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그러므로 나는 죽어야 한다
시간은 오후 1시였다. 나는 여전히 학장실에 있었다.
조금 전과 다른 점이라면, 내 팔에 덧댄 부목뿐이었다. 이곳 성 헨리 8세 칼리지는 이상하게 의학부가 없지만 구급 용구만은 충실히 갖춰져 있었다.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이네요."
앨리스는 내 옆에서 소곤거리며 말했다.
"아니면 조금이라도 다친 게 나으셨을까요?"
"멍청한 소리를 할 거면 차라리 말을 말게."
나는 질색하며 그녀를 밀어냈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떨어진 높이를 생각하면 고작 탈골로 끝난 것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나조차 처음 알았다. 허공에서 깨어난 직후, 곧바로 팔을 뻗어 관목의 줄기를 잡아 팔 하나를 내주고 바닥에 온전히 내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뛰어내리셨잖아요. 자해하려 하신 게 아닌가요?"
"그래, 하지만 내 뜻은 아니었네."
그러자 나와 앨리스는 동시에 한 방향을 바라봤다. 학장실 안에 있는 또 한 명의 청년, 그는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당황하며 외쳤다.
"스스로 뛰어내리시는 걸 봤습니다!"
"내가 학장실 창문으로 떨어진 순간, 이 방 안에는 나와 자네 둘밖에 없었지."
그 말에 청년은 초조한 듯이 깍지를 끼고 손을 비비적 부볐다.
"자세히 말해줘야겠네."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모님께 알리지 말아주세요."
내 시선을 받은 청년은 초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앨리스는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대체 어디에 공감할 요소가 있었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제 이름은 H. M. 데이비입니다. 4학년이죠."
"잠깐."
청년이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불신의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H는 또 뭔가?"
"제 이름인데, 중요하지 않으니까...."
"아니, 중요하지. 아니면 말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나는 그를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앨리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이럴 때만은 눈치가 빨라, 슬금슬금 문쪽으로 다가가 그를 막을 듯한 기색을 취했다.
그런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 청년은 건강하지 않은 겉모습만큼 유약한지, 곧바로 제 이름을 토해내듯 외쳤다.
"호레이쇼입니다, 호레이쇼! 됐습니까?"
"호레이쇼...."
"호레이쇼, 영국을 구한 영웅의 이름인데 왜 그러나?"
앨리스와 나는 동시에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내 질문에 오히려 앨리스는 진심이냐는 듯한 시선을 내게 보냈다.
"뭐가 문젠가?"
"웃기잖아요."
"좋은 이름이야."
내 말에 데이비는 문자 그대로 펄쩍 뛰어올랐다. 앨리스는 그의 *문학적인* 반응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를 그렇게 놀랠 수 있다는 점에서 나 역시 놀랐다.
"세상에, 누가 자기 아들한테 호레이쇼라는 이름을 지어줍니까. 차라리 나폴레옹이라 부르지 그래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런 이름을 지으면 안 되죠!"
씩씩대며 성토하는 데이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의 이름에 얽힌 수많은 비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경솔했으니 좀 진정하게, 호레이쇼."
"호레이쇼라 부르지 마십쇼!"
앨리스는 뭐가 웃긴지 깔깔대며 웃다가, 데이비의 억울한 시선이 닿자 입을 꾹 닫고 모른 척했다.
"그래, 데이비. 자네가 본 걸 말해주게. 어째서 학장실 안에 있었지?"
"학장실 안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거짓말하지 말게. 떨어지는 순간, 자네가 창틀 너머로 몸을 내민 걸 내가 봤건만."
내 추궁에도 그는 좀처럼 말할 기색이 없었다. 나는 다시 앨리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이제 데이비가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처음처럼 긴장한 기색도 없이 사뿐한 걸음으로 문 앞을 막았다.
"정말입니다! 저는 학장실 밖에 있었습니다!"
반면, 데이비는 처음보다 더 앨리스가 거북한 기색이었다. 사실 앨리스는 그를 놀려먹는 게 꽤 즐거워 보였다.
"학장실 밖에 있던 자네가 내가 떨어지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게... 실은... 안쪽을 엿보고 있었어서 그랬습니다."
"엿보다니? 어째서?"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학장 대리님께서 창문으로 몸을 던지는 걸 보고, 급하게 안으로 뛰어들어서 잡으려 했던 것이...."
데이비는 횡설수설하여 제대로 문장을 끝내지도 못했다.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날도 추운데 식은땀을 뻘뻘 흘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전 알아요."
대답은 의외의 방향에서 나왔다. 앨리스는 문을 막는 시늉만 하다가, 그것조차 할 생각이 없어졌는지 내게 뽈뽈 다가와 귀띔했다.
"성 헨리 8세 칼리지에는 비밀 동호회가 여럿 있어요. 알고 계셨어요?"
"자네도 알다시피, 그런 동호회는 교수를 잘 끼워주지 않는 법이네. 알지는 못했지만,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 나도 대학 시절 그런 동호회 하나를 알았지."
누구나 대학 시절엔 비밀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더 활동적이고 정치적인 학생은 화이트 캡 같은 군단에 속하곤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아서 프랑크가 창단한 '새앙쥐 종격막 탐구회'라는 유치한 비밀 동호회에 들어가 비밀스러운 인사말을 주고받고, 벽돌 벽에 암호를 새기고, 엄숙한 의식에 참여해 비밀 서약에 동의하는 그런 것들을 했단 말이다.
심지어 내 손도장이 찍힌 창단 명단은 누군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태우지 않았다면, 지금도 케임브리지 지하실 어딘가에 전시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건가?"
"그중에 교수님을 감시하는 작은 동호회가 하나 있어요. 거기 사람일 거예요."
앨리스는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날 감시한다고?"
"거즘맹세해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뭐?"
"거즘맹세요. 분명 확신하지만 어떤 근거도 없음을 보장한다는 뜻이에요."
"대체 그런 쓸데없는 단어는 왜 만드나?"
"얼마나 유용한데요."
우리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데이비는 화제를 돌리려는지 애써 설명을 강행했다.
"학장 대리님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고 저는 곧바로 내려와서 병원에 옮겨야 하나 하다가 생각보다 멀쩡하시길래 어찌할까 하다가...."
"그 점에는 감사하지만, 하나만 묻겠네."
"네."
"자네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내가 떨어지는 틈을 타서 그냥 도망치면 되지 않았나?"
그러자 그는 눈을 끔뻑거렸다.
"사람이 떨어지는 건 처음 봐서 놀라서 그런 생각 못했습니다."
"있잖나, 자네는 별로 비밀 결사랑 안 어울려."
"그걸 어떻게!"
데이비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외쳤다. 앨리스는 갑자기 높아진 목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만약 그가 노련한 첩보원이었다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려 공작하려고 한다 생각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영 엉터리였다. 애초에 의심받으면서 부모님에게 연락 가는 걸 걱정하는 첩보원이 어딨을까.
"자네가 속한 비밀 동호회 말이네, 어째서 날 미행하는 거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뜸들이다 재차 물었다.
"날 죽이는 게 목적이었나? 그것 때문에 잠든 나를 창밖에 밀친 거고?"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학장 대리님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하면 지키기 위해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내 가벼운 유도에 데이비는 홀라당 넘어가 실토했다. 심지어 그는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목적 때문에 날 쫓고 있었다고?"
"네... 네... 정확히는, 교정에서 사고가 터지는 걸 막으려 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공격당할 줄 알았지?"
그는 다시 머뭇거렸다.
"여기까지 말한 이상, 더 숨겨도 의미가 없네. 전부 털어놓고 함께 대책을 강구하는 게 낫지."
물론 그건 내 입장만을 말하는 것이지, 그가 신경 쓸 이유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숙한 데이비는 얼추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 자신이 아는 정보를 술술 토로하기 시작했다.
"저는 몰랐어요. 전부 의장의 계획이었어요."
"의장? 자네 단체의 수장을 그렇게 부르나 보지?"
데이비가 딸꾹질했다.
"괜찮아. 말하게."
"네... 우리 토끼풀십자회는 올드코트 대학 내부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고, 대학을 수호하기 위해 창단되었습니다. 저는 별거 아니지만, 의장은 정말 대단한 녀석이에요. 학장 대리님이 공격당할 거란 것도 의장이 예측한 거에요."
"녀석?"
"저보다 훨씬 어리거든요. 고작 열아홉밖에 안 됐죠."
보기에는 위계질서가 잘 갖춰진 집단 같진 않았다. 더 제대로 된 조직이었다면 데이비처럼 미숙한 자를 외부로 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정보에 비하면 행동이나 구조는 말 그대로 학생 단체 수준이었다.
"학장 대리님을 감시하는 건 제게 맡겨진 임무였어요."
"나쁘게 듣지 말게. 하지만 자네는 별로 적임이 아닌 것 같아."
내 말에 데이비는 살짝 기죽은 표정이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맞습니다. 그런 얘기는 몇 번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여기 배정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뭐지?"
"학장 대리님의 주변에는 수수께끼가 생겨난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저는 토끼풀십자회 안에서도 그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에 맞춰, 학장 대리님이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요."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런던을 둘러싼 수많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문득 앨리스의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채고는 깨달았다.
"자네군."
"저도 좀 억울해요."
앨리스는 갑자기 항변했다.
"교수님에게 보낸 문제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누군가 풀어놓는 거 있죠. 교수님을 쫓는 비밀 동호회가 있다는 것도 그것 때문에 알았어요."
"뭐? 학장 대리님 주변에 생기는 수수께끼를 네가 만드는 거였다고?"
데이비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앨리스는 말없이 내 뒤로 숨었다.
"자네 때문에 이야기가 복잡해졌군. 결국은 내 자기 파괴적인 몽유병이 자네들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뜻 아닌가?"
데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뛰어내렸다는 소문을 듣고난 뒤에야 찾아온 자네는 또 아무 관계도 없을 테고."
앨리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걸 동의로 간주했다.
"뭔가? 그러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잠결에 창문으로 뛰어내렸다는 뜻인가?"
"저번에 프랑크 백작님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아서? 아서가 왜 나오지?"
나는 앨리스를 돌아봤다.
"교수님은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뭐? 그건 그냥 한 말이야."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일축했다. 하지만 그런 한편, 강한 의구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 대상은 바로 나였다.
내가 정말 죽고 싶어한단 말인가? 잠든 상태로 몸을 창밖으로 집어 던질 만큼?
나는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흐릿하게만 떠돌았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한 아지랑이 같았다.
"그것만큼은 아니야. 내가 죽고 싶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꿈은 본인이 알지 못하는 무의식 속의 자아를 대변하는 메시지라고 그랬어요. 꿈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 실제로도 죽고 싶은 거죠. 그래서 저는 꿈속에서 실수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어요. 제가 꿈에서 낭떠러지를 구르면, 실제로도 절벽에 뛰어내리고 싶은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건 너무 과대해석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프로이트 박사님이 저보다 더 똑똑한 거 같으니까, 제가 더 똑똑해지기 전까지는 그리 생각하려고요."
나는 눈두덩을 문질렀다.
"내가 죽고 싶어할 이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이겠네. 나는 신체 내외적으로 완전히 건강한 상태라네."
"다리가 없잖아요?"
앨리스는 곧바로 물었다.
"신체적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 삶을 포기할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않아. 베토벤은 청각을 잃고도 자살하지 않았지. 그리고 호레이쇼를 보게."
"호레이쇼라 부르지 마세요!"
"아니, 자네 말고! 진짜 호레이쇼 말이야!"
"아."
"그는 눈이 멀었지만, 생애 마지막까지 전장을 떠돌았지. 고작 내가 다리가 하나 없는 것쯤은 장애조차 아니야. 심지어 나는 다리 대신 의족을 붙이고 있으니 저 둘보다도 상황이 낫지."
데이비와 앨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는 새침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일단 그렇다고 해요. 교수님이 다리 장애라든가, 눈썹이 짝짝이든가, 키가 절친한 프랑크 백작님보다 약간 더 작아서 열등감을 느낀다든가 하는 이유 때문에 삶을 비관한 적이 없다고요."
"뭐? 내 눈썹이 짝짝이라고?"
"모르셨어요? 그건 정말로 이유가 아니었나 보네요."
"그리고 나는 원래 아서보다 컸어. 다리를 다쳐서 작아 보이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니까 그것도 이유가 아니었군요."
앨리스는 손뼉 치며 기뻐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건 동의할 수 없어요."
데이비 홀로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앨리스는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데이비와 앨리스가 지금까지 말을 섞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첫째로, 그런 사람은 바지를 벗고 런던 시내를 뛰어다니지 않아요."
"뭐? 그걸 어떻게 알았지?"
"꽤 유명해요. 꽤...."
데이비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때요, 이제 죽고 싶어졌나요?"
"조금은."
"아하! 하나 찾았군요!"
기뻐하는 앨리스를 보고 있자니, 나는 문득 그녀가 날 죽이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교수님은 사람을 죽인 적이 있잖아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요."
"...그건 사실이지. 하지만 내가 군인 출신이란 걸 잊지 말게. 나는 정신이 건강한 상태로도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어."
"그때부터 정신이 이상했던 게 아닐까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교수님은 충분히 존경받는 사람이고, 스스로 삶을 포기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요."
"자네가 좀 미워진 참이야."
마지막에 뻔뻔스럽게 설교를 늘어놓는 앨리스를 나는 힘껏 노려봤다.
"하지만... 아니야."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 아니란 말이죠?"
"시기가 안 맞아."
"죽는 데에도 시기가 있나요?"
앨리스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안에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것도 참 놀랍네만, 그래. 나는 꼭 여름에 죽고 싶어."
나는 홀로 중얼거리다가 조용해진 학장실을 둘러봤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했군."
"그러면, 교수님은 결국 죽고 싶어서 뛰어내린 게 아니라는 거네요. 하지만 그러면 왜 떨어진 걸까요? 누군가 밀친 것도 아닐 텐데."
앨리스는 의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데이비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장에게 물어보고 올게요. 녀석이 상정한 최악의 상황이 지금이라면, 분명 뭐든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거에요."
그는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가더니 그대로 벽을 본 채로 우두커니 섰다. 나와 앨리스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의아하여 물었다.
"왜 그러지?"
"학장실에선 어떻게 나가죠?"
"문을 열고 나가면 되지."
"그러면 문이 없으면 어떻게 하죠?"
데이비는 고개를 돌렸다. 그 의기소침한 얼굴에는 눈물이 맺혀 울먹거리고 있었다.
"학장실 문 말입니다. 그 큰 문을 누가 가져갔어요. 문이 없단 말입니다."
내 맞은 편에는 새하얀 벽만이 서 있을 뿐, 원래 그곳에 있을 문은 보이지 않았다.
"문이, 문이 없으면 어떻게 나가죠?"
우리는 일제히 창문을 돌아봤다.
찌르르... 찌르르...
저멀리,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