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프랑크 올드 패밀리
대화가 잠시 끊기고, 실내에는 노집사의 웃음 잔향만 잠시 맴돌았다.
"아서가 자살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 이 살해 방식은 보기보다 더 번거로운 것이라네. 단순히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목을 조르면 죽는다는 걸 몰랐다는 겁니까?"
노집사의 맥락에서 어긋난 대답에, 나와 마리는 당황하여 그를 쳐다봤다.
"아니, 누가 봐도 자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 생각이었겠지."
다른 방식으로는 안됐다.
떨어져 죽는 것도, 타 죽는 것도, 모두 제 손으로 했다고 해도 의심을 사게 된다. 목을 매서 죽는 것이 가장 자살다운 것이었다.
나는 아서의 몸을 들척거렸다. 그렇게 한참 뒤적거리던 나는 머리카락에 덮인 후두부 쪽에 피가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범인은 방에 몰래 들어와 뒤에서 둔기로 아서를 때렸다. 창밖의 화재에 정신 팔렸던 아서는 눈치채지 못했겠지."
그리고 나는 이불에 덮인 그의 손을 꺼내 확인했다. 내 예상대로 손톱은 벗겨진 흔적이 있었고, 손끝에는 밧줄의 가시에 찔려 피가 나 있었다.
"아서가 잠깐 의식을 잃은 사이에 목을 매단 범인은 바로 현장을 떠났겠지. 그 사이 깨어난 아서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밧줄을 잡았고 이게 그 흔적이겠지."
비전문가인 마리나 집사는 알지 못했지만, 전문가인 경찰관과 보험 조사관이라면 곧바로 알아챌 흔적들이었다. 말 그대로 얼추 보았을 때, 자살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허술한 위장이었다.
셋 뿐이라지만 가구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정원을 가로질러, 3층 방에 있는 아서를 기습할 정도로 노련한 범죄자의 소행치고는 허술한 조치였다.
"아서가 최근 뭔가 말하지 않았나?"
"말은 하루에도 많이 합니다."
"아니, 내 말은... 누군가의 원한을 샀다든가, 추적이 붙었다든가 하는 내용 말이네."
노집사는 잠시 뜸들였다.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이라도 좋네."
"주인 어르신은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공격받는 날 말인가?"
그는 눈을 부라렸다.
"아니요, 런던이요."
주름 속에 묻혀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눈알이었지만, 어쩐지 내게는 그것이 사람과 다른 동물의 것처럼만 보였다.
"저를 새벽에 부른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어떤 말을 준비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잠깐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주인 어르신은 자신이 쓰러지는 상황도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 오셨습니다. 따라오시죠.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혹시 오래 걸리나?"
그는 잠깐 망설였다.
"전달할 것은 적습니다."
"화제가 적을수록 대화는 길어지는 법이지. 그 전에 아이들을 들여와야겠어."
"아이들이요?"
나는 마리를 돌아봤다.
그녀는 혼자 상황을 알지 못해서 나와 노집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바깥 정원에 고아 다섯 명이 있네. 원래 아서에게 부탁해 여기 맡길 생각이었지만, 지금 보니 그럴 필요는 없겠군. 내가 거처를 구할 때까지만 맡아주겠나?"
"글쎄요, 동거인들이 절 좋아할는지."
"잠깐만요. 무슨 얘긴지 전혀 모르겠어요. 거처를 구한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요? 집이 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마리는 런던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나는 친절히 모든 상황을 요약해 설명하기로 했다.
"그래, 그렇게 되었네. 자네도 한동안 여기 있어야 할 거야."
"네?"
마리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참, 아서가 없는데 식사는 어떻게 하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기적으로 식재료를 날라오는 인부가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나가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확인해보게. 그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마리는 특별히 많이 먹으니까 신경 쓰게."
"주인님, 저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데요?"
"아직 분명한 게 없어서 말하기 일러. 나중에 말해줄 테니 아서를 공격한 살인범이 잡히기 전까지 저택에서 몸조심하고 있게."
나와 노집사는 당황하는 마리를 뒤로하고 방을 나설 준비를 했다. 나는 문득 벽면에 세워진 거울에 비친 노집사의 모습을 보고, 어째서 그의 눈을 두려워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러니, 도통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나.
우리가 방을 나서자 마리는 급하게 내 뒤를 쫓았다.
잠시 후, 우리는 그렇게 저택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바깥에 있는 아이들에게 지금부터 이 괴물 저택에서 살 두 동거인을 소개해주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긴장하게 되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리가 유아 교육에 좋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나는 노집사가 문 걸쇠를 여는 동안, 깜빡하고 전하지 못했던 사실을 마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듣게."
"전 이미 충분히 기분 나쁜데요."
"속 좁게 굴지 말고. 여하튼, 내가 자네는 아이들에게 괴물이라 설명했단 말을 했던가? 어쩔 수 없었어. 놀랄 수도 있으니까, 아주 직관적인 표현을 쓴 거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야. 자네는 이해하지?"
"뭐라고요? 또 그렇게 소개했다고요?"
"또라니!"
나는 멋쩍음을 숨기고자 괜히 성질 내고는 화제를 돌리고자 마리에게 매고 있던 가방을 건넸다.
"이것도 맡아주게."
"이건 또 뭔가요?"
"시체.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맡아주게."
외람되지만, 나는 마리의 얼굴이 살갗이 아닌 밀랍인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오만상을 쓰고 있는 그녀와 마주 봤어야 했을 테니까.
아이들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반응을 보여줬다.
그것에 관해서는 굳이 더 왈가불가할 사항이 아니었으니 넘어가고, 마리에게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맡겨놓은 나는 노집사와 함께 2층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장소였다.
족히 몇 년은 방치된 것처럼 뽀얀 먼지가 바닥이나 서재, 그리고 벽에 걸린 초상화 액자 틈에 쌓여 있었다. 노집사는 전구 불을 켜려고 했지만, 전구 심이 나갔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대신 커튼을 여는 것으로 해결했다. 더러운 창 너머로 햇빛이 들어오며 떠다니는 먼지가 그대로 보였다.
"프랑크 백작님이 쓰시던 집무실입니다. 지금은 누구도 쓰지 않죠."
노집사는 허리를 숙여 집무 책상 밑에 있는 작은 금고를 열었다. 겉보기에도 그랬지만, 얼굴은 수백 살 먹은 노인처럼 생긴데 반해 몸만큼은 청년처럼 건강하고 유연했다.
그가 안에서 꺼낸 것은 한 권의 파일첩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파일 사이로 한 장의 인쇄지가 빠져나와 있었는데, 나는 그것만 보고 이 파일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종이를 사용하는 곳은 달리 더 없었다.
"오라클이군."
"시기별로 정리해뒀습니다."
나는 특히 붉게 표시된 부분을 조심스레 펼쳤다.
「Ⅳ」
그리고 파일 중앙에 보란 듯이 쓰인 숫자와 마주쳤다. 나는 인상 쓰며 홀로 중얼거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분명 3이었지."
옆에는 날짜가 손으로 적혀 있었다. 숫자만으로 지독한 악필, 분명 아서의 글씨였다. 그가 파일 정리 같은 꼼꼼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게 마냥 놀라웠다.
"1895년 12월 24일, 화요일."
성탄절 전야. 날 자체도 뜻깊었지만, 그 이전에 내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다.
"올드코트에서 칼라스 학장 대리가 죽은 날이지."
어째서 그날 오라클은 숫자를 하나 높였을까. 추측이 가는 것은 여럿 있었지만,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너무 분명하여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로군."
그 많은 혼잣말에도 반응하지 않던 노집사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는 이 숫자가 인류의 멸망을 향하는 지표라고 추측했지. 그렇다면 내 존재는 이제 세계에 해로운 것이 되었군."
"주인 어르신도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파일을 덮었다.
공교롭게도 메시아의 탄신일과 겹쳐서, 나는 YLTH의 사도가 되었다.
마법은 예로부터 나무 지팡이로 사용한다고 여겨졌다. 나 역시 지팡이를 들고 양 떼를 모는 목동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나는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목동이다. 그것이 내가 얻은 마법이란 힘의 실체였다.
노집사는 금고 안에서 차례로 사진과 열쇠를 꺼냈다.
"내용물은 이게 전부입니다. 주인 어르신께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것을 당신께 전달해달라 했습니다."
"아서가?"
나는 사진을 받아 확인했다.
손에 잡히는 감촉만으로도 그게 얼마나 오래된 지 알 수 있었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진은 상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알아보기가 썩 어려웠다.
"아주 오래된 사진이군. 요즘은 이런 사진이 드물지."
모로 보나 초기의 미숙한 기술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드물게 네 명의 인물이 담긴 단체 사진이었는데, 이목구비가 일그러져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실은 두 장입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뒷면을 밀었다. 그러자 정말로 한 장처럼 겹쳐져 있던 사진이 벌어지며 두 번째 사진이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오래된 흑백사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두 장의 사진의 그 자체로만 기술의 발전을 여실히 느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두 번째 사진 역시 네 명의 인물이 찍혀 있었는데, 구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같은 사람, 같은 구도, 바뀐 것은 주름 개수와 사진기뿐이었다.
"이 사람은 낯이 익군. 누구지?"
나는 그중에 한 사람을 알아보고 검지로 집었다. 사진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 구도로 보아 이 모임의 장 같았다.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 돋은 장년 남성이었다. 기운이 쇠할 법도 했지만, 미숙한 사진 너머로도 알 수 있는 당찬 기운을 담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눈이었다.
어쩌면 사진사의 실수일지도 몰랐다. 인화 중에 색이 번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그런 눈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을 뿐일지도 몰랐다.
그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산 사람보다는 차라리 유령처럼 보였다.
이토록 인상적인 눈을 한 자와 만났다면 분명 기억에 남았을 텐데, 나는 그 얼굴이 낯익다는 생각만 들 뿐, 그가 누군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자, 내 질문을 들은 노집사의 얼굴이 구겨졌다.
여기서 고백할 점이 있다.
그의 얼굴은 평소에도 주름 때문에 거의 녹아내린 것처럼 기괴한 것이라, 어떤 표정을 짓건 불쾌하게 얼굴을 구긴 것처럼 보이곤 했고, 그 때문에 나는 그의 감정을 거의 읽어내지 못하는 편이었다.
내가 서술하는 그의 감정은 대부분 내 상상과 추측의 산물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보이는 그대로 만면을 구기며 강하게 인상 썼다.
"그분은 주인 어르신의 선친, 프랑크 백작님입니다."
그는 정중하게 단어를 골랐지만, 내가 보기엔 그보다 거친 단어를 모를 뿐이었다. 그는 불쾌를 숨기지 않았는데,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일찍이 아서에게 그가 선친으로부터 어떤 모진 학대를 받았는지 전해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제 알겠네. 그래서 낯이 익었군. 그분과는 생전에 만나뵌 적이 한 번 있었지. 이렇게 젊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급히 화제를 돌리고 다시 사진을 확인했다.
"주인 어르신께서는 당신께서 이들을 아실 거라 말했습니다."
"그럴 리가."
나는 정색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장수한 분이 필 에식스 백작님이고, 그분마저 작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네.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분보다 결코 어릴 것 같지 않네."
사진에서 그나마 젊다고 부를 만한 프랑크 백작도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시대를 산 앞선 세대의 조상들이었다.
"프랑크 백작님을 제외하고, 둘은 1871년, 다른 하나는 1873년에 타계하셨습니다."
"그럴 줄 알았네."
1871년이라고 하면, 내가 문법 학교에서 공부하던 시기였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인 내가 사회적 명사들과 교류할 수 있었을 리 없었다.
그런 확신으로 사진을 내려다보던 나는 낯익은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몇 번씩이고 마주친 불쾌감이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알고 있어."
"그렇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요즘처럼 유명인의 사진이 돌아다니는 시대 사람이 아니지 않나."
내가 하는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에야 유명인은 신문을 통해 사진이 나돈다지만, 20세기 초반, 사진 기술의 태동기에는 유명인의 얼굴을 알 방법은 없었다. 초상화야 남는다지만, 그것은 무관한 대중이 확인할 방법은 없지 않은가.
"주인 어르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두 가지 이유로 이들을 알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첫 번째 이유로, 당신은 20세기를 사는 영국인입니다."
나는 그 의미를 곱씹었다.
"영국에 산다면 얼굴 한 번쯤은 봤을 만큼 유명인이란 말이군."
놀라운 일이었다. 프랑크 백작이 명사와 교류하는 것을 즐겼다고는 해도, 수십 년간 일부 인물들과 꾸준한 모임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비밀 사교 모임, 그 단어를 떠올린 순간, 또 다른 단어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프랑크 학술회.
"두 번째 이유는?"
"모릅니다."
나는 무심코 노집사의 얼굴을 마주 봤다. 부담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고."
"아서가 깨어난다면 이번 말장난은 정말 형편없었다고 전해주게. 무슨 뜻인지 짐작도 안 가는군."
"그러겠습니다."
나는 다시 사진을 확인했다.
내가 느낀 기시감의 정체가 점차 선명해졌다. 나는 인생에서 몇 번이고 그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해군에서 만난 사람이 로버트 스콧이란 걸 알았을 때, 그 순간 찾아오는 일방적인 반가움 말이다.
만약 두 다리만 멀쩡했다면 그 자리에서 폴짝 뛰었을 것이다.
"그 말이 맞았네, 그야 알 수밖에 없지!"
비록 사진 태동기를 살았던 인물들이라 해도, 결국 한 번은 그 모습을 보게 되는 위인들.
"리빙스턴 박사, 찰스 배비지, 철도왕 조지 허드슨!"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사진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공식적으로 어떤 교류도 없었던 그들이 수십 년간 프랑크 백작의 비밀 모임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저 충격적이었다. 앞선 두 인물이 어떤 식으로건 가문과 연결고리가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조지 허드슨에 대해선 아예 금시초문이었다.
"프랑크 백작께서는 원체 비밀스러운 분이었으나, 모든 사람에게 닫고 사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과 격 없이 협업하던 명사가 셋 있었습니다."
노집사가 담담히 읊었다.
"백작께서는 당신의 은밀한 계획과 알아낸 세계의 이면을 그들과 공유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프랑크 학술회의 전신으로, 그 비밀스러운 실체는 주인 어르신께서도 얼마 전에 겨우 포착했을 정도로 은밀했습니다. 모임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이뤘는지, 어떤 기록물도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구성원을 짐작할 수 있는 사진 두 장이 남아 있는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는 금고에 있었던 철제 열쇠를 꺼내 내밀었다.
열쇠 위에는 「Ⅰ」이라는 로마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프랑크 백작님이 개설한 영란은행 금고 열쇠입니다. 주인 어르신께서는 직접 당시 근무했던 은퇴한 은행원을 찾아가, 1869년 당시 금고에 접근할 수 있는 여벌 열쇠를 세 벌 더 의뢰하셨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쇠들은 구분을 위해 각자 로마 숫자로 넘버링 되었고, 저택에 남아 있는 것은 유품 정리 중에 발견된 1번 열쇠뿐입니다."
노집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추측을 더하지 않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저 영국인들의 오랜 고질병으로 표현을 꼬아놨을 뿐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가문 금고에 접근할 수 있는 네 명의 인물과 모임을, 주인 어르신께서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나는 노집사 손 위에 올려진 열쇠를 잡았다.
"프랑크 올드 패밀리."
열쇠는 이제 내 손안에 들어왔다. 허나 나는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