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밤의 침묵 / 괴물 저택 (1)
검은 말이 새벽을 질주한다.
어스름 묻은 마차에선 하루내 쌓인 먼지가 뒤로 날리며 꼬리를 그렸다. 낡다 못해 삭은 바퀴가 구를 때마다 삐걱거렸고, 발굽이 도로를 박찰 때마다 이음매에서 괴악한 마찰음이 귀를 괴롭혔다.
우리는 소음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긴장한 탓인지 나는 마차에 오르자마자 곯아떨어졌고, 이브는 그녀 나름의 배려인지 묻고 싶은 것이 제법 있을 텐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졸면서 되새겼다.
홈즈와의 충격적인 만남은, 더욱 충격적인 귀가 선언으로 흘러갔다.
"아침에는 사감이 순찰을 돌아요. 외박하는 학생이 있었는지 확인하려고요."
이런 중대사보다 대수로운 일인가 싶었지만, 세 명의 학생, 정확히는 홈즈를 제외한 나머지 둘에겐 꽤 중요한 문제처럼 보였다. 다만 홈즈는 심드렁하게 관망할 뿐이었다.
"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암호문 있잖습니까."
그는 갑자기 말했다.
"그건 다음에 대학 밖에서 확인하죠."
"굳이 밖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나?"
"올드코트는 워낙 보는 눈이 많으니까요."
나는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비록 최근에는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학장의 불가시한 괴물들은 아직도 교내에 존재했다. 홈즈가 의장 자격으로 호레이쇼에게 건넸던 쪽지에는 분명 그에 관한 묘사가 적혀 있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홈즈가 학장과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란 가설쯤은 세울 수 있었다.
"좋아, 시간을 정할까?"
"아니요, 제가 먼저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방법은 그때 정하는 걸로 하죠.
영 미덥지 않은 말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주석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믿고 맡기겠네."
결국, 나는 그렇게 거만하게 턱짓 한 번 하고 말았다.
그들과 헤어지고 어찌 되었더라.
아, 마차였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 새벽 마차를 잡아탔다. 거리에는 이미 자동차나, 자동차가 끄는 마차가 더욱 많았지만, 굳이 말이 끄는 것을 고른 건 순전히 내 고집이었다.
멈춰 선 마차는 병든 말이 끄는 검은 칠이 된 마차였다.
"어디까지 가요?"
"외곽도 가나?"
"어디요?"
내가 행선지를 읊자, 마부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어서 챙이 위로 향하게 뒤집고 불쑥 내밀었다. 나는 그 안에 동전 몇 푼을 담아줬다.
"나머지는 운임은 가서 주겠네."
그 자리에서 동전을 세어보는 마부에게 독촉하자, 그는 고개만 기울여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이브의 도움을 받아서 마차에 올라탔다.
"허이! 허이!"
마부가 재촉하자 말은 힘없이 앞으로 걸었다.
"마차가 멀리 나가네요."
눈 감은 날 향해 이브가 첫말을 떼었다.
"맞는 방향으로 가는 건가요."
그녀가 불안한 이유는 짐작 갔다. 몇 번이고 지난 길이었기에, 나는 봐서 알고 있었다. 지평선 끝까지 늘어져 있던 건물 군집이 멀어지고, 점점 어두운 길로 달려가는 마차.
"허버트 씨?"
목소리는 떨렸다. 마차의 들썩임 때문인가.
이토록 흔들리는 이유는 포장도로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흙길에서는 둔부가 아파 올 정도로 마차가 흔들렸다. 그리고 점점 빛이 사라져 갔다. 눈을 감고 있어도 알 수 있었다. 가로등이 끊기고, 불빛이 꺼졌다.
"뭔가 이상해요. 허버트 씨."
지친 말의 목청에서 울리는 가래 끓는 소리. 잘 박히지 않은 편자 못이 지면을 긁고, 바퀴 이음매에서는 삐거덕 소리. 바람은 구슬프게 수풀을 연주하고, 그리고 세상은 비통에 잠겨서 침묵했다.
"허버트 씨!"
나는 번쩍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다 왔어요."
마차는 어느덧 정차해 있었고, 우리는 어두운 숲과 들판 사이에 끼어 있었다.
프랑크 저택이었다.
"그러면 이만."
동전을 모두 챙긴 마부는 두 번이나 세어 보곤 돌아갔다. 마차를 끄는 말은 올 때보다 지쳐 보여서 저런 마부 밑에서는 오래 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런던 외곽의 작은 숲 속에 남겨졌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불안한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허버트 씨는 굳게 닫힌 빗장 문으로 다가갔다. 오랫동안 방치된 나머지 구석구석 녹슬어 있는 흉물이었다. 나는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조차 쉬이 믿기가 어려웠다.
"믿을 만한 사람을 주선해 주시는 건 알겠지만."
───삐이이!
예고 없이 울린 전기 벨 소리에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수풀 쪽에서는 까마귀인지 참새인지 모를 검은 새떼가 나처럼 놀라서 날아올랐다.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 줄은 몰랐네."
허버트는 사과하는 것처럼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듯이 들었던 팔을 내려놓았다. 문 너머를 흘깃 살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이 틈에마저 말해두려고 입을 연 찰나였다.
"계속하자면 제 아버지이신 오스카 피츠헨리 박사의 비밀을 알리고 다니는 것이...."
───덜컹!
나는 다시금 말을 멈췄다.
허버트 씨는 문에 손대지 않았고, 안에서 누군가 마중 나오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문이 제 혼자서 스르르 열린 것이었다.
"왜 그러지?"
바짝 긴장한 나와 달리 허버트 씨는 꽤 자연스럽게 열린 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괜찮아요?"
"그래."
그리고 끝이었다.
부연 설명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한 번 입 다물면 한참이나 말이 없는 그였다.
어쩌면 그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흔한 풍경인지도 몰랐다. 나만 모르고 있을 뿐, 런던 곳곳에 이런 신기한 건축물이 여럿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 장치인지는 가늠되질 않았다. 아마도 전기를 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나와 허버트 씨는 저택까지 늘어선 긴 정원 길을 걸었다.
물론 그것을 정원이라 불러도 된다면 말이다.
오늘 밤, 하늘에는 달도 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에 잠긴 그 광경은 몹시 으스스했다. 철책에 둘러싸인 황량한 정원에는 내 눈높이만 한, 허버트 씨에 이르러서는 그 키보다 높은 가시덤불이 무성히 뻗쳐 있었다.
장갑을 끼고 손을 집어넣어도 갈기갈기 찢길 것 같은데, 어찌 된 연유인지 줄기 사이사이에 피어난 붉은 장미꽃 꽃송이는 흠 한 점 없는 붉은 속살을 고이 간직했다.
상처받지 않은 것은 쉬이 상처 주는 법이다. 그러기에 그 아름다운 모습은 더없이 불길하게 보였다.
"뭔가를 가둬놓았든지."
홀로 떠오른 것을 속삭이자, 갑자기 허버트 씨가 발을 멈췄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뒤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그 모습에 놀라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네?"
"방금 뭐라 했나? 왜 그렇게 생각했지?"
한껏 정색한 허버트 씨의 모습은 오늘 겪은 소동이 빛바랠 정도로 귀기 어렸다.
내가 여기서 망상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잠깐, 나는 그가 혹시 연쇄 살인범이 아닌가 하고 괴상야릇한 상상을 했다. 이런 식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 외곽 폐허로 여인들을 끌어들여 살인하는 그런 전형적인 쾌락 살인범 말이다.
"그야 가시, 장미밭으로 덮여 있잖아요."
"그게 왜?"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가둬두려고, 주변에 해자를 파고, 그 주변에 장미밭을 둘러뒀다는 내용이요."
물론 나는 그 책이 소설이란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순 없는 일이었으니까.
허버트 씨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더 짓다가, 거짓말처럼 단숨에 근엄함을 되찾았다.
허버트 씨는 잠깐 더 험악한 표정을 짓다가, 한순간에 평소의 근엄함을 되찾았다. 그리곤 말을 툭 던지는 것이었다.
"필히 추리소설이겠군."
나는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어떤 환자를 가둬두겠다고 해자를 지을 만큼 돈 많은 병원은 없지. 내가 아는 한, 그런 호사스러운 감금 생활을 지낸 건 철가면이 유일하네."
그리고는 그치곤 넉살스러운 어투로 농담까지 했다.
"그리고 자네 말이 맞아. 이 저택엔 괴물이 살거든."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걸 농담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놀라지 말라고 미리 전하는 거야. 나는 경고했네."
으슥한 칠흑의 밤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숲 속 한가운데 버려진 폐저택 정원에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모두일지 몰랐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끔찍한 망상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이랬다.
가슴 한구석이 뭐라 말할 수 없이 답답하고, 폐 한쪽이 틀어막힌 것처럼 호흡이 버거웠다. 그건 일종의 본능이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닥치려 할 때마다 울리는 경종, 알레르기 같은 것 말이다.
대체 왜 이런 농담을 하는 걸까.
어쩌면 뭔가 비밀을 감추려고 일부러 경망스럽게 말한 것은 아닐까. 그건 꽤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탐정처럼 신중히 추리했다.
그러자 다시 앞서 걷던 허버트 씨가 재차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에 내가 괴물이라고 했지."
나는 생각이 읽힌 듯이 놀라서 대답하지 못했다.
"안에서는 말하지 말게."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좁은 정원 오솔길을 지나고 현관에 이르렀다.
정문은 얼추 보아도 기품이 느껴지는 큼직한 문고리가 걸려 있었다. 허버트 씨는 그것을 잡고는 힘차게 세 번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묵중한 노크 소리가 허전히 흩어졌다. 그 직후에 나는 다시 한 번 기겁했다.
"자꾸 이러시면 난처합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우리가 오는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꼭 유령의 것처럼 음산했지만, 그 첫말은 뜻밖에도 평범한 것이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네."
"주인 어르신의 초대가 없으면, 저택에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허버트 씨의 사과는 불발로 그쳤다. 그가 누굴 두고 하는 말인지는 뻔했기에, 나는 괜히 서먹하게 시선을 낮춰서 그의 어깨만 노려봤다.
"아서한테는 내가 설명하겠네. 그러니까 문이나 열어."
"곤란합니다."
대답과 달리, 안쪽에서는 차근차근 잠금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는 깊은 지하 동굴 입구처럼 서늘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안에는 흐릿한 불빛 하나가 다였는데, 그래서인지 내부 풍경은 새까맣게만 보였다.
"내 뒤로."
나는 왠지도 묻지 않고 허버트 씨 등 뒤에 섰다.
그렇게 우리는 실내로 들어갔고,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문을 닫았다. 흐릿한 광원의 정체는 촛불이었다. 문을 연 집사는 촛농이 뜨겁지도 않은지 장갑 하나만 끼고 잡았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힘껏 참았다.
문에 가려졌던 집사의 모습이 또렷이 드러났고, 그는 단언컨대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 가장 흉측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어떤 사연을 가져야 이런 외모가 되는 걸까.
좀처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부족한 표현력으로 애써 설명해 보자면,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양초와 닮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길고 늘씬한 양초가 점점 녹아서, 흐른 촛농이 그대로 굳어 버린 그 징그러운 모양처럼 살점이 번져 있었다.
그뿐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어중간한 불빛은 그의 피부 주름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가뜩이나 짓눌린 모습을 더욱 역겹게 만들었다.
나는 구역질을 참으며 시선을 돌렸다.
"정신 차려."
허버트 씨가 어깨를 만지며 속삭였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옆으로 쓰러져서 그에게 기댄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쓰러지려는 걸 허버트 씨가 몸으로 받친 자세였다.
나는 급히 몸을 떨어트리며 고개 저었다. 아무리 끔찍한 얼굴이라고 해도 너무 무례했다.
그리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눈앞의 집사는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아까 허버트 씨가 말한 괴물이 그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내가 아닌 허버트 씨를 향해서 말이다.
"간만이십니다."
"그간 바쁘게 지냈지."
"소문은 저택까지 들렸습니다. 경찰 일을 도우신다고요."
"아서도 이해할 거야."
아서, 아까도 들은 이름이었다.
그가 이 저택의 주인일까?
"다들 서운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별로 서운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허버트 씨를 향한 태도는 아주 무심했는데, 나는 이게 그저 인사치레인지, 아니면 그와 아서라는 자 말고도 다른 이가 사는지 궁금했다.
이렇게나 큰 저택이니 사람 몇 명이 더 살아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래서 아서는?"
"방에 계십니다."
"자는지는 모르고?"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허버트 씨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시간이면 그도 자겠지. 혹시 내일 아침에 중요한 일정이 있나?"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갑자기 말이 걸린 탓에, 나는 한 번 혀를 씹고는 다시 자세 잡아서 대답했다.
"아니요, 딱히."
"그러면 여기서 자고 가면 되겠군. 방 두 개만 준비해주게."
"청소가 된 방이 없습니다."
"그나마 깨끗한 방을 그녀에게 주게."
나는 대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늦게 물었다.
"네?"
"여기 집주인이 일어나는 대로 이야기할 테니, 오늘은 푹 쉬게."
내 질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허버트 씨는 당돌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손님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누구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집사는 과장된 동작으로 몸을 돌리곤, 앞으로 호쾌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어두운 저택에서 광원은 그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둠에 떠밀리듯이 앞으로 걷는 수밖에 없었다.