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지구의 공동, 설산
나는 4월 23일에 깨어났다.
그건 아주 기괴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4월 23일에 잠들었는데, 잠에서 깨고도 4월 23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꿈에서 잠드는 일과 비교하면 별반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꿈을 꿨어."
내 말에 아서는 돌아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피로가 쌓였나 보지."
"그런가."
전날 이후 다시 프랑크 저택에 모인 나와 아서, 그리고 앨리스 세 사람은 큰 식탁을 중심으로 두고, 앨리스가 직접 제본하였다는 책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는 나중에 해. 제대로 듣고는 있어?"
아서는 내가 말을 끊은 것이 영 불쾌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이번 일에 걸고 있는 기대가 상당하다는 방증이었다.
"지하 탐사, 거기까지 얘기했지."
"우리 영광스러운 학술회 회원, 앨리스 리들 양이 대단한 발견을 해냈지. 론디니움에서 지구의 공동으로 이어진 끝없는 절벽 말이야."
얼추 보아도 흥분한 아서와 달리 나는 이 모든 계획이 어색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실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어."
"소용이라 하면?"
"4년 안에 런던이 가라앉는 게 사실이라면, 이 모든 탐사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는 거야. 지금부터라도 사실을 세상에 공표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피난을 유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의문에 아서는 기가 찬 어조로 날 탓했다.
"제대로 듣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
"미안, 잠깐 졸았네."
서툰 거짓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기에, 나는 빠르게 진실을 고했다. 하지만 진실이 늘 옳은 법은 아닌지, 아서는 더없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평생에 걸쳐 내 주변의 바보들을 떨쳐내려 애썼어. 필로, 내가 실패했다고 말하지 마. 이 도시는 비대한 만큼 거대한 인력을 가졌지. 도시가 눈앞에서 가라앉지 않는 이상, 누가 런던을 떠나려고 하겠어. 심지어 어떤 증거도 없이 말뿐이어서야."
별로 따져볼 것도 없이 아서가 옳았다. 런던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너무 거대해서 설령 도시가 사라진다 해도 완전히 흩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학술회를 자칭하고 있지만, 그저 평범한 학술 기관은 아니야. 모든 연구와 조사는 목적성을 갖춰야 하지. 이번 지하 탐사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런던이 침강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수집하고, 가능하면 그 과정을 멈추거나 지연할 방법을 찾아내야 하지. 이 임무의 막중함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아서는 거들먹거리면서 내 실책을 탓했다. 그의 들뜬 모습으로 보아선, 그도 아주 진지하다고 볼 순 없었지만 굳이 기분을 거스를 필요는 없었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번 탐사에는 리들 양이 사용한 방법을 응용할 거야. 리들 양, 이 친구에게도 자네가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주겠어?"
그의 요청에 줄곧 입 다물고 있던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백작님께 안내를 받고, 적은 준비를 하고 바로 론디니움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그곳에서 지구 공동으로 이어진 낭떠러지를 발견한 거죠. 저는 깊이를 측량하기 위해 늘 가지고 다니는 방울을 아래로 던졌습니다."
"잠깐."
나는 앨리스의 말을 멈췄다.
"방울을 늘 가지고 다니나?"
"뭔가 이상한가요?"
내 질문에 앨리스는 도리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흔한 경우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부분이야?"
"그렇지는 않지."
"알아줘서 고마워, 계속하게."
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아서의 제지에 더 묻지 못했다.
"아무튼 그것은 지하보다 시끄러운 지상에서도 거의 0.5마일(*약 0.8km) 밖에서도 들리는 것인데, 방울은 어둠에 삼켜진 것처럼 소리 하나 없이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론디니움은 간간이 진동했지만 아주 조용한 도시이니 어딘가 닿았다면 듣지 못할 리가 없었죠. 다음엔 가지고 온 양초를 던져봤습니다."
"바람 때문에 불이 꺼지겠지."
"지금 여기 취조하러 온 거야?"
내 지적에 다시 한 번 아서가 말참견을 했다.
"아니, 맞잖아?"
"교수님 말씀대로였어요. 얼마나 깊은지 다 보기 전에 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깊다는 건 알 수 있었죠. 또, 고작 양초 불 하나로는 벽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동이란 것도 알았고요. 더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더 조사하려다가 뭔가 인기척 같은 것도 느껴져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앨리스는 차분하게 설명을 마쳤다.
그 어조 때문에 착각하게 되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아주 촉박하고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 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
그녀의 언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흐릿하던 불안은 점점 이유도 모르고 커져만 갔다.
"지금까지 이야기론 그게 평범한 동굴인지 분간이 안 되는데. 그리고 또 이 방법을 어떻게 응용하겠다는 것도 모르겠고 말이야."
"저는 다시 준비를 해서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이번에는 저금한 용돈과 작문 대회 상금으로 2마일 길이의 밧줄과 손수레, 그리고 낙하산을 준비했습니다."
나는 담담히 설명하는 앨리스의 행동력에 놀라서 입을 벌렸다.
"아서."
"무슨 말을 할 줄은 알겠어. 내가 지원을 해줬다고 하는데 왜 그녀가 사비를 들였는지, 또, 그 위험한 구덩이에 그녀를 두 번씩이나 밀어 넣은 내 잔혹함에 대해 말하려 하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아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웠다. 내가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실은 나도 몰랐어. 리들 양은 용감하게도, 혹은 무모하게도 모든 계획을 비밀로 하고 착수했지. 고작 주말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서 내가 손쓸 틈도 없었어.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그녀는 아주 열정적이라니까."
아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리들 양의 차분한 설명이 끝나길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앞서서 모든 과정을 이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리들 양은 몸을 밧줄로 묶고, 낙하산을 지고는 뛰어내렸어. 물론 나라도 이 방법은 찬성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어쨋거나 그녀는 성공했지. 밑바닥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지하에 펼쳐진 끝없는 공간을 발견한 거야."
그는 그대로 앨리스의 책을 넘겨서, 처음 그녀가 내게 보여줬던 그림을 다시 보여줬다. 어딘지 모를 절벽과 끝없는 고원.
"지표는 생각보다 얇아. 원래라면 그걸로도 충분히 버텼겠지만,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하에 처박기 위해서 나선형 통로를 뚫었고, 그 불안한 구조는 런던같이 무거운 도시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허술해졌어. 한 번 추락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가라앉기 시작하겠지."
나는 언젠가 보았던 꿈속에서 런던이 추락하는 모습을 기억했다. 학장이 보여준 그 참상과 남 일처럼 흥분해서 떠드는 아서의 모습이 곂쳐보였다.
악몽이다.
"물론 낙하산을 짊어매고 뛰어내리자고 말하는 건 아니야. 그건 위험하기도 하고, 탐사 목적을 생각하면 효율적이지도 않거든. 우리는 절벽 사이를 날아다닐 거야."
"어떻게?"
아서는 웃으며 말했다.
"열기구를 지하로 옮길 거야. 말 그대로 땅밑을 나는 거지.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잠시 후, 나는 말했다.
"있잖나, 나는 이게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아."
"필로, 너 설마 겁먹었어?"
"너답지 않아. 전에 편지에도 쓴 적 있지만, 나는 네 경력을 존중해. 학자이면서, 탐험가이면서, 또 군인이지. 그러한 경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오해하지 말게. 내가 고작 이런 일에 위축할 리가 없지. 하지만, 꿈, 그래, 지독하게 불길한 꿈을 꿨어."
아서는 내 말에 놀란 얼굴을 하곤, 턱에 손가락을 올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꿈이란 예전부터 현실을 투영한다고 알려졌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꿈을 통해 미래를 점치려고 했고, 현대에는 과학의 미명하에 꿈으로 과거를 읽어내려고 분석을 하지. 장황한 수사와 모호한 해석... 하지만, 어떤 점쟁이도 꿈을 통해 오늘 일어날 일에 대해선 말하지 않아. 왜 그런 줄 알아? 실체가 뚜렷할수록 그 노력이 헛되다는 게 쉽게 들통 나거든."
아서는 악몽을 꾼 동생을 달래는 것처럼 미소 지었다.
"네 불안도 이해는 해. 우리가 치를 거사는 책임은 막중하고, 더없이 위험하지. 하지만 그 불안 때문에 미신을 품는 일은 없도록 해. 그 미신이야말로 우리 적의 실체니까."
"그래."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아서는 내 모습을 보며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신탁은 예로부터 신의 영역이야. 고작 인간에 불과한 네게 그런 신령한 능력이 어디 있겠어."
아서의 호언에도 내 마음속 불안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불온한 태생을 부정하는 것처럼 미신을 거부했지만, 나는 그보다 많은 사건에 연루되며 하나의 감각을 연마해왔다.
신을 사칭하는 몽상가, 혹은 사기꾼들과 얽히며 본의 아니게 생긴 하나의 재주였다. 본래 인간이 가지지 못한 육감, 대학에서는 지혜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지혜의 본질은 불가시의 적이다. 허나, 꿈이란 원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런 불안도 공연한 호들갑이나 자만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느낀 불안은 그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 불길한 징조는 그날 밤 꿈에서 나타난 암시로 더욱 짙고 뚜렷해졌다.
그것은 설산을 오르는 꿈이었다.
나는 설원에서 길을 잃었다.
흰 공간 속에 공간감을 흐려지고, 고도와 좌표 무엇하나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구조를 받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내가 오르고 있는 경사는 세계 최고봉이라 하는 프랑스의 몽블랑 산.
그 정상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 인간의 자취는 전혀 없었다. 오르는 길에서 벗어난 지는 꽤 되었고, 의지하던 안내인은 눈에 파묻혀 산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거센 눈보라가 사방에서 몰아닥치니 몸과 얼굴까지 고드름이 맺히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나마 구명줄이라 할만한 봇짐도 무게 때문에 모두 버리고 말았다.
이러니 나로선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꿈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요 며칠간 꿈과 현실, 몽중몽을 헤매었다곤 한들, 이번만큼은 꿈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이 내가 사지 멀쩡한 젊은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설령 정상에 올랐다고 해도 구조를 요청할 곳은 없었고, 날씨가 그치길 기다리고 산기슭 마을까지 돌아가기엔 물자가 없었다. 나는 산악행을 택하고 늘 각오하던 순간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임사의 각오를 다지고 위로 향했다.
이 결정을 하는데 나는 어떤 착란도 하지 않았다. 나의 이성은 더없이 온전하였고, 냉정히 따져보아 이보다 더 나은 판단이 없었다.
살아날 길이 없다면, 차라리 죽음의 가치를 찾기로 한 것이다.
한 번 걷기 시작하니 시공간 중 무엇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상은 백색으로 덮여 있어서 위나 앞으로 같은 것이 맞는지, 동상이 퍼져서 발의 감각이 사라진 뒤로는 걷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모두 포기하고 쓰러지고 싶을 때마다 불현듯 각성이 찾아왔다. 그것은 갈망이었다. 이대로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의미 없는 죽음을 맞고 싶지 않다는 뜨거운 혼의 아우성이었다.
나는 그 열기를 품었기에, 이 혹한 속에서도 온전히 살아있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지상에서 익사시킬 듯이 쏟아지던 눈길은 점차 가라앉고, 쏟아지는 눈발의 그림자로 어둡던 흰 그늘이 걷히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에 뿌옇게 드리운 막을 헤치고, 그 두꺼운 안개를 뚫고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기적적으로 눈보라가 멎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내가 지나온 희뿌연 연기가 구름의 끝자락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내 탁 트인 정경 속에서 나는 경사 위를 살피며 더 오를 곳을 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신중한 숙고를 걸친 끝에, 나는 마침내 내가 정상에 올랐다는 걸 확신했다.
모든 여정이 끝에 달한 것이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기 위해 쓰여온 것이다.
그러한 확신과 만족 속에, 나는 뒤로 쓰러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애 마지막으로 보게 될 밤하늘 위에는 여지껏 본 적 없는 청아한 창공이 펼쳐져 있었다.
이것은 나밖에 가지지 못할 절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구름 위에 두 발로 올라섰을 텐가.
그리고 불운하게도, 나는 최후의 순간에 지구가 40억 년 동안 감춰온 우주의 비밀을 겨우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명백한 사실이라, 지금까지 한 번 의문을 품어본 적 없는 것이 의아할 지경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세상에 무한한 것은 우주와 시간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나, 우주가 정말로 무한하다면, 밤하늘의 별 또한 무한해야 하지 않던가.
아, 정말 그랬다!
저 하늘, 저 우주 위를 촘촘히 채운 빛은 실로 무한한 것이었다. 나는 태양보다 밝은 별빛에 실명할 뻔하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우주의 빛은 고스란히 만년설에 반사되어 어디를 보나 순수한 백색뿐이었다.
나는 비경을 통해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어 환희했다.
그 절정의 순간이 흐르고, 대자연의 위광에 분출한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점차 옅어지며, 감동이 뇌에서 모두 걷히고 난 뒤에, 나는 현실의 냉혹함을 회상했다.
그 모든 여정과 탐구, 깨달음 끝에, 나는 여전히 오지 한복판에서 고독하게 죽을 운명이었다.
이것이 정말 내가 바라던 가치 있는 죽음이었나?
체온이 떨어지고, 심장이 점차 굳어갔다. 나는 필사적으로 사신의 숨소리를 찾았지만, 그런 고상한 것은 오지 않고 저 망망한 하늘 너머에서 부는 찬바람 소리만 귓바퀴를 훑었다.
내 머리 위로는 우주뿐이 없었기에, 그것은 우주에서 불어온 바람이었지만 그뿐이었다. 혹시 정령의 속삭임인가? 아니, 그런 것은 없다. 모두 지구의 자전이 만든 자연물의 일부에 불과했다.
천국의 입구에선 성가 소리가 들린다던데, 날 맞이하러 온 천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루시퍼 아가리에서 난다는 유황 냄새라도 찾아보려 했더니, 코끝에 닿는 것은 빙설의 무취뿐이다.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절박하게 무엇이라도 좋으니 사후 세계의 징조를 찾았다. 그 각각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내 마음속엔 점차 암운이 드리웠다.
모든 기대가 사라지고, 나는 그제야 꿈에서 깨었다.
나는 죽는다.
그리고 사라진다.
임종을 앞둔 노인의 눈에서 본 불안과 공포를 이해했다. 남겨진 유가족과 나 스스로 해온 선한 위로는 모두 거짓말이다. 좋은 곳 따위 있을 리 없다. 애초에 그들이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죽음은 소멸이다. 그러니 어떤 죽음에도 가치는 없다.
그 간단한 진리가 뇌리를 관통하고, 나는 죽어가면서도 날 위한 위로를 무엇하나 짜내지 못했다. 감각과 이성이 흐려지며, 반면 소멸에 대한 직감만은 뚜렷해졌다.
나라는 존재가 점차 세상에 희석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 한순간의 소멸을 위해 살고 있었단 말인가? 이것이 정녕 내가 바란 가치 있는 죽음이란 말인가?
아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사람은 죽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살려다오, 제발 살려다오. 무엇이든 하겠다, 무슨 꼴이라도 좋다. 더도 덜도 말고 살아만 있게 해다오.
나는 애타게 빌었다. 내게 보이는 것이란 하늘을 덮은 무수한 별뿐이었기에, 그러기에 나는 별을 향해 그리 빌고 또 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