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70화 (70/232)

§70. 그럼에도 해는 떠오른다

2020.07.09 23:04

<70. 꿈은 끝나지 않는다>

찌르르... 찌르르....

울창한 숲 속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이곳은 내가 기억하는 사르데냐 섬과 꼭 닮아서, 나는 마치 시간을 되돌아온 듯이 착각할 지경이었다.

"옷차림...."

나는 걸음을 멈추고 데이비를 돌아봤다.

"옷차림이 뭐라고?"

"군인 같으십니다."

나는 내 복장을 되돌아봤다. 푸른 해군 정복 코트 아래로 하얀 셔츠와 바지, 머리 위에는 장교모가 있었고 허리춤에는 지급받은 세이버가 매여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군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군복을 입지 않으면 안 돼."

"그렇습니까?"

"그래."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상륙 전에는 늘 반짝거리게 닦던 구두였는데, 이 섬에 온 후로 진흙이 마른 날이 없었다. 지중해 날씨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지만, 이토록 혹독할 줄은 전혀 몰랐다.

행군 도중 데이비가 몇 번 낙오될 뻔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상황을 대비해 훈련받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를 두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늘 속에서 짧은 휴식을 틈틈이 취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만큼 충실한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우리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지만, 사지 중 다친 곳이 없었고, 내 등 뒤엔 잘 버텨주고 있는 믿음직스러운 대원이 있었다.

"저는 말입니다."

어두운 하늘. 쌍둥이 흉성의 더운 땡볕 속에서 데이비가 말했다.

"부모님이 해군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자네 이름이 호레이쇼로군."

내 말이 정곡이었는지, 그는 화내지도 않고 수긍했다.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멋대로 제 장래를 결정한 거죠. 저도 꽤 싫다고 말했는데...."

"뭐?"

"응애응애하고 성토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고, 기어코 호레이쇼라는 이름으로 시청에 등록하더군요."

"응애응애하고 반대했다고?"

나는 데이비의 터무니없는 말에 낮게 웃었다. 전에는 미덥지 않다는 인상밖에 없었지만, 그와 이런 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감각을 좋아했을지도 몰랐다.

"사실 전 시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확실히, 자네는 이런 궂은일보단 그게 어울릴 것 같아. 하지만 시인이 되어서 밥이나 먹고 살겠나?"

"모르셔서 하는 말이에요."

데이비는 뭘 모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더 할까 귀 기울이다가, 그의 몸을 바닥에 쓰러트리고 나도 곧장 엎드렸다.

"쉿!"

잠시 후, 수풀 사이로 이탈리아 군복의 색채가 나타났다.

그리고 드러난 모습은 혐오스러운 흉물이었다. 사람의 옷을 입고, 총검을 들었지만, 그 모자 아래에는 빛을 고스란히 반사하는 번들거리는 겹눈과 툭 튀어나와 쉴 새 없이 작은 이빨을 오물거리는 거대한 주둥이가 있었다. 검은 피부 위로는 투박한 돼지털 같은 체모가 송송 삐져나와 있었다.

"우웩...."

데이비는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했다. 그가 구토하는 소리를 듣고, 그 파리 대가리들이 우리 쪽으로 돌았다.

"이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탕!

화약내가 탁하게 퍼지며 불꽃이 튀었다. 파리 병사의 몸에서 붉은 체액이 뿜어져 푸른 수풀 위로 흩뿌려졌다. 적군은 곧바로 응수하려 했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나는 그들 사이로 뛰어들어 소총의 간격을 주지 않았다. 이런 지근거리에서는 백병전이 차라리 나았다. 나는 한 손에 세이버를,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그들을 상대했다.

"비바 이탈리아! 비바! 비바!"

귓전에서 파리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불쾌한 음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놈의 비바! 그 망할 놈의 비바!"

"으아아...."

데이비는 머리를 감싼 채 웅크려 엎드렸다. 그 위로 권총이 불을 뿜고, 세이버와 소총이 투박하게 맞닿았다. 나는 힘겨루기하는 이탈리아놈을 발로 걷어차고, 세이버로 커다란 겹눈을 찔러 터트렸다.

몸을 잡으려 하면 파리의 외골격 다리를 물어뜯었고, 뒤돌아 소총을 겨누는 놈에게는 권총을 쐈다. 한 놈이 쓰러지면 다른 놈이 총검을 찔렀고, 죽는 놈도 곱게 죽지 않고 내 살갗에 발톱을 박아넣었다.

바닥은 쓰러진 적군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고, 푸른 숲은 피만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가을이 왔다.

내 몸은 구멍 뚫린 가죽 포대처럼 송송 피가 쏟아져 나왔고, 멀쩡히 움직이는 근육은 하나도 없었다. 데이비는 언젠가 눈먼 총알을 맞았는지 죽어 있었다.

여전히 이탈리아군은 끝이 없었다. 그 사이에서 장교복을 입은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아주 젊은 사내였다. 나도 스물여섯쯤밖에 안 됐지만, 그는 나보다도 더 어렸다.

그는 내 앞에 선 채 물었다.

"제가 올드코트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가 갈 곳은 지옥뿐일 거다."

나는 그의 깨끗한 구두에 피를 뱉었다.

"이걸로도 안된다고?"

그는 중얼거리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0.07.10 00:00

<70. 꿈은 끝나지 않는다>

맴맴... 맴맴....

매미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와 데이비는 그늘 속에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이 녹색 지옥에 떨어진 지 2달이 지났다. 이곳은 내가 기억하는 여름의 사르데냐 섬과 꼭 닮아서, 나는 마치 16년 전의 전쟁터로 다시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늘로 뒤덮인 숲이라고 한들, 낮에 움직이는 것은 모로 봐도 좋지 않았다. 사르데냐 섬은 오븐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덥고 건조해서 체력을 뺏기기 십상이었고, 적의 총알로 죽은 병사보다 탈수로 죽은 병사가 배는 많았다.

또 밝은 낮에는 우리를 수색하는 이탈리아군의 눈에 띄기도 쉬웠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낮에 자고, 해가 진 뒤에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자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개미가 다리를 타고 올라 깨무는 탓에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인가, 혹은 죽은 사람인가. 잠에 취하면 그것을 구분하기가 늘 어려웠다.

"허억!"

곤히 자는 줄 알았던 데이비가 숨을 토하며 일어났다. 나는 황급히 소총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허억... 허억...."

데이비는 상반신을 일으킨 채, 숨을 계속 헐떡였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제가, 제가 죽는 꿈을 꿨습니다."

"그냥 꿈이야."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학습이 앞섰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병사는 아주 많았고, 나는 그들이 미치지 않도록 기계적인 격려를 이어나갔다. 정작 나조차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데, 그들은 내 말만 믿고 자신들이 산 줄 알고 안도하는 것이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장교님,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고향에 돌아가면 시인이 될 겁니다. 풀을 보고 죽음을 떠올리는 군인이 되기보다는, 그 위에 맺힌 한 방울 이슬을 보고 생명을 노래하는 시인이 될 겁니다."

"진정해. 자네는 여기서 죽지 않아. 누구도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

거짓말이었다.

이 섬에서는 모두 죽는다. 섬에 투입된 4,500명의 군 장병 중에 다시 영국 땅을 밟은 사람은 고작 8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총에 맞거나, 짐승에게 먹히거나, 열병에 시달리거나, 완전히 미쳐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이곳을 꿈 많은 청년들의 무덤이라 불렀다. 이 섬에는 제각기 다른 색깔의 꿈이 4,416개 묻혀 있다.

"잘 수 없겠나?"

데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해가 떠있긴 하지만 움직이지. 사념이 사라질 거야."

우리는 느린 동작으로 군장을 챙겼다. 자지 못한 만큼 몸이 무겁고, 손이 두껍게 느껴졌다. 검은 하늘에 뜬 쌍둥이별의 열기에 살갗이 검게 익었다.

"너무 더워서 헛것이 보입니다. 여기가 숲이 맞습니까?"

데이비가 말했다.

"나도, 나도 잘 모르겠네."

난 솔직하게 말했다. 데이비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깨닫는데도 한참 더 걸렸을 것이다. 우리가 걷던 숲은 어느새 녹아내려 없었고, 우린 넓고 환한 모래사막 한가운데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늘 한 점 없는 광야를 횡단하며, 더위를 피할 그늘 한 점 찾지 못했다. 수통에는 마시다 만 흙탕물 한 모금뿐이 없었다.

"이건 마시는 것보다 뿌리는 게 낫겠어."

나는 수통을 뒤집어 데이비 머리 위에 탈탈 털었다.

"장교님은 어쩌고요?"

"당장 필요한 사람이 쓰는 게 낫지."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장장 4일에 걸친 고난 길을 걸었다.

먼저 쓰러진 것은 데이비였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그를 살릴 방도가 없다는 것만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 섬에서 가장 먼저 적응했던 것은 더위도, 발목까지 차는 진흙도 아닌, 타인의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위를 보도록 눕히고, 눈가에 흰 모래 한 주먹을 뿌려주었다.

걸어야 한다. 버려진 시체를 다시 돌아볼 일은 없다.

"사람이 걷기를 멈추면, 그게 시체와 뭐가 다를까...."

"그것이 정녕 네 말인가? 아니면 타인의 훌륭한 말을 모방했을 뿐인가?"

사탄이 물었다.

"네 인생을 돌아보라. 그리고 한 줌의 진실이라도 있었는지 물어라. 나는 너란 사람을 잘 안다. 네가 스스로 공부한 적이 있더냐, 네 장래를 스스로 정한 것이 있더냐? 너는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자부심을 갖건만, 너는 정말 네게 필요한 공부를 한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 그 길이 맞다 하여 맹목적으로 따른 것뿐이더냐?"

사탄이 뒤를 가리켰다.

"저 우자를 보라. 저놈은 시인을 꿈꾼다고 말하는 걸로 그것이 제 꿈인 줄 아는 우둔한 놈이다. 가지고 싶었던 것이 존중받고 안락한 삶이더냐, 정녕 쓰고 싶은 글자가 한 자라도 있었겠느냐. 제 밥그릇부터 생각하는 놈이 잘도 시인이 되겠구나. 남들이 닦은 길에 소금을 뿌리는 저놈이야말로 사탄이다."

사탄이 거듭 말했다.

"내가 네 앞에 낙타를 끈 상인을 보내겠다. 그는 이 사막에도 물을 넉 포대씩 매고 다니는 자이니, 그를 따라 돌아가 네 분수에 맞는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하라. 네게는 이 광야를 떠돌 자격조차 없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하얀 옷감이 보였다. 그가 신기루가 아니라면, 하느님이 내게 보낸 기적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낙타를 몰고 나타나 내 앞에 멈췄다.

아주 젊은 청년이었다. 내가 상상한 아랍 민족이 아닌, 내 두 번째 고향, 런던에서 보는 것이 더 익숙할 법한 토종 영국인처럼 보였다.

그는 모자를 벗고 검은 머리카락을 보이며 물었다.

"제가 올드코트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내 혀는 대답하기엔 너무 메말라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집이 있으십니다."

그는 중얼거리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0.07.10 02:00

<70. 꿈은 끝나지 않는다>

쓰르르... 쓰르르....

우리는 매미 울음소리 위를 걸었다.

이곳 사르데냐 섬에 도착한 지 두 달이 되었다. 원인 모를 열병이 퍼져 부대원 둘을 숲 속에 버려두고 온 뒤로 우리 부대의 사기는 바닥을 기었다.

"이쪽으로."

내 말에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묵묵히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를 숨소리만 내 뒤에 줄줄이 이어졌다.

산에서는 선두가 가장 체력 소모가 심했다. 모든 신경을 기울여 나아갈 길을 찾아야 했고, 뒷사람을 위해 길을 트는 것도 앞사람의 역할이었다. 의욕이 없는 부대원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다.

나는 길을 찾았다. 어느 숲에나 길은 있다.

사람이 다니던 것이든, 짐승이 다니던 것이든, 숲에도 결이 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을 따라 걸으면 아주 높은 확률로 수원지로 이어졌다.

내 예상대로 우린 곧 작은 개울에 도착했다. 언덕 위에서 물이 흘러 고이는 작은 계곡이었는데, 잘 기억해 놓으면 요긴하게 보급에 쓸 수 있어 보였다.

물에 도착하자마자 병사 한 명이 군장을 내려놓고 다짜고짜 고개를 처박았다. 나는 그의 헤이한 모습을 굳이 탓하지 않았다. 그는 물을 들이켜다가 갑자기 바닥에 뱉었다.

"우웩!"

"못 마실 물인가?"

나는 그가 물을 뱉어 생긴 웅덩이를 보았다. 그 위에는 축축한 올챙이 한 마리가 퍼덕이고 있었나. 나는 그것을 손으로 잡아 입안에 넣었다.

"귀한 단백질인데."

올챙이의 살코기가 어금니 사이로 으깨질 때마다 생명이 사하는 느낌이 충실감을 더했다. 나는 피식자가 아니라 포식자다. 나는 살아있다.

"경계를 늦추지 마."

나는 쉬는 대원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경고했다.

"적군이 있을 수도 있어."

"이탈리아 놈들한테 잡힐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간만에 찾은 수원지에 대원들은 모두 목을 적셨고, 마음까지 해이해져 있었다. 실은 나도 그랬다.

그래서,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 나는 이변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소리를 듣고 달려가니, 병사들 사이로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허브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떨어트린 채 우릴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처후를 어찌 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한 병사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권했다.

"죽일까요?"

나는 그 눈을 봤다. 불안과 공포. 우리는 지난 두 달간 이토록 살의가 없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훈련되었다.

"아니."

"보내주면 틀림없이 밀고할 겁니다. 죽이고 짐승 흉내라도 내는 게 여러모로 깔끔합니다."

그 말도 맞았다. 후사를 위해선 여기서 여인을 죽이는 게 나았다.

내 침묵이 길어지자 여인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탈리아 말을 할 줄 아는 필립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라고 하지?"

"사투리가 심해서... 고발하지 않겠다, 살려달라, 이런 내용 같습니다."

나는 불쾌한 사실을 깨달았다.

여인의 생사가 고작 내 무책임한 말 한마디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흉내를 내는 것이다.

"장교님."

"집으로 안내시켜. 그러면 보복이 두려워서 밀고하지 못하겠지."

병사의 재촉을 받자 나는 그것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고 멋대로 아는 척 지껄였다. 필립이 여인을 향해 뭔가 말했고,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녀를 앞세운 우리는 개울을 따라 내려가 어떤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우리 모습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반대로 뭐라 하는지는 어렴풋이 와닿았다. 두 달간 씻거나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으니, 우리 꼴은 아마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총칼을 앞세워 지역민들을 집안에 집어넣었다.

"장교님, 하루 여기 머물면 어떻습니까?"

평소 부관 역할을 하던 쟝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하루 정도는 푹신한 털 침대에 누워도 벌 받지 않을 겁니다. 병사들 모두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꿀 바른 빵을 먹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둑놈들처럼 굴자고?"

"그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제일 굶주린 도둑놈도 우리만큼 배를 곯아 본 적 없을 겁니다. 집 하나를 털자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서 고작 한두 끼 대접받는 것이 그리 잘못됐습니까?"

"적군이 우리를 찾고 있을 걸세."

"저 숲과 산속에서 말이죠. 설마 이탈리아 놈들도 우리가 가정집 안에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저놈들이 아무리 독해도 설마 가정집 하나하나를 다 뒤져보겠습니까?"

여러모로 따져도 쟝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의 말대로 고작 하룻밤 머무르고 식사를 대접받는 정도로 민생에 악영향이 갈 리가 만무했지만, 반면 군 사기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또, 나 역시 사람인지라 이런 강행군을 이어나가다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도 있었다. 나는 결국 그의 끈질긴 설득에 승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적국이라고 해도 이들은 민간인이니 행실에 주의하도록. 우리 행동 하나하나 대영제국의 위신이 걸려 있어."

"물론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장교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내가 강조하는 애국심이라는 것이 고작 말뿐이란 걸 알아본 것이다. 나는 부끄러움에 귀가 빨개지고 말았다.

그날 밤, 우리는 각 가정집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했다.

현지인들은 험상궂은 군인들의 눈치를 보며 공손히 살폈고, 내 주도하에 병사들은 예의를 갖춰 현지인들을 대했다.

사고는 새벽에 터졌다.

오랜만에 마시게 된 싸구려 와인에 만취한 것인지, 혹은 처음부터 그런 흑심을 품었는지, 지금은 다들 죽어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으니 알 방법도 없었다.

나는 야간에 여인의 울음을 듣고 깨었다.

그리고 짐승 우는 소리가 들리는 헛간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달이 밝은 밤이었기에, 나는 그 안에 발을 들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아봤다.

그 뒤에 내가 저지른 행동은 그들의 죄만큼 충동적이었다.

나는 손에 잡힌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머리에 열이 올라 무작정 그 병사를 구타했다. 몇 대를 때렸는지 가물가물했다. 나는 소리로 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인의 울음보다 맞는 병사의 울음이 커졌다.

그쯤되니 소리를 듣고 나온 병사들이 내 팔을 붙잡고 말렸다.

"장교님! 이러다 저 녀석 진짜로 죽습니다!"

"그러면 살려?"

"실수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실수? 실수로 허리띠를 푸는 놈도 있나?"

"가뜩이나 분위기도 안 좋은데, 우리끼리 감싸주지 못하고 엄벌하면 탈영병이 생깁니다!"

나는 피 묻은 몽둥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날 붙잡은 장병들도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야밤의 소란이 마을 전체에 알려진 것인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병사들은 다들 헛간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지금 상황을 보고 바로 알 만큼 똑똑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이놈을 봐줘야 한다고?"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눈에서 불만을 읽어냈다. 그 사실은 내게 너무 두렵고 끔찍한 것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내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는 나도 기억하지 않는다.

"외면하지 마라. 너는 장병을 용서했다."

울고 있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등에 묻은 지푸라기를 털어내지도 않고 내 어깨에 턱을 올리고, 입가에서는 고혹적인 단 냄새를 풍겼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흉내를 낸 셈이지. 베드로처럼 죄의 유무를 가리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한 것이야. 그 뒤로도 병사들은 많이도 민가를 들락날락거렸지. 네가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너는 그들을 강도 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지. 네 선택 하나로 몇 명이 울었을까? 몇 명이 죽었을까?"

그녀, 혹은 그는 내 눈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겁쟁이 놈. 애초에 너는 누구 위에 설 그릇이 아니야. 우리 신들의 대전에 낄 만큼 대범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지. 순순히 무대에서 내려가고 청중의 자리로 돌아가라."

올드코트 입학 동의서. 나는 지친 표정으로 그것을 손으로 잡아 찢었다.

"내 죄는 사후에 베드로에게 심판받겠다. 너야말로 신의 흉내를 내지 마라, 에드워드."

그는 수줍게 웃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눈치챘습니까?"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0.07.10 04:00

<70. 꿈은 끝나지 않는다>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찌르르... 찌르르... 맴맴... 맴맴...

츠츠츠... 츠츠츠...

그 모든 불쾌한 악몽 끝에 나는 여전히 학장실 안에 있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창밖에서 상쾌한 여름 햇볕이 내리쬐었다. 따뜻한 온기가 실내를 훈훈하게 덥혔고, 앨리스와 데이비는 사이좋게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학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 밖에는 한 남자가 검은 상복을 차려입고,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았다.

"에드워드."

"조금 걸을까요?"

자리에서 일어나려 지팡이를 찾던 난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이곳 꿈속에서는 날 옥죄는 육체적 구속은 무엇도 없었다.

"제가 선물한 다리는 마음에 드십니까?"

"짧아. 나는 원래 이보다 컸네."

에드워드는 입을 삐쭉 내밀고 우스꽝스럽게 인상 썼다.

"제가 드린 건 왼 다리 뿐인데요?"

"글쎄, 내가 보기엔 자네는 사물을 좀 짧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죠. 이십 대 시절이 그립습니까?"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깐 그 의미를 찾아 헤맸다.

더 부축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그의 손을 기꺼이 잡고 함께 걸었다. 우리는 나란히 학장실을 나섰다. 그러자 문 앞으로 숲 속의 오솔길이 펼쳐졌다.

"사르데냐 섬이군."

"바로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운 섬이죠. 불과 15년 전까지 이곳이 전쟁터였단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어차피 환상이겠지. 네가 잘하는 짓 아닌가."

"아니요, 진짜입니다."

에드워드는 어디론가 손을 들고 미소 지었다. 숲 너머 새하얀 모래사장 위에 뛰놀던 아이들이 우릴 발견하곤 멍한 표정으로 여길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튜더 회장보다는 어련히요."

무슨 비유인지 쉽게 와닿지 않았다.

"정확히는 여긴 제가 작년에 들렀던 사르데냐 섬을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알프스 산맥에 들르는 겸에 들렀죠. 조금 마음에 드십니까?"

"알프스라."

"등산이 취미지요. 아, 그러고 보니 세상에 몽블랑 산보다 높은 산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프랑스에서 도무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지만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제게 맡긴다면 몽블랑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에베레스트를 깎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설마요. 저한테 그런 대단한 재주는 없습니다. 하지만, 꿈은 굉장한 사기꾼이죠. 어떤 황당무계한 일이 일어나도 곧바로 수긍하게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누구보다 사람을 잘 설득하는 편입니다."

에드워드는 말했다.

"당신 빼고요.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은 건지, 아니면 마법사라는 족속이 다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칭찬할 셈은 아니겠지."

"제 노력을 알아주세요. 저는 당신을 회유하기 위해 갖은 수를 썼습니다."

"칭찬해 달라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그는 싱긋 웃었다.

"앨리스, 그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상대하자면 당신보다 더 어려웠겠죠. 꿈에 관한 일이라면 눈치가 너무 빠르고, 심지어 이곳 드림랜드 주민과도 안면을 트고 있으니 속일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녀를 쫓아냈습니다. 여긴 당신의 꿈으로 이어진 세계이니 그 정도는 간단했죠."

"영리한 아이거든."

"반면, 미스터 넬슨은 상대하기 꽤 수월했습니다. 당신의 발목을 잡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내버려뒀죠.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자극해도 쉽게 무너졌습니다. 실은 그에게는 별 관심이 없지만, 의장이라는 자는 꽤 흥미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더 살려둘까 합니다."

"그렇게는 못하지."

나는 에드워드와 마주 봤다.

"그도 내 학생이야. 건드리지 말게."

"좋습니다.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를 건드리지 않도록 맹세하죠."

"쉽게 말하는군."

"그래야 쉽게 깰 수 있거든요."

에드워드의 뻔뻔한 선언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한바탕 웃음을 쏟아내니 에드워드가 기분 나쁜 얼굴로 "이제 말해도 됩니까?"라고 물으며 핀잔을 줬다.

"힘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절대 당해낼 수 없는 존재란 걸 보여주고, 다음에는 상상력이 부족한 당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병정놀이까지 했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시험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도통 꿈 없는 사람이라 먹히지 않더군요. 과거의 수치를 자극해 보기도 했죠. 그리고 알았죠. 왜 제가 당신을 죽일 수 없었는지."

우리의 짧은 산책은 묘지에 도착해 끝났다.

"당신은 이미 그 여름에 죽었던 겁니다. 살아 있다고 한들 자기 묫자리를 찾아 헤맬 뿐인 사자를 어찌 다시 죽이겠습니까. 저는 그냥 당신이 누울 관을 준비하기만 하면 됐는데, 어려운 길을 돌아간 것이죠."

우리의 짧은 산책은 묘지에 도착해 끝났다.

하얀 장갑을 낀 에드워드의 손이 관뚜껑을 공손히 열었다. 검은 관 속에는 수만 마리의 곰개미가 내 시체를 갉아먹을 준비를 하며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우산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관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제 쉬세요."

나는 이토록 잠들고 싶었던 적이 없다.

츠츠츠... 츠츠츠....

"이 소리를 듣고 싶었을 겁니다. 그야 런던에서는 들을 수 없었겠죠. 이런 울음소리는 오직 지중해 연안, 특히 사르데냐 섬에만 사는 종류의 매미만 내는 소리니까요."

그래, 이 울음소리였다. 지중해에만 사는 이 매미가 바로 날 죽음으로 안내하는 카른이다.

매미는 불멸의 존재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매미를 순환의 존재로 여겼다. 기독교적 세계관처럼 혼이 한 번의 죽음에 세상을 떠나지 않고, 땅속에 다시 머물러 오랜 인고 끝에 다시 피어나는 것으로 여겼다.

수많은 젊음이 쓰러진 그해 여름에 런던에서는 보기도 드문 매미가 수도 없이 울더라. 나는 그중 한 마리쯤 이름을 알까 싶었다.

"당신이 죽지 못한 여름, 청년들의 꿈이 스러진 무덤."

여름이 끝나면 바닥에 떨어져 개미에게 뜯어 먹히는 매미의 모습은 종종 볼 수 있었다. 고대인들이 꿈꿨던 불사가 얼마나 허황한 망상이었던가.

우리네가 고작 자연의 파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흙먼지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째서 그렇게 힘들었을까.

"자장가, 혹은 장송곡. 그대가 원하는 대로 부르시죠."

츠츠츠... 츠츠츠....

나는 해골 위를 걷고 사는 데 지쳤다. 나의 오랜 자살이 마침내 대단원에 이르렀다.

"안녕히 주무세요."

관 위에 누워, 내 모든 살점을 자연에 돌려보내며, 닫히는 관 뚜껑을 올려다보며, 저 하늘, 저 우주, 검은 천공 속에, 설령 마지막 별의 불이 꺼지고 우주에 한기만이 남더라도, 모든 희망이 꺼지고 어둠이 천체를 삼켜도, 이 지구의 생명이 더는 남아 있지 않더라도....

2020.07.10 04:01

<70. 꿈은 끝나지 않는다>

2020.07.10 05:20

<70. 그럼에도 해는 떠오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