖소
-봥소개구리
-코끼리
-여우
-고릴라
-말
-이구아나
-해파리
-코양이
-새끼양
-원숭이
-뉴트리아
-문어
-공작새
-카막이
-토끼
-뱀
-칠면조
-우산새
-독수리
-고래
-이야앙
-야크
-얼룩말 *
하지만 저는 차라리 젖소 뱃속에 있는 봥소개구리를 만나려 합니다.
그건 뱃속이 텅 비었거든요.
(*차례대로 A부터 Z로 시작하는 단어의 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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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신없이 소란스러운 글귀였다.
종이 위에 묻은 잉크 자국으로 봐서는 글자가 분명한데, 그 안에서는 오만가지 동물이 소란스럽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가릴지, 귀를 막을지 고민하다, 결국 귀를 막았다.
이 벽보를 누가 썼는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생이나 되어서 길이를 걸음 수로 나타내거나, A부터 Z까지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동물 이름을 나열해볼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 몰랐으니 말이다.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
그녀는 지금쯤 내 모습을 훔쳐보며 반응을 살피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시를 쓰려고 밤새도록 사전을 뒤적거렸을 테니, 눈 아래에는 옅은 다크서클이 그려져 있을 테고.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말 노력의 벡터가 어긋난 소녀였다.
시의 작가를 알아낼 단서는 더 있었다.
지난 몇 달간의 교류 끝에, 나는 앨리스가 쓰는 암호시가 몇 가지 법칙을 충실히 따른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그녀가 나를 만나고 싶을 때, 일방적인 약속을 통보하기 위해 글 안에 꼭 '만난다'라는 표현을 집어넣었다. 지금 보는 시의 마지막 문단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리나 길이는 위치를 말하는 것이고, 횟수나 경과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시에는 시간을 추측할 단서가 없으니, 보는 즉시 와달라는 뜻인 게 분명했다.
그러면 이제 이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장소를 알아낸 뒤에 찾아가면 됐다. 하지만 나는 더 쉽게 그녀를 만날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벽보를 뜯어낸 뒤에, 종이 채로 구겨 바닥에 버렸다.
"아앗, 버리면 안 돼요!"
그러자 모퉁이 너머에서 익숙한 금발 소녀가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너무해요, 제가 얼마나 공들였는데!"
"나는 이런 애들 장난에 어울려주기엔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보고 있으면서 굳이 다른 장소로 오라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가."
"장난 아닌데."
앨리스는 울상으로 구겨진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애초에 그 시는 미완성 아닌가."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어깨를 흠칫 떨었다.
"A부터 Z까지 동물 이름이 다 안 떠올랐겠지. 내 말이 틀렸나? 봥소개구리는 시에서 다루는 허구적인 동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그 다음은 또 뭔가. 코양이는 좋게 봐줘도 말장난이라 못해. 그리고, 그, 아무리 관대하게 봐줘도 영어 단어라 못할...."
앨리스는 말없이 종이를 내게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얼굴을 숨겼는데, 제대로 읽어달라는 무언의 항의였다.
"그래, 그 카막이, 그리고 이야앙... 잠깐. 과연, 이제 알겠군."
글로만 봤을 때는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는데, 한 번 소리 내어 발음하니 그제야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전혀 닮지 않은 알파벳 조합으로, 절묘하게 비슷한 발음을 재현한 것이었다.
정말 기대하지 않은 노력이 느껴지는 말장난이었다.
내 짧은 감탄에 자신감을 되찾은 앨리스는 개선하는 나폴레옹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뉴트리아는 제가 만든 단어가 아니에요. 그건 남미에 살고 있는 동물인걸요."
곧이어, 그녀는 자랑스럽게 제 지식을 뽐냈다.
"비버와 사향쥐를 반씩 섞어 놓은 것처럼 생긴 이상한 동물이라고 해요. 모피가 부드럽고, 또 칠면조 같은 맛이 난다고 하고요. 제가 먹어본 건 아니에요. 그런 이상한 동물을 먹는 건 프랑스 사람밖에 없을 걸요?"
앨리스는 혀를 내밀고 "웩."하며 구역질 흉내를 냈다.
그녀는 아는 척할 생각이었나 보지만, 사실 나는 그 얕은 지식의 출처를 알았다. 바로 내 품 안에 있는 금주 신문에 그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영국 모피 산업을 갉아 먹는 프랑스산 뉴트리아!」
그 옆에는 앞니가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흉측한 시궁쥐가 영국 본토를 갉아 먹는 삽화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보나마나 평생 뉴트리아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가가 멋대로 상상해서 그린 것이 분명했다.
해당 기사의 특이한 점은, 코이푸라는 일반적인 표현 대신 뉴트리아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이것만으로 앨리스가 어디서 그런 동물을 알게 되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걸 뽐내고 싶었다면, N 자리에 뉴트리아를 넣는 대신, C 자리에 코이푸를 넣었겠지. 빈 N 자리에는 영원이나 밤꾀꼬리 따위를 넣어도 됐을 것이다.
나는 교수로서, 내 학생이 무식을 뽐내고 다니는 꼴을 볼 수 없었기에 따끔히 일갈했다.
"분명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겠지. 하지만 자네는 한 번도 그 지식을 제 것으로 만드려 하지 않은 모양이야. 그랬다면 뉴트리아보다는 코이푸가 일반적인 표현이란 것도 알았겠지. 이국적이고 낯선 것을 배우는 것만이 지식이 아니라네. 진짜 지식은 땅부터 다지고 난 뒤에 자라는 거야. 그런 식으로 급하게 외운 지식이 얼마나 오래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앨리스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내가 자네 지도교수는 아니지만 한마디만 더 하겠네. 자네, K 발음 어휘가 너무 약하지 않나? C의 젖소 이후로 K의 코양이건, Q의 카막이건 전부 C로 시작하는 단어를 발음에 맞춰 바꿔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나. 조금 더 영어 단어를 공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이뿐이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쓴 게 아닌데."
그녀는 풀이 죽었는지 울상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지. 오늘 따로 불러내려 하는 걸 봐서는 뭔가 알아낸 게 있는 모양이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늘 교수님이랑 만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암호문을 보내는 방식이 자네답지 않았으니까. 평소라면 저런 미완성 시는 충분히 다듬고 난 뒤에 편지로 보냈겠지. 하지만 오늘 자네는 보아하니, 급하게 시를 완성하고 내가 오기 직전에 걸어놓은 것 같은데."
내 대답의 어느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기분이 풀린 앨리스는 밝은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 엄청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어요."
그리고 방긋 웃으며 덧붙였다.
"제 시를 풀어내면 알려 드릴게요. 제가 교수님은 오늘 어디로 불러내려 했을까요?"
"그런 식으로 유치하게 군다면 돌아갈 거야."
"앗, 말할게요! 가지 마세요!"
내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았는지, 앨리스는 눈치 빠르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제가 칼리지 안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사진기도 갖고 있었나?"
나는 스스로도 멍청하다 싶은 질문을 던지며 사진을 확인했다.
흑백 사진 안에는 선명하게 그려진 하얀 꽃 그림 낙서가 담겨 있었다.
"어때요?"
앨리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확실히... 큰 발견이라 할만하군. 언제 찍은 사진인가?"
"사흘 전이요."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뭐? 그러면 더 일찍 알려줄 수도 있었잖나!"
"그렇지만 인화가 늦었는걸요. 어제 겨우 받아왔어요."
앨리스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내 손에 들린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그녀에게 따지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전에, 칼라스 학장의 음모를 함께 막을 때도 그랬다.
그녀가 나를 돕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흥미 본위였다. 그녀는 어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것도, 심지어 사태에 위기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이런 극적인 장면 연출을 위해서, *고작 하루이틀* 늦어지는 것을 문제 삼을 리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아서보다도 질 나쁜 소녀였다.
앨리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날 설득시켰다. 그녀의 순수한 열락에 이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제가 더 알아낸 걸 들으시면 분명 깜짝 놀랄걸요."
"나는 이미 놀랐네."
내 눈치를 살피던 앨리스는, 내가 더 화낼 기색이 없자 다시 운을 틔웠다.
"처음에 낙서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언젠가 그게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목적지라고? 마치 낙서가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낙서가 동쪽에서 서쪽으로만 향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걸요. 어쩌면 꽃 모양 발을 가진 보이지 않는 거인 수십 명이 밤마다 런던 서쪽으로 걷는 게 더 그럴싸하지 않을까요?"
나는 달을 등진 거인들이 런던 도심 한복판을 걷는 풍경을 떠올렸다. 동화의 한 장면 같았지만, 낭만적이긴커녕 끔찍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이스트 엔드의 쓰레기장에 살던 거인들이 서쪽으로 향한다면, 대체 어디로 가고 싶어할까요. 런던을 나갈 생각이라면 조금만 동쪽으로 가면 될 테니, 런던 어딘가에 가고 싶은 곳이 있었던 거 아니겠어요?"
그녀는 당연한 말을 한다는 듯이 태연히 설명했다.
"처음 그 생각을 떠올린 이후로 매일 아침마다 그곳을 둘러보고 왔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마침내 그곳에 그려진 낙서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고요. 인화할 시간이 없어서 사진은 가져오지 못했지만요."
"사진은 아무래도 좋아!"
내 난처한 표정에 신이 난 앨리스가 싱글벙글 뜸들였다.
그리고 희극의 클라이맥스를 선언하는 여주인공처럼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명백한 런던의 중심, 여왕께서 거주하는 그곳, 버킹엄 궁전이요!"
앨리스의 외침에 호응하듯, 하늘에서 낮고 무거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음이란 표현은 실로 적절하여 달리 나타낼 방법이 없었다. 뇌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서글펐고, 태풍이 오기 전에 들리는 파공음치고는 너무 지쳐 있었다.
화창하던 창밖의 하늘은 일순 채도만 낮춘 듯이 회색빛으로 어둡게 가라앉았다.
꼭 비 내리기 전날의 밤하늘 같았다.
나와 앨리스는 멍하니 창 너머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만큼 신비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솔개."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네?"
"솔개가 K로 시작하지. 코양이보다는 그게 백 배 나았어."
앨리스는 정말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