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61화 (61/232)

§61. 427485

하수도 벽면에 깔린 해묵은 그림자가 불빛을 따라 아른아른 흔들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곳에서 횃불을 흔드는 것은 윌슨의 횡경막뿐이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온 세상의 어둠이 한 칸씩 옆으로 밀려났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나는 소총을 등에 메면서 쇠창살 앞으로 다가갔다.

안에 갇혀 있는 여인들은 날 두려워하는 것처럼 물러나 벽면에 달라붙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이 아이 도둑인가?"

"아이 도둑이요?"

대답 대신 질문이 되돌아왔다.

실제로 어떤가 하면, 그녀들은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아이 도둑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들이 아주 오랫동안 이 지하에 갇혀 있었을 거라 짐작했다.

"여러분은 누군가요?"

여인 중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항상 오시던 분들이 아닌 거 같은데... 가발도 안 썼고."

"가발? 그게 자네를 여기 가둬놓은 사람의 특징인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여인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들은 몸만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무거운 족쇄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윌슨."

"네."

윌슨은 눈치 빠르게 내 옆에 다가왔다. 일련의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전부 짐작한 모양이었다. 정말 나이에 맞지 않게 노련한 젊은이였다.

그는 자신의 제복 어깨를 보였다.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런던 주민이라면, 특히나 이스트 엔드 주민이라면 제복에 숫자를 수놓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를 리 없었다.

"저희는 범죄수사국 소속 형사입니다. 여러분을 도우러 왔습니다."

나는 윌슨의 능청에 혀를 내둘렀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뻔뻔한 태도였다. 예전처럼 고지식한 성격 그대로였다면 하지 못할 연기였다.

"형사요?"

쇠창살 안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거봐, 누군가 알아챌 거라 했잖아."

"마침내 구해주러 오신 거야."

"하지만 계약은 어떻게 되는 거야? 돈은 받을 수 있는 거야?"

여인들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나는 윌슨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 저었다.

내 추측에 따르면 그녀들을 꽤 오랫동안 이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럼에도 수사국에서는 이들의 실종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여인들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자네들은 납치당한 게 아니야. 여기까지는 스스로 왔겠지. 그것이 잠깐 말했던 계약의 내용일 테고, 내 말이 틀렸나?"

"어떻게 아셨나요?"

한 여인이 놀란 표정으로 쇠창살 쪽으로 다가왔다.

흐릿한 횃불 빛을 받은 여인의 나체 굴곡이 드러났다. 피부 위에는 화장품을 펴 발랐는지 석고상처럼 새하얀 모습이었다.

나는 급하게 눈을 피했다.

"어려운 추리는 아니지. 런던에서 아이 도둑 같은 허무맹랑한 표현이 통용된 지 벌써 수 주가 지났네. 반면, 자네들은 아예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더군. 나도 처음 이 단어를 봤을 때는 자네들처럼 굴었으니, 자네들이 적어도 몇 주는 이 아래에 단절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지."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더 들어보게. 우리 범죄수사국에서 자네들의 실종을 알아챈 건 아주 근래의 일이라네. 나쁘게 듣지 말았으면 하지만, 실종 신고도 해줄 사람이 없는 무연고자 여성이 런던에서 고를 수 있는 일은 아주 적은 편 아닌가."

여인은 살짝 울상지었다.

"그중에서도 남성을 따라서, 이런 으슥하고 불쾌한 장소까지 따라오는 계약은... 뭐, 알다시피 특정 직업 외에는 떠오르지 않더군."

"맞아요... 아주 똑똑하시네요."

여인은 내 거침없는 추리에 날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첨언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남들보다는 머리가 잘 도는 편이지."

나는 윌슨의 따끔한 시선을 받은 후에야, 내가 너무 말을 함부러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저나 저희랑 계약을 맺은 게 남자란 건 어떻게 아셨죠?"

"자네 입으로 가발을 썼다고 했잖나."

그러자 여인은 짧게 탄식했다.

"전부 맞아요. 저희는 모두 창녀예요. 하지만 몸을 팔겠다고 이런 하수도 밑바닥까지 내려올 생각은 없었어요. 그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속인 거예요."

"가발 쓴 사람 말이군."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가발 쓴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무슨 말인가?"

"그 사람들은 매일 밤 여기 내려왔지만, 한 번도 같은 사람이 두 번씩 온 적은 없어요. 우리가 아는 건, 그 사람들이 모두 분가루를 뿌린 페리위그를 쓰고 있다는 것뿐이었죠."

여인은 잘 모른다는 듯이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이곳 런던에서 페리위그는 더 이상 선호되는 패션이 아니었다. 오로지 고위 관직의 꽉 막힌 귀족 나부랭이들이 체면을 따질 때나 쓰고 다니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인들을 납치한 것은 그런 페리위그가 어울리는 높은 사회적 입지를 가진 수십 명의 인물로 구성된 단체라는 뜻이 되었다.

그 정도로 화려한 집단의 이름을 내가 들어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쇠창살이나 벽면에 쓰인 문구, 그림 같은 건 전부?"

"그 사람들이 준비한 게 아닐까요? 제가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있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는지, 뒤에 있는 동료들의 반응을 살폈다. 안쪽에서는 그녀의 말에 대한 호응이 따랐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자네도 모르겠군."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사회적인 필기체 문장들과 하얀 꽃 위에 포개어진 붉은 꽃 그림. 저것들이 아무 의미 없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뭘 시켰지?"

"노래와 연기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우리는 늦은 밤마다 고아원이나 구빈원 같은 곳에 가서 창문에 대고 노래 불렀어요.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이런 노래였어요."

그리고 여인은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톰

저녁에는 땅에 묻히지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제니

저녁에는 고아가 되지

불쌍한 톰, 불쌍한 제니

둘이 어디 갔지 물으면

천사가 데려갔다 하겠지....

"남자를 따라다니며 매일 그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언젠가부터 밤에 우릴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생겼어요. 남자는 아이들 앞에서는 천사 흉내를 내라고 했고요. 이상한 요구죠? 하지만 워낙 큰돈을 주니, 몸에 이런 분칠을 하면서까지 어울리지도 않는 천사 흉내를 냈죠."

여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과장된 동작에 창살 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제야 사건의 윤곽을 보기 시작했다.

연기자는 무대의 전경을 볼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연극대 위의 배역인 창녀나 고아는 알지 못한다. 오로지 좌석에 앉아 모든 사건을 거슬러 온 나만이 알 수 있었다.

"그다음에 남자가 뭘 시켰지? 그자는 분명 뭔가 말하라 했을 거야, 어때, 내 말이 틀렸나?"

"아, 맞아요... 잘 아시네요."

내가 창살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묻자, 여인은 깜짝 놀라며 위축된 모습으로 대답했다.

"남자는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라고 했어요."

우리 인생은 진짜 인생이 아니다.

세상이 한 번 불타서 사라진 뒤에 신천지가 열릴 것이다.

신천지에서는 힘들었던 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천사를 따르는 착한 아이는 누구보다 먼저 신천지에 갈 수 있다

여인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한 것이었다. 힘든 사람을 위로하는 것조차 하지 못할 그런 허무맹랑한 입 발린 소리.

아이가 아니고서야 믿지 않을 그런 이야기.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받은 적 없는 고아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고아들에게는 분칠한 창녀조차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천사처럼 보이는 그 아이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과연, 우리는 맞게 찾아왔다.

그녀들은 모든 사건의 배후이자 구심점이었다. 여기 갇힌 천사들이야말로 지상의 아이들에겐 무엇보다 진실된 믿음의 보증이었다.

"남자가 한 말은 그게 단가?"

"아니요. 남자는 여기 안에서 아이들 상대를 해주라고 했어요. 하루에 1파운드씩 준다고 약속해서 거부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매일 밤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화장품이랑 먹을 걸...."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것 말고 아이들에게 한 말은 더 없나?"

내가 말을 끊고 다시 묻자, 여인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녀들은 시작점에 불과했어. 진짜 규칙을 만들어 유도한 건 그 남자들이겠지. 윌슨, 우리가 펜처치 소년의 집에서 만난 날을 기억하나?"

"네, 기억합니다. 그곳에도 노래하는 아이가 있었죠."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행동했을 거야. 자신들이 들은 전설을 퍼트려서 패를 늘리고, 남자들의 유도에 이끌려 살인이나 납치, 심지어 방화 계획까지 이르렀겠지."

그야 유괴 흔적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아이들은 제 발로 그들을 가둬놓은 고아원과 구빈원에서 탈출했을 뿐이었다.

어른들을 향한 복수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선한 행동을 하고 신천지로 떠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토록 해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흉악한 납치범인 아이 도둑도, 아이들을 마중하러 온 천사도 없었다. 아이의 몸을 빼앗는 요정도 없었고,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괴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오직 악의만을 느꼈다.

그 지혜롭고 부유한 일련의 무리는 종교를 만들었다. 오로지 아이만을 위한 종교를 만들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42만 7천5백 명의 십자군을 만들어 런던을 불태운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나와 윌슨의 대화를 들은 여인들이 당황하며 앞으로 나왔다.

"잠깐만요, 무슨 얘기인가요? 살인? 방화?"

나는 처절한 무력감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진실을 고했다.

"자네들이 속인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지금 런던에 불을 지르고 있네."

"그럴 리가...."

여인들은 당황하면서도 점차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존재와, 지금까지의 대화가 그녀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었다.

"이제 눈치챘나? 지금 런던에서는 군대가 진압을 준비하고 있네. 이대로라면 모든 아이들이 반란군으로 낙인 찍혀서 진압 당하겠지!"

나는 서서히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악쓰는 지경이 이르렀다.

"자네들은 반란에 가담한 거야!"

새하얗게 칠해진 여인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져 시체처럼 보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멈춰야지! 잘 듣게,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네! 자네들이 핵심이야!"

내 눈짓에 따라 윌슨은 쇠창살문의 계패 장치를 찾아 올렸다. 그 안에서 겁먹은 여인들이 뛰쳐나왔다.

"그 페리위그 쓴 자들의 계획대로라면, 자네들은 모든 사건이 끝나고도 잊혀져서 이 안에서 갇혀 죽었어야 했겠지. 하지만 아이들이 숭배하는 자네들이 이렇게 밖으로 나왔네. 그건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거야."

"하지만 저희는 그냥 창녀인걸요!"

"아니, 천사지! 아이들에게 자네들은 아직도 천사라네! 저 미친 신앙의 투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존재란 말일세!"

나는 코트를 벗어 한 여인의 몸에 덮어줬다. 그러자 뒤에서 겁먹은 목소리의 항의가 터져 나왔다.

"우리가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 맞는 말이야. 지금 상황만 모면한다면, 평생 아무것도 모른 척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지."

내 말이 면책권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사람들은 위안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겐 그렇게 살 용기가 없네."

우리는 하수도 복도를 뛰었다.

통로는 아까만큼 조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수도로 내려온 이래, 뒤쫓아 온 아이 무리가 있었는지 여기저기서 힘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도통 어딨는지 모르겠군."

"아마 그럴 겁니다. 하수도에서는 소리가 많이 울리니까요."

언젠가 저 아이들에게도 진실을 말해야지만, 그보다는 당장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 합의 하에 우리는 곧장 맨홀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앞서 달리던 윌슨이 우뚝 멈췄다.

그 뒤를 간신히 따르던 나와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윌슨이 멈춘 탓은 아니었다. 우린 모두 같은 것을 보고 멈춰선 것이었다.

그것은 인영이었다.

하수도 수로 위에 우뚝 서 있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도통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불쾌한 형상이었다. 어둠 속에 그 형체를 알아본 여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나와 윌슨은 그보단 침착했다. 애초에 우리는 저것과 만나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해저인."

상황은 순식간에 최악으로 치닫았다.

이곳 하수도가 그들의 영역이란 걸 잊고 있었다. 기생충이 헤엄치는 어류의 흐리멍텅한 눈 너머엔 생생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 마주친 이상, 저것이 우리를 무사히 보내줄 리 없었다. 쏴죽이는 건 어렵지 않지만, 해저인 특유의 동족애로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쉬이 짐작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공격하면 쏠 수밖에 없다.

나는 소총을 앞으로 내세우고, 긴장한 표정으로 그것과 마주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윌슨이 낮게 속삭였다.

"공격하지 않는데, 혹시 적의가 없는 걸까요?"

"그럴 리가!"

나는 소리 높여 타박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난 1년간 저것과 저것들이 섬기는 흉물스러운 우상과 영적으로 교류해왔네. 그리고 인류와 해저인이 공존할 수 없다는 걸 확신했지. 저들은 우리 존재를 가축으로밖에 여기질 않아."

그렇게 말했지만, 해저인의 행동은 확실히 이상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치... 우호적이었다.

그것은 제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우릴 응시할 뿐이었고, 마치 지나가길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도 안 돼."

나는 결국 윌슨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지금은 일단 움직이지."

우리는 해저인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첨벙, 첨벙, 첨벙.

걸을 때마다 발이 하수도 복도에 고인 웅덩이를 차면서 첨벙거렸다. 어느덧, 맨홀의 불빛이 저 복도 끝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앙! 아앙!"

우리가 지나왔던 길에서 아이 울음이 들려왔다.

도무지 이런 장소에 어울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듣고 있자니, 아앙, 아앙, 소리는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통로의 반사음인가 생각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그 숫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아앙, 아앙, 아앙.

첨벙, 첨벙, 첨벙.

그 순간, 나는 불길한 상상에 이르렀다.

지난 몇 주간 하수도에 수십 만 명의 아이가 드나들면서, 이곳에 살아가는 해저인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맨홀 구멍을 올려다봤다.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이거늘 하늘이 밝았다.

어찌나 빛이 차고 넘쳤는지 이런 하수도 밑까지 떨어지는 빛이 있었다. 그 원 모양 빛무리는 그대로 구정물 위에 떨어져, 탁한 오수 사이로 잠기고는 끝내 수로의 밑바닥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그 아래에 쌓인 것은 인골이었다.

달리 볼 방법이 없었다. 작은 아이의 것 정도로 보이는 작은 해골이 수로 바닥에 산재했다. 구정물이 흐를 때마다 다 떨어지지 않은 살점이 너덜너덜 깃발처럼 흔들렸다.

아앙, 첨벙, 아앙, 첨벙, 아앙, 첨벙.

아앙, 첨벙, 아앙, 첨벙, 아앙, 첨벙.

아앙, 첨벙, 아앙, 첨벙, 아앙, 첨벙.

해저인은 대가 없이 풀어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참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알아낸 끔찍한 비밀을 전하지 않았다.

"빨리 가지."

우는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너무 늦기 전에."

하수도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려다본 수로에는 붉은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