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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고 보니 크툴루-60화 (60/232)

§60. 427,499명

"안 됩니다."

내가 하수도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기 전에, 윌슨이 다급한 목소리로 날 만류했다.

"뭐가 안 된다는 말인가?"

"하수도를 통해 이동하는 건 위험합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목표는 이 하수도 아래에 있을 가능성이 높네. 그리고 지상의 거리는 불타고 있지. 그런데도 말인가?"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께서 저보다 전투 경험이 많으실지 모르지만, 런던 하수도에 대해서는 제가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업무상 몇 번이나 하수도에서 화이트 채플의 짐승을 추적한 적이 있습니다."

말하는 도중에도 그는 하수도와 관련된 안 좋은 추억을 떠올린 것처럼 인상 썼다.

"그저 끔찍했습니다. 저 좁고 어두운 통로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저곳에선 저희보다 유리할 겁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시가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특히나 이런 좁은 하수도 같은 환경은 더더욱 그랬다. 난 순순히 윌슨이 나보다 베테랑이라 인정하고 물러났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목적지까지 지상으로 움직인 다음에 그 바로 위에서 하수도로 내려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윌슨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말에 어떤 맹점이 있는지 잘 아는 듯이 머뭇거렸다. 정작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것이 없었다.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거대한 하수도 전체를 몇 시간 만에 모두 돌아보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제한 시간 동안 들를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뿐이었다.

"하수도 어딘가에 그들이 모이는 거점이 있을 거야. 아이 도둑이 되었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었건,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나는 단언했다.

"그런 게 있겠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계획된 집단 봉기야. 수십만 명의 아이가 정보를 흘리지 않게 통제하고, 배급하며, 계획을 전달하는 일은 군대 같은 체계적인 조직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네. 최소한 고정된 지휘 본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렇다면 넓은 장소겠군요."

"정확한 지적이네. 집히는 바가 있나?"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 하수도에는 하수 처리장을 비롯한 플랜트가 여럿 있습니다. 좁지 않은 설비이니 그 자체만으로 수백 명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장소를 특정할 필요가 있겠군."

그 순간, 돌풍이 몰아쳤다. 길옆에 흐르고 있는 템스 강의 물결이 바람을 따라 거세게 출렁거렸다. 동쪽으로. 태양과 달을 제외한 런던의 모든 자연물은 오직 동쪽으로 향했다.

"동쪽."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래, 동쪽이야. 이스트 엔드에는 론디니움이 있었지. 그곳에서는 로마의 하수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아네. 그리고 후세에 만들어진 하수도보다 좁아서 아이들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들었네. 그런 곳에 숨어 있다면, 어른 청소부가 하수도로 내려와도 들킬 리가 없지."

나는 스스로 설득당했다. 아무 근거 없는 말이었으나, 그것 외에는 답이 아니라는 소인배적인 직감이 찾아왔다.

"이스트 엔드에 있는 하수 처리 시설은 없나?"

"한 곳 있습니다."

윌슨은 만면에 혐오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곳은 아마 런던에서 가장 더러운 시설일 겁니다. 런던 하수 처리장 중에서도 최하층에 있으니, 런던의 모든 오염 물질이 고이는 곳입니다."

이스트 엔드의 첨단, 모든 사건이 시작하고 끝나는 곳.

"벡턴 하수 종말 처리장."

불어올 리 없는 역겨운 동풍의 악취가 코끝에 아른거렸다.

우리는 동쪽으로 걸었다. 그 사이, 불길은 더더욱 번성하였다.

지난 200년 동안 런던 전체에 자욱이 내려앉아 썩은 공기가 탄내와 섞여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창의적인 악취를 풍겼다. 격정적인 멜랑콜리였다.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왔다. 우리는 동쪽으로 향했기에 바람을 등졌고, 그를 타고 많은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어쩌다 우리에게 이런 불행이...."

불타는 건물 앞에서 흐느끼는 여인의 중얼거림.

"아일랜드인의 소행이 분명해...."

"이보다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담배를 뻑뻑 피우며 핏발 선 눈으로 강가를 노려보는 신사들의 불온한 대화.

완전히 체념하지 못한 몇몇은 우물과 건물 사이를 왕복하면서 물을 떠서 부어보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잠재울 규모의 화재가 아니었다.

결국,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은 하늘에 대고 욕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도심지에 만연한 폭력과 광기는 강변까지 이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거리는 그로테스크한 속살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우리는 광장에 도착했다.

분수대가 있어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던 이곳 광장은 이런 혼돈의 도가니에서도 안식처를 자처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분수대에 기대앉아 지친 얼굴로 헐떡거렸다.

그중, 무리에 섞여 있던 한 신사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들!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어찌나 다급히 손짓하는지,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는 걸 알고도 다가가고 말았다.

"어딜 가시던 중인지 몰라도, 지금은 이 광장에서 나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기가 제일 안전해요."

"어째서입니까?"

단순히 화재로 인한 공포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 뻔한 질문에도 과민하게 반응했다.

"폭도입니다. 지금 시내에는 폭도 무리가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불을 지른 것도 그놈들 소행이죠. 놈들에게 잡힌 사람은 골목에 끌려가 처참하게 고문당하다가 죽습니다."

"고문 말입니까?"

신사는 도심으로 이어진 골목을 힐끗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습니다. 아직 못 보셨나 본데, 놈들에게 당한 시체가 거리 곳곳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이 뭉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곧 군대가 움직일 겁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는 전부 안다는 듯이 자신 있게 말했다. 상황판단이 빠른 영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리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은 건 분명했다.

정말 끔찍한 일은 군대가 도착한 뒤에야 벌어질 예정이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운을 빕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신사는 잠깐 걱정하는 시늉만 하고는 우리를 보내줬다.

우린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골목 안으로 향했다.

불길은 더욱 거세어진다.

열기는 우리는 지치게 할 뿐,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않았다. 불시에 날아와 몸통을 터트리는 포화와 비교한다면, 차라리 불길은 자비로운 편이었다.

그에 비해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빛과 소리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붉은 광채 때문에 두 눈은 쉴 틈 없이 말라 쪼그라들었고, 귓가에서 수천 마리의 벌레가 일제히 푸드덕푸드덕 윙윙거리며 날갯짓하는 것 같은 불쾌한 소음에 귀청은 당장에라도 멀 것 같았다.

불타기 전에는 정갈하게 보였던 계획도시의 상징물인 오스만식 아파트는 불길에 덮이고 나니 그저 몰개성한 흉물에 불과했다.

나는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천장 대신에 잿빛 구름이, 벽 대신에는 불타는 건물이 있는 웅장한 라비린토스였다. 걸으면 걸을수록, 내 안에 상식처럼 여겨지던 공간 감각이 휘발되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도로는 기존의 상식과 완전히 어그러져 있었다. 어떤 도로는 불길에 휘말려 지날 수 없었고, 또 어떤 벽은 연소하여 지날 수 있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복잡한 시내 지도는 이미 무용했고, 나는 낯선 거리에 홀로 떨어진 미아처럼 불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한탄했다.

"여기서부터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군."

런던에서 살아온 지난 40년의 세월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제 자네가 안내하게."

"죄송합니다."

그러자, 윌슨 역시 날 돌아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도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를 보고 따라 걸었던 것처럼, 그도 나를 보고 따라 걷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목적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면서, 지금까지 뻔뻔하게도 활보하고 있었다.

우린 서로 바라보며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 윌슨은 불 속을 돌아보며 물었다.

"주소판을 확인해볼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네. 오히려 어줍잖게 길을 알면 아까처럼 헤매게 될 거야. 차라리 선조의 지혜를 따르자고."

그리 말하며, 나는 장갑을 벗었다. 윌슨은 짐작이 가지 않는 표정으로 내 행동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다음 행동을 보고, 아무 말 없이 미간을 좁혔다.

나는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바람이 향하는 방향을 읽었다.

"아마 저 방향이 동쪽이야."

윌슨은 뭔가 말하려 하다가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확신도 없이 불안한 걸음을 내디뎠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우리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점점 인기척이 늘어나고, 반면 완전히 연소한 구조물이 늘어났다.

그리 생각하다, 나는 거리 너머에서 어떤 불순물을 발견하고 윌슨의 어깨를 황급히 잡아당겼다.

"숨어!"

우리는 벽 뒤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조심스럽게 모퉁이 너머 아지랑이 건너편을 응시했다.

"불쌍한 제임스, 불쌍한 메리."

열기로 일그러진 공간 너머 한 무리의 그림자가 재잘거리며 벽 안을 돌아다녔다. 비정상적으로 길고 가는 손에는 횃불과 쇳조각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화재의 적색 광선 때문인지, 혹은 정말로 핏물을 뒤집어쓴 것인지, 얼핏 엿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붉고 섬뜩하게 보였다.

아이들이 완전히 지나간 뒤에야, 나는 윌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가 맞는 방향으로 가는 모양이군. 가세."

그때부터 거리의 풍경은 한 차례 더 변모했다.

우리는 골목마다 널브러진 시체와 만났다. 수가 아주 많지는 않았다. 어쩌다 운 없이 붙잡힌 희생자들이 분명했다. 불에 탄 시체는 아예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푸주한은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사람이다.

그들은 돼지나 닭과 같은 한낱 미물을 잡을 때도 고통을 주지 않는 기술을 연마했다. 급소를 찔러 단숨에 목숨을 앗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선행이었다.

허나, 눈앞에 방치된 시체는 그리 편하게 죽었을 것 같진 않았다.

윌슨이나 미국인의 때와 같았다. 인체의 급소를 모르는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난자한 시체는 처참했다. 귀나 코, 손가락같이 돌출된 부분은 거의 다 잘려 나갔고, 사인조차 고통으로 인한 심장마비처럼 보였다.

아까 신사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런 몰골을 보면 고문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했다.

"대체 목적이 뭘까요? 복수?"

나는 윌슨의 질문에도 해줄 말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아이들의 목표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들은 공포나 신념을 따르는 것 같지도 않았고, 심지어 괴물에게 세뇌당한 것 같지도 않았다.

키워드는 오직 그들 모두가 따르는 하얀 꽃과 유행하는 동요뿐이었다.

이런 거대한 사태의 구심점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유치하고 조잡한 상징물이었다. 그야말로, 어린아이나 속일 정도로 말이다.

정말로 아이들은 세상에 복수하고 있단 말인가?

그를 위해서 수주에 걸쳐 집결하여, 이와 같은 폭동을 일으켰다는 건가? 허무맹랑하기 짝에 없지만, 그런 설명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런던의 실정이었다.

우리는 좁은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골목은 전형적인 이스트 엔드의 그것이었다.

고작 한두 명이 지나기도 힘들 정도로 좁고, 바닥은 제대로 포장되지 않아 울퉁불퉁하고 경사져 있었다. 나는 우리가 정말 맞게 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 무렵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구불거리는 골목 너머에서 말발굽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시기에, 특히 이런 좁은 길목에 마차가 다닐 리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기마 순경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말을 모는 것이 너무 거칠었다. 말은 당장에라도 넘어질 것처럼 격하게 달리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서, 소리는 빠르게 다가왔다.

심지어 내가 상황 파악을 다 하기도 전에, 다그닥 다그닥!

───히이이잉!

골목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불타는 말이었다.

온몸에 불길을 두른 채, 입에서는 마른 혀를 내밀고,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 한 마리가 미친 듯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하게!"

나는 윌슨의 몸을 밀쳤다. 두 사람의 몸이 좌우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불타는 말은 그대로 우리가 있던 자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것은 쉼 없이 울부짖으며 골목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게 대체 무슨...."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시 정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아까와 같이 미친 말 두 마리가 몸을 비비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피할 공간이 없다.

이대로라면 말발굽에 밟혀 죽을 상황이었다. 나는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소총을 겨눴다.

───탕!

침착하게 앞에 있는 말의 목을 맞히자, 그 말은 피 거품을 물면서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아직 죽지 않았는지 몸을 격렬히 들썩거렸는데, 그것이 살짝 뒤를 달리던 말의 발목을 잡아 넘어트렸다.

"윌슨! 지금이야!"

내 외침에 윌슨은 쏜살같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권총으로 차분하게 쓰러진 말의 머리를 연달아 쐈다.

───탕! 탕! 탕!

두꺼운 두개골 때문에 단번에 죽이지 못한 말이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윌슨은 다시 한 발 쏴서 세 발로 두 마리의 목숨을 거뒀다.

말 주검에 뚫린 총상 위로 핏물이 역류하는 하수도처럼 부글부글 솟구쳤다.

나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 주검으로 다가가, 지팡이로 쿡쿡 찌르거나 뒤집으며 상황을 가늠해봤다.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윌슨이 말했다.

"꼬리에 불을 붙였군요."

"아이 같은 장난이지. 벌레 몸통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말을 죽기 직전까지 말총에 붙은 불로부터 달아나려 뛰고 있었다. 죽음이 차라리 구원이었을 것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뻔했다. 우리는 무지와 순수를 빌미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전율했다.

그러다, 나는 또 다른 소리를 듣고는 손가락을 세웠다.

"잠깐."

나는 손바닥을 펴서 귓바퀴 옆에 놓았다.

"혹시 자네도 들리나?"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군요. 또 다른 무리가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저녁에는 땅에 묻히지...

잠시 후, 그는 말을 정정했다.

"아니요. 그들은 지나가는 게 아닙니다."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놈들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방에서!"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제니...

"총성! 당연히 들렸겠지!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하네!"

...저녁에는 고아가 되지...

우리는 말 주검을 건너뛰고 서둘러 움직였다.

주검을 경계로 풍경은 런던 시내에서 이스트 엔드로 바뀌었다. 이 더러운 빈민가도 화재를 피해 가진 못했는데, 오히려 타죽은 시체는 이곳에 더 많이 보였다.

천편일률적인 오스만식 아파트보다는 이스트 엔드 건물들은 구분하기 쉬웠다. 윌슨 역시 위치를 짐작했는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일직선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 와중에도 노랫소리는 멀어지기는커녕, 사방에서 좁혀오듯이 점점 가까워져만 갔다.

"몰고 있을까요?"

...불쌍한 톰, 불쌍한 제니...

"아니, 그럴 리 없네. 저들에겐 지휘 체계가 없어. 그저 우리를 발견하고 각자 뒤쫓고 있을 뿐이네."

...둘이 어디 갔는지 물으면...

나는 앞으로 달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은 하늘은 태양이 뜬 노을처럼 완연한 적색이었다.

런던을 감싼 화재가 격렬한 플래시오버 현상을 일으키며,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로 솟구쳤다. 불길은 지상을 떠나 하늘 높이 불기둥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무질서 속에 절대적인 평등이 도래했다.

섭씨 900도의 세계에서는 만물을 오직 C 혹은 O로만 구분했다. 빛과 소리조차 이곳에선 연소의 노폐물에 불과하였다.

혼돈은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

윌슨은 갑자기 발을 멈췄다. 나는 하늘에 넋이 팔린 탓에 무심코 그와 부딪힐 뻔했다.

"왜 그러나?"

"도착했습니다."

...천사가...

그는 자신의 발밑에 있는 열린 맨홀 구멍을 보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벡턴 하수 종말 처리장으로 이어진 맨홀입니다."

...천사가...

적색으로 빛나는 지상과 달리, 구멍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천사가...

윌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구멍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안쪽에서 "괜찮습니다!"라는 낮은 외침이 들렸다.

나는 맨홀 구멍에 걸터앉아 양다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려가려는 순간, 마지막에 이르러서 런던 지하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설였다. 다시는 런던에서 지하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반년 전이었다.

"천사가 데려갔다 하겠지!"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맨홀 구멍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낙하.

───뚝...뚝...뚝...뚝....

지하.

어둠으로 가득 찬 하수도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악취였다.

"우웩...."

윌슨은 내 옆에 무사히 내려왔는지, 옆에서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품을 뒤적이며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마른 마찰음이 들렸다.

───칙칙.

그러자, 하수도 안에 작은 불빛이 피어올랐다. 나는 윌슨의 손에 들린 작은 성냥을 확인했다.

"이곳인가?"

"아마도 이 근처일 겁니다. 불이 더 밝으면 잘 보일 텐데."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래된 나무 파편을 발견했다. 녹슨 나사못이 박혀 있는 걸 보면, 어딘가 건축 자재로 사용된 것 같은데, 아마도 사라진 템스 강 부두와 관련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걸로 우리가 맞는 장소에 왔다는 건 분명해졌다.

윌슨은 나무 파편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성냥불을 옮겨 붙였다. 하수도의 습기 때문에 불이 잘 붙지 않았지만, 끝내는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제법 밝은 빛을 내었다.

"누구세요?"

목소리는 저 복도 끝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봤다.

"당신들인가요? 이제 전부 끝났나요?"

윌슨은 나무토막을 든 반대 손에 권총을 쥐었다. 나 역시 소총을 앞세우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었다.

첨벙. 첨벙. 첨벙.

복도 위까지 범람한 오수가 신발 밑창을 적시며, 걸음 소리를 통로 전체에 메아리치게 울렸다.

우리는 좁은 복도를 차례대로 지나 마침내 큰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과연,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넓은 공동이었다.

공동으로 들어오자 흐릿한 횃불 빛에 벽면이 비춰 보였다.

『권위에 도전하라』『체제를 파괴하라』

『현상을 부정하라』『신앙을 불신하라』

『관습을 저항하라』『현실을 벗어나라』

거친 필기체로 쓰인 하얀 문자들.

그리고 붉은 꽃 위에 포개어진 하얀 꽃 그림.

"아, 오셨군요."

벽 앞에는 내리닫이 쇠창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감옥 같은 모양새였고, 역할도 다르지 않았다.

"제발 더 있어도 좋으니 언제 나갈 수 있는지라도 알려주세요."

안에 갇힌 나체의 여인들은 애원하며 우리 눈치를 살폈다.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

(Do not take word of one's.)

문구는 모든 문장 위에 고고히 군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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