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종장
밤은 깊고, 바람은 분다. 나는 깊은숨을 내쉰다.
뒤늦게 도착한 올드코트 대학은 이미 노란 외벽 회사 주도의 공격이 시작되었는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비밀스러운 세 개의 칼리지는 모두 세속적인 군인들에게 점거되어 무참히 타오르고 있었고, 피바다 위에 불붙은 대학은 잿가루를 흩뿌리며 죽은 학생들을 위한 장례를 치러주고 있었다.
나는 몰래 숨어갈 필요도 없었다.
넋잃은 군인들은 총과 포를 내려놓고는 하늘과 땅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고, 심지어 겁에 질린 것처럼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승자보다는 패자에 가까웠다.
무너진 외벽을 지나고 교정에 들어서자, 바깥에서 본 것보다 한층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한 정경이 펼쳐졌다.
내가 기억하는 푸른 잔디밭 위에는 피와 살점이 흩뿌려져 넘실거렸고, 곳곳에는 출처를 모를 소금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윗부분은 아직 새하앴지만, 아래쪽부터 피를 머금으며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는 수십 년도 전부터 부패한 것 같이 썩은 내를 풍기는 말라 비틀어진 깃털들이 쏟아져 길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나마 바닥에 쓰러진 시체 중 몇 명을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다시 한 번 에드워드에게 속아 드림랜드에 빠졌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불쾌의 절정은 교정 중앙에 있는 한 무리 인파였다.
전구 머리를 한 신사 숙녀, 내가 아는 한, 관리 워원회의 위원들은 다닥다닥 붙어서, 한 시체의 살점을 손으로 뜯어서 나눠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눠 가진다는 것도 과하게 정중한 표현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가진 살점을 조금이라도 더 뺏으려고 고함치며 잡아당겼고, 그 과정에 살점은 점점 작아져서 바닥에 흩뿌려졌다. 결국, 살점은 원형도 남지 않고 빈손이 된 그들은 다시 시체를 잡아 뜯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일에 너무 집중한 것인지, 아니면 윌슨의 설명대로 감각이 둔한 건지, 교정을 지나는 날 전혀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최대한 소리 내지 않으며 그들을 통과하여 건물로 향했다.
────쨍그랑!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갑자기 창문이 깨지며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위원들의 몸이 일제히 그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들키지 않기 위해, 파편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성급히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다행히 그들은 날 눈치채지 못했는지, 다시 악을 쓰며 옆 사람이 쥔 살점을 뺏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고르며 계단을 올랐다.
창문은 안쪽에서 깨졌다. 그러니 4층에는 앨리스건, 에드워드건 누군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이 앨리스라면 틀림없이 에드워드도 눈치챘을 테니, 어쨌거나 나는 4층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오르며, 나는 준비해 온 등불을 높이 들었다.
실내에 있는 조명이란 조명은 모두 꺼져서, 복도와 계단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누군가 기습한다고 해도, 눈으로 본다면 늦을 게 분명했다.
긴장한 것과 달리, 나는 4층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드워드가 내 존재를 모를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는 이미 꿈속에서 내게 기습당한 탓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그런 요행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4층 복도에 들어오자, 나는 두 가지 인적을 발견했다. 하나는 기다란 금발이었다. 마치 짐승의 털갈이처럼 무성히 빠져 있었는데, 이런 흔적을 남기는 건 앨리스 외에 없었다.
다른 하나는 그 위를 밟고 지나간 검은 발자국이었다. 크기로 보아서는 성인 남성의 것이었고, 내 눈이 피곤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마법적인 작용이 더해진 것인지 쉴 새 없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에드워드는 이미 여길 지났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앨리스는 현명한 소녀이니, 지혜롭게 추격을 대처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는 내가 먼저 죽는 것이다.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설령 에드워드라도 날 쉽게 죽일 순 없을 것이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해왔고, 그와 공평한 싸움을 해줄 생각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던 와중, 나는 아래서 보았던 깨진 창문에 이르렀다.
깨진 유리창 경사에는 조금 전에 누가 베인 것처럼 마르지 않은 피가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그 핏자국은 방울져서 바닥으로 떨어져, 맞은 편의 벽면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핏자국을 따라서 전등을 들었다.
핏자국은 어느 지점부터 부자연스럽게 끊어져 있었고, 그 벽 위론 어디선가 뜯어낸 것처럼 마감이 덜 된 커튼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잡아 뜯었다.
그러자 벽면에 피로 적은 혈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영어 문장은 이러했다.
「젖소 뱃속에 있는 봥소개구리」
앨리스가 남긴 메시지였다.
에드워드는 이게 어떤 암호문이란 걸 눈치채고 은폐를 시도했지만, 그도 시간이 여유롭진 않았던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이건 앨리스가 내게 보내는 암호문이 맞았다.
앨리스는 정말 영리한 소녀였다. 그녀는 어설프게 메시지를 숨기는 대신, 우리만 알 수 있는 암호를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준비한 것이었다.
나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전에 그녀는 이런 수수께끼를 통해서, 내게 약소 장소를 알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 암호가 가리키는 장소에 그녀가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영리했지만, 중요한 곳에서 결정적인 착각을 했다.
나는 전에 이 문제를 풀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가 남긴 쪽지 전문을 기억해내자면 이런 식이었다.
────────────────
우리는 봥소개구리의 뱃속에 있습니다.
그건 언제나 길쭉한 몸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데, 머리부터 머리까지 걷는데도 한참 걸리는 긴 동물입니다.
산뜻한 걸음으로는 ...보를 걸어야 하고, 힘없는 걸음으로는 ...보를 걸어야 하지요.
그건 머리가 넷 달리고, 주둥이는 ... 달린 동물입니다. 저는 꽁무니로 들어왔다 생각하기 싫어서, 제가 들어온 쪽을 머리라 부르고, 맞은 편을 꽁무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꽁무니까지는 도통 가본 일이 드물지만, 분명 머리랑 똑같이 생겼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꽁무니로 들어왔을 테니까요.
봥소개구리의 뱃속에는 각양각색 동물이 있습니다. 머리부터 차례대로 호명하겠습니다.
-A...
-B...
-젖소(Cow)
-봥소개구리(Dullfrog)
-E...
-F...
-G...
-H...
-I...
-J...
-코양이(Kat)
-L...
-M...
-N...
-O...
-P...
-카막이(Qroa)
-R...
-S...
-T...
-U...
-V...
-W...
-이야앙(Xip)
-Y...
-Z... *
하지만 저는 차라리 젖소 뱃속에 있는 봥소개구리를 만나려 합니다.
그건 뱃속이 텅 비었거든요.
────────────────
이렇듯이 상세한 내용은 거의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그나마 몇몇 이상한 동물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다른 알파벳으로 똑같은 발음을 만든 그녀의 희한한 열정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앨리스의 문제가 걸음 수 같은 세세한 정보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면, 나는 그녀를 쫓을 수 없었다.
혹시 이 문장을 지우기라도 한다면, 저번처럼 어디선가 보고 있는 앨리스가 뛰쳐나와 준다며 좋을 텐데.
나는 내가 하고도 너무 우스꽝스러운 상상에 실소가 나왔다. 앨리스는 정말 특이한 소녀였다. 그녀의 쾌활함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빛을 발했으니 말이다.
그런 소녀를 죽게 둘 순 없었다.
다시 한 번, 나는 앨리스가 남긴 문제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여러 번 그녀가 만든 문제를 보고, 그 해답을 들어왔기에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만드는지 알았다.
그 모든 문제의 공통점은 이랬다.
진지하게 생각해서는 풀 수 없다.
모든 문장은 하나의 말장난이고, 거기서 파생한 논리를 이어 맞추는 것이 유일한 정공법이었다.
예를 들어, 일반 상식으로 치면 전제부터 모순적이었다.
26마리의 동물이 봥소개구리의 뱃속에 있는데, 그 안에 든 젖소 뱃속에도 봥소개구리가 있다. 그리고 심지어 봥소개구리 안에는 또 다른 봥소개구리가 있다.
그러니, 봥소개구리는 특정 개체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었다. 여기서 한 동물이 개체가 아니란 걸 알았으니, 다른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라고 전개할 수 있었다.
무엇인지 대답은 간단했다.
알파벳이다.
26마리의 동물은 모두 중복 없이 26가지 알파벳으로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앨리스가 동물 이름을 알아보는 대신 발음만 짜맞췄다고 게으르다고 훈계했지만, 그건 잘못된 지적이었다.
발음을 교정하는 것이 사전을 찾아보는 것보다 몇 배는 번거로운 작업이니 말이다. 이건 앨리스 나름의 유머이자, 어울리지 않게 걱정 많은 면모의 발로였다.
그녀는 동물이 알파벳을 상징한다는 걸 알아보지 못할까 봐, 일부러 억지스럽게 이름을 맞추며 그만큼 단어의 시작 문자가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것이었다.
이제 문장은 더 간단해졌다.
「젖소 뱃속에 있는 봥소개구리」
이것은 이렇게 쓸 수 있었다.
「C 안의 D」
다음 순서로, 나는 알파벳을 해체했다.
알파벳의 특성은 26가지 문자가, 각각 순서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서는 곧 숫자를 의미했다.
"3 안의 4."
다음 단서는 처음 나온 봥소 개구리, 그러니까 D의 묘사였다. 똬리를 틀었다는 건, 속이 비었고 앞과 끝이 이어진 도형의 형상을 의미했다.
나는 그 길이를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기에, 단위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그건 아주 큰 단서였다.
기하학적인 도형이라고 생각해도, 말 그대로 동물의 길이라고 해도, 걸음이란 단위는 낯설지 않은가.
이런 문제에서 걸음이란 단위가 나온다면, 보통 직접 걸어보고 그 횟수를 세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나 앨리스는 어떤 기준인지 몰라도, 두 가지 걸음걸이를 넣었을 정도니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소거법을 쓰면, 추리할 필요도 없었다.
출입이 가능하며 여러 입출구를 가진, 사각형 모양에 중앙 안뜰이 뚫려 있는 건물. 그녀의 협소한 행동반경까지 감안할 경우, 문제에서 말하는 봥소개구리는 대학 건물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 대학 건물을 봥소 개구리, 다른 문자로는 D, 그리고 4로 묘사한 이유도 분명했다. 이 건물이 4층 건물이기 때문이다.
즉, C 안의 D는, 3층의 4번째 교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앨리스는 자신이 들어온 방향을 머리, 그러니까 시작점이라고 명시해 두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다니는 입구는 뻔했다.
여자 기숙사 방면에 있는 입구였다. 나는 거기서 3층, 4번째 교실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문제를 푸는 동안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하필 3층의 4번째 교실이라면, 에드워드가 모든 방을 차례대로 열고 다녀도 곧 들킬 위치였다.
그녀는 혹시 내가 알아보지 못할까 봐, 일부러 저번 문제와 같은 장소를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 3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교실을 차례대로 지나쳤다.
첫 번째 방, 창문 깨지는 소리.
두 번째 방, 잦아드는 신음성.
세 번째 방, 정적.
그리고 네 번째 방문을 열면서, 나는 소총을 앞으로 내세웠다.
"리들!"
방 안은 고요하고 어두웠다. 눈과 귀는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했지만, 내 코, 오로지 후각은 비극을 전해왔다. 비릿한 피 냄새가 토할 정도로 선명했다.
"늦었습니다."
검은 남자는 금발 소녀의 붉은 신체를 들어서, 창밖으로 떨어트렸다. 내게 등을 보인 남자는 천천히 상반신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이기고, 당신이 졌습니다."
"에드워드!"
────탕!
나는 그의 몸을 소총을 맞혔다. 붉은 섬광이 잠깐 어두운 실내를 밝혔다. 잠깐 보인 에드워드의 얼굴은 소용돌이처럼 원형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총에 맞은 에드워드의 상반신은 잠깐 들썩였지만, 그뿐이었다.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는 내가 기대한 어떤 붉은빛도 감돌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어둠이었다.
"총? 정말 그게 답니까?"
그의 신체는 해가 질 무렵의 그림자처럼 서서히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형상은 흐릿해져서 실존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모든 일이 꿈에서처럼 그리 능통할 줄 알았습니까?"
에드워드는 비웃으며, 그 거대한 신체로 내게 엄습해왔다.
"아니. 그래서 준비를 했지."
나는 준비해온 책을 품에서 꺼냈다. 에드워드의 검은 형상이 우뚝 멈췄다.
"은랑의 서... 왜 그걸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까?"
"네가 왔던 심연으로 돌아가라, 에드워드!"
손에 들린 흑천복음이 펼쳐지며,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두 번째 기도문이 드러났다.
내 손아귀에 깊은 공동이 파였다. 그 안에서 빠져나온 흑색은 팔딱거리며, 손 틈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다. 나는 손에 쥐자마자 그 본질을 이해했다.
이건 저 밑바닥의 어둠이다.
지구의 태동기부터 존재했던 저 깊은 심해의 어둠 말이다. 그 바다는 한 번도 오롯이 생명을 품은 적이 없다. 위에서 흐르는 생명의 유해를 양분 삼아 살아가는 부식 동물의 낙원으로, 어떤 생물도 거기서 뭍으로 올라온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 어둠은 인간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 힘은 파멸을 당겨올 것이다.
빛이 없는 검은 바다.
나의 머릿속에는 언젠가 보았던 예지가 다시 한 번 흐르고 있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만년설이 흐르는 한, 언젠가 실현될 침수의 예언. 나는 그걸 알고, 내 의지로 손을 꽉 쥐었다.
갓 태동한 작은 어둠이 으깨지고, 손바닥 깊숙이 스며들었다.
내 귓가에 철퍽이는 갓난아이의 울음이 들렸다.
그리고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림자 같던 에드워드의 형상이 어느덧 인간의 그것으로 돌아오더니, 눈과 입에서 검고 끈적한 점액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피부는 수분 한 방울 없이 건조하게 갈라져서, 마치 어패류의 비늘처럼 우둘투둘한 결을 만들었다.
"이, 이, 배신자!"
그는 석유를 토해내며, 간신히 말을 뱉었다.
"그것은 금기. 인간이 다뤄서는 안 되는 힘. 우둔의 소치입니까? 아니면 미치기라도 한 겁니까?"
에드워드의 발음은 점점 무너지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선 익사자의 외침처럼 부글거리기만 했다. 얼굴을 가린 손에는 갈퀴가 돌아나고, 불투명한 갈퀴 너머로 탁한 눈이 보였다.
썩은 어류의 그것처럼 부패하여 악취가 풍겼다. 존재부터 벌레의 만찬이로다.
────탕!
나는 다시 한 번 에드워드의 몸통을 쐈다.
이번에는 어떤 잔재주도 부릴 수 없었는지, 그의 몸이 튕겨 나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몸에서는 구멍 뚫린 가죽 포대처럼 기름이 뿜어졌다.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의 몸이 서서히 불투명해졌다.
<제1막>
바람이 분다. 파도가 친다.
그리고...
나는 지체 없이 다가가, 에드워드의 가슴을 발로 찍었다. 흐릿해지던 그의 신체가 선명하게 바뀌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도망치지 마라, 에드워드. 여기가 현실이다. 네가 파괴한 이 세상이 유일한 현실이다!"
그는 볼품없이 몸을 굴렀다. 그리곤 내게서 멀어지려는 듯이 창가를 향해 바닥을 질질 기었다.
"누구도 꿈을 가둘 순 없어... 누가 감히 꿈을 정의하겠어...."
"아니, 여기가 현실이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외쳤다.
"나의 길잡이, 네가 살해한 루이스 캐롤이 날 현실로 안내했다! 그는 너를 쓰러트리기 위해, 기꺼이 십 년 동안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등대 노릇을 자처했다! 네가 저지른 죄를 청산할 때다, 에드워드!"
기어가던 에드워드의 몸이 멈췄다.
"또다시...."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속삭였다.
"루이스 캐롤... 또 앨리스 리들... 그리고 또, 또, 또,!"
에드워드의 속삭임은 이윽고 분노에 찬 고함으로 바뀌었다.
"또 너다, 필레몬 허버트!"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광인의 머릿속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탕!
뒤통수에 총알이 박힌 에드워드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 충격의 반동으로 다시 한 번 튀어 올랐다.
그러고도 그는 죽지 않았다.
에드워드의 얼굴 부분이 일그러지면서, 반고체처럼 흐물거리며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붉게 충혈된 눈에선 원념 가득한 선혈이 흘렀고, 턱이 빠진 아가리에선 뜻 모를 언어의 저주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탕! 탕! 탕!
나는 다시 그의 등과, 머리, 그리고 목을 쐈다. 그때마다 에드워드의 몸은 들썩이고, 고통에 찬 비명이 새어 나왔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아니다! 아니다! 누구도 인간을 막을 순 없다!"
에드워드는 목뼈가 튀어나오도록 고개를 격하게 치켜들었다.
"인간의 욕구가 있기에, 해방되지 않은 구속이 있기에, 꿈은 무한하다! 누구도 꿈을 가둘 순 없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없다! 그렇기에 나는 불멸이다!"
그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세 개의 잔상처럼 갈라졌다.
"오만하지 마라, 에드워드!"
나는 그가 다시 탈출하려 한다는 걸 눈치챘다.
"꿈이란 결국 꿈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누구도 본성대로 살지 않는다. 루이스 캐롤은 꿈속에서도 타인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십 년의 고독을 견뎌냈다! 그야말로 네 존재의 반론이다!"
에드워드를 저지하려는 시도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났다.
그는 차분히 제자리에 누웠다.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같이, 아니, 이미 그는 죽은 사람이었다.
"고작 십 년으로 시간을 논하는 너와 인간을 담론하는 건... 아주 지겹구나."
에드워드는 초연하게 말했다.
"저는 돌아올 겁니다."
그의 시체가 물결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물결치는 것은 그의 몸이 아니라, 그 위에 있는 무수한 개미 떼였다.
개미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에드워드의 신체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의 몸 위에 있던 개미 떼가 아니라, 그의 몸 자체가 개미로 이뤄져 있었던 것이다.
꿈이 아니고서야,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이번에도, 다음에도, 설령 그다음에도."
마지막 남은 에드워드의 안면마저 흩어지자, 그곳에는 오직 무수한 방향으로 뻗어 나간 검고 끈적한 개미 웅덩이만 남았다.
"루이스 캐롤이 틀렸다는 건가? 여기가 꿈이고, 맞은 편이 현실이라고?"
아니, 그럴 리 없었다.
그 순간, 열린 창 너머로 하얀 눈발이 몰아닥쳤다. 당장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거센 눈보라였다.
아무리 그래도 춥다고 해도 5월이다. 눈이 내릴 계절도 아니고서니, 런던에 이런 폭설이 내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는 힘겹게 창가로 걸어가서, 실눈은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하늘이 깨어지고, 무수한 백색 파편이 눈이 되어서 지상에 내리고 있다. 그리고 갈라진 하늘 틈 너머로 진정한 우주의 형상이 드러났다.
우주는 빛이었다.
무한한 공간 속에, 무한한 별이 지구를 내리쬐는 광채의 세계였다. 태양이 뜬 하늘조차 이보다 밝지는 않았다.
"그건 에드워드였어."
나는 전에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몽블랑 산에서 죽은 모험가는 에드워드였어! 그건 에드워드의 꿈이었어!"
죽음을 두려워한 겁쟁이, 별을 향해 빌었던 배덕자.
"그는 이미 별과 계약한 거야!"
루이스 캐롤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제대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찾아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그 모든 결과를 뒤집었을 뿐이다.
꿈과 현실이 바뀌고 있다.
아무리 에드워드라도 이런 기적을 홀로 일으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별을 향해 빌었고, 별은 응답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그 이름은!"
.
..
...
.....
.........
영겁.
.........
.....
...
..
.
우주의 모든 별이 꺼지고, 차갑게 얼어붙은 외딴 별.
동족포식으로 열을 유지하는 개미만이 살아남은 그 지옥에서 나는 다시 깨어났다. 내 신체는 이미 옛적에 포식 되어, 오로지 암석의 형태로만 남아 있다.
나는 고독하되, 고독하지 않다. 배덕한 신을 섬기며 멸망한 지구에서 연명하는 네 명의 메시아가 내 옆에서 함께 절하고 있다.
그래, 케이시 오' 제럴드. 나는 이제 네 고통을 이해한다.
눈도, 혀도, 귀도 없는 그로서는 엎드려 절하는 것이 힘껏이었다.
나는 한 영겁 동안 거기 누워서, 어두운 우주의 행성들이 심연에 삼켜지는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저 지구의 끝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여정은 수백 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개미 위를 걷는 게 쉽지 않은지, 계속 넘어지는 탓에 아주 지연되고 말았다.
오기로 약속되었던 여섯 번째 메시아는 검은 해골의 형상으로 내 옆에 도착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흉신을 우러러 섬기며 절했다.
우주에 남은 아홉 개의 빛 중 하나가 탁하게 꺼졌다.
나는 그것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 그를 원망 담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