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수정궁 살인 사건 (6)
"아무튼 속여서 미안해요."
얼이 빠진 사람들을 보며, 진은 몸을 배배 꼬며 사과했다.
"장난이었는데 이렇게 심각해질 줄 몰랐어요."
나는 그녀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뉴먼의 표정을 봐서는 미리 합의된 대화는 아니었다. 나는 다른 의미로도 크게 감탄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저지르고, 그가 수습할 방법을 조금도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랐다.
어쨌거나, 진은 그녀의 기지로 지금 상황을 가장 원만하게 만드는 말을 할 줄 알았다.
"자, 장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잖나."
항의하는 사람은 오직 브로케디스 한 명뿐이었다.
그러는 그도 안도한 나머지 안면 근육이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 시간 동안 살인범이 있다고 믿고 긴장한 상황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살아 돌아오고 실은 무사했다는 걸 안 것이다.
"아, 세상에...."
저메인 여사는 이젠 퍽 자연스럽게 이브에게 매달렸다.
"이번 일은 가만히 못 넘어가네. 대체 상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제가 교육자로서 제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화내려는 그를 향해, 내가 막아서듯이 말을 끊었다. 그들의 대학교수라는 입장으로 처리하겠다고 나오니, 그는 또다시 화낼 명분을 잃어서 입을 닫았다.
"그만 해요, 여보."
오히려 처음과 반대로 저메인이 남편을 말렸다.
"결국 학생들도 다 무사했던 거잖아요. 그거면 족해요."
"맞습니다. 수정궁에서 살인이 터지지 않은 것만 해도...."
가이드가 바로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이미 너무 지쳐서 더는 싸울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아무래도 수에서 밀리니, 브로케디스는 얼굴을 붉힌 채로 말없이 수사국 요원을 돌아봤다.
"저, 저는 진짜 아무래도 좋아서...."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는 갈 길을 잃은 열기를 눈으로 뿜으며 날 응시했다.
"꼭, 제대로 좀 당부하게. 요즘 것들은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그 말을 계기로 왠지 모르게 푸념을 감당하는 것은 내 책임이 되었다.
나는 결국에 모두에게 직접 사과하고, 또 가이드에게 유리벽과 자물쇠의 변상까지 언급한 뒤에야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다행히 가이드는 넋이 나가서, 사라진 유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가장 걱정했던 저메인 여사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빠르게 회복했다. 오히려 그녀는 학생들을 두둔하며 상황을 원만히 수습하는데 조력하기도 했다.
정작 내 심기를 건드린 것은 뉴먼의 태도였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주모해놓고, 나와 학생들이 사과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꼴을 보고 분통이 터져서 화낸 탓에, 끝내는 다른 사람들이 날 말리는 구도로 마무리되었다.
처분이 애매한 것은 사무국의 요원이었다. 그가 날 쫓은 걸 안 이상, 추궁할 필요가 있었지만, 뉴먼이 밝히는 진실을 들려주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그에게도 관심은 있지만, 우선순위가 밀리네요. 찾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고요."
뜻밖에도 뉴먼은 그자를 추궁하는 데 별 의욕을 보이지 못했다. 게다가 나 역시 그가 별 위협이 못 된다는 데 동의한 덕분에, 우리는 그에게 레오 브레이버리라는 본명을 얻어내고 풀어주게 되었다.
───사박사박.
"한 번 상상해보시죠. 당신이 런던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타고났다면, 어떤 의문도 하룻밤 사이에 간단히 해소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면."
수정궁 인근의 하이드 공원에는 이미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걸음마다 낙엽 부스러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세상이 얼마나 따분할지."
뉴먼이 말했다.
"본심을 말하면 흥미본위입니다. 제 두뇌는 늘 새로운 자극을 쫓고 있었고, 덕분에 저는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뇌를 달래기 위해서 양식을 준비해야 했죠."
"그게 런던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가사의들이었나?"
내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않고 살짝 흘겨봤다. 그 무언의 시선에는 순서를 지키라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나는 무안하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처음 관심을 가진 건 미제 사건이었습니다. 알다시피 런던은 범죄의 온상이라고 할 만하고, 어느 뒷골목에서나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몇 개 해결해도 심심풀이는 되었지만, 제 안에 불을 지필 정도는 못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역사에서 비치는 불빛과 공원 가로등 덕분에 그리 검게 보이지는 않았다.
"따분함은 천재의 숙명인가. 그리 받아들이려던 참이었습니다. 제 앞에 갑자기 나타난 난제만 없었더라면요. 저는, 솔직히, 정말 기뻤습니다. 열네 살 성인식 때 받은 엠마누엘 휘트마시의 바이올린을 품에 안았을 때보다 더 기뻤습니다. 제가 바이올린에도 괜찮은 소양이 있다는 얘기는 안 했죠?"
이번에는 내가 그를 노려볼 차례였다. 그는 뜸들이지 않고 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사건은 몇 날 며칠이 걸려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단서가 없는 단순한 사건도 아니었는데도, 제 상식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식을 버렸습니다. 제가 교양으로 익히고 있는 모든 지식을 버리고, 순수한 지성으로만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나는 조금 더 기다리다가 물었다.
"그래서 풀었나?"
"저는 올드코트 대학에 입학했죠. 이만하면 대답이 되지 않았겠어요."
뉴먼은 웃으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교수님께서 여러모로 머리 굴리는 건 즐겁게 관찰했습니다."
"전부 알고 있었다고?"
"물론이죠. 교수님이 지난 비밀은 모두 제가 옛적이 지난 길이기도 합니다."
"미안해요."
진이 한숨 쉬며 말했다.
"말하는 게 좀 재수 없죠? 어리니까 봐줘요."
그 광경은 둘 사이의 관계를 아는 내게는 퍽 당황스러웠다. 그들 사이에는 단결이 굳건한 조직에는 으레 있는 위계질서의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아무튼 속여서 미안해요."
진은 날 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 들은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문장이었다. 나로서는 꽤 불만스러웠지만, 그녀의 그런 능청이 상황 수습에 크게 이바지를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저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브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내 옷 소매를 잡아끌었다. 비록 목소리를 낮췄지만, 다른 사람들이 뻔히 있는 앞에서 속삭여봐야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죽은 척을 한 거죠."
내가 말하려고 입을 열자, 뉴먼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실내에 조명이 없었던 덕분에 가능했던 눈속임이었죠. 한 층만 차이 나도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나머지는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실 겁니다. 교수님의 추리에는 저도 흥미가 있고요."
"배려 고맙네, 처음부터 내가 말하게 뒀으면 더 고마웠을 테지만."
나는 그에게 한 번 이죽거리곤, 이브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물었다.
"우리가 왜 둘이 죽었다고 생각했지?"
"네? 그게... 척 봐도 죽었다고 생각할 모습이었잖아요? 복부에 기다란 창이 박혀 있었고. 저분은 아래로 떨어졌고."
이브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아니지, 정확히는 막대기가 붙어 있는 모양이었어. 창날이 박혔는지 아닌지는 1층에서 구분할 방법이 없었지. 실제로는 창에 찔린 척만 했을 테고. 애초에 상처가 났다면 피 냄새가 났을 거야. 하지만 남은 건 그녀의 향수내뿐이었지."
"어, 그렇지만 아까는 냄새를 모른다고...."
"그리고."
"아, 네."
내 시선을 눈치챈 해리스가 몸을 흠칫 떨었다.
"문에 걸어둔 빗장, 그게 창의 장대였지. 자네가 부순 건가?"
"맞습니다."
"네? 유물을 부쉈다고요?"
이브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흔한 목재가 아니라서 바로 알아봤지. 미국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스러기와 같은 재질이더군. 다행히 가이드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정말 파격적인 계획이었다.
고작 죽은 척을 위해서 유물을 파손할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이 혈기 가득한 대학생들이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건지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우리가 미국관을 둘러보고, 자네 셋은 조금 늦게 따라왔지. 그때 쪼갠 모양이군."
"맞습니다. 보자마자 계획에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해리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요."
뉴먼은 태연히 대답했다.
처음에는 오랜 기간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치밀한 계획이, 실은 한 청년이 즉석에서 짜낸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싹했다.
"교수님을 속이려면 우선 시체를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군인 출신이시니 가짜 피를 뿌리고 죽은 척하는 것쯤은 간단히 구분할 테니까요. 그래서 모든 시체는 1층씩 떨어트려서 멀리서 실루엣만 보이게 했죠."
나는 의기양양하게 설명하는 뉴먼을 보고 물었다.
"그것까진 알겠네. 하지만 진은 언제 다시 올라가서 죽은 척한 건가?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을 텐데."
"저런, 이것까지 설명해야 하나요?"
뉴먼은 진을 쳐다봤다. 그녀는 멋쩍게 말했다.
"교수님, 저는 사실 안 내려갔어요. 처음 2층에 올라가고, 미국관에 그대로 숨어 있었죠."
"뭐?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 몰랐지?"
"거기서 멋진 배우 한 명이 열연했던 덕이죠."
진이 윙크하자, 해리스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맞아, 해리스가 갑자기 소리 지르고 달려가서는, 모두 그를 쫓아가기 급급했지."
"거기에 의미심장한 쪽지까지 발견했으니, 인원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죠."
"그러면 시체 실종은요?"
이브는 질문을 던졌다가, 진을 보더니 고개 저었다.
"아니, 시체가 아니었죠. 이제 알겠어요, 그냥 반대편 계단으로 뛰어간 거군요. 그러니까 못 봤죠."
"하지만 너무 불안정한 계획 아닌가?"
내가 따지자 뉴먼을 의아한 표정을 했다.
"한 명이라도 1층에 남아서 시체를 보고 있었다면 들켰을 거야. 그리고 한 명이라도 다른 계단을 썼다면 들켰을 테고."
"맞아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저는 시체를 누가 발견하자마자 뛰었죠."
뉴먼은 당당히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말 없던 뉴먼이 가장 먼저 뛰어서 의아하게 생각한 것 말이다.
"인간 심리를 이용한 유도였죠. 사람들은 물증이 없다면 의도도 없다는 착각을 흔히 합니다. 그것이 맹점입니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었는데 누가 혼자 있고 싶겠습니까. 절 뒤따른 것도, 또 제가 가는 계단으로 모두 따라온 것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물론 사고는 본능을 이깁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뛰었죠. 실제로 교수님도 별 의심 없이 절 따르지 않았나요?"
그가 거만하게 말할 때마다, 나는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다는 점이 분했다.
"문제는 제 계산보다 진 양의 발이 느렸던 것이죠. 만약 해리스 군만큼 다른 사람이 빨랐다면 아마 들켰을 겁니다. 대신에 저는 급한대로 먼저 도착한 해리스 군을 복도 중간에 세워서, 멀리서 달아나는 진 양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도록 가렸습니다."
"그래도 신발도 벗고 뛰었거든!"
진은 울컥하며 외쳤다. 뉴먼은 조금도 그녀에게 관심 주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무사히 진 양이 1층으로 내려갔다고는 해도, 아무나 중앙 광장을 내려다본다면 바로 들킬 게 뻔했습니다. 그녀가 수정궁 밖으로 나갈 동안, 누군가 시선을 끌어줄 필요가 있었죠. 그 역할은 이번에도 해리스 군이 맡았습니다. 연인의 죽음으로 흥분한 상태라는 변명이 좋았거든요. 문제는...."
뉴먼은 눈동자를 위로 빙글 돌려서 이브를 쳐다봤다.
"설마 그 상황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까지 듣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물며 그게 오스카 피츠헨리 박사님의 딸이라뇨."
"허버트 씨가 말했나요?"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피츠헨리라는 성씨, 박사님을 닮은 붉은 머리털,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연령차, 박사님의 부재. 쉽게 도출되는 결과니까요."
속사 같이 쏟아지는 대답에 이브는 맹한 얼굴로 내게 속삭였다.
"런던에선 이런 사람이 흔한가요?"
"날 이런 사람의 범주에 넣을 거라면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계획은 완벽했지만, 두 번째 변수가 발생했죠."
분명 뻔히 보이게 귓속말했거늘, 뉴먼은 과감히 무시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맞아요."
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총을 쏠 줄은 몰랐거든요."
나는 열쇠 구멍에 대고, 총을 쐈을 때 들렸던 여인의 비명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게 자네 목소리였다고? 나는 틀림없이 브로케디스 부인인 줄 알고...."
"갑작스러운 총성 덕에 청각이 마비되었기에 망정이죠."
"하지만 교수님도 그래요! 누가 다짜고짜 총을 쏴요! 누가 밖에 있을 줄 알고!"
"당연히 밖에 누가 있을 줄 알고 쏜 거지!"
뉴먼은 우리 둘의 짧은 말다툼을 지겹다는 듯이 보다가 바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범인이 여럿일 수 있다는 전제는 교수님이 총알을 아끼게 했죠. 수정궁 안에 어떤 장치가 숨겨졌으리란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을 테고요. 그 덕에 교수님은 벽을 깨자는 의견에도, 유리벽에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분명 쐈다면 바로 깨졌을 텐데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의미 없는 짓이었을 거야. 우리 중에 가장 힘이 센 해리스가 전력투구하고도 금밖에 가지 않은 벽을 권총탄으로 깨는 건...."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아차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뉴먼은 내가 그의 생각대로 말할 때마다 짓던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죠. 총알을 아껴야 하니, 가장 힘이 좋은 해리스 군이 먼저 강도를 시험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물론 그가 힘을 제대로 냈다면 바로 깨졌겠죠. 조금 두껍지만, 그냥 커다란 유리벽에 불과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해리스가 창문을 깨려고 한 직후, 왜 그렇게 아파했는지 깨달았다.
유리가 정말 단단했던 거라면 손이 아팠어야 했다. 하지만 해리스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통증을 참았다. 그건 그가 직전에 힘을 빼는 탓에 흉근에 부담이 갔다고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누구나 유리를 깨고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사람들은 자기네가 상상한 밀실에 갇히고 만 겁니다. 굳이 유리벽이 아니라도, 어쩌면 문을 세게 밀었다면 그대로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해리스 군은 맨손으로도 쪼갠 낡은 나무니까요."
전모를 알게 될수록 터무니없었다.
뉴먼이 좀 전에 했던 말은 전혀 허언이 아니었다. 이 사건을 전개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조건, 풀어낼 단서까지 그의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은 어디도 없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그가 원했다면 나는 아직도 저 안에 갇혀서 가짜 살인범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사건도 똑같습니다."
"그래, 자네가 갑자기 그 요원, 레오 브레이버리에게 달려들었지. 고작 2분만 시선을 끌어도, 해리스는 그 준족으로 1층에 도착했을 테니까."
"실제론 2분이나 없었는데,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느꼈을 겁니다. 해리스 군이 그 상황에 끼어들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겠죠. 그는 몇 시간이 말이 없었으니까요."
설마 그런 세심한 곳까지 지시한 것일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게 무색하게 뉴먼은 당당했다.
"추락의 인상을 더해준 것은 여왕 동상입니다. 여왕 동상이 쓰러지는 소리는 사람들에게 무심코 낙하의 이미지를 심어줬을 테니까요."
"혹시 처음에 해리스가 동상을 만지던 것도...."
뉴먼은 의외란 듯이 바라봤다.
"그걸 보셨군요. 맞아요, 제가 쓰러트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죠. 그래서 한 손으로 밀면서 재어 본 거죠."
정말로 사실이었다. 뉴먼은 수정궁에 들어오고 고작 수 분 만에 모든 계획을 즉석에서 짜내었다.
"결국 재밌게도 교수님은 시체 한 번 보지 못하고, 연쇄 살인이 벌어졌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쓸 기회가 없으면 빛을 보지 못하는 법이죠."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정하지. 자네는 처음부터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었군."
그 대담하고 과감한 계획을 세운 장본인, 자칭 천재인 괴짜는 고작 칭찬 한마디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지성과 반비례하는 미숙함이었다.
"하지만 대체 이 모든 계획을 언제 둘에게 전한 거지? 그건 말이 안 되잖나."
"여기까지 오고도 몰랐습니까? 제가 교수님에게 처음 건넨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대답도요."
나는 그의 지적에 기억을 더듬었다.
뉴먼은 분명 처음에 이런 질문을 건넸다. 왜 자신이 벙어리라고 믿었느냐고. 자신이라면 모든 정황을 깨우치고 바로 그게 거짓말이라고 눈치챘을 거라고.
거기까지 회고한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그야 당연하다!
이 긴 계획을 적어서 둘에게 건네는 것보단, 쪽지를 주고받는 척하면서 말로 전하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은가! 모든 계획의 존재가 바로 그의 벙어리 거짓말의 반론이었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이 얼얼한 심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구겨진 종잇조각을 꺼냈다. 「우리 중에 살인범이 있음」이라고 적힌 쪽지였다.
"결국 이 쪽지는 아무 의미 없는 함정이었던 거군."
"아니요, 그건 사실이죠."
뉴먼은 말했다. 나는 심각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살인범은 있었습니다. 비록 형기를 일부 치르고,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이지만요."
잠시 후, 나는 그가 누굴 말하는지 깨닫고 분통을 터트렸다.
"전에도 말하고 싶었지만, 자네 농담은 최악이야."
"아무튼 여러 정황을 토대로 저는 교수님께서 다른 마음이 없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무엇보다 학장님의 영향을 벗어난 것 같고요. 그렇다면 제가 당장 피해 다닐 필요가 없죠. 취미가 통하는 친구는 언제나 반가우니까요."
그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필레몬 허버트."
"토끼풀십자회의 뉴먼, 수정궁 살인 사건의 주범 알타몬트, 피츠헨리 박사의 이름 없는 협력자이자 런던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 하지만 무엇도 제 본명은 아니군요."
그렇게 가명으로 점철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대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본명이야말로, 내가 아는 이름 중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정식으로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홈즈, 셜록 홈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