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유산
그 다음 날.
나는 음침한 프랑크 저택을 다시 찾았다. 침엽수 사이로 난 으슥한 오솔길 끝에 나타난 저택에는 볕이 들지 않아, 여느 때처럼 습기를 머금은 이끼 내음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마차에서 내려 마부를 떠나보낸 뒤에 정문에 서자, 창살이 잔뜩 달린 녹슨 문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저절로 열렸다. 나는 여전히 정문이 어떻게 사람을 인식하고 문을 여는지, 그 구조를 알지 못했다.
어쩌면 저 멀리 커튼에 가려진 창 너머, 빛이 비치지 않는 어느 다락방 안에서, 매일 정문을 바라보며 문을 열 일만 기다리는 종지기 시종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터무니없는 망상이지만, 이 저택은 그런 몽상을 충족시켜주곤 했다.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마중 나온 것은 붉은 장미 문지기였다. 문 바로 앞까지 불쑥 고개 내민 장미는 토할 정도로 독한 꽃향기를 콧구멍 속으로 찔러 넣었다. 냄새를 떨치고 걷기 시작하니 다음에 발목을 잡은 것은 가시나무로 만든 길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발목을 붙잡았다. 양복바지의 끝과 코트 자락 올 사이로 파고든 가시는 앞으로 걷는 내 몸을 질질 뒤로 끌어당겼다. 나는 우거진 줄기 속을 헤치고 나아가던 탐험가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와 다른 점이라면, 지금 옷이 당시의 것보다 수 배는 비싸서 찢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런 저택에 산다면 외출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이것과 비교하면 내가 내려와야 하는 계단 따위 장애물조차 아니었다.
아서의 은둔 생활이 단순한 현자 흉내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황량한 정원은 아이러니하게 생명이 넘쳐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귀를 기울이면 뿌리가 지저 수백 미터까지 뻗어 나가고, 줄기와 줄기가 밀어내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삭임이었다. 하지만 어떤 일인지, 오늘은 정원 한구석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나는 무심코 그 소리를 쫓아 걸었다. 하나는 자리에 맞지 않는 소리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우려였다. 잠시 후, 나는 정원 한구석에만 부자연스럽게 햇빛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멈춰 섰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정원에서, 이곳만은 유일하게 줄기를 잘라내어 만든 공터였다.
작고 탁 트인 비밀의 정원에는 다섯 고아가 오순도순 모여 있었다.
"이런."
나는 삭막한 런던에서 나고 자란 탓에 그런 광경을 전에 본 적이 없었다.
날때부터 울면서 태어나, 평생 울상지으며 살 줄 알았던 고아들은 제각기 어색한 방식으로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건장한 남자와, 빼빼 마른 남자.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소년 한 명을 무릎에 앉혀 놓고, 모여든 다른 셋에게 홀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썩 뛰어난 변사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아이들은 눈이 빠질세라 집중하여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얘기를 할 줄 아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과 별개의 재능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 그들에게서 떨어진 공터 귀퉁이에는 빼빼 마른 청년이 박혀 있었다. 그의 앙상한 광대 위로 푹 파인 눈은 피로에 축축이 젖은 채, 그 모든 광경을 남 일처럼 방관했다. 빈말로도 아이에게 사랑받을 모습은 아니었는데, 의아하게도 그의 옆에도 아이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줄리엣.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소녀였다. 열한 살 맏이로 화재 당시 의젓한 모습이 썩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유일한 결점은 촌스러운 이름이었는데, 한 번도 그녀의 장래를 걱정해본 적 없는 심술 맞은 고아원장이 지은 것이 분명했다.
참 이상한 광경이었다.
무엇이 그러느냐면, 내게는 아이들과 섞여 놀아주는 건장한 남성보다, 그저 멀찍이서 관망할 뿐인 흉물스러운 남성이 더 신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여기엔 일곱 명이 있었는데, 내가 이름을 아는 자는 줄리엣과 그 남자뿐이었다.
나는 마른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남자는 호명되고야 날 눈치챈 듯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산 자보다는 죽은 생선과 닮은 눈이 날 향했다. 그는 잠깐 떨다가, 곧 침착하게 진정했다.
"남작님."
그 대답을 기점으로, 공터에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날 바라봤다. 아이 중 두셋은 내 얼굴을 기억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끔찍했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인지,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면 건장한 남자 뒤에 숨기도 했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원래 아이에게 사랑받는 편이 아니다. 실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들을 데려온 것은 양심과 의무에 의해서이지, 그들의 존경을 받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반응에 상처받을 이유도 없었다.
"자네가 아이를 좋아하는 줄 몰랐군."
오히려 의아한 것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였다.
나는 그와 나눴던 짧은 대화들을 모두 기억했다. 그는 산 것과 썩 친해 보이지 않았고, 삶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가 돌려준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그저 수줍게 웃었다.
나는 불쾌감, 주로 생리적인 이유로 실로 대단한 불쾌감을 느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내 정신을 되돌려 놓은 것은 프랑켄슈타인의 재촉이었다.
"그간 할 이야기는 피차 많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서 얘기하죠."
그의 제안에 나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곤 물었다.
"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나?"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바다에 있었고요."
시체도 이보단 크게 대답할 것이다. 물은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패기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잠깐 그가 가짜가 아닐까 의심했는데, 지금 반응은 내가 아는 프랑켄슈타인 본인이 맞았다.
"바다라고?"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까. 전에 만나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그의 말에 촉발되듯이 또 다른 남자가 성큼 내게 다가왔다. 넓은 어깨와 강직한 눈썹,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법을 아는 외모였다. 그는 두꺼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당신과 같은, 해군 출신이죠."
프랑켄슈타인은 소개하면서 은밀한 혐오를 숨기려고 애쓰지 않았다.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무례한 성격에 대해서는 익히 아는 듯이, 남성은 개의치 않고 멋쩍은 미소만 띠었다.
나는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가볍게 대었다. 반면, 남자는 손이 닿자마자 세게 움켜쥐었다. 긴말이 필요 없었다. 확실히 인사부터 해군식이었다.
"필레몬 허버트. 잘 부탁하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늘 찾아오는 순간의 충격이란.
나는 또다시 갑작스럽게 역사서에 실린 초인과 손을 맞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 남극점 개척을 두고 저 아문센, 스콧과 함께 다툰 시대의 영웅이 아니던가. 이렇게 실물로 마주하니 정작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저."
섀클턴의 나지막하고 어색한 음성에,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손을 떼어놓았다. 처음에 힘을 준 것은 섀클턴이었지만, 어느샌가 나 혼자 손에 힘을 넣고 그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성급히 악수하던 손을 빼냈다.
"나를 알고 있다고?"
"물론입니다. 해군 내에서 유명하십니다."
그의 말을 이은 것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말은 제대로 해야지. 미사여구 달 것도 없습니다. 그는 제게 소개를 들어서 아는 겁니다."
"이봐, 그 이전에도 나는 알고 있었어. 이분은 해군에서 유명하신 분이란 말이야."
"하지만 통찰하게 된 것은 내 소개를 통해서였지. 개념만 아는 것을 안다고 떠드는 머저리가 아닌 이상, 그 본질을 이해한 순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굳이 해군 시절을 운운하며 친밀감을 이끌어 내려는 것이 불쾌할 정도로 본질을 흐리는 것이지."
"잠깐, 소개받는 자리에서 우리끼리 말다툼을 해서야...."
섀클턴은 내 쪽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의 예상대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부분에서 그랬느냐면, 프랑켄슈타인도 일상적인 회화를 할 줄 안다는 것에 놀랐다. 지금 말다툼을 우호적인 것으로 칠 수 있다면 말이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꽤 되었나?"
"네, 빅터와는...."
"빅터!"
나는 화들짝 놀라 외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것처럼 섀클턴은 입가에 고소를 머금었다. 내가 아는 프랑켄슈타인의 궤멸적인 친화력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교류는 고작 한두 달의 것이 아닌 게 분명했다.
"...빅터와는 오래 알고 지냈습니다. 주로 그의 목적과, 제 역할이 일치했던 탓이지만요."
"역할이라고?"
"섀클턴도 프랑크 학술회의 회원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설명했다.
담담하기 그지 없는 설명이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이었다. 학술회 활동 1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 심지어 역사서에 등재될 정도로 뛰어난 인재가 회원임을 자칭하며 나타날 줄은 몰랐다.
나는 눈을 크게 띄운 채로 설명을 요구했다.
"작년에 학술회가 갑자기 문을 닫은 이후, 더는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찾아오진 않았습니다만."
섀클턴의 독백은 많은 것을 설명했다.
오래 전, 내게 찾아온 퀴리 부인이 했던 말이 있었다. 아서의 은둔 이후, 회원들은 런던 곳곳에 흩어져 학술회가 다시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 말이다.
나는 그런 자가 프랑켄슈타인 정도가 다일 줄 알았는데, 아서는 정말 인재를 모으고자 오래 공들여 온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제 변덕으로 말아먹은 것 또한 그다운 일이었지만.
"그래서, 어쩌다 이제 찾아온 건가?"
"학회장님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섀클턴이 말했다.
"그래, 나도 그걸 확인하러 왔네. 며칠 전, 아서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걸 아는 건 저택 사람뿐일 텐데, 아서의 부고가 났다는 소문을 들었지. 그건 어떻게 된 일인가?"
내 질문에 프랑켄슈타인은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큰 한숨을 쉬었다.
"적은 거대하고, 그 실체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말이 길어집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그가 돌아가자는 말을 꺼낸 것만 두 번째였다. 섀클턴은 품에서 잘 접은 신문을 한 부 꺼냈다.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인지, 어쩌다 타이밍이 맞았는지 알 수 없었다.
"저희가 런던에 돌아온 이후, 이 모든 소문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 조사했습니다. 빅터는 자료를 검토했고, 저는 직접 사람을 만나러 다니며 확인했죠.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부고가 실린 것이 바로 <더 런던> 창간호였던 겁니다."
"더 런던?"
전에 본 적 없는 말끔한 디자인의 신문이었다.
디자인이란 것은 생각보다 가치가 높은 편이다. 특히 우리 시대의 신문이란, 빼곡하게 광고와 기사를 채워넣기 위해 촘촘하게 문자를 밀집시키기 마련인데, 이것은 기사 사이에 공백을 둘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대신 장수를 늘렸다. 아주 현대적인 디자인이면서, 어마어마한 자원 낭비이기도 했다. 어지간한 고급 신문이 아니고서야 이런 구성을 채택하기 어려웠다.
"이게 뭐지? 미국 신문인가?"
"아니요, 보시다시피 영국 신문입니다. 최근에 런던사 회사(London Record Company)에서 창간했죠. 이에 대해서는 저보다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알다마다. 족보 보험이 아닌가."
나는 뒷말을 삼켰다.
그들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그보다 많았다. 예컨대 그들이 노란 외벽 회사라 불리는 아홉 기업체 중 하나이며, 학술회의 뚜렷한 적성 조직 중 하나이며, 드림랜드에 선로를 세우고 수백 명의 승객을 날려 보냈으며, 런던 템스 강에 네 척의 철갑선을 띄워놨다든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런 모든 설명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그는 인류를 위협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나만이 느낀 것이 아니라, 아서 역시 그를 신뢰하지 말라는 간접적인 경고를 보낸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정보를 그와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내가 망설이는 중에도 섀클턴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런던사 회사는 대화재로 큰 손해를 입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사와 파이낸셜 타임즈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두 회사의 세 신문을 통합하여 하나의 통합 일간지를 개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더 런던입니다. 지금에 와선 런던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신문 중 하나인데 정말 처음 보십니까?"
그의 질문이 책망처럼 들렸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가 꿈을 통해 공격한 이래로 내가 주변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주제에 대해 논하기엔 지나치게 벅찬 시간이 아니었던가!
섀클턴은 대답을 듣지 않고 계속 말했다.
"비단, 기사뿐만이 아닙니다. 귀국 이후 참여한 각종 행사, 모임을 통해 출처 불명의 소문들이 번지고 있습니다. 프랑크 백작의 부고가 상류 사회 전반에 보편 인식이 되도록 종용하는 세력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 역시 런던 상류층에서 외면받은 나로선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거기선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되었다.
나는 그 결론을 문장으로 만들었다. 복잡한 상황에 비해 간결한 한 문장이 완성되었다.
"프랑크 학술회는 노출되었다. 분명해졌군. 우리는 공격받고 있네."
아서 프랑크 개인을 노린다고 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 부연한 작태였다. 그들이 정말 아서만을 적으로 여긴다면, 대화재 당시 그랬던 것처럼 이 저택을 습격해 그를 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 노란 외벽 회사는 아주 번거로운 수작을 써가며 아서 프랑크의 부고가 퍼지도록 유도했다. 모종의 사태로 혼수상태인 아서는 그것을 반박할 수 없고, 서서히 거짓 정보가 퍼져 나간다.
예컨대 아나콘다의 사냥법 같은 것이다. 몸으로 주변을 감쌀 때는 알지 못하지만, 정작 때가 되면 퇴로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뱀처럼 우리 학술회를 단숨에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런던의 음지를 둘러싼 경쟁에서 가장 취약한 프랑크 학술회를 무너트릴 준비 말이다.
"우스운 일입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적막을 깨고 말했다.
"생사의 이치가 이렇게 단순합니다. 저는 죽은 사람을 끌어올리고자 부단한 노력을 쏟았는데, 누군가는 손 하나 까딱 않고 산 사람을 죽은 것으로 만드는군요. 제가 알기론 주 예수도 생사를 논하는데 그보다 노력을 기울인 줄 압니다."
그는 모독적인 농담을 읊으면서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묻겠네. 아까 하던 얘기의 계속이네만, 바다에 있었다는 건 또 뭔가?"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프랑켄슈타인이 말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빅터에겐 목적이 있습니다. 그걸 위해 학술회에 봉사하고 있죠."
우리가 자리를 옮길 준비를 하는 동안, 설명을 시작한 것은 섀클턴이었다.
"남작님께서 학술회에 합류하시기 전까지, 우리 학술회의 목적은 그리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각지에 드러난 음지의 흔적을 어렴풋이 쫓을 뿐이었죠. 방식은 간단했습니다. 우리는 인류사를 거슬러 오르며, 역사 속에 부자연스럽게 배제된 몇몇 지역을 특정했습니다."
설명은 담백했지만, 그 안에 담긴 노고는 적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섀클턴은 굳센 인상과 달리 서글서글하게 덧붙였다.
"압니다, 별로 기여하지 못했죠. 저는 영국인으로서 독서를 사랑하지만, 학자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얘기를 할 셈은 아니었네."
그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 끝에 우리는 몇몇 지역을 선별했습니다. 인류의 손을 탄 적이 없는 미지의 봉우리였죠. 남작님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는 암흑 대륙의 본토, 그중에서도 대사막과 나일 강 유역, 그리고 희망봉을 위시한 대륙의 남종단. 그리고 태평양의 무수한 군도와, 신비로운 두 서방 국가, 청과 지팡구. 또 유럽 한복판에도 남은 비경, 알프스 산맥과 솔랜드 섬. 또, 브라질의 아마존 수림...."
섀클턴이 지명을 하나씩 나열했다.
나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꼬드겼는지 그 비결을 엿보았다. 그는 대단한 이야기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군인, 탐험가 경력을 한껏 살릴 줄을 알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 누구라도 홀릴 법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아이가 아니었고, 또 이 대화의 무게를 잘 알았다.
내가 아는 세계에선 암흑 대륙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사하라 사막에는 수십 대의 자동차가 매년 경주를 하고, 알프스 산맥에는 등반객이 넘쳐난다. 태평양 섬에서는 클럽을 찾아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찾아오고, 비행기를 타면 하루 이틀 안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미지의 이면에는 이토록 단순한 진실이 감춰져 있었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신비는 무엇하나 없다는 것을 이 세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실은 전부 거짓이다.
"남극."
발견 원정.
왕립 학회와 왕립 지리 학회는 누구보다 앞다퉈 남극점에 도착하려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저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 경쟁치고는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았던가. 나는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거기엔 무언가 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끔찍한 존재가, 이 런던 밖의 세계에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빅터는 이 계획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는 학술회에 헌신하는 대가로 한 가지 약속을 지켜주길 당부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남극 여정이었습니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돌아봤다.
"아서에게 듣기론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고 하던데."
"신문에서 섀클턴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에 합류하려면 서둘러야 했습니다. 물론, 남극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동기와 행동이 이어지는 평범한 문장이었지만, 결정적으로 한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이 남극에 집착하는 이유 말이다. 사실 첫인상부터 그는 늘 그랬다. 언제나 어둠을 두려워하며 떨면서도, 반드시 그 속에 들어가 무언가 찾기 위해 절박했다.
나는 그 자기 파괴적인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지 심히 궁금했다.
"날이 춥습니다. 슬슬 들어가시죠."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질리지 않고 말했다. 아마도 네 번째였다.
"아, 그래, 내 정신을 좀 보게."
나는 이번에야말로 그의 말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방해만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러려고 했다. 멀찍이서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성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다들 여기 모여 계셨군요."
노집사는 급하게 가시나무를 해치고 온 탓에, 가뜩이나 낡은 옷이 가시투성이가 되어 못 쓸 것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그리 급하게?"
"방금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우체부가 올 시간은 아닌 줄 아네만."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튼실한 손에는 단정한 편지가 들려 있었다. 얼추 보아도 좋은 종이를 쓴 편지 봉투였다. 나는 거기 찍힌 인장을 알아봤고 상황을 이해했다.
"이리 줘보게."
나는 편지를 낚아채고, 그 위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
「경영 회의 참석 요구」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가 플래쉬백 되었다.
누구의 목소리인가 했더니, 아서 프랑크의 것이었다.
───노란 외벽 회사 경영 회의에 초대받았어. 그 작자들이 내 법적 상속인들과 손을 잡은 모양이야. 내가 정기적으로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멋대로 사망 신고를 넣더군. 한밤중에 찾아와 잠 깨운 조사원이 날 보고 죽었느냐 묻는데, 미치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
"어떻게 됐습니까?"
프랑켄슈타인이 살짝 화난 듯이 물었다. 입술이 아주 창백했는데 아주 추운 사람 같았다. 어째서 지금까지 춥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몰랐지만, 그런 게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서를 죽이려 하고 있어."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 생매장하려는 거야!"
아서는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 그것을 빌미로 조사한다면, 그들이라면 아서 프랑크의 사망 처리를 충분히 통과시킬 것이다. 그들이 아서를 죽여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깨달았다.
"아서는 선친으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았지."
"누구라도 탐낼 만큼 거금이죠."
프랑켄슈타인이 거들었다.
"하지만 노란 외벽 회사라고 하면, 영국 굴지의 기업들 아닙니까. 개인의 재산을 탐내서 이런 공작을 가하는 건 번거롭고 위험하게 들립니다."
"그래, 그들은 재산을 원하지 않지. 원하는 건 유산 그 자체라네!"
"혹시나 해서 묻는데, 그 문장이 잘못되었다는 건 압니까?"
그는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흥분한 나머지 좀처럼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해서 답답해하며 외쳤다.
"저택이야, 그들이 원하는 건 이 낡은 저택이란 말일세!"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노란 외벽 회사가 그저 생존 경쟁의 원리에 따라, 우리가 취약하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줄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보다 교활하게 뚜렷한 목표를 갖고 그걸 얻기 위해 서서히 좁혀 오고 있었다.
모르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수 차례의 회의 참석 요구, 상속자 포섭, 아서 프랑크 피습 사건, 철도왕의 금고 열쇠, 모든 조각이 하나로 맞춰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서의 선친이 남긴 유산이었다.
오라클.
미래를 계산하는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