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91화 (91/232)

§91. 한밤의 깨우침

무엇이든 준비에는 며칠이 걸렸다.

밤이 지나고, 또 밤이 지날 때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하루는 낮에 살았고, 다른 날에는 밤에 살았다. 하루는 빛 아래 있었고, 다른 날에는 그림자 아래에 있었다. 하루는 살았고, 하루는 죽었다. 하루는 사적인 하임리크였으며, 다른 날에는 보편 속의 언캐니였다.

내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했다고 한들, 졸며 무기력하게 지냈다는 말만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대학의 피해자를 줄이고자, 새 교수를 초빙하지 않으려고 업무에 어떤 누락도 없도록 신중했다.

그런가 하면 아서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려고 찾아오는 시청 직원이나, 보험사 조사관을 물리고, 법원을 들락거리는 일도 내가 도맡아 해야 했다.

상류사회에 연줄이 닿은 섀클턴은 노출해선 안되는 숨긴 패였고, 프랑켄슈타인은 외국인이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덕분에 나와 아서의 은밀한 관계는 세간 중 암암리에 알려지게 되었다.

4월의 말일이었다.

저녁이 되고 퇴근하려고 정문을 통과하는 날 향해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밖에서 올드코트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인기척이 적고 수척한 남자였다. 챙이 넓은 모자 아래로 흘깃 보이는 눈에는 처절한 광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수도원이요."

"왜지?"

"작고, 비밀로 가득하고, 폐쇄적이니까요. 대중은 언제나 그런 곳에 대단한 비밀이 묻혀 있을 거라 기대하죠."

그는 내게 서서히 다가왔다.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지팡이를 꽉 쥐며 대응할 준비를 했다. 내 긴장을 읽어낸 것처럼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접니다, 앨런 블랙."

"자네? 일하는 곳엔 찾아오지 않는 게 원칙 아니었나?"

"하루라도 빨리 전해 드려야 할 사안이라."

그렇게 말하고 그는 내 옆까지 바짝 다가왔다.

"세 들어 사시는 곳에도 들렀는데, 안주인께서 철옹성처럼 버티시더군요."

나는 브라운 여사의 억센 팔뚝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내 손님을 아무도 들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니 그로서는 날 찾아오려 해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직장에 찾아온 것이 내 잘못이란 걸 눈치채고,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여하튼, 여기 올 정도라면 괜찮은 수확이 있었나 보지?"

"아무렴요. 그나저나, 이 대학은 듣던 대로군요. 폐쇄적이란 얘기는 들었지만, 정문을 찾는데도 꽤 고생했습니다. 수도원보다는 차라리 요새 같이요."

블랙은 설명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딴소리를 했다. 내가 알기론 그건 어떤 의도를 가진 접근이라기보단, 호의를 무기 삼는 자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버릇 같은 것이었다. 딱 블랙 같은 인물 말이다.

"선생님께선 아시는지 모르지만, 대학의 실정에 대해 궁금해하는 손님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 봤자 교수와 학생이 들락거리는 곳 아닌가."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다른 난봉꾼 같은 대학생들과 달리 재학생은 기숙사에서 나오질 않고, 졸업생은 쉬쉬하며 이야기를 꺼리죠. 교수진에 이르러서는 이단에 심취한 광신자들처럼 굴지 않습니까? 이러니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저도 몇 번 제 사람을 여기 꽂으려고 노력해 봤지만, 대체 학장이란 자가 어떤 인품의 소유자인지 전혀 소용이 없더군요."

나는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한편, 그것이 퍽 유쾌하게 느껴졌다.

학장은 지난 이백 년간 대학을 베일 뒤에 숨기려고 노력해 왔는데,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대학의 소문은 런던 호사가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전능하다고 자처하는 그라도 인간 본연의 욕망, 호기심을 이기진 못한 것이다.

그런 한편, 나는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학장의 주도면밀한 계획성과 불가사의한 능력을 생각하면, 그가 숨기는 비밀이 그리 쉽게 알려졌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학에 대해선 주로 누가 묻지?"

"제가 여러 가지를 팔기는 하지만, 제 카탈로그에 손님은 없습니다."

블랙은 딱 잘라서 말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의리 있는 성격이 아닌 줄은 내가 잘 알았다. 손님의 쓸모가 나보다 적다고 여겼다면, 그는 시원스럽게 전부 불었겠지만, 그가 판단하기에 그 '손님들'은 꽤 중요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재벌, 아니면 권력자, 그렇게 좁히고 나니 그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도 했다.

"그래, 물어서 미안하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굳이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추궁한다고 대답이 나올 상황도 아니었고, 그의 무응답 또한 많은 정보를 줬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러 온 건 아닐 테지. 아닌가?"

내 질문에 블랙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는 듣는 귀가 너무 많군요."

교문은 한적하였다. 올드코트의 교문을 지나는 사람은 원래 많지 않았고, 지금 같은 저녁에는 더욱 그런 편이었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학생들은 찾아갈 친인척이 런던에 없었고, 지식을 탐구하는데 몰두하는 성향 때문에 그들은 나돌아다니는 것보다 안으로 뭉치는 것을 선호한 탓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동의했다.

"그래, 자리를 옮기지."

아직 하늘에는 황금빛 노을이 지지 않았다. 이곳, 학장의 안뜰에서 저것은 학장의 눈과 다름없다. 해가 지나는 황도 아래라면 어디서도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정을 떠났다.

도착한 곳은 볕이 쬐지 않는 런던 골목이었다.

올드코트 교문과 비교하면 인파로 들끓었지만, 그중에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 두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소란과 아우성은 적절한 회색 적막을 만들었다.

세간의 상식과 달리 가장 많은 비밀이 안전하게 오가는 곳은 무기력한 걸인으로 가득한 뒷골목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두 사람이 지나기 힘든 골목을 비집고 지나갔다.

"실례하네."

길을 막은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자니,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연설가 한 명이 우렁찬 목소리로 행인들을 보며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대화재 당시, 영국군은 대체 뭘 했습니까? 그들은 모든 사태가 끝난 뒤에, 뒤늦게 도착해서 무력한 고아들을 상대로 총과 대포를 쏴서 피해를 불리는 일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퍼지는 모든 전염병, 핏물로 썩은 하수도, 들끓는 시체 파리, 대포로 무너진 건물, 그 모든 책임이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지금 또 다른 위기가 닥치고 있습니다. 지금껏 영국을 지켜줬던 해협은 아무 소용이 없이, 그들은 바다 위를 날아서 우리 도시에 유유히 도착했습니다. 매일 밤, 무고한 시민들이 납치당하는 지금, 군대는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기는커녕 버킹엄 궁의 두꺼운 성벽에 시멘트를 바르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여왕의 군대지, 국민의 군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민에게는 군대가 필요합니다, 런던에는 시민을 위한 군대가 필요합니다!"

연설에 맞춰 열광하는 군중에 밀려 쓰러질 뻔한 나를 부축한 블랙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회주의자입니다. 스스로를 황색파(Yellow Guardsman)라 부르며, 런던 시의 자치 무장을 주장하고 있죠. 선생님께선 아마 잘 모르시겠지만, 뒷골목에는 이미 대단한 지지 세력이 갖춰졌습니다."

"그래 봤자 부랑자들이야."

"뭐든지 수가 모이면 힘이 되지요."

우리는 더 안으로 들어갔다.

거리에는 전과 같은 일말의 열정도 남지 않았고, 대신 여기저기 아편과 담배, 알코올 냄새가 짙게 풍겼다. 나는 이 근방이 커다란 아편굴이란 걸 눈치챘다.

비밀 얘기를 하자면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그래서, 슬슬 말해보게. 이런 으슥한 곳까지 끌고 와서 할 비밀 얘기가 대체 뭔가?"

블랙은 건물 쪽에서 비치는 흐린 빛 아래로 걸어갔다. 그리고 만나고 처음으로 챙 넓은 모자를 벗고, 민얼굴을 내게 보였다.

"아니, 세상에, 정말 자넨가?"

고작 며칠 사이에 블랙의 모습은 내가 아는 것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윤기 없는 머리털은 숱이 적었고, 그나마도 곳곳에 돋아난 새치 때문에 생기 없어 보였다. 얼굴에는 무거운 피로가 걸려 있었고, 푸석한 피부는 사막처럼 갈라져 족히 10년은 더 늙은 것처럼 주름져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아시다시피, 저는 기계론을 신봉합니다. 이 우주는 기계적인 법칙에 의해 형성되어 돌아간다고 순수하게 믿은 것이죠. 하지만 며칠 사이에 한 가지 생각은 고칠 수밖에 없더군요."

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악마는 실존합니다. 선생님이 옳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날 선생님께 의뢰를 받은 이후, 저는 막연히 런던 거리에 앉아 행인 얼굴을 하나씩 살피는 대신, 선생님 뒤를 캤습니다. 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불법적인 조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사람을 찾는 일에는 이런 방식이 잘 먹히기 마련입니다. 누가 누구를 찾고 싶어한다면, 그 원인이 과거에 있을 테니까요. 거기서 거스르는 것이 최선 아니겠습니까."

블랙은 화내기가 민망할 정도로 뻔뻔하게 말했다. 애초에 이런 사람인 줄 알고 일을 맡겼으니, 나도 무작정 그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그러고도 며칠은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선생님께서 친우분의 일로 법원을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서 프랑크 백작, 선생님이 그 괴짜 백작과 학연이 닿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두 분의 친분, 백작의 부고 소문과 유산, 그 모든 일화를 알게 되고 한 가지 영감에 조사 방향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번 의뢰가 선생님이 아니라 프랑크 백작과 얽혀 있을 거란 직감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예측은 정확했습니다."

그는 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서 내게 건넸다. 얇은 종이라서 잉크가 살짝 번져 있었다.

"그 명단은 프랑크 백작 사후, 그의 유산을 주장할 자격이 있는 법정 상속자들입니다. 그중에도 프랑크 가문의 토지, 그리고 저택을 물려받게 정해진 상속인의 이름이 유독 눈에 띄더군요."

명단에는 한 이름 아래에만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눈으로 좇고는, 그 이름을 입으로 발음했다.

"에드워드 알렉산더 크로울리."

"우연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전개였죠."

블랙은 입만 움직여 웃었다. 내가 이름을 발음하자 그의 눈에 적잖은 불안과 공포가 서렸다.

"저는 그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에드워드 알렉산더 크로울리, 1875년생, 본적은 옥스퍼드, 어릴 적 부모를 잃은 후,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는 쭉 방탕한 생활을 이어온 청년. 외국여행 경험 다수."

그는 천천히 이력을 읊었다. 올드코트 학장실에서 에드워드의 공격을 당했을 때, 그가 알려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할수록 수상한 점이 늘었습니다. 시작은 부모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한 후, 아무리 인척 관계가 좁다고 하더라도 그 어린아이가 홀로 모든 유산을 독점하고 살 수 있을까요? 저는 부모의 유산 상속에 대해 알아보다가, 원래 일부 유산을 상속받기로 되어 있던 친척들이 모두 사고로 죽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고작 2~3년 사이에 열댓 명 남짓한 친척이 사라진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수혜자였던 에드워드는 어떤 의심도 받지 않았습니다. 흉계를 꾸미기엔 그가 너무 어렸던 겁니다. 사건은 그저 기상천외한 우연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에드워드는 지금도 아주 젊었고, 그가 유산을 물려받았을 적은 어릴 정도였을 것이다. 14세 정도면 성인이라고들 하지만, 그는 고작 10살, 혹은 그보다도 어렸을 테니 말이다.

"저는 더 조사하다가 그의 가족이 독특한 종교 내력을 가졌음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혹시 옥스퍼드 운동에 대해 좀 아십니까?"

"아니."

"저도 이번에 알아봤습니다만, 반세기도 전에 옥스퍼드에서 일어난 기독교 개혁 운동이라고 하더군요. 피로 점철되어 끝난 그 과격한 운동 끝에, 옥스퍼드에서는 기존 기독교 종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환멸이 피어났고, 그 틈을 이단이 파고들었습니다. 프로이센 왕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장미십자회, 그 분파인 황금여명회 말입니다. 에드워드의 부모는 그 비밀 집회에 가입해 있었습니다. 그리 열정적인 추종자는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그 믿음은 자식인 에드워드에게도 물려졌을 겁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블랙은 보험을 들듯이 마지막에 덧붙였다.

"드디어 꼬리가 보이는 것 같죠. 저는 옥스퍼드에 조사를 계속했습니다. 신을 부정하며 마법을 연구한다는 황금여명회, 그리고 그 조사 끝에 발견한 건... 참상이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나마도 쉬쉬하는 그 사건을 그들은 '뉴먼의 저주'라고 불렀습니다. 성공회를 배신하고, 분노한 신도들에게 맞아 죽은 그 불쌍한 성직자 뉴먼 말입니다."

미리 말했지만, 나는 그 운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블랙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넘어갔다.

하지만 뉴먼이라니, 그 이름을 자칭하는 한 집단의 수장을 알고 있다. 장미십자회와 토끼풀십자회, 성직자 뉴먼과 뉴먼 의장. 그저 모든 것이 우연일까?

"저주는 십 년 전부터 일어났습니다. 옥스퍼드에 비참한 사고사가 연달아 발생한 겁니다. 자살, 마차 추돌, 추락, 실종... 경찰은 사건을 조사하다가 그들이 모두 황금여명회의 회원이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사고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고, 가뜩이나 비밀스럽던 단체는 모든 구성원이 사고사당하는 탓에 어떤 형태로도 남지 않고 공중분해 되었다는 겁니다."

블랙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맥락이 잡히실 겁니다. 이 사건 속에, 저는 한 가지 모순을 찾아냈습니다. 10년 전쯤이라죠? 옥스퍼드에 10살쯤 되는 소년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여기저기 자신이 황금여명회의 회원이라고 소개하며, 비밀스러운 매력으로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주 이상한 이야기 아닙니까? 황금여명회는 사라졌는데, 회원을 자칭하는 수상한 소년 한 명만 남은 겁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블랙은 눈을 감았다.

"조사를 시작한 날부터, 밤마다 꿈을 꿉니다."

블랙은 꿈을 꾸는 것처럼, 혹은 그저 잠꼬대처럼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청년에 관한 꿈입니다. 그는 매일 밤 제 꿈속에 찾아옵니다. 그는 제게 한 가지 간단한 진실을 속삭여 줬습니다. 이면이요,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지당한 이치 말이요!"

처음에는 그것이 전과 같은 습관적인 사담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블랙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광기는 기름을 만난 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번졌다.

"상반은 투영입니다! 톱니바퀴의 이를 보면, 거기에 맞물리는 또 다른 톱니의 존재가 암시됩니다. 톱니바퀴와 그 빈 공간은 반대이지만, 하나는 곧 다른 하나의 증명입니다! 낮과 밤이 그렇고, 빛과 그림자가 그렇고, 해안선을 사이에 둔 하늘과 바다가 그렇듯이! 순박한 저는 그것이 꿈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꿈이란 결국 현실의 이면입니다. 우리는 닮지 않은 쌍둥이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하는 겁니다!"

그 절규를 끝으로 블랙은 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몸은 바닥에 축 늘어졌다. 머리에서는 피와 뇌수가 섞인 끈적한 액체가 새어나왔다.

나는 천천히 블랙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몸을 뒤집어 맥을 짚고는 알았다. 죽은 것이다.

"대체 무슨...."

"거기 무슨 일입니까?"

목소리는 골목 너머에서 들렸다. 벽 너머로 나타난 순경은 여유 있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르신, 괜찮습니까?"

그는 나와 바닥에 쓰러진 블랙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살인이다! 사람이 죽었다!"

"아니, 나는...."

멀리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순경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소리 질렀다.

"우주인이 사람을 죽였다!"

등뒤로 불빛이 번쩍였다. 어느덧 해가 진 밤하늘 위로는 그만큼 밝은 빛을 뿜는 거대한 비행 물체가 있었다. 소문 무성한 우주선, 그것이 하늘에서 지상을 빛으로 밝히고 있었다.

잠깐 지상을 비추던 비행체는 빛이 꺼지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저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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