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83화 (83/232)

§83. 별빛 지성

어두운 밤에는 저마다의 법칙이 있다.

외적의 출현에 단결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이듯이, 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향한 의심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학술회의 적이 교활한 술수를 부리니, 그의 도움이 아주 절실해진 것이다.

"회의 일자까지 회복할 수 있겠나?"

저택의 먼지 뿌연 방 안에 들어온 나는 아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수척했지만 크게 건강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그저 자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인가?"

나는 답답한 마음에 프랑켄슈타인을 재촉했다.

"인체의 이해에 한해선 자네를 따라가는 자가 세상에 없는 줄 아네. 사자를 죽음에서도 끌어 올리는 자네가 모르는 병과 증상이 있단 말인가?"

"문외한은 쉽게 말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보십시오. 이 침대의 폭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길어야 50인치. 높이는 길어야 100인치. 해봐야 50제곱인치에 불과한 이 좁은 공간 안에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미로가 담겨 있습니다. 생리와 생식을 연구하는 몸으로 병상 앞에 선 때만큼 두려운 순간도 없습니다. 일생 연마한 지식은 모두 무용한 것이 되고, 이성과 지성은 흐려지고 무심코 손에 길든 민간요법을 수행하게 되죠. 그런 처방을 한두 번 반복하면 운이 좋으면 환자는 소생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핏기가 빠지기 시작하고, 혈액은 더디게 흐르고, 눈에서는 모든 수분이 흘러나와, 거친 숨으로 사랑과 용서를 구하며 신을 찾다가 떠나는 겁니다."

박사 특유의 장광설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가 계속 말하게 두면, 언젠가 또 음침한 결론으로 빠져 좌절할 것을 알았기에 짜증 섞인 어조로 말을 끊었다.

"자네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모두 알겠네. 하지만 자네는 빅터 프랑켄슈타인 아닌가! 이미 그런 미숙한 고민쯤은 모두 초월했을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내색하지 않을 정도는 됐겠지. 간단히 말하게. 아서는 어떤가? 심각한가?"

그러자 프랑켄슈타인은 날 노려보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도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답을 짜내는 듯했다.

"아니요."

그 한마디를 듣기가 얼마나 고난한지!

"그러면 곧 깨어날까?"

"모르겠습니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탈선했다.

"정리하겠네. 아서의 용태는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깨어나지는 않는다."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묻겠는데 그 문장이 잘못된 줄은 아나?"

프랑켄슈타인은 확 짜증을 냈다.

"상처가 있었다면 봉합했을 겁니다."

"외상이 있긴 했지."

"사소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피가 부족했다면 수혈했을 겁니다. 죽은 피가 있었다면 빼냈을 테고요."

그는 홧김에 계속 말했다.

"열이 난다면 약을 써서 체온을 낮췄을 테고, 그 반대라면 난롯가에 둬서 체온을 올렸을 겁니다. 배에 물이 찼다면 구멍을 내서 뺐을 테고, 뇌수가 코로 나왔다면 그만큼 채워넣었을 겁니다. 장기를 잃었어도 대체품은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남작께서도 잘 아시듯이, 제겐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도굴꾼, 연금술사, 병리학자, 화학자, 아스클레피오스! 그리고 저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신을 거스르고 인명을 구하기로 한 제가 뭔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프랑켄슈타인은 아서를 앞에 둔 채로 히스테릭한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당황하여 그를 진정시키려고 급하게 말을 돌렸다.

"조금 진정하게. 내가 말을 경솔하게 했어. 사과하지."

잠시 후,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프랑켄슈타인은 제 몸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간병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아서가 누운 침대 위에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

"...어제 저택에 도착하고, 저는 학회장님이 혼수상태에 빠진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를 했습니다."

"머리를 얻어맞고, 밧줄에 목이 걸렸지.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나?"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아서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며 들어 올렸다.

"보통 목이 걸리면 경추가 빠집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질식을 면해도, 경추가 빠진 이상 소생할 방법은 없습니다. 평생을 불구로 살거나 곧 죽게 되죠. 하지만 백작님의 목뼈와 척추는 아주 건강합니다."

그리곤 제 말을 뒷받침하듯이 아서의 목을 앞뒤를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질식이라면?"

"산소가 부족하여 뇌가 몸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없지는 않습니다. 뇌사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도 호흡하지 못해서 바로 죽습니다. 반면 학회장님은...."

그는 다른 한 손의 손가락만 아서의 콧가에 가져가 대었다.

"멀쩡하군."

"그렇습니다. 후두부의 외상도 별로 심각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살갗이 찢어져서 피가 좀 났지만 기껏해야 잠깐 의식을 잃는 정도였겠죠. 두개골에는 손상조차 없었습니다."

설명을 듣던 나는 문득 걸리는 것이 있어서 바로 물었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확신하나?"

"어제 열어봤거든요."

"열어보다니?"

"뇌 말입니다."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뇌? 머리?"

"그러면 뭘 바랍니까? 남들 다 하는 문진? 청진기라도 가슴에 댔어야 합니까? 그러면 전 왜 여깄습니까? 아무 왕진의나 데려오시지 그랬습니까?"

듣다 보니 그의 말이 또 맞았다.

어쨌거나 죽은 자도 되살리는 프랑켄슈타인에게 두개골을 여닫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인지를 초월한 기술과 지식을 가진 그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안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미래의 지식을 갖춘 인물로서 늘 현대인보다 상식에서 앞서왔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공식을 가볍게 뒤집었다.

두개골을 가르기 위해서는 머리를 밀어야 하지 않았던가, 혹은 뇌의 감염을 막기 위해 소독을 충분히 하고 몸을 덮어야 하지 않던가 등등 하는 생각 말이다.

걱정을 해봐야 내가 프랑켄슈타인보다 나은 점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경솔했네, 계속하게."

"달리 계속할 말도 없습니다. 학회장님의 뇌는 잡티 하나 없이 온전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확인한 바로는 깨어나지 못하실 이유는 없죠. 제가 만약 전통적인 종교관을 숭배했다면, 영혼이 빠져나갔다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이란 결국 화학, 전기 신호를 수행할 뿐인 존재란 걸 압니다."

또 다시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그의 주변에 유별난 소문이 도는 것이, 반드시 외모 때문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상태라고 할 수 있겠나?"

"제게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난해한 표정을 말했다.

"몸에 이상은 없고, 외부 자극도 마땅히 없었습니다. 그러니 혼수상태라 보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기절했다고 말할 수도 없죠. 그리고 의식은 없으니, 이 경우 부르는 법은 하나뿐이잖습니까?"

나는 어쩐지 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던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꿈에서 보았다.

"학회장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사람은 이리 길게 자지 않으니, 동면인 셈이죠."

강렬한 데자뷔가 엄습했다.

소재는 모두 갖춰졌다.

잠들어 있는 아서 프랑크, 노란 외벽 회사 경영 회의 초대, 프랑크 가문의 위대한 유산, 살해당한 찰스 러트위지 도지슨, 토끼풀십자회....

준비된 배역은 모두 무대 위에 올랐고, 관객을 향해 소개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독자들은 나를 너무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라고 그 모든 일화를 말하고 싶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순서상 초상화에 얽힌 이야기를 먼저 풀어야 했다.

그것이 시간 순서상으로 올바르기도 했고, 앞으로 이어질 복잡한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세상만사가 무관하지 않고, 서로 교묘한 운명의 실타래 위에 얽혀 있지 않던가.

그러니 지금은 인내심을 발휘하자.

내가 저택을 방문한 날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 노란 외벽 회사의 운영 회의 참석일 전의 어떤 날의 이야기이다.

시기상 봄꽃이 필 날이 되었으나, 여전히 쌀쌀하기만 하던 그날 밤.

어두운 밤바다 위로 배 한 척이 떴다. 영국의 도버항港과, 프랑스의 칼레항港을 잇는 정기 왕복선이었다. 연일연시 짠 소금물에 적셔진 채 항해한 배에서는 바닷물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나는 배의 난간에 선 채로 밤바다의 어둠을 묵시했다.

밤바다는 어둡지만 검지는 않았다.

많은 시인이 한 번도 배에 올라본 적 없이 남의 표현을 베끼기 급급했다. 그러니 밤바다에는 칠흑 같다는 턱도 없는 형용사가 따라붙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밤과 바다에 대한 모욕이었다.

나는 안다. 바다는 낮보다 밤에 많은 것을 품는다.

수면에는 셀 수 없는 별 그림자가 춤춘다. 바람을 맞은 파도는 쉼 없이 넘실거리며 빛을 삼키기도 하고, 뱉기도 하여 빛무리로 눈을 현혹했다. 그 연회 속에서는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오직 달만이 하늘의 완전한 모습과 달리, 길게 늘어지기도 했고 흐트러지기도 했다.

어둡기에 보이는 것이 있다. 그러니 바다는 어둡더라도 결코 검지는 않은 것이다.

"파리에는 가보신 적 있습니까?"

밤바다 풍경을 보고 있자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설픈 영어를 자신 있게 발음하는 그야말로 오늘 나를 여기까지 이끈 장본인이었다.

"르블랑 시장님."

"전 시장이죠. 누가 들으면 오해합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에두아르 S. P. 르블랑, 나는 짧은 시간만 그와 어울렸지만, 그동안 그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 그가 얼마나 단순한 사람인지도 들어 있었다.

"아니요, 가본 적 없습니다."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프랑스에는 보급차 몇 번 들른 적은 있지만, 항구를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놀라시겠군요. 파리는 정말 상상 이상일 겁니다."

그는 배려하는 듯하면서 은연중에 파리를 런던보다 높여 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는 불쾌하게 느끼면서도 티 내지 않았다. 그런 것으로 일일이 시비를 가리면 프랑스인과 사귈 수 없는 법이었다.

나는 싸우지 않고 저 오만한 민족의 콧대를 누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특히나 파리에는 멋진 건물이 많죠. 로마 이후로 훌륭한 것은 모두 프랑스로 몰렸습니다. 건축도 예외는 아니었죠. 런던에도 많지 않습니까, 그, 오스만 아파트라고 하던가요? 그것도 파리에서 먼저 나온 것이죠."

"기대가 되는군요. 사실 그에 관해서는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저는 정말로 그 탑이 수도 한복판에 있는지 보고 싶군요."

그러자 신 나게 떠들던 르블랑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파리에 탑이 있던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러더니 누가 들어도 어색한 어투로 모른 척했다. 내가 만난 프랑스인은 여럿 있었지만, 모두 이 주제에 한해서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잠깐 불쾌해하고는 아예 그런 것이 없다는 듯이 구는 것 말이다.

파리의 흉물, 미완의 에펠 탑은 그들의 높은 콧대를 꺾는데 참 좋은 화제였다.

"아무튼, 선생께서 이렇게 대동해주시니 좋군요."

르블랑은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싸우자고 한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또 다른 나라 자랑이 시작하기 전에 빨리 그 화제를 물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 초상화를 그렸다는 폴란드계 화가를 만나러 가는 겁니다. 당신의 유치한 복수를 돕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마음이야 바뀔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내 단호한 반응에도 여전히 태연했다.

실은 첫 만남부터 르블랑은 이 일에 관해 묘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마치 내가 그의 손 위에서 놀아날 것이 예정되었다는 듯한 언동을 취하는 반면, 정작 그에게는 뒷공작을 하거나, 날 유도할 만큼 노련한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쭉 거슬렸지만, 겉으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내 파리행을 돕기까지 하고 있으니 그를 의심하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별 망상이 다 떠오를 지경이었다.

사실 르블랑도 내가 모르는 비밀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왕립 학회나 노란 외벽 회사에서 보낸 앞잡이일지도 모르지. 그런 의심암귀가 마음 한편에서 몸집을 불렸다.

"압니다, 의심스럽기도 하시겠죠."

르블랑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놀랄 필요는 없었다. 단순한 소거법이었다. 그도 자신이 수상하게 행동하는지 아는 만큼, 일부러 내게 그것을 말해서 정신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것이다.

이 늙은 정치가는 가끔 이렇게 노련한 면모를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아서 프랑크나 뉴먼 의장 같은 자와 상대해오던 내가 보기엔 르블랑의 사고 유도는 아주 조잡했다.

그는 어딜 봐도 음지에 몸 담근 자 특유의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이성과 광기의 사이에 선 위태로운 별빛 지성 말이다.

"하지만 몇 번이라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리는 이유는 저 때문에 괜히 얼굴 팔린 선생께 사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다 마음이 바뀌신다면 몰라도, 저 몰래 일을 진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언약밖에 할 수가 없어서 유감이군요."

르블랑은 말과 달리 별로 안타까워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저도 정치가 아닙니까. 신뢰만큼 중요한 것도 없죠."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걱정이 됩니다."

내 말에 르블랑은 억지로 웃었다. 생각 때문에 지친 탓에, 나는 웃을 생각이 안 들었다.

"밤공기가 차군요. 칼레에서 파리까지 가는 길도 제법 멉니다. 들어가서 잠깐 휴식을 취하죠."

나는 르블랑의 제안을 순순히 따랐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나는 프랑스로 가는 이상 이걸 꼭 물어뒀어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화두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이걸 묻는 걸 깜빡했습니다."

"뭡니까?"

"그 폴란드계 화가의 이름 말입니다."

르블랑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화가의 이름은 빈센트 흐라발이라고 합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무슨 농담입니까?"

"뭐가 말입니까?"

"아니면 질문을 잘못 들으신 게 아닌지."

그러자 르블랑은 눈을 크게 뜨고는 손뼉 쳤다.

"그러고 보니 절묘한 우연이군요. 초상화를 그린 화가 이름이 빈센트(Vincent)라고 했던가요? 파리에서 활동 중인 화가의 이름도 폴란드 발음으로 빈센트(Wincenty)요. 왜 진작에 몰랐을까요?"

농담이나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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