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19화 (119/232)

§119. 수정궁 살인 사건 (5)

내벽에는 때묻은 종이가 불규칙하게 붙어 있었다.

찢어진 모양은 꼭 불완전한 세계지도 같았다. 수위가 올라서 산맥을 제외한 모든 지상이 가라앉은 그런 미래의 지도 말이다. 그 아래로는 벽을 타고 흐른 접착제가 방울 맺힌 채로 굳어 있었다.

아마도 전에 포스터 따위를 붙였던 자리일 터다. 그 모습은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전처럼 학장 대리라고 부르진 않는군."

"의외로 지위 고하에 집착하십니다."

지금 상황에 몰고 있는 것은 내 쪽임이 분명했는데도, 뉴먼은 조금도 기 죽지 않고 신경 긁는 말을 해왔다. 혹여나 아직 숨긴 패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솟구쳤다.

"여기는 우리 둘 뿐입니다."

뉴먼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저는 무장도 하지 않았죠."

"그 말을 순순히 믿으란 건가?"

"한 가지 오해를 정정해 드리자면, 보통은 다들 그러고 다니거든요. 교수님처럼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 짜증나는 말투는 어쨌건 그의 말은 전부 사실 같았다.

비어 있는 전시관에는 사람이 숨을 만한 공간이 없었고, 뉴먼이 앉아 있는 자세 또한 빠르게 총을 꺼내기에는 마땅치 않았다. 재차 확인해봐도 우위는 확고했다.

나는 손목만 움직여 총구를 위아래로 까닥거렸다.

"이게 뭔지 아나?"

"제 어휘력을 시험하십니까? 엔필드 권총이죠."

"제법 잘 아는군."

무의미하게 내뱉은 입 발린 칭찬에 뉴먼은 씨익 웃었다.

"전번에 제 회원들 앞에서 잘난 체하며 설명하신 걸 그새 잊으신 모양입니다. 물론 듣지 않았다고 해도 알았겠지만요. 1879년에 개발되었고, 1880년에 군 보급, 1887년에 퇴역한 군용 장비이죠. 현역 기간이 짧았던 탓인지, 퇴역하고나서 멀쩡한 재고가 물밑으로 잔뜩 새었고, 이제는 도시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권총이죠. 덕분에 발생한 총격 사건도 셀 수 없고요."

끝까지 말하게 두려 했더니 지식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이대로 둬서는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억지로 말을 끊었다.

"아주 해박하군그래."

더 말하게 둬서는 끝이 안날 것 같아서 나는 억지로 말을 끊었다.

"그렇게 잘 안다면 총에 맞으면 어찌 되는지도 알 테지."

나는 일부러 그의 동공에 맞춰서 총구를 들이밀었다. 직경 0.476인치의 죽음이 지나는 길목에는 빼곡한 어둠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맞는 부위에 따라 다르겠죠."

위협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을 텐데, 뉴먼은 살짝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뇌, 심장, 폐 같은 주요 장기를 다친다면야 장기 기능 정지로 길어도 수 초 안에 사망하겠죠. 장기를 피해도 혈관이 지나는 곳에 맞는다면 과다 출혈, 혹은 그전에 혈압 저하로 쇼크사 할테고요. 운이 좋다면 뼈에 막히거나, 근육 사이를 파고 들테고요. 물론 이 경우에도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살과 뼈가 괴사하고, 빠르게 응급 조치 한다고 해도 후유증은 영구적일 테니 무사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기껏해야 앨리스 또래나 되는 이 젊다 못해서 어린 청년은 입이 근질거려서 안달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늘 실연해볼 일은 없을 겁니다. 잠깐 사이에 교수님 마음이 크게 바뀌지라도 않는다면요."

"내가 학생은 못 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요, 교수님은 군 출신이니까 필요하다면 학생이 아니라 동기도 쏘실 분이죠."

그걸로 끝이었다.

뉴먼은 어떤 설명도 더 붙이지 않았는데, 내게는 대화의 흐름이 뚝 끊긴 것 같아서 불쾌했다. 좀처럼 대화가 맞물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물었다.

"뭐가 그래서요?"

"내가 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한 이유 말이야. 그리고 군 출신인 건 조사한 건가?"

"그건 당장 교수님이 가장 잘 알 것 아닙니까. 지팡이를 잡은 왼손에 낀 장갑이 오른손에는 없죠. 장갑을 한 켤레만 끼진 않을 테니 여기 오면서 벗은 거란 뜻이 됩니다. 손의 감각이 무뎌진 탓에 실수로 방아쇠를 당길까봐요. 그리고 출신은 따로 조사해볼 필요도 없죠. 끼고 계신 흰 양 가죽 장갑은 군인들이 입는 거니까요."

뉴먼은 태연자약하게 설명했다.

"자네의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겠네. 하지만 고작 그뿐으로 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면 굉장히 실망이군. 내가 자네에게 물을 걸 다 묻고 입막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러자 뉴먼은 의외라는 듯이 한쪽 눈썹을 위로 치올렸다.

"제가 교수님이 찾던 사람이란 걸 아직 눈치 못 챈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겁니까? 둘 다 무지몽매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기왕이면 후자가 말이 더 잘 통할 테니 좋겠군요."

도리어 당황하게 된 것은 내 쪽이 되었다.

"뭐라고?"

"피츠헨리 박사님의 협력자를 찾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저라고요."

"그건... 어떻게 알았지?"

"그분의 따님을 대동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그분께도 그런 성숙한 자제분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뉴먼과의 대화는 불쾌한 수준을 넘어서 이질적인 영역으로 들어섰다. 심지어 나는 상대가 내 생각을 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하게 되었다.

"이브 피츠헨리 양 말이야? 그녀에 대해선 또 어떻게 알았고."

여러모로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는 그가 마법사라고 해도 크게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뉴먼은 그런 내 기대를 져버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머릿속을 드러냈다.

"간단합니다. 피츠헨리는 아일랜드 성씨이고, 적발 역시 아일랜드인의 전형적인 특징이죠. 박사님도, 이브 양도 피가 섞이지 않은 붉은 머리색을 가졌으니, 두 사람의 연관성은 제가 아니라도 직감할 겁니다. 거기다 사고로 죽은 박사님 대신에 약속 장소에 나타났을 정도이니, 아마도 가까운 친족, 나이를 미뤄봐선 남매보단 부녀가 자연스러우니까 따님이라 생각한 겁니다."

그의 추측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모두 합당하고, 또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그가 알 리가 없는 사실을 언급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박사가 사고로 죽었다곤 말 안 했네."

"교수님은 제 생각보다 의심이 많으시군요. 설명하자면, 제가 마지막으로 박사님을 뵈었을 때, 여러 정황을 토대로 그분께서 치매에 걸렸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런던에서 독거 치매 환자는 과반수가 사고로 사망하니까, 그저 의학적 통계로 점쳐봤을 뿐입니다. 그 추측을 교수님께서 막 증명해주셨고요."

거기까지 듣고, 나는 도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박사가 혼자 살았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방금 딸이 있다는 걸 알았던 참인데!"

"그래도 하나씩 물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뉴먼은 싫증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비아냥댔다.

"박사님의 손톱은 아주 길었거든요. 아시겠지만 치매 환자는 상처 낼 가능성이 높으니 보통은 손톱을 바짝 깎죠. 가족이 있었다면 그리 했을 겁니다."

그제야 나는 뉴먼과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런 일로 엮이는 이들은 으레 시꺼먼 우물 밑바닥과 속성을 공유했다. 보고 있자면 자연히 습한 기운이 감돌아서 불쾌한 존재들 말이다. 하지만 뉴먼은 그런 이들과 전혀 궤를 달리했다.

무슨 화제를 꺼내건 같았다.

그는 단숨에 홀로 결론을 깨우치고는 상대 역시 그랬으리란 듯이 대화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그리 생각한 이유를 묻기라도 하면 그제야 귀찮아하며 설명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광狂도 악惡도 없었다. 사회화 되지 않은 지성이 방류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느낀 불쾌감의 정체였다.

차라리 그는 우물 위를 기어가는 갓난애처럼 보였다.

"역시 자네가 피츠헨리 박사의 외부 협력자였군."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뉴먼은 내가 처음부터 몰랐던 것이 잘못이라고 탓했다.

결국, 나는 목청까지 올라온 설명문을 삼켰다. 새삼 그에게 내 추리를 늘어놓는 게 얼마나 어리숙한 짓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소거법이었다.

가이드 노인은 직업상의 이유로 이 날 이 시간 수정궁에 있을 수밖에 없다. 브로케디스 부부는 명백한 관광객이다. 런던에 장기 체류가 어려운 신분이니, 일 여년에 걸친 박사의 협력자 신세를 자처하긴 어려웠다. 수상쩍은 사무국 요원, 그는 스스로 내 뒤를 밟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가 여깄기에 있는 것이지, 박사의 건과는 관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진과 해리스는 그런 과업을 맡을 능력은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이미 죽었기에 상정할 필요가 없었다. 되돌아 보면, 이런 결론마저 눈앞의 남자가 유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뉴먼은 짧은 침묵을 끊었다. 무슨 심중이 있다기보단 지루함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저라도 사실 꽤 놀랐습니다. 원래는 피츠헨리 박사와 만나기로 되었는데, 그 대신에 제가 평소 경계하던 교수님이 나타났으니까요. 어디선가 일을 크게 그르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당장 떠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죠. 물론 범인凡人이라면 그랬겠지만, 저는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뉴먼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는 부분에서 묘하게 힘을 주며 즐거워했다.

"대신에 이 기회에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자 했죠. 알다시피 이런 험난한 세상에 한패는 많을 수록 좋으니까요. 설령 신뢰할 수 없는 상대라면 그마저도 사전에 대처할 수 있으니까 좋죠. 그래서 저는 작은 소동을 벌였습니다. 목숨이 걸린 살인 사건, 그것도 연쇄 살인이라면 어느 정도 본성을 보일 배경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그의 뻔뻔한 설명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작은 소동이라고?"

"그러면 뭐 같습니까?"

되려 정색하는 것은 뉴먼이었다.

"단언컨대 제가 범죄를 저지르기로 작정했다면, 저는 세계 범죄사에 유례 없는 가장 불가사의한 사건을 저질렀을 겁니다. 스코틀랜드 야드 경찰은 물론이고, 내노라 하는 범죄학자, 소설가, 탐정이 달라 붙어도 진상의 윤곽조차 찾을 수 없는 그런 범죄 말입니다. 제가 마음만 먹었다면 교수님이 이렇게 제 앞에 서 있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란 겁니다. 제가 얼마나 많이 양보했는지 아시겠어요?"

뉴먼은 거만하기 짝에 없는 일련의 문구를 단숨에 늘어놓았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그 청년의 천연덕스러운 태도였다.

"자네가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오만함이 지나친 것 아닌가?"

"교수님께서 이 관을 나갈 때쯤엔 제가 옳았다고 인정할 겁니다."

그는 단언했다.

"그걸 지금부터 증명해보죠. 교수님께서는 제가 벙어리라고 굳게 믿으셨죠."

"방금 전에 목소리를 듣기 전까진 반신반의했지."

"고작 반신반의!"

불쾌하기 짝에 없는 코웃음과 함께 뉴먼은 탓하듯이 말했다.

"저라면 제가 벙어리가 아니란 사실쯤은 대번에 깨달았을 겁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러지 못했죠. 왜냐면 제가 그렇게 유도했으니까요. 교수님이 절 벙어리라고 믿은 것도, 또 그렇지 않다고 반신반의나마 하게 된 것도 모두 제가 그리 한 겁니다."

"아무래도...."

"과언이라고요? 그러면 묻죠. 왜 교수님은 제가 벙어리라고 믿었습니까?"

나는 그의 당당한 태도에 의심을 품으면서 대답했다.

"자네가 진을 통해서 내게 그리 말하라고 시켰겠지."

"그뿐입니까?"

"쪽지를 전하는 걸 봤네."

"제가 보였죠. 일부러 교수님께서 볼 수 있는 각도에서 몇 번이고 전했으니까요."

"그러면 이건 뭐지?"

권총을 잡은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넣고, 약지와 소지로 작은 메모 종이를 꺼내어 내밀었다. 다름 아닌 「우리 중에 살인범이 있음」이 적힌 그 쪽지였다.

"실은 한 장 더 흘렸는데 교수님께서 보지 못하셨더라고요."

뉴먼은 웃긴 농담을 말하는 사람처럼 읊조렸다.

"일부러 보인 겁니다. 은폐할 작정이었다면 교수님이 존재조차 모르게 할 방법은 많았죠.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이렇게 중요한 내용까지 필담으로 전하니까, 말을 못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에게 돌려줄 말이 없어서, 나는 그저 끄응 소리만 내고 말았다.

"아직도 믿질 못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러면 제가 기꺼이 조금 더 수고를 들이겠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교수님은 어떻게 여기 도착했습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뭐라고?"

"답답하게 굴지 맙시다. 교수님은 나름 해답을 얻어서, 제가 범인이란 사실을 도출해낸 것 아닙니까? 얘기나 좀 들어보자 이겁니다."

"자네의 명석한 두뇌는 어디다 두고?"

내가 힘껏 비아냥거리자, 뉴먼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뻔뻔하게 자기자랑을 시작했다.

"교수님이 저를 그렇게 제대로 평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보다 뛰어난 것이 항상 좋지는 않죠. 특히나 남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생각할 때는요. 제가 흘린 단서를 토대로, 저라면 이번 사건을 6분 안에 풀어냈을 겁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6분이요. 하지만 교수님은 몇 시간이나 걸렸죠. 대관절 어느 대목에서 그리 헤맸는지 알아야지 제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실례가 안된다면 좋겠지만, 제대로 정정해 드릴 수 있지 않겠어요?"

결국, 나는 기가 막혀서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 우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이었으니까. 우리가 2층까지 도달한 2분 사이에, 모든 흔적을 지우고, 시체를 은닉하고, 본인마저 현장에서 사라지는 건, 내 상식 안에서 불가능한 일이네."

나는 말했다.

"그리고요?"

"그리고, 그 모든 수작질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럴 필요가 없었지. 브로케디스 여사는 살인 순간을 포착하고, 범인이 들을 수 있는 고성으로 비명을 질렀어. 범인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면 사건을 은폐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

뉴먼은 점차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의 꾸밈 없는 미소를 보고 있자면, 내가 그의 의도대로 맞게 추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냄새였네."

"냄새요."

"창으로 배를 찔렀다면 출혈이 꽤 되었을 텐데, 현장에서는 피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았지. 냄새가 사라졌다고 하기에는 피해자가 뿌렸던 향수내가 옅게나마 남아 있았지."

그래서일까, 말하면 말할수록 상대의 의도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리는 수는 없었다.

"진과 해리스는 죽지 않았다. 두 연쇄 살인은 모두 자작극이며, 여기서 그런 계획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동행자, 알타몬트 자네밖에 없네."

내 선언과 동시에 뉴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은 그렇다 쳐도, 해리스는 왜?"

"그의 경우엔 더 간단하네. 바닥이 반짝이는 걸 봤지."

나는 말했다.

"바깥 등불에 바닥이 반짝이더군. 소금물 표면처럼 말이야. 잘 보니까 해리스가 떨어져 있던 장소에 소금 결정 같은 것이 흩어져 있더군.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누워 있던 장소에 말이야."

모호하던 사건들이 모두 자작극이란 걸 깨달은 발견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간 틈에, 400야드를 전력 질주해서 1층 중앙까지 도착했을 거야. 그리고 시선을 끌기 위해서, 또 그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부딪혔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여왕 동상을 밀어서 쓰러트렸겠지. 불경하게도 말이야. 하지만 등이 땀범벅으로 축축해진 상태란 것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더군."

"해리스 군은 사람 속일 성격이 아니죠."

뉴먼은 아이처럼 투덜댔다.

"연기가 너무 서툴러서 몇 번이나 조마조마했는데, 결국에는 그가 일을 망쳐놨군요."

그는 자연스럽게 날 지나쳐서 전시관을 나갔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짐작이 갔기에, 나는 굳이 멈춰 세우지 않고 그 뒤를 쫓았다.

전시관에서 나오는 우리 두 명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자네들 어디 있다 온 건가?"

"잠깐 담소했죠."

브로케디스 씨의 질문에 대답한 뉴먼이었다. 대답을 듣고, 그는 너무 놀랐는지 말도 제대로 못했다.

"자, 자, 자네는 벙어리* 아니었던가?"

"제가 그렇게 불린다면, 세상에 똑똑하단 단어는 필요 없을걸요."

(*dumb = 벙어리, 바보)

그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 브로케디스 씨는 멍한 얼굴을 지었다.

뉴먼은 곧장 수정궁 문쪽으로 다가가더니, 문을 등지고서는 우리를 향했다.

"자, 신사숙녀 여러분, 소개하겠습니다!"

그가 뜸들이는 동안, 문 너머에서 덜컥이는 소리가 몇 번 들렸다. 부자연스러운 정적이 흘렀다. 뉴먼은 조금 더 기다리다가 과장되게 외쳤다.

"시체입니다!"

문이 열리고, 두 남녀가 쭈볏거리며 들어왔다.

진과 해리스였다. 둘은 죽기는커녕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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