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93화 (93/232)

§93. 몽중항행

우주인이 사람을 죽였다.

소문은 마른 들판에 지핀 불이 번지는 것처럼 런던 전역을 질주하며 퍼져 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기 전에 런던 시민의 사분지 일이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는 절반이 알게 되었다.

누구도 혼란을 수습하려 하지 않는 와중에 불온한 소문을 퍼트리는 집단이 적발되며 도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한 사람이 외쳤다.

"왕당파가 거짓 소문을 퍼트린다!"

이 근거 없는 외침은 바로 진압당했지만, 그것이 단초였음은 분명했다. 분노한 군중은 트리팔가 광장에 모여서, 버킹엄 궁전을 향해 행진하기로 했다.

한편, 나는 거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의 런던 광역경찰청 건물 안에 있었다. 이 장소와 나는 늘 지독한 악연으로만 묶이곤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좁고 매캐한 취조실 방에는 창이 달리지 않아서 천장에 걸린 희미한 조명불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 방에 나는 홀로 아주 작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빈 의자와 마주 보는 채로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 나 홀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족히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순경이 겨울철 무당벌레처럼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채, 그중 절반 정도가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천장 전등 주변은 뿌옇게 맴도는 연기 때문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희뿌연 모양이었다. 잠시 후, 취조실 문이 열리자 하얀 연기가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속이 갑갑했던 탓에 바깥의 청량한 공기가 반가웠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문은 금방 다시 닫히고 말았다.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마른기침을 하며 입가를 손부채로 부쳤다. 그는 순경을 밀어내고 비어 있던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아주 귀찮은 일에 엮이셨습니다, 허버트 씨."

"날 아시나?"

"왜 모르겠습니까. 제가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은 것 아닙니까?"

남자는 내 심리를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연배가 꽤 있어 보이는 그는 내가 경찰청과 엮인 해묵은 악연을 고스란히 짊어진 자처럼 보였다.

"당신이 여기 최고 지휘권자인가?"

"왕립구 경찰서장이요. 비록 관할구는 아니지만 이중에선 가장 낫다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며 서장은 쓰고 있던 실크햇을 벗어서, 가뜩이나 좁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덕분에 나는 손을 올려놓을 곳도 없어서 내려놓고 말았다.

"그러면 부탁 하나만 하겠네. 이 사람들 좀 물려줄 수 있겠나, 둘이서 이야기하는데 정신 사납게 듣는 귀가 몇 개인지."

순경들의 눈이 일제히 내 쪽으로 돌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로 붉게 충혈된 스무 개의 눈에는 핏발이 도드라졌으며, 눈가에는 철야의 흔적이 검붉게 칠해져 있었다.

서장은 그들을 잠깐 둘러보다간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군인 출신 살인 전과자를 상대로 단둘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제야 담배를 문 순경과, 그렇지 않은 순경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담배를 문 쪽은 비릿한 조소를 띄웠고, 담배를 물지 않은 쪽은 긴장한 얼굴을 굳혔다.

이렇듯이 신참은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장소가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모아서 날 욕보이려 드는 것은 예상 이상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나와 경찰청의 십수 년간의 갈등에서 기인했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우선 그들과 범죄수사국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알아야 했다.

앞서 설명한 적이 있지만, 1878년 수사국이 유능한 경찰 200명을 차출하여 개편한 이래, 두 기관은 당초의 예정대로 수직적인 관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초대 국장이었던 하워드 빈센트 대령은 능숙한 정치 수완으로 수년에 걸쳐 수사국을 개인의 사조직처럼 운용했고, 경찰청은 멋대로 수사권을 휘두르는 수사국을 다시 통제 하에 되돌리고자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 시도는 어쩌면 통했을지도 몰랐다. 야심차게 출범한 수사국은 변변한 실적을 내지 못했고, 시민들에게 그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수사국이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노퍽 저녁 사건'이었다. 광견병에 걸린 두 남성이 벌인 참극을 멋지게 해결한 수사국은 그 뒤로도 여러 미제 사건을 차례대로 해결하며 독립된 기관으로 눈도장을 단단히 박았다.

아,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그 배후에 있었던 것이 바로 나였다.

그 모든 일화는 내게도 적잖은 명성을 안겨 주었지만, 그보다 런던 정치 구도에 미친 영향이 더욱 컸다. 한낱 탐험가이자, 경찰의 오랜 정적이던 군 출신 탓에 망신살이 뻗친 경찰청은 늘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현 수사국장 윌리엄 페터의 비호 덕에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내가 살인죄로 구금되었던 이후로 그 시비는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또 날 보석한 아서의 사망 소식이 퍼진 지금은 거리낄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사실 내가 처한 상황은 아주 좋지 않은 편이었다.

"저는 우연을 믿지 않습니다."

서장은 말했다.

"그리고 우주인이 런던 시민을 살해했다는 소문도 믿지 않습니다. 인적 없는 골목에서 발견된 사망 직후의 시체와 살인 전과자. 이렇게 명백한 상황을 두고, 황당한 공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니고?"

내 대답에 서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내가 본 것 중에서도 손꼽게 각진 얼굴을 갖고 있었는데,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이 구겨지자 더욱 살벌하게 바뀌었다.

그의 직군을 생각한다면 그건 대단한 재능이었다. 그는 범죄자를 심문하는데 번거로운 고문과 회유를 쓰는 대신, 그저 살짝 인상을 쓰기만 했으면 됐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평범의 범주에 든 인물은 아니었다.

"내가 무고를 주장하면서도 여기 대동한 이유는 어떤 외압에 의한 것도 아니네. 다만 나는 여왕폐하의 충실한 신하로서 내 의무를 다한 것이니, 그 의미를 곡해하지 않길 바라네."

그것이 내게 원한 대답은 아니었는지, 말을 마친 후에 서장의 표정은 아주 안 좋아졌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더 존중하지 않겠네, 허버트 선생.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나?"

"사람이 한 명 죽었고, 무고한 자가 심문받고 있지."

"유치한 말장난이나 하자는 게 아니요, 선생."

그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말을 끊었다.

"바깥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는지 묻는 거네. 런던 말이야."

"내가 맞춰 보지. 정보가 샜군그래. 아침부터 우주인이 런던을 공격한다고 신문사에서 난리를 치겠지. 늘 있는 호들갑이지."

나는 여유롭게 호언했다. 그리고 내 추측이 맞다면, 전날 밤하늘에서 본 그것은 우주인이나 우주선이 아니었다. 나는 런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미스테리의 해답에 거의 다 와 갔다.

"그 이상이네."

서장은 침통한 음색을 흘렸다. 그 모습에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다시 한 번 경고하지, 허버트 선생. 우리는 댁과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여기 데려온 것도 아니고, 고작 당신 하나를 위협하겠다고 이 모든 순경이 모여 있는 것도 아니란 말이네. 우리가 이 방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나? 침묵의 방이야.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고 싶다면 기꺼이 협력하겠네."

서장의 협박은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제 사법의 중심이라는 경찰청보다는, 으슥한 런던 뒷골목에서나 어울릴 만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말로 끝나지 않으리란 사실도 잘 알았다.

"허버트 선생, 우리 경찰의 의무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그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지. 우리는 범죄가 만연하지 않도록 이 사회를 지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대중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야."

"자네의 생각을 경찰청장도 알고 있나?"

"고상한 척하며 부정해도 누구나 그게 옳다는 건 알고 있지! 사람들은 이 도시가 얼마나 추악한지 알기보단, 하루라도 편하게 발 뻗고 잠드는 삶을 선택할 거야. 그러니까 우리 경찰이 나서서, 살인자는 우주인이요, 하고 말할 수는 없단 말이네. 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우리는 응답해야 하네."

순경들 사이에 불안한 속삭임이 퍼지기 시작했다. 서장의 언동은 누가 보아도 멀쩡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진실을 좇아 그림자 아래를 돌아다니던 런던 경찰은 어느새 범람한 광기에 침수한 것이다.

서장은 아마 그 희생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동정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여차하면 지금 당장 내가 다음 희생자가 될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진범을 고발하는 건 쉬웠다. 살인자는 에드워드이다. 살해 수법은 마법이었음이 틀림없다. 우주인 사태의 진범 역시 아주 간단했다.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어 온 자들은 그들 말고 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누가 믿을까. 설령 믿는다 해도 문제가 되었다.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다. 다만, 나는 음지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밀로부터 지상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가엾게 미친 서장의 모습처럼, 이 세상의 비밀을 아는 건 결코 능사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보다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사회와 세상에는 이로운 것이다.

"선생."

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독촉했다. 나는 여전히 침묵했다.

더욱이 경찰은 정부 기관이었다. 정부 기관 중 왕립 학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드물었고, 경찰청은 내게 조금도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었다.

"서장님!"

천장에 정체한 연기가 출렁이며 밖으로 흘렀다.

"심문 중이네. 급한 용건이 아니면 나중에 하게."

"급한 용건입니다!"

서장은 방 안에 들어온 순경을 돌아봤다.

"뭐지?"

"피난하셔야 합니다."

순경이 다급히 말했다. 서장이 인상을 쓰자 그 흉악한 외모에 들어온 순경이 놀라서 숨을 삼켰다.

"뭐? 똑바로 말하게."

"피난하셔야 합니다."

순경은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한치도 틀리지 않고 다시 말했다.

그 직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야!"

당황한 서장과 순경들이 벽을 잡고 버텼다. 나는 의자에 앉은 탓에 잡을 것이 책상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 서장의 모자가 바닥에 떨어지고 순경들의 발에 마구 짓밟혔다.

───쿵! 쿠궁!

"이게 무슨 소리야!"

건물 밖에서 들리는 폭발음 같은 것이 연달아 울리며, 그때마다 실내가 흔들렸다. 모여 있는 순경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꼭 파도치는 해안가 같았다.

한편, 나는 이런 소음을 잘 알고 있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기에 그걸 바로 구분한 것은 내 경력 덕분이었다.

군 경력 말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대부분 불안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들 모두 몇 달 전에 비슷한 소음을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런던 대화재 당시, 그 악몽의 밤에 런던 시가지에서 말이다.

보고를 온 순경은 반쯤 패닉에 빠져서 외쳤다.

"런던이 침략당하고 있습니다!"

흔들림이 멈추고 실내에 무서울 정도의 적막이 돌아왔다. 순경은 모두가 자신만 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다시 외쳤다.

"하늘에, 우주선이, 트리팔가 광장에!"

순경도, 서장도 모든 상황을 파악하진 못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서장의 결단은 빨랐다.

"상황 대처, 어서!"

그 외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순경들이 우르르 방에서 빠져나갔다. 꼭 배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마지막 한 명까지 다 나가고 난 뒤에, 서장은 바닥에 구겨진 모자를 주워들었다.

그는 신발 자국을 털어내고, 손을 집어 넣어 구겨진 통 부분을 빳빳이 폈다.

"선생, 예로부터 이 도시에서 밤일하는 건 둘뿐이었네. 하나는 자경단이고, 다른 하나는 도둑놈이었지. 그런데 지금 런던의 밤은 뭐랄까, ...너무 복잡해. 사람도, 기관도 너무 많지. 내 생각에 자경단을 계승한 건 아마 우리 경찰일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서장은 실크햇을 머리에 올려서, 숱이 듬성듬성 비어 있는 머리를 감췄다.

"얌전히 있게. 상황을 대처하고 바로 돌아올 테니까."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말을 들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는지, 문을 열어놓고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나서, 그제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었다.

───쿵! 쿠궁!

폭발음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진동하는 건물의 벽을 짚은 채로 힘겹게 걸었다. 경찰청은 텅 비어 있었고, 나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한참 동안 어두운 실내에 있었던 여파로 눈이 부셔서 잘 볼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자 온갖 소란과 소음이 들려왔다. 나는 내 주변에 아주 많은 사람의 인기척을 느꼈는데, 그들은 내 주변을 가로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서서히 빛에 적응되자, 나는 천천히 눈을 떼었다.

그리고 아우성치며 달아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다음엔 멀찍이 보이는 트리팔가 공원에 널브러진 시체와, 엎드린 채 신음하는 부상자들을 보았다. 그다음엔 근심 없이 푸른 하늘을 보았다. 그다음엔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비행선을 보았다.

비행선에서는 작고 검은 반점 같은 것이 연달아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떨어지더니 환한 빛으로 화했다.

폭격.

역사상 최초의 공중 폭격이 런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여왕이 우주인과 손을 잡았다!"

공포와 절규.

"여왕이 시민을 학살한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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