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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고 보니 크툴루-62화 (6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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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해."

나는 말했다. 청자는 없었다.

"끔찍한 냄새야."

나는 다시 말했다.

맨홀은 토끼굴처럼 깊었고, 윌슨과 여인들은 진작 맨홀을 지나 지상에 도착했다. 나는 마지막 순번이기도 하고, 또 의족 때문에 말을 몇 번 헛디딘 탓에 뒤처지고 말았다.

시간으로 치면 30초, 어쩌면 그보다도 짧을 수 있는 지연이었다.

그러나 지상에 도착한 이후, 나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했다. 내 맨홀만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 것처럼 일행과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사실 마법도 불가사의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역시 지상에 나오자마자 맨홀 위를 지나는 엄청난 인파에 휩쓸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잠깐, 밀치지 말게! 뭣들 하는 건가!"

나는 사람들에게 반쯤 끌려다니며 허우적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일행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웅성 웅성 웅성.

거리 전체에 크고 불안한 소음이 짙게 깔렸다. 수 시간 전처럼 불안하고 힘없는 음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분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격정적인 내러티브를 담고 있었다.

"저깄다! 저기 고아 놈이 있다!"

누군가 외쳤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직전까지 내가 있었던 맨홀 구멍 아래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뛰어내렸다. 비바람에 쓸려가는 초라한 넝마 행주 같기도 하고, 회색 털가죽을 가진 쥐 주검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것이 제 의지로 맨홀에 빠진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고아? 무슨 고아?"

"망할 고아!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나!"

내 어리숙한 질문에 욕설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아주 기분 나빴지만, 군중 속에 섞여 누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직후였다.

그림자, 아마도 고아가 뛰어내린 맨홀을 중심으로 큰 원이 뚫렸다. 움직이지 않으려고 버팅긴 덕에, 나는 그 대열의 가장 앞에 설 수 있었다. 나는 겨우 숨을 돌리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볼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의 몰골은 형편없었다.

하수도 아래를 떠다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안에서는 나도 꽤 멋을 부린 것처럼 돋보였다. 사람들은 외투를 벗고 있건, 허리띠를 잃어버렸건, 하나씩 부족한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밤새도록 바람에 불어온 재를 맞은 얼굴은 검댕투성이라 모두 굴뚝청소부처럼 새까맣게 보였다.

저마다 손에는 무겁거나 날카롭거나, 혹은 둘 다인 물건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몇몇은 횃불이나 양초를 잡고 높게 치켜들었는데, 그들의 정체는 너무 명확해서 달리 말할 방법이 없었다.

이들은 폭도였다.

군중 속에서 실크 해트를 쓴 신사들이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 빨래몽둥이를 손에 든 신사들은 맨홀 바로 앞에 도착하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만 굴렀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 인파를 가르고 나타난 남자는 때가 줄줄 흘렀는데, 화재 때문이 아니라 평소부터 그러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곧장 맨홀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말에게 여물을 먹일 때나 쓰는 쇠갈퀴를 구멍 아래로 찔러 넣었다. 신사들이 몸을 숙여 구멍 안을 쳐다봤다. 그러자 잠시 후, 안쪽에서 새끼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았다!"

신사 한 명이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외쳤다.

"팔이 뜯겨 나가기 전에 나오는 게 좋을 거다, 이 고약한 꼬맹아."

갈퀴를 든 남자는 킬킬 웃으며 자루를 살살 잡아당겼다. 그러자 팔뚝이 꿰뚫린 소년 한 명이 정육점 꼬챙이에 걸린 도육처럼 힘없이 끌려나왔다.

"용서해주세요...."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소년을 동정하거나, 남자를 말리려 하지 않았다. 불길에 비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화난 것처럼, 혹은 흥분한 것처럼도 보였다.

파이로필리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네로의 문란한 성벽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이의 팔뚝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붉은 도파민이 뚝뚝 흘러내려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아, 살아 계셨군요."

그 광경에 압도되고 있자니, 군중 속에서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가까스로 참상에서 눈을 돌려 상대를 확인했지만, 누군지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어물쩍거렸다.

"다행입니다. 해야 하는 일은 다 마치셨습니까?"

나는 그제야 그가 분수대에서 만났던 초췌한 신사라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는지 생각하던 나는 그 이유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분위기였다.

시한부를 앞둔 중환자처럼 죽어가던 남자가, 여기서는 나폴레옹의 기함 동방호를 격침하고 개선하는 넬슨처럼 당당하게 굴었다. 그러니 알아볼 재간이 있겠는가.

"이게 다 어찌 된 영문입니까? 이 인파는 뭐고, 저자들은 또 뭡니까? 군대를 기다린다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남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천천히 말하라는 뜻으로 손을 내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다행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니군요. 하나씩 대답하겠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 우린 경찰이 우릴 구할 상황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조직을 재편하기로 한 겁니다."

"무슨 역사 말입니까?"

"물론 자경단(Watchmen)이죠. 현대인들은 평화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한다는 것마저 잊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좋은 자극이 된 거죠."

나는 그 뻔뻔한 말투에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저것이 자경이란 말입니까? 차라리 사형대지기(Deathwatch)라면 모를까."

신사는 내 시선 끝을 쫓았다.

그곳에는 갈퀴에 매달린 아이가 축 늘어져 있었다. 갓 끌려나왔을 때부터 저랬지만 죽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푹 숙인 머리에서는 깊은 체념과 신음성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우리가 무고한 아이를 죽이고 다닌다고 말입니다."

"오해고 자시고, 정확히 그렇게 보입니다."

"아이의 모습에 속아선 안 됩니다. 저렇게 보여도 저것은 흉악범입니다. 아시는지 몰라도 온 도시에 불을 지르고 다닌 것이 바로 저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신사는 경멸하듯이 덧붙였다.

"아마 교인도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대할 것까지는 없잖습니까?"

내 항변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께서는 잘 모르시는군요. 도시는 살아있는 사람 같은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의 몸에 문둥이 살갗을 붙이면 온몸에 나병이 퍼지듯이, 썩은 살을 잘라내는 건 도시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의료 행위입니다. 우리가 저것들로부터 도시를 구하고 있는 셈이죠."

"저것들?"

"고아 말입니다. 진작에 다 죽였어야 했는데."

나는 말을 멈췄다.

내가 더 말하지 못한 것은 신사의 폭력적인 망상에 겁먹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발언이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란 사실 말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이 안에서는 일반론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위축시켰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예컨데...."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갈퀴에서 뽑힌 아이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산채로 태워 죽입시다!"

"본보기로 매달아 죽입시다!"

비명이 폭력을 촉발했다. 군중의 핏빛 망상이 현실로 드러나기 직전이었다.

"잠깐!"

인파를 비집고 나타난 것은 한 장년 남성이었다. 그는 아이에게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길바닥에서 아무 법적 근거 없이 사적 제재를 가하는 건 방관할 수 없네! 영국에서는 왕권조차 법 아래 있는데, 자네들이 과연 빅토리아 여왕보다도 높은가?"

"당신이 누군데 그럽니까?"

"나는 치안 판사야! 나보다 법을 잘 아는 자가 있다면 나와보게!"

판사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반발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서부터 해야지. 내가 성서를 가지고 다니는 걸 운 좋은 줄 알게."

그는 자신의 사무 가방에서 두꺼운 성서를 꺼내 아이에게 들이밀었다.

팔을 붙잡혀 서 있는 것이 고작인 아이는 성서와 판사를 번갈아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만을 지었다. 그 입에서는 선서는커녕 쌕쌕 거친 날숨만이 나왔다.

"부디...."

아이가 무엇을 용서받으려 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부디, 로 시작하는 선서가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누군가 외쳤다.

"죄인이 선서를 거부합니다!"

"그래, 나도 그게 보이는군. 놀랍도록 뻔뻔하군."

나는 차마 방관하지 못하고 외쳤다.

"고작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판사는 날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네. 내 생각이 짧았어."

그는 정정했다.

"아직 열넷도 안된 아이에게 선서할 자격이 없지. 예리한 지적이었네. 피고는 나이를 말하라."

"모릅니다, 어르신...."

"죄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이도 모를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나이를 속이고 있지?"

"정말입니다, 저는 고아라 제 나이를 모릅니다...."

"거짓말입니다!"

지지부진한 심문이 이어졌다.

내겐 이 모든 것이 허황한 연극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아이를 사람들은 억지로 일으켜 다그쳤다. 재판은커녕 고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 불과합니다! 죄가 입증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그 사실을 알아내려 하는 게 아닌가, 조용히 하게!"

"의식이 불분명한 아이를 다그치며 선서를 시키고, 알지도 못하는 나이를 묻는 것이 말입니까?"

"나는 무죄를 증명할 기회를 주는 거네. 무고하다면 밝혀지겠지. 그것이 재판이야."

"교육받은 적 없는 고아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군중에서 누군가 외쳤다.

"제가 봤습니다! 저 아이는 우리 집에 불을 지른 패거리가 저 정도 키였습니다!"

"저도 본 것 같습니다! 똑같은 모자를 쓴 아이였습니다!"

점점 목소리가 크고 많아졌다. 무엇도 아이의 죄를 증명하기엔 부족한 말뿐이었다.

"피고, 그게 사실인가?"

"저는... 저는 모릅니다."

"보았나, 이러고도 아이가 무고하다고 주장할 셈인가?"

"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힘없이 항변했다.

"허나, 죄는 죄다. 연소함도, 무지함도, 무연고함도, 금보다 순수한 죄의 무게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못한다."

판사는 단언했다.

나는 이 참상을 멈출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법치주의를 표방한 재판은 고도로 형식화된 인신공양이었고 민중은 피를 원했다.

신사의 말이 옳았다.

지금 런던은 창세기에 적힌 두 도시를 방불케 하는 역사적인 퇴행의 순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더 말하지도 못했다. 내 몸은 사람들의 손아귀를 오가며 걸레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정신을 차릴 무렵, 나는 인파 밖에 쫓겨나 있었다. 옷은 너덜너덜했지만 상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인파 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 아이를 구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빨래 몽둥이로 사람을 때리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말이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상황은 내 예상보다도 나빴다.

한시라도 빨리 윌슨과 여인들과 합류해야 했다.

화재는 여명에 이르렀다.

맹렬히 타오르던 도시는 이제 타다 남은 모닥불처럼 잔불로 명맥만 이어갔다. 심지어 도시를 태우는 불길보다도 지상을 투영한 밤하늘이 더 붉고 밝았다.

아침부터 우중충하던 하늘은 어느샌가 훤히 트여 있었다. 붉은 하늘을 가리던 잿빛 구름이 걷히고, 다시금 밤하늘의 오랜 지배자가 돌아왔다. 수놓아진 별밤처럼 모든 별이 순간순간 제자리를 찾아 정렬하고 있었다.

혼돈이 끝났다.

지리멸렬한 2막이 내리고, 3막의 커튼이 초라하게 올랐다. 환호성은 없었다. 대신 분노한 관객의 난입만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각본가의 섬세한 안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때마다 걸음은 빨라졌다.

나는 급하게 윌슨이 향했을 것 같은 골목 안으로 뛰어들었다.

"앗."

그러자 아이가 나타났다.

골목 한가운데에 초조하게 서 있던 아이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뒤돌아 달아났다. 나는 그 뒷모습이 너무 낯익어 홀리듯이 쫓으며 외쳤다.

"자, 잠깐!"

워낙 순식간에 지나쳐서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 아이는 내가 잘 아는 아이였다.

내가 찾아 헤매던 신문팔이 소년 말이다. 나는 그를 찾아 시작했던 긴 탐문이 곧 완벽한 수미상관으로 맺어질 것을 직감했다.

모든 사건의 끝이 다가왔다.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내 시선에서 벗어났다.

"날 알아보지 못하겠나?"

────쿠웅! 쿠우웅!

나는 다시 외쳤지만 목소리는 폭발음에 묻히고 말았다. 그것은 시가지 한가운데에서 들려왔다. 제법 떨어져 있었음에도 귀청이 얼얼하게 떨렸다.

그뿐만 아니라, 공기의 떨림이 피부까지 전해져 왔다. 나는 이 감각을 잘 알았다.

"말도 안 돼."

내 입에서 비명 같은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멈추게! 제발!"

나는 서둘러 골목에서 빠져나와 아이 뒤를 쫓았다.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큰길로 나왔다. 그는 곧바로 한 무리의 아이에게 합류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날아온 포탄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나도, 아이들도 그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처하려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새하얀 빛이 퍼지며 의식이 잠깐 꺼졌다. 다시 정신을 차릴 무렵, 지면이 파편화되어 사방으로 비산하고 있었다. 돌 부스러기 사이에는 붉은 육편이 휘날렸다. 불빛이 꺼지지 않아 구분하기 아주 쉬웠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작고 누런 눈알이었다. 그것은 내게 다가와 발아래 툭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눈알에서 썩은 토마토처럼 끈적한 유리체가 팍하고 터져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야포를 재장전하는 육군이 보였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레드 코트가 붉은 도시와 융화되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붉은 물결은 광장 한가운데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맞은 편에는 아이들이 서 있었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선두에 선 아이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행군은 멈추지 않는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100명의 아이가 화려하게 비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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