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42만 7천5백의 실종
하늘이 어둡다.
날이 늦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먹구름이 짙다. 밤중에는 비가 내릴 테고, 그렇지 않으면 필시 하늘의 착오다.
나는 앨리스와 헤어지고, 자택에 돌아와 있었다.
자기 전에는 몰랐던 바지만, 창틀에는 쥐 주검이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 여기엔 저걸 치울 사람이 없었다. 나라고 치우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도무지 의욕이 나질 않아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반면, 젊은 윌슨은 좀 더 의욕적이었다. 나는 그가 쥐 주검을 발견하고 치워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러기에 그는 너무 바빴다.
윌슨은 책상 위에 차곡차곡 신문을 쌓아 올렸다.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왔습니다."
문자가 포개어진다. 데일리 메일, 데일리 텔레그래프, 파이낸셜 타임즈,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더 스케치, 더 타임즈....
런던에서 이름난 신문은 전부 모인 셈이다. 신문이라 묶어 부르긴 했지만, 실상 이들은 서로 친하지 않다. 같은 문자 나열에 불과하거늘, 지금도 서로 어색하게 밀어내려 하였다.
그렇다면 귀족은 더 스케치인가. 돈을 밝히는 파이낸셜 타임즈가 그 뒤에 설 테고, 그러고 나니 데일리 메일은 아무래도 설 자리가 없다.
책자처럼 꼼꼼히 제본된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는 꾸미고 나온 귀족처럼 으쓱거렸고, 싸구려 폐지에 성의 없이 접어놨을 뿐인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영 촌스러웠다.
그들의 어색한 관계 때문일까, 아니면 책상의 넓지 않은 면적 때문일까.
신문으로 빼곡히 찬 책상은 숨 막힐 정도로 좁게 느껴졌다. 활자중독자라도 이 혼돈의 꼬락서니를 보면 질색하고 헐떡일 것이다. 심지어 난 활자중독자도 아니었다.
그나마 숨구멍을 틔워 주는 건, 윌슨의 꼼꼼한 천성이었다.
그는 모든 신문을 알파벳 순으로, 그리고 발매 순으로 나열하여 내 눈이 길 잃지 않게 하였다. 아, 그리고 발매 순이란 대목을 설명하자면, 몇몇 신문은 과월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최대한 다양한 종류를 모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는 시간까지 넘어서 긁어모아 왔다. 모든 준비가 기대 이상이었다.
이것도 또한 그의 부지런한 성미였다.
"뭔가 알아내셨군요."
윌슨은 기대를 담아 물었다. 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정반대였다.
"아니,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지금부터 알아보려 하는 중이지. 참 이상한 일이네. 내 생각에 이건 누군가는 알아챘어야 했는데, 모른다는 사실조차 나밖에 모르는 것 같으니."
나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손이 닿을 때마다 기껏 윌슨이 나열해놓은 순서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사실 변화는 간단하네. 겨우 두 단어로 나타낼 정도지. 하지만 어쩌다 그 지경이 되었는지, 그걸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네. 고작 한두 사건으로는 그들이 묶여 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을 테지. 그러니 나는 그 윤곽이라도 드러내고자, 런던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알 필요가 있네."
윌슨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 저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졌네."
나는 신문마다 기사를 하나씩 펼쳤다.
「뱃밥 파운드 당 1.25실링... 전월 대비 10배 폭등」
「일 년 만에 넘치는 런던 하수도, 작년의 정비는 무슨 의미가 있었나?」
「봄철을 맞은 노동자 태업 문제 심각」
「포 없는 함대전, 40년 뒤에 왕립 해군은 침몰한다!」
「실종자 : 런던 체류 외국인」
「섀클턴의 무모한 북서 항로 개척이 실패로 돌아가다」
「팔베르크-리스트&웨스트 슈가 Co. 주최 현대 미식회 알림」
「풍자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거리>」
「방치된 템스 강 부두 창고 13곳이 무단 해체되다」
「기름 공장 2곳이 도둑맞다!」
「우리 군대가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이유」
「오스카르 2세, 노르웨이 독립 탄원을 거부하다」
「1896년 2월 <청나라 여인>」
기사 속에는 기자들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활자를 짜내며, 적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지면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눈치챈 건 나뿐인 거 같군."
하지만 어디에도 아이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나는 변화를 알아챈 것이 나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된 것이다.
윌슨도 무언가 깨달았는지 알아챈 티를 내었다.
"자네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나? 그러면 이젠 정말 착각이라곤 못하겠군.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상황이 너무 뚜렷하지. 얼마 전까지 아이들이 하던 일을 지금은 어른들이 하고 있으니까 말이네."
나는 신문을 접어서 몇몇 기사가 보이게 해놓고 나열했다.
「봄철을 맞은 노동자 태업 문제 심각」
"노동자 태업이 아니야. 단순히 노동 인구가 줄어들었을 뿐이지. 그러니 당연히 공산품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일 년 만에 넘치는 런던 하수도, 작년의 정비는 무슨 의미가 있었나?」
「뱃밥 파운드 당 1.25실링... 전월 대비 10배 폭등」
"하수도 청소도 그래. 그건 아이들이 하는 일인데, 청소부가 일제히 증발했으니 그 티가 나는거야. 뱃밥은 말할 것도 없지. 밧줄을 풀어 뱃밥 만드는 일은 구빈원 아이들이 하던 것인데, 이제는 그 일을 하는 아이가 없는 거야."
「포 없는 함대전, 40년 뒤에 왕립 해군은 침몰한다!」
"보아하니, 선박 유지비가 오른 걸로 이런 글을 쓴 모양인데, 이 기자는 아는 것도, 조사한 것도 없군그래. 왕립 해군의 주축은 철갑선으로 넘어갔는데, 그건 뱃밥으로 정비하지 않아. 하지만 그 실수 덕에 분명해졌군. 뱃밥은 어쩌다 가격이 오른 게 아니라, 공급 물량이 없어진 거야."
나는 쉼 없이 중얼거리며 내가 가진 정보를 짜맞췄다. 그럼에도 한 걸음이 나아가질 않았다.
기사를 통해 내 추측이 현실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냈지만, 정작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연결지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어째서 사라진 거지? 그들은 밤마다 뭘 획책하고 있지? 그들이 스스로 단결했을 리가 없지. 고작 아이에 불과하니까. 그렇다면 아이 도둑, 혹은 천사의 소행일 텐데."
그 순간, 나는 번쩍이는 영감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내 손은 마치 남의 것처럼, 신문 세 장을 연달아 이어 붙였다.
「방치된 템스 강 부두 창고 13곳이 해체되다」
「실종자 : 런던 체류 외국인」
「기름 공장 2곳이 도둑맞다!」
아이의 실종과 아무 관계 없다고 생각해서 넘긴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아놓으니, 어째서인지 내게는 이것이 턱없이 불길한 암시를 담은 예언서처럼 느껴졌다.
나는 만년필을 꺼내 여러 신문을 한 도화지처럼 큼직하게 글자를 써내려갔다.
『5,700,000 * 3/10 * 1/4 = 427,500』
그 수식을 응시하던 나는 각 숫자의 의미를 떠올렸다.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숫자였다.
"우선, 모든 아이가 런던에서 사라진 건 아니야. 거리에서 사라졌을 뿐이지. 그 둘은 엇비슷하지만 아주 다르다네. 애초에 거리에 나오는 건 고아뿐이니까. 부모들은 결코 아이를 거리로 내보내지 않지. 이건 상류사회뿐만 아니라, 런던 전반에 통용되는 상식이지. 하물며 노동자들도 제 아이를 공장이나 탄광에 보내지, 굴뚝 청소나 시키지 않는다는 말이야. 안 그런가?"
윌슨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다시 수식을 보지. 570만, 이건 간단해. 작년 런던 인구수가 아닌가. 그중에서 30%라면, 이것도 짐작가는 부분이 있지. 15살 이하 어린이가 런던 인구의 27%에서 28% 정도 차지한다고 들은 적이 있네. 버려진 아이를 생각하면 그보다 많을 테니, 30%라고 불러도 무방할 테지."
벌써 숫자 두 개를 찾아냈다. 말하기 전까지는 확신이 없었는데, 말하는 도중에 나는 그 수식이 내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또, 런던에서는 매년 10만 명씩 아이가 태어난다고 하고, 그중에 1/4이 버려진다고 하네. 숫자를 너무 믿지는 말게. 분명 이보다 많을 거야. 하지만 금방 다들 죽어버리니 굳이 셀 필요가 없는 거겠지."
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어떤 시선에 말하도록 재촉받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윌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떨리는 동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다음에 떠올린 건, 창틀에 놓인 쥐 주검이었다. 하지만 잘 보니 쥐의 안구는 이미 썩어 문드러져서 눈이라 부를 것도 못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불가시한 존재의 시선임이 분명하다. 저 하늘 위에서 누군가 시선으로 내 뒤통수를 관통하여, 대뇌를 헤집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종의 신 내림과 같은 영적 체험이었다.
"570만 명 중에 30퍼센트라면 171만 명이고, 그중에서 1/4이라면 42만 7천5백 명... 이 숫자가 무슨 뜻인지 알겠나? 런던에 있는 고아의 숫자야. 그리고 그들은 모두 거리에서 일하지."
나는 목소리를 점점 가속했다. 희뿌옇던 추측이 말할수록 뚜렷해졌다.
"그래, 지난 몇 주 동안 런던에서 42만 7천5백 명이 증발한 거야! 나는 그들이 어디 갔는지 알고 있지! 커튼 뒤야! 런던 뒤의 밤 장막 너머에 뻔뻔스럽게 발을 내밀고 숨어있네!"
머릿속에 몇몇 기사 제목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방치된 템스 강 부두 창고 13곳이 무단 해체되다」
「실종자 : 런던 체류 외국인」
「기름 공장 2곳이 도둑맞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우둔한 심장은 산소가 부족한 줄 알고 격렬히 펌프질했고, 그 때문에 약한 실핏줄이 곳곳에서 터져나갔다.
"독일 황제가 파리 땅을 밟는 데 필요했던 장정이 고작 30만 명에 불과했어! 이대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야!"
나는 미래를 봤다!
파탄이다! 그 끝에는 파탄이 있다!
"어쩌면 오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보처럼 바닥을 굴렀다. 지팡이도 잡지 않고 일어난 탓이었다.
"어서 모자와 지팡이를 주게! 이 사실을 한시 빨리 군대에 알려야 해! 수도가 공격받을 거야!"
"선생님, 진정하세요! 과대망상입니다!"
"진정할 상황이냐, 이 멍청한 놈!"
윌슨은 발버둥치는 내 몸을 잡고 일으켰다.
"무슨 힘이...."
그는 눈살을 한껏 찌푸리면서 날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오늘은 뒷일을 생각하지 말고, 밤에 나타난 아이 한 명을 잡고 심문하는 겁니다. 그렇게 어떤 상황인지 알아낸 다음에 행동하는 게, 군대나 경찰을 설득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럴 시간이 없단 말이야...."
나는 중얼거리면서도, 윌슨의 말에 반대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근거도 없이 무작정 찾아가봐야 여왕폐하의 군대가 움직일 리가 없었다. 나 역시 군인이었기에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반면, 내가 느낀 감각은 뭐라 이성적으로 묘사할 방법이 없는 충동적인 예언에 불과했다.
피가 차갑게 식었다.
조금 전까지 뜨겁게 끓던 뇌수가 식으며, 나를 지배하던 출처 모를 열망이 갑자기 해소되었다.
나는 윌슨의 부축을 받아, 다시 의자에 앉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이야.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 단서를 찾아냈으니까. 전부 이 편지 덕분이지."
"무슨 편지 말입니까?"
눈치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윌슨을 눈뜬장님처럼 여겼다.
"편지가 달리 이것말고 더 있나?"
그리고, 나는 책상 위에 구르는 만년필을 다시 잡고, 신문 위에 큼직한 글자를 마저 적어놓았다.
「총총,
올드코트 대학.
케이시 오' 제럴드.」
학장님의 선견지명은 참 놀라웠다. 내가 이런 결론에 도착할지 어떻게 미리 알고, 이런 수식을 편지로 보내준 것일까.
윌슨은 뭔가 말하려 하다가 말았다. 나는 그를 굳이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주도, 하늘도 아닌 검고 우중충한 구름의 그림자를 올려다봤다.
"자네 말대로, 오늘만 무사히 넘긴다면 좋겠군.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끝날지도 모르지. 사건의 원흉에 도달해서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아이 도둑 말입니까?"
"아이들은 천사라고도 부르더군."
우리는 천천히 아이를 붙잡을 방법과 심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 나는 여전히 오늘 비극이 일어날 거란 확신을 남몰래 품었다. 내가 아니라도 저 하늘을 보면 누구나 그리 생각할 것이다.
저런 흐리고 습한 밤하늘은 비극의 배경으로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시간은 더욱 흘러, 그날 밤.
런던에서 모든 자연광이 사라지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소리 대신 가로등에서 가스 새는 소리가 거리를 채웠다.
달빛도, 별빛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밤이다.
이런 날에는 마차도 잘 다니지 않았다. 겁먹은 말을 끌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세상에는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되었다.
귓가에는 일정한 백색 소음이 맴돌았는데, 어쩌면 템스 강의 물줄기 소리일지도 몰랐다. 한 번 그리 생각하니 백색 소음은 졸졸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죽은 척했다.
원래는 자는 척을 해야 했지만, 어떻게 해야 자는 것처럼 보이는지 몰라, 그냥 예전에 하던 대로 시체 흉내를 낸 것이다. 피곤한 탓에 그대로 잠들어 버릴 뻔한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나는 애써 수마를 몰아내며 인기척을 신경 썼다.
오늘도 아이들은 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잠든 모습을 본다면 이전처럼 집안에 들어오려 할 것이다. 윌슨은 실외에서 그 순간을 덮치려고 대기 중이었다.
정말 드물게 조용한 밤이다.
이런 밤에는 들리지 않는 것도 들렸다. 템스 강의 느린 강줄기가 강둑을 때리는 소리, 하수도 밑을 첨벙거리는 이형의 존재, 뇌 동맥을 지나는 핏물이 꿀렁거리며 흐르는 소리. 낮고 규칙적인 어린아이 발걸음 소리.
───또박 또박.
짧고 가벼운 보폭이다. 분명 어린아이였다. 내 추측에 확신을 더해주듯이 낯익은 동요 선율이 따라왔다.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루시, 저녁에는 사과나무에 매달리지."
나는 귀를 기울였다. 예상과 다른 일이 일어났다.
분명 평소에는 아이 한두 명 정도만 지나며 부르던 동요였는데, 지금은 하나둘씩 화음이 합쳐져, 어느샌가 합창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았다.
몇 명이나 있을까? 일곱? 여덟? 아니면 열?
나는 지금에라도 일어나, 계획을 멈춰야 하는지 고민했다. 불을 켜고, 내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줘서 아이들을 몰아낼까?
하지만 그러면 윌슨의 입장이 애매하게 된다.
우리는 아이 한 명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을 더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댄, 저녁에는 굴뚝에서 불타지."
고민하는 사이, 아이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나는 이상한 사실을 하나 더 알아냈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노래했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활기차게 노래하고 있었다.
잠깐 의문을 품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죽일 생각으로 왔다!
"아악!"
윌슨의 비명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를 도와야 한다!
나는 벽장을 열어 소총과 총알 가방을 챙겼다. 그러자, 창 너머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불쌍한 루시, 불쌍한 댄."
창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아이들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잘 보니, 나무 토막과 뱃밥으로 만든 조잡한 물건이었다. 그 작고 오밀조밀한 손에는 검은 폐유가 질질 흘러 묻었다.
아이들은 재밌는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함께 구호를 맞추며 바구니를 휘둘렀다. 그러자 건물 외벽에 찐득한 폐유가 달라붙었다. 그리고, 횃불이 그 위에 떨어졌다.
───쨍그랑!
고열에 팽창한 창문이 순식간에 깨지며, 불길이 실내에 범람해 들어왔다. 오래된 나무 가구가 불에 삼켜지며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나는 소총을 품에 안은 채, 방밖에 기듯이 빠져나왔다.
불이 그렇게 빨리 번지는 줄은 처음 알았다. 뒤돌아보니 바닥과 벽을 타고 번지는 화마가 방 밖까지 빠르게 쫓아오고 있었다.
이미 집안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지팡이를 꽉 잡은 채, 현관까지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침착하게 잠금을 풀고 문을 밀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앞에는 무언가 무거운 것이 놓여 가로막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로 날 산채로 태워 죽일 생각이었다!
"둘이 어디 갔는지 물으면, 천사가 데려갔다 하겠지."
나는 문밖에서 들리는 장난스러운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다른 창문으로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곳에도 아이들은 있었지만, 내가 더 빨랐다.
───탕!
총알이 유리창을 박살 냈다. 위협이 통했는지 날 막으려 하던 아이들이 허겁지겁 도망쳤다.
나는 그 틈을 타, 창틀을 뛰어넘어 실외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런던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해가 지고 벌써 수 시간이 지났건만, 다시 런던 하늘이 붉은 석양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타오르는 건 하늘이 아니다.
주황색 광채로 환하게 빛나는 것은 런던이다.
저 멀리 이스트 엔드부터, 사우스 켄싱턴까지. 태양이 그렇듯이 거리 너머 치솟는 불길은 동에서 서로 궤적을 그리며 질주했다.
아아, 런던이 불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