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15화 (115/232)

§115. 수정궁 살인 사건 (1)

"지금으로부터 딱 55년하고 5일 전... 에... 그러니까 1851년 10월 15일이죠. 그날 여왕의 부군께서 이 단상에 오르셔서 폐막식을 진행했습니다. 폐막식, 그러니까, 만국박람회 말입니다. 그 뒤로 만국박람회는 여러 나라에서 주최하고 있지만, 그 시초가 우리 영국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러면 이동하겠습니다."

밤의 수정궁.

런던 남부 하이드 공원에 있는 이 거대한 유리 건물은 궁전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공원 바로 옆에 붙은 역사에서 비치는 불빛을 받을 때마다, 외벽은 은은하게 반짝였는데 그 모습은 낮과는 다른 미학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미 거리에는 사람도 다니지 않을 늦은 시간이었지만, 수정궁 내부에는 10명이나 되는 관광객 무리가 다니고 있었다.

"저기, 허버트 씨."

이브는 내 코트를 잡아당기며 낮은 소리로 불렀다.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역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건 확인한 바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이동하는 관광객 무리의 뒷열에서 따라다녔다.

"교수님."

앞열에서 한 쌍의 남녀가 걸음을 늦추더니 우리와 보폭을 맞췄다. 이브는 허겁지겁 내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그건 주로 교육자 쪽에서 할 말이 아닌가?"

소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어깨에 닿은 그녀의 암갈색 곱슬머리가 함께 들썩이고, 향긋한 냄새를 주위에 흩뿌렸다.

설마 오해하겠는가 싶지만, 혹여나 싶어서 한 마디 변명하자면, 그녀의 몸에서 나는 비누 냄새가 진한 것이지, 결코 내가 맡고자 해서 맡은 것은 아니다. 이건 두세 번 정도는 강조해도 괜찮은 사실이다.

그 증거로 냄새는 나만 맡은 것이 아닌지, 소녀의 옆에 선 체격 좋은 남학생 역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던가.

"이것도 자네들의 그 동아리 놀이의 일환인가?"

"네? 아니요! 설마 우리가 뭘 하든 다 그런 수상한 건줄 아세요?"

여학생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이건 타미* 취미예요. 저는 맞춰준 거고요."

"타미?"

"아, 얘 이름이 스탬포드*거든요."

(*S'tam'ford -> Tamy)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팔꿈치로 남학생, 해리스의 갈비뼈를 쿡 찔렀다.

"남녀가 다른 사람 앞에서 서로 애칭으로 불러대는 건...."

"아, 제발요. 그런 얘기는 학교랑 성당 밖에서는 안 들었으면 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려서, 해리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키가 너무 큰 탓에 어깨가 살짝 들렸다.

"그나저나 자네, 역사에 흥미가 있나? 그건 훌륭한 일이야."

"뭐, 그럭저럭입니다."

해리스는 덩치에 안 맞게 수줍어하면서 뒷목을 만졌다. 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련된 외모의 여학생, 진은 깔깔 웃어댔다.

어딜 봐도 그 나이대에 맞는 순박한 모습이었다. 그 이면에 토끼풀십자회라는 비밀 조직의 회원이라는 면모가 숨겨졌다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진과 해리스, 그 둘은 올해 초 대학에서 날 납치하려다가, 도리어 제압당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었다. 역에서 둘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우리 계획이 어디서 탄로 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설마 그 둘이 박사의 협력자일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우수한 인재이지만, 이런 일에 깊게 관여할 만큼 뛰어나진 않았다.

차라리 토끼풀십자회의 뉴먼 의장이라면 또 모를까.

"그런데, 교수님."

진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진지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나는 덩달아 긴장해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시선을 보냈다.

"저 여성분이랑은 어떤 관계예요?"

"뭐?"

"아니, 제 말은... 제가 너무 유치했나요? 미안해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수줍어하며 물러났다.

"잠깐, 잠깐!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

"괜찮아요, 나이 차가 좀 많기는 하지만, 교수님은 미혼이시니까 그렇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와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나는 버럭 소리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앞서 걷던 다른 관광객들이 일제히 뒤돌아 봤다. 앞서 걷던 늙은 가이드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우릴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뭔가 문제라도...."

"아니, 아니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내 대답에 사람들은 그제야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갑자기 소리 지르시면 어떻게 해요."

"나는 무고한 여인의 명예를 지키려 했을 뿐이야. 그녀와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하지만 이건 데이트 아니에요?"

진의 정론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야간에 관광명소를 함께 다니는 남녀라고 한다면 확실히 정을 나누는 사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입을 막을 요량으로 아주 조금 치사한 논리를 구사했다.

"그러는 자네 둘은 어떤가? 자네들도 사귀는 사인가?"

나는 어떠냐는 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진은 당당히 말했다.

"네, 맞아요. 우린 사귀고 있어요."

대답하는 진보다 옆에 있는 해리스가 더 수줍어서 목을 집어넣었다. 나는 그 대답에 못마땅한 마음이 들어서 외쳤다.

"뭐? 공부는 안 하고!"

"저희 성적 좋거든요? 교수님처럼 말하지 마세요."

"내가 교수야!"

해리스는 뭐가 맞다는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의 본분이란 게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야밤에 난봉꾼처럼 이렇게 엄한 짓거리나...."

"네?!"

진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한테 할 말이 따로 있죠, 교수님!"

다시 한 번 모든 관광객이 발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가이드는 인내심을 시험받는 듯한 표정으로 우릴 쏘아봤다.

"뭔가 문제가...."

"아니, 아니요! 없어요!"

"네, 전혀 없습니다!"

진이 말하고, 해리스가 보충했다. 다시 사람들은 앞을 보고 걸었다.

"난봉꾼이라뇨, 학생들 가지고 대체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 나는 그런 말로 한 게 아니야. 오해하지 말게."

"그런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기숙사 통금을 어기고 돌아다니는 것 말이네! 사감은 이 일을 알고나 있나?"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설마 학생을 이르지는 않겠죠?"

"자네들 하기 나름이야."

"교수님."

그러더니 갑자기 아양 떠는 콧소리를 내었다. 나는 이 바보 같은 화제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아서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자네들 친구 한 명이 더 있지 않았나?"

"아, 사무엘이요."

해리스가 대답했다.

"걔는 안 돼요."

진이 단칼에 말했다.

"걔는 이런 데 오면 너무 말이 많아지거든요. 우리 둘이 사귀는 걸 뻔히 알면서 사사건건 참견하는 것도 짜증 나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여간 질색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자리에 없는 불쌍한 사무엘을 동정했다.

"하지만 우리끼리 온 건 아니에요."

해리스는 여전히 난봉꾼 어쩌구에 관한 화제가 어른거리는지 얼른 변명했다.

"저기 쟤 보이시죠?"

그는 앞서 걷는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까지 말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반반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누구지?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네? 진짜요? 우리 학교 학생인데요?"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는 것 같긴 해."

"그게... 알타몬트라는 애인데, 사실 말을 못하거든요."

해리스는 설명했다.

"벙어리란 말인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네요. 아무튼, 오늘 박람회 관광을 간다니까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요."

그는 설명을 마치고는, '보세요, 난봉꾼이 아니죠?'라는 듯한 얼굴로 날 바라봤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더욱 수상쩍은 관계처럼 보이게 되었다.

"혹시 그도... 그거인가?"

"그거요?"

"자네들 동아리 있잖나."

내 물음에 진과 해리스는 서로 마주 봤다.

"이런 거 막 말해도 되는 거든가?"

"뭐 어때, 교수님은 다 알잖아."

진의 동의를 구하고서야, 해리스는 다시 날 돌아봤다.

"네."

"사무엘은 안 되고 말이지."

"절대 안 돼요."

농담할 생각으로 던진 말에 진이 질색하며 대답했다. 대체 사무엘이 뭘 잘못했다고!

"아무튼 이따 봬요. 우리는 그... 둘만의 시간을 좀 갖고 싶어서요."

"그래, 가서들 청춘을 구가하게. 엄한 짓 하지 말고."

"안 해요! 가자, 타미."

"이따 뵙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전에 만났을 때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몰랐지만, 여러모로 젊은 학생답게 소란스러운 이들이었다.

"가르치는 학생들인가요? 귀엽네요."

"뭐, 그렇지."

분위기를 봐서 조용히 빠져 있던 이브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런데요."

"그런데?"

"런던 아가씨들은 다 저렇게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나요?"

봐라!

나는 속으로 외치고, 겉으로는 태연히 능청 떨었다.

"냄새?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브는 무엇에 실망했는지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다.

수정궁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붕까지 유리로 만든 탓에 조명이 없었고, 원래는 불빛을 밝혀야 했을 각 전시관은 폐관 상태이니 들어올 불빛 하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외벽이 유리로 된데다가, 머지않은 곳에 환하게 빛나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뭔가 보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한참 오래전에 전성기가 지난 야간 수정궁은 애달픈 음산함을 품고 있었다.

"여기가 본관입니다."

가이드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깃발을 보면 알겠지만, 여기 각 관이 국가 전시관이었습니다. 정면에 보시는 저기는 오스만, 그리고 그 맞은 편... 그러니까 입구 쪽에 큰 관이 우리 영국 전시관이었습니다."

그의 주름진 손이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국가 이름을 말할 때마다 사람들의 머리가 빙글빙글 따라 움직였다.

"저기, 프랑스 전시관은 어디 있나요?"

"여보."

"왜요, 물어볼 수도 있죠. 자랑스러운 모국의 일인걸요."

얼추 보아도 좋은 옷을 입은 중년 부부 중 여성 쪽이 손을 들며 물었다. 가이드는 영국관이라고 소개한 맞은 편, 입구 쪽의 커다란 관을 가리켰다.

"저기가 프랑스관이었습니다. 영국이랑 똑같이 입구 쪽 큰 관을 사용했죠. 행사에서는 영국 다음으로 많은 기여를 했고, 또 4년 뒤에 파리에서 개최하기도 했죠."

"봐요, 내가 저기일 거라고 했잖아요."

"여보."

호들갑 떠는 여인을, 남자가 중저음의 나직한 프랑스 어로 만류했다.

"당시의 전시물은 대부분 전시회가 끝나고 철거했습니다만, 여기 광장에는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여왕 폐하의 동상은 그중 하나입니다. 아주 늠름하신 모습이시죠. 당시 여왕께서는 30대, 그러니까 한참 젊고 고우시던 시절입니다. 물론 당신께선 지금도 아름다우시지만요."

가이드의 설명과 달리 동상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침 역에서 불빛이 들어오는 방향 때문에 그림자에 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동 특유의 검푸른 빛깔이 여실히 드러나서 불길하게 보였다.

"입구에서 들어온 이곳, 이곳은 보다시피, 지금은 물을 뺐지만, 커다란 분수대가 있습니다. 물줄기는 2층까지 닿았죠. 저도 그때 여기 왔었는데, 대단한 장관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천장까지 닿는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옮긴 모양이군요."

노인은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꺼진 분수대를 바라봤다. 지금은 불 꺼져 어두운 유리 궁전이었지만, 그의 늙은 눈망울에는 여전히 화려한 옛 자태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듯싶었다.

"말이 길었군요. 그러면 잠깐 둘러보시겠습니까? 아, 그래도 2층에는 올라갈 때는 조심하세요. 전에 추락 사고가 있었거든요."

나는 그의 설명에 따라 계단을 찾아봤다.

"아, 계단은 건물 양 끝에 있습니다. 찾아가기에도 멀지요."

그 말대로 저 멀리 떨어진 건물 끝에야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그걸로 설명은 끝이었다.

가이드의 말대로 9명의 관광객과 1명의 가이드는 어수선하게 흩어졌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저마다 그룹으로 모였는데, 유일하게 한 명만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동떨어졌다.

"제 아버지이신 오스카 피츠헨리 박사의 협력자는 저 사람 아닐까요?"

이브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말하나?"

"뭐가요?"

"아니, 아니야."

나는 고개 저었다.

확실히 수상쩍은 자였다. 체격이 상당한 남성처럼 보였는데, 실은 체형이나 성별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시기상 아직 이른 두꺼운 코트를 몇 겹이나 껴입고, 그것도 모자라서 스카프와 모자로 얼굴까지 가린 모습이라, 맨살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얼굴에는 녹색 색소가 들어간 안경, 그러니까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정확히 이 시대에서는 의료 목적으로 쓰는 것이었으니 더없이 수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저 사람이 협력자라면 왜 우리한테 말을 걸지 않을까요?"

"우리가 박사를 대신해 나왔다는 걸 모를 테니까."

이것이 영 까다로운 부분이었다.

오스카 박사와 그의 협력자는 이미 두 차례 접선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협력자는 박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대리인이 나올 줄은 모를 것이다.

어쩌면 박사의 죽음을 알아내고 잠적했을지도 모르니까, 여기 나와 있으리란 보장조차 없었다.

"여하튼, 지금은 협력자도 무작정 가이드를 따라왔다고 생각하고 찾는 수밖에."

역에서 협력자는 박사를 찾다가 우리처럼 관광 행렬에 무작정 끌려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의존할 수 있는 부분은 그밖에 없기도 했고 말이다.

"말을 걸어볼까요?"

"아니, 잠깐."

이브는 당장 달려가서 말을 걸 기세였다. 나는 가까스로 그녀를 멈춰 세웠다.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우리 적이 여길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행동할 거라면 모든 상황을 확신한 뒤에 하게. 그전까지는 공연히 정보를 흘리는 셈이야."

그녀는 훈계를 들은 아이처럼 기가 죽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풀 죽은 이브를 내버려두고 주변을 살폈다.

정면 광장에는 가이드 노인과, 프랑스인 부부, 그리고 수상쩍은 코트를 입은 인물이 따로따로 있었다.

노인은 걷는 데 지쳤는지 분수대에 앉아서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가 단순히 힘들어서 쉬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곳이 가장 영광스럽던 시절을 떠올리며 어떤 향수에 빠져 있는 건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소란스러운 프랑스인 부부는 뭔가를 격렬히 논의하고 있었는데, 주로 말하는 건 부인 쪽이었다. 남편은 어쩌다가 한 번씩 짧은 대답, 입 모양을 미뤄 봐서는 "그래."와 "아니."만 말하는 것 같았다.

가장 눈이 간 것은 역시 코트를 입은 인물이었다.

나는 그가 관광객이 아닐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 번도 제대로 주변을 둘러보질 않았다. 대신 코트 깃을 여미고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 같은 수상한 거동으로 여기저기 오갈 뿐이었다.

토끼풀십자회의 대학생 삼인방은 여전히 뭉쳐 있었다.

그들을 관찰하던 나는 알타몬트라는 벙어리 청년이 작은 쪽지를 둘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발견했다. 남의 눈을 신경 쓰는 듯해서 마음에 걸렸다.

"역시 우연이 아니었군."

"네?"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이브는 놀라서 되물었다.

"저 셋, 유심히 보고 있게. 틀림없이 뭔가 관여하고 있을 테니까."

이브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일단 이브에게 셋의 거동을 맡겨둔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왠지 프랑스인 부부가 내 쪽을 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내게 직선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기요."

부인이 나를 불렀다. 짙은 화장품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무슨 일이신지?"

"봐요, 여보. 이 사람 맞다니까요."

그녀는 프랑스 어로 호들갑 떨며 말했다. 나는 여전히 영문을 몰라서 둘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들이 박사의 협력자일까. 그렇다면 정말 예상외의 사태였다. 마음 한편으로 둘만은 절대 협력자가 아닐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우리가 박사의 대리인인 줄 알아냈을까. 그들이 눈치챘다면, 우리 적들도 알아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확실히 그렇군."

남편 쪽이 말했다.

"제게 용건이 있습니까?"

"있다마다요."

나는 긴장한 채 다시 묻자, 부인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그 그림, <노병의 초상>의 모델이죠?"

그리고 돌아온 대답, 어떤 예상도 벗어난 그 질문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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